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대신 걸을게요> 를 쓰길 참 잘했다.
책을 만드는 건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베스트셀러로 대박날 생각도 없었고,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작가가 꿈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내 책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었고, 마냥 이루기 힘든 꿈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냥 하면 되는 일'이었다. 대부분 책을 만들 때 망설이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더 잘 만들고 싶어서,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아서, 할 이야기가 없어서'라고 한다. 그런 걸 따질 필요도, 이유도 없이 그냥 내가 작년에 겪은 일들을, 생각들을 책으로 만들어야 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산티아고를 떠나기 전부터, 아니 암을 선고받았을 때부터 내 이야기를 책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가끔은 내가 겪은 일들을 콘텐츠로 만들어 내는 이것도 나름의 직업병인가 싶었는데, 그냥 내가 겪은 경험과 생각이 흩어지는 걸 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 때의 나를 온전히 기억하고 싶어서 일기를 더 열심히 적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생각과 감정이 롤러코스터같았던 날들이었기에 일기를 하루만 걸러도 종잡을 수 없는 흐름이었다.
산티아고로 떠나기 전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하나 새로 만들었다. 우리의 일정에 따라 매일매일 일기와 사진을 올리기로 했고, 다녀와서 우리의 책으로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렇게 아무리 피곤해서 쓰러져 잠들 것 같은 날도 핸드폰을 부여잡고 꾸벅꾸벅 졸며 오늘의 감정과 잊고 싶지 않은 시선들을 3개의 정사각형안에 압축해 꾸준히 밀어넣었다. 우리의 여정을 매일 같이 따라와주신 분들도 계시고, 다녀와서 접한 사람들도 있었다. 까미노를 걷는 중에도 매일매일 나의 여정 첫 날 부터 돌이켜보면서 다시 나의 길을 되새김질했다. 한 순간도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었다.
한 달간의 여정 끝, 나의 공간과 시간 속으로 들어와서 차분히 그 일기들을 다시 돌아봤다. 꾸깃꾸깃한 나의 일기장과 인스타그램 계정의 일기들, 구글 드라이브의 사진과 동영상들. 다시 되돌아봐도 감동적인 순간들이었다. 흩어져있는 나의 시간들을 한 공간에 모으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하나의 공간에 모든 것을 모아두고, 한 달동안의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순간과 감정을 디테일하게 기억해냈다. 그렇게 가득가득 채워넣고, 꼭 하고 싶은 이야기만 콕 집어내는 과정이 오래걸렸다.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매일 매일 새로운 생각과 감정이 넘쳐났고, 한가지 이야기만 하기엔 너무 아쉬웠다. 누군가 그랬다. 모든 걸 말하는 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그래서 내가 가장 집중하고 싶은 한 가지에만 집중했다. 날마다 날마다 내가 무얼 생각했고, 느꼈는지.
그렇게 언니와 나의 30개의 에피소드가 나왔다. 에피소드라기엔 에피소드 없는 에피소드다. 그렇지만 나에겐 잔잔한 파도같은 날들이 모여 큰 파도가 되었기에 한 순간도 무난하고, 평범한 순간이 없었다.
글을 모두 다듬은 뒤에 책 제목을 짓고, 디자인을 시작했다. 언니와 나의 책을 한 권에 묶어낼 것인지, 각자의 책으로 낼 것인지. 결론은 우리가 각자 겪은 시선을 앞, 뒤로 볼 수 있게 묶어내 같은 일을 겪어도 다르게 해석하는 두 시선을 보여주자, 앞 뒤로 끝이 없는 책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 많은 아이디어들이 있었다. 책을 소비하는 방법까지 다양한 방법이 떠올랐다. 하지만 모든걸 다 담으면 결국 알 수 없는 책이 되고 말거란 생각에 가장 담고 싶은 것만 담기로 했다.
인디자인부터 포토샵까지 유튜브로 공부해가며 모든걸 직접해냈다. 언니와 매일 퇴근하고 까페가 문 닫을때까지 열띤 토론을 했고, 주말엔 새벽같이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일이 끝나도 사진과 글을 편집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앉아있었다. 점점 실체가 드러나고 있었다.
인쇄소에 최종 파일을 넘기고 나서도 잘못 편집된 파일에 몇번이고 주고 받으며 수정을 해나갔다. 샘플 책을 받아본 뒤에도 조금 더 잘 담아내고 싶은 마음과 오탈자 없이 완벽한 상태로 전하고 싶은 마음에 보고 또 봤다. 또 수정본을 전달드린다며, 죄송하다는 메일을 수십번 보낸 뒤에 우리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텀블벅에 올린 뒤에도 아직 끝난 것 같지가 않았다. 사람들 손에 우리의 책이 쥐어져야, 그들 눈에 활자가 읽혀야 진짜 끝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텀블벅에 올린 뒤 1시간만에 100%를 달성했다. 2일만에 500%를 달성했고, 논픽션 분야 1위와 인기 프로젝트에도 올랐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수십번 얼굴이 빨개졌다. 인생 통틀어 손에 꼽는 짜릿한 순간이었다. 짜릿하고, 감동스럽고, 너무나도 행복한 감정이 몰아쳤다. 후원을 완료했다는 인증 화면과 응원의 말들이 쉴 새 없이 도착했다.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감격스럽고, 따스하고, 고마워서 몸둘바를 몰랐다. 너무 멋있다는 말들이 나를 더 진하게 만들었다.
텀블벅 기간이 끝나고, 폭풍같은 택배전쟁이 있었다. 처음해보는 대량발송에 밤 늦게까지 허둥댔지만 12월이 지나기 전에 책을 보내드리겠다는 약속만은 꼭 지켜야했다. 그렇게 12월 30일부터 사람들의 손에 우리의 책이 쥐어졌다.
첫 날 부터 "지혜야 세상에 사랑은 있어"라는 메세지가 쏟아졌다. 그리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를수록 따뜻하고, 진한 후기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메세지와 편지에 눈물을 쏟은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사랑'에 대한 말들을 많이 전해줬다. 오히려 내가 사랑을 가장 많이 느꼈던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마음을 알아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내가 너에게 더 큰 사랑을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고, 이 책을 내줘서 고맙다고 했다. 내 마음을 알 수 있게 책을 통해 말해줘서 고맙다고.
근데요, 여러분들의 사랑은 저에게 늘 느껴졌답니다. 여러분들이 여러번 말해줘서 다시 한 번 굳세게 믿는데요. 세상에 사랑이 있다고 믿는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제가 어떻게 다시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여러분과 부둥켜 안으며 살아낼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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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책을 내줘서 고맙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 책은 내가 나를 위로하고, 일으키는 가장 마지막 단계였던 것 같다.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전하고, 책을 만들면서 내가 내 마음을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들여다보고, 읽고 또 읽으면서 스스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이젠 이 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아서 나와 같은 사람에게도 위로가 되길 바란다.
생일에 이런 메시지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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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을 읽고 나서, 넘 맘이 아려왔어.
지혜가 사랑을 많이 고파하는구나.
맘이 너무 여려서 작은일에도 많은 상처를 받고 살고있구나..
그렇게 활기차게 방방거리고 사는거는 그만큼 외로워서, 그렇게 스스로 다독이면서 사는구나.
울딸 혼자서 많이 힘들었겠구나.
엄마가 미처 알지 못한 울딸의 맘을 책을 통해서 알게되고, 엄마 걱정할까봐 속맘을 내놓지 않고 맘한켠에 쌓아두면서 사니깐 그게 한켠한켠 모아져 맘이 몸이 아파오는건데.. 다른 아이들처럼 힘들다고 투정도 하구, 아프다고 표현도 하구, 사랑고프다고 때도 쓰면서, 엄마한테는 그리해도 되는데..
근디 울 지혜가 한가지 미처 모르는게 뭔줄아니!
지혜 넌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럽고 예뻐..
엄마뿐만이 아니라 널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넘 많다는 사실!
엄마 삶의 에너지원인 울딸! 엄마 딸로 와줘서 엄만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해옵ㄱ하단다.
울딸 생일 축하해! 너무너무 사랑해! 지혜엄마라서 너무너무 행복해.
2020년 1월 18일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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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를 사랑했던 친구들은 산티아고를 간다고 했을 때 꼭 그 길을 가야하냐고 말렸던 자신들의 말에 상처받았을 까봐 미안하다고, 너무 기특하고 멋있다고, 나의 까미노가 너무 지혜스러워서, 귀엽고, 솔직하고, 따뜻했고, 위로가 되었다고. 역시 자신이 아는 것처럼 사랑스러운 친구라고. 글에서 내가 그대로 읽혔다고 했다.
애틋한 나의 친구 윤영이는 워드파일을 불쑥 보냈다. '지혜에게'라는 긴 글의 편지였다. 10년 넘게 친구인 윤영이는 그동안 나에게 미처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속마음을 이제서야 터놓았다. 자신의 상처와 비밀들, 그리고 나에게 하지못한 말들이 늘 마음 속에서 부유했는데 이제서야 책을 통해 내 마음을 알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네가 같은 주제로 백날 찡찡거려도 매번 다른 마음으로 귀 기울여 들어줄거야. 니가 산티아고에서 느꼈던 낯선사람들의 따뜻한 다정함보다 백 배 만 배 더 따뜼하고 다정한 마음으로! 네말처럼 우린 혼자 또 함께 살아가잖아. 우린 이제 겨우 29살이고 앞으로 살아갈 많은 날들 속에서 서로에게 소중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어! 니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어떤 모습의 29살을 꿈꿨었는지 다시 깨달았던 것 같아. 외롭고 우울했던 날들에 위로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고, 이미 네 삶에는 사랑이 넘쳐 흐른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
여튼, 니가 책을 내주어 참 좋다!!"
엄마 다음으로 나에게 애틋한 존재인 우리 사랑하는 이모는 엄마 집에 편지를 놓고 갔다. 카톡으로 보낼 수도 있었지만 꼭 손편지로 전하고 싶었다며.
"이쁘고, 이쁜 지혜에게. 아니 '울보 지혜'에게. 지혜야! 참 오랜만에 편지를 쓰네. 처음인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표지와 글들. 여행하면서 느낀 감정들을 따뜻하게, 유유히 그려내는 감성작가의 느낌을 물씬 받았단다. 읽으면서 울컥하기도 하고, 이모가 함께 산티아고에 있는 것 같기도 하며. 산티아고 철의 십자가에 '소원의 돌'을 못보낸것을 아쉬워하며 다음에 이모도 꼭 산티아고 길을 걷겠노라고 다짐도 했자.
마냥 밝고 맑고 똑똑하고 배려심많고 착한 지혜가 많은 감성과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또 그 감정들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생각과 노력하는 것이 기특하기도 했어. 책을 읽고 지혜에게 바라는게 있는데 지혜는 생각한것보다 더 주위에 따듯함을 주고 배려하며 베풀줄 알기에
가족이며 주위사람들도 지혜를 아주많이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것. 그러기에 주위의 작은 사랑에 흔들려 힘들어하지 않기를. 그리고 운전하면서 혼자 차에서 울지 않기를.
먼훗날(한 15년 후) 지혜가 이 책을 다시 읽게될 쯤에 입가에 미소를 띄며 지금 지혜 모습을 귀여워하며 그리워할거야.그 땐 지금의 지혜가 스스로 멋지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거야. 이모와 가족은 이미 멋지다고 느껴, 자랑스럽고.
지혜의 생각과 감정을 책으로 접하게 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지금 누구보다 빛나고, 아름다운 지혜의 인생이 유지되기를 응원할게.
2020. 1.7 지혜를 사랑하는 막내이모가"
이모의 말대로 지금 이 책을 가끔 꺼내읽으며, 또 몇십년 후에 다시 읽으며, 그 땐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고 돌이킬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내가 이런 생각과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었지라고 되돌아보며 나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중심이 흔들릴 때 내가 나를 다시 깨달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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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주위의 많은 사람에게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며, 위로와 공감을 주는 경험을 했지만 그만큼 또 나에 대해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되돌아볼 수 있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다시 정리하고, 다짐하며.
베스트셀러가 되진 않았지만(독립출판물이라 그럴 수도 없고), 여전히 이 책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고, 느즈막히 읽은 뒤 따듯한 후기를 들려주시기도 한다. 지금처럼 이렇게 우리의 글을 읽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천천히, 오래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 달에는 2쇄를 찍기로 했다. 3월에는 책을 통해 강연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이 닿을 수 있기를,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책이 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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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내길 참 잘했다.
<우는 대신 걸을게요> 주문서
이 책에 닿는다면, 조금이라도 읽게 된다면 후기를 남겨주세요.
천천히 모두 읽고 꼭꼭 씹어 마음 속에 담아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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