삶에서 물건의 무게라도 줄이고 싶을 때는 비움예찬

100%를 채우지도, 100%를 쓰지도 말기

by zeze

비우기 20일차, 아직도 정리하고 버려야할 게 많지만 눈에 띌 때마다 거슬렸던 많은 것들이 정리되었다.


러브앤피스 친구들을 만난 날, 나의 지루함에 대해 토로했다. 뭘 해도 재미가 없고,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이 전만큼 유용하지 않아 답답하던 때였다.

어쩌다 그 얘기가 나왔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비움과 정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30일 동안 버리는 챌린지. 난이도가 있는 것은 매일 한 개씩이 아니라 그 날짜수만큼 버리는 것이다. 마지막 30일차에는 30개를 버리게 되고, 총 465개를 정리하는 한 달 챌린지다. 혼자하면 흥이 안나니 다섯이서 다같이 정리하는 물건들을 인증하고, 왜 그동안 버리지 못했고 왜 처분하는지 간단한 설명을 적기로 했다. 물건 중 서로 갖고싶은게 있다면 교환도, 거래도 가능하고, 당근에서 처분되지 않은 물건들은 다같이 기부도 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통해 취향을 드러내는 소비예찬과 반대로 우리의 비움예찬.

이고지고 사는 물건이 적어질 수록, 눈에 거슬리는게 적어질수록 가뿐하고 개운해질 수 있을테니 지금처럼 생각도 고민도 많은 시기에는 물건의 무게라도 줄여보는 것이 좋다.


신이 났다. 오랜만에 일 외에 무언가에 집중할 게 생겼고, 매일 내 일상에 대해 집중해서 고민할 수 있는 트리거가 생겼다. 도서관에서 비움, 미니멀, 집에 대한 책도 잔뜩 빌려왔다.


첫 날은 그 날 신고 나갔던 롱부츠였다. 너무 좋아해서 가죽이 낡을 때까지 신었던 부츠였는데 신고 나갈 때마다 이젠 보내줘야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신발이었다. 좋은 신발은 좋은 곳으로 데려가준다 하니 새로운 신발에 애착을 주기로.


그 다음날은 추억때문에 버리지 못한 여행지에서 사온 귀여운 티백.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화장품과 욕실용품. 컴퓨터방에 쌓여있던 여기저기서 받은 선물과 사은품. 새제품이라서 버리지도 못하고, 당근에 처분도 되지 않는 애매한 물건들. 안 입는 옷과 골프와 테니스에 빠져 잔뜩 쌓여있는 취미용품들. 낡은 양말과 속옷. 안신는 신발들. 디카페인만 먹는 중이라 카페인이 든 드립백과 커피들. 테무에서산 드론. 쓰지 않고 남아버린 향수와 오일들. 또 추억이라 버리지 못했던 선글라스와 옷들. 당근할 때 같이 쓴다고 남겨두었던 신발 상자들. 주방 하부장에 숨어있던 건나물과 표고. 유통기한 지난 부침가루와 식재료들.



이 챌린지의 룰은 하루 이틀 건너 뛰었어도 그 날에 맞는 개수를 꼭 버려야하는 것. 19일차를 건너 뛰어도 20일에는 20개를 버려야한다. 너무 피곤한 날에는 버리는 에너지조차 남아있지 않아 건너 뛰기도 했다. 그래도 20일이 지나온 오늘 20일 전보다 조금은 가벼워졌다. 일상의 무게가, 마음의 무게가 1g라도 가벼워졌다면 젖은솜처럼 무거웠던 나에게는 얼마나 큰 의미인지.


‘저기 정리해야하는데.. 저거 버려야하는데.. 저거 안쓰는데..’ 이런 생각들조차 내 에너지를 쓰게 되니까 말이다.

아직 버리지 못한 물건들을 생각하며 소비를 줄이게 되는 건 덤이고, 어디서 사은품을 준다해도 선물을 준다해도 잘 받지 않는다. 집에서 굴러다니게 될 게 뻔하다.

언젠가 써야지 하고 쟁여뒀던 식재료와 화장품은 생각날 때 바로 쓴다. 그러다 잊고 유통기한이 지날게 뻔하니까.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파악하고, 잘 쓰게 하고, 이것 만으로도 충분함을 느끼게 해주는 과정인 것 같다.

쓸데 없는데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말고, 내 삶을 즐겁게 하고, 의미있게 하는 것들에만 에너지를 써야한다.


물건을 비우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가장 먼저 정리해야할 건 물건도 물건이지만 감정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가득찬 미움을 하루에 하나씩 버리고, 불안과 걱정을 버리고, 예민함을 내려놓고.


그렇게 조금이라도 틈이 난 곳에 씨앗을 뿌리고, 꽃을 피울 것이다. 나를 웃게하는 것들을 채울 것이다.

마침 ‘청명’이 왔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 고 한다. 지금 내가 비워낸 자리에 어떤 싹이 틔워질까 기대감이 같이 틔워진다. 하루 새에 팡 틔워버린 벚꽃들처럼, 그 아래 몰려든 사람들의 반달눈처럼 나도 어느샌가 쳐다보면 그 빈틈 사이에 무언가 팡 틔워져있을 거고, 그걸 쳐다보는 내 눈도 반달이 되어있겠지.


당연하게 쥐고 있어서 놓지 못한 것들을 생각해본다. 이번주는 유난히 그랬다. 나에게 온 가장 소중한 햇살을 지키기 위해 분명히 조정하고, 포기해야하는 것들이 있었음에도 욕심을 내려놓지 못했다. 나에게 충분한게 어디까지 인지, 불필요한 건 어디까지 인지 생각해보니 손에서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영상을 보다, 지금은 바쁘게 지내면 안되는 시기라고 하는 내용을 봤다. 지금은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진짜 좋은 것을 알아채는 시간과 에너지가 있어야한다고. 어느때보다 잔량 배터리가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모든 것을 100%로 채우고, 100%로 써선 안되는 시기다.


적당히 비워내고, 적당히 에너지를 보존하고, 적당히 지켜볼 줄 알아야하는. 그래서 정말 좋은 것. 중요한 것을 알아보는 혜안을 길러야하는 시기다.

그러기 위해 비워낸다. 쥔 것을 놓는다.


그리고 마음의 빈 공간에 싹이 쑥쑥, 꽃이 팡팡 피도록 봄햇살을 자주 쬐어주기로. 옷은 언제나 밝은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