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떠난 2박 3일 제주 백패킹
1년 만에 엄마와 제주도를 다녀왔다. 그 사이에 한라산을 가기도 했지만 이번 여행은 한껏 기대했던 1년만에 백패킹 여행이다.
56살인 우리 엄마의 확실한 취미는 백패킹이다. 매주 주말 15키로에 육박하는 짐을 싸서, 전국 방방곡곡을 잘도 돌아다닌다. 주말은 고작 2일인데 엄마는 스스로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워낙 잘 알아서 그 2일을 야무지게 활용한다. 금요일 밤마다 짐을 싸고, 일요일마다 텐트와 침낭을 말리는 번거로운 일을 매주 하고 있다. 엄마의 장비는 거의 프로급이며, 갖고 싶은 장비는 직구까지 해낸다. 심지어 사진과 글을 워낙 잘 기록해서 그걸로 책을 내거나, 브런치 혹은 유튜브를 시작해보자고 꼬시고 있다.
물론 나도 백패킹을 좋아한다. 가끔 살아가는 날이 지쳤을 때, 떠나고 싶을 때, 자연이 그리울 때 엄마에게 말하면 그 주 주말에 뚝딱 내 배낭까지 생긴다.
굴업도, 성인대, 원적산 등등 백패킹을 종종 쫓아다녔지만 그 중 최고는 작년 여름 암수술 이후 떠났던 제주도 백패킹 여행이다. 이게 어떤 의미냐면 온전히 우리 둘 만의 힘으로 이뤄낸 백패킹 여행이었다. 그동안은 기댈 삼촌이나 친구가 있었지만, 딸랑 우리 둘이 배낭을 메고, 제주 산골짜기에 제주 앞바다에 텐트를 치고 자는 건 우리에게 대단한 일이었다.
작년엔 엄마의 버킷리스트였던 우도의 비양도에, 그리고 안개로 올라가지 못한 군산오름 대신 색달해수욕장으로 떠났었다.
이번 여행은 1년만에 비양도와 군산오름을 다시 도전하는 야무진 계획이 있는 그런 여행이었다.
역시 모든 건 계획대로 되지 않고,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는 데에 재미가 있다.
지금에서야 재미라고 말할 수 있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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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를 피해 일주일을 미뤘는데 제주에는 다시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됐다. 계속해서 흐리고, 비가왔다.
6시 비행기로 날아가 도착하자마자 렌트카를 빌리고, 엄마가 지난달에 왔었는데 너무 맛있었다는 식당에 달려가고 있었다. 렌터카 업체를 빠져나오자마자 '제주도의 푸른밤'을 들어야 한다며 잔뜩 들뜬 상태였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우리 둘은 열리지 않는 차 안에서 멍하니 서로 쳐다보고 있었다. 신호등이 잘 되어있지 않은 교차로에서 누군가가 우리의 옆구리를 '꽈-앙' 박은거다. 정말 '꽈-앙'이었다. 순식간에 인생이 주마등처럼 흘러갔고, 슬로우모션으로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끔찍한 순간이었다. 차가 뱅글뱅글 돌아 구석에 박혔다. 조수석에 앉은 내쪽으로 박아 문은 열리지 않았고, 어깨와 무릎을 세게 부딫혀 멍한 상태였다.
이게 무슨일인가. 우리가 그렇게 기대했던 제주 여행인데. 5분만에 이런다고? 진짜로? 이럴거라고?
절망적이었다.
그렇지만 그러고 있을 순 없으니, 차근차근 보험처리를 하고, 다시 렌터카 업체에서 차를 교환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깨가 너무 아파 도저히 그대로는 여행을 할 수 없었다. 물리치료를 받고 나니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순식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뒤에 왔던 트럭에 치였다면? 반대로 달려오는 차에 한 번 더 치였다면?
정말 죽을 수도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에 닿으니 끔찍하면서도 감사했다.
무엇보다 운전을 했던 엄마가 다친 나한테 미안해할 그 마음이 싫었다. 그게 싫으면서도 자꾸 나는 어린애처럼 아프다고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속상해하는건 싫어하면서, 왜 내 투정은 포기하지 못할까.
우선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 숲 속 조용한 까페로 찾아들었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찾았다. 비가 오다 말다 하는 날씨였다. 우선 우도로 들어가자고만 정해놓고, 성산포항으로 갔다.
늘 이렇다. 제주의 날씨란. 성산항까지는 흐렸던 날이 우도에 내려 비양도에 다다르면 점차 맑아진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다. 작년에 우리를 반겨줬던 노부부도 생각이 난다. 1년 만에 다시 와서 너-무 행복하다고 활짝 웃는 엄마를 보니 다사다난했던 오전이 모두 잊혀지는 것 같았다. 엄마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다. 이젠 우리 둘이 텐트를 뚝딱 치고, 삼겹살도 야무지게 구워먹는다. 술 한잔하고, 차도 한 잔 하고, 산책도 하고.
우리 엄마는 내가 아직도 마냥 이쁘다며, 늘 시도 때도없이 근접촬영을 한다. 너무 이쁘단다. 너무 예뻐죽겠단다. 그런 마음에 왜 나는 눈물이 날까.
새벽엔 비가오기 시작했다. 비몽사몽 잠에서 덜깨 텐트에 떨어지는 투둑투둑 소리가 듣기 좋았다. 일어나 커피 한잔을 끓여먹곤, 엄마가 가고싶어했던 우도등대에 올랐다. 신비한 풍경이 펼쳐졌고, 우리밖에 없는 이른 시간에 기분이 좋아졌다. 우도등대를 오르는 순간은 그냥 마냥 마냥 좋았다. 덥고 힘들다고 짜증을 부리면서도 엄마의 웃는 모습이 좋았다. 엄마가 하고 싶어하는걸 함께 해줄 수있어 좋았다.
제주에 가면 엄마가 오르고싶어하는 곳을 오르는 대신, 내가 수영하고 싶어하는 바다에도 함께 가준다. 산을 올랐으니 이번엔 바다에 갈 차례다. 우도에서 나와 김녕해수욕장으로 달렸다. 엄마는 해변에 앉아 내가 골라준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나는 수영을 하며 엄마의 카메라를 보고 웃는다. 이럴 때마다 꼭 내가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어쩌면 엄마도 내가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그 때가 생각나서 이런 순간들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해맑게 노는 나를 지켜보며, 사진을 찍어주는 이 풍경 안에 우리가 있을 수 있어 감사했다.
둘 째날은 작년에 실패했던 군산오름에 오르는게 목표였는데, 엄마는 나를 보호해야한다는 걱정에 안전한 선택을 하기로 했다. 조금은 아쉽더라도 안전하게 함덕해수욕장 야영장에 자리를 잡기로 했다. 사실 위치는 어디든 상관없다. 우리가 함께하는게 중요하지.
함덕으로 향하니 날씨가 개였다. 물이 빠진 함덕 서우봉 해수욕장은 가족들이 다정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엄마가 꼭 해보고 싶어했던 서핑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5분만에 텐트를 치고, 샤워실에서 샤워를 했다. 그리곤 차가워진 몸을 뎁히기 위해 커피를 한 잔 했다. 물놀이에 찬물샤워에 많은 일들에 조금 지쳐있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가져온 책을 읽으며 조금 쉬고 싶었다.
엄마는 한 시도 나를 가만히 쉬게 두지 않았다. 책 한 페이지 읽으면 말을 시키고, 나 혼자 조금만 있을게 엄마도 혼자 조금 쉬어. 라고 한지 1분만에 다시 질문을 했다. 최후의 수단으로 노이즈캔슬링을 키고 고개를 푹숙이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정말 딱 5분만 가만히 있고 싶었다. 노이즈캔슬링을 뚫고 또 한 번 목소리가 들어왔다. 책 마지막 한 장 남았으니 그것만 기다려달라하고, 결국 장을 보러 일어났다.
하나로마트에 들러 회와 술을 사고 자리로 돌아왔다. 바다를 보면서 한라산을 한 잔 하니 정말 아-무 것도 부러울 게 없었다. 술도 못하는 우리 둘이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져 10분만에 한라산 한 병을 비워버렸다. 알딸딸하게 딱 기분좋게 취했다. 이 때부터 취한 것 같은데 엄마와 나눈 대화들이 너무 선명했다.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에 어색해하는 것 같다고. 항상 바지런하게 어디를 다니고, 무엇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데는 익숙하지만 혼자 있는게 어색한 것 같다고. 사실 나도 비슷한 사람이다. 그래서 엄마가 날 보면 '늘 외로워서 아둥바둥 이것저것 하는 것 같아 짠하다'고 늘 그런다. 나역시 엄마를 보면 그렇다. 가만히 있으면 온갖 생각들에 잠기는게 싫어서 가만히 있지 못한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니 혼자가 어색해지는 거다. 가만히가 어색한거다. 나는 최근들어 혼자있는 시간을 어느정도 다룰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어느정도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고, 그런 시간이 나를 채워주고, 단단하게 한다는 걸 안다.
"엄마 아까도 나 아까 혼자 냅두라니까 자꾸 말걸었잖아"라고 하니
"엄마가 그만큼 외로워서 그래"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느정도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엄마가 외로운게 싫었다.
"사람은 다 외로워."라고 했더니
"맞아, 알아. 누군가 있다고 외롭지 않은 건 아니야"라고 했다.
마침 오늘 하루종일 읽었던 책이 '외로움을 씁니다'였다. 그 책은 엄마를 주고왔다. 우리 엄마가 외로움을 잘 다루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외로움을 슬프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엄마에게 물어봤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고. 눈물버튼이 예약된 질문이었다. 힘들었던 순간은 내가 생각한 순간이었다. 우리 둘만 아는 그 날들.
그리고 행복했던 순간은 예상치 못했다. 행복할 때가 가장 무섭다고 했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아빠가 돌아가시기 딱 일주일 전이라고 했다. 내가 3살 때였다. 아빠가 오빠와 나를 씻기고 수건에 우리를 말리는 그 장면을 보는데, 행복감이 터져나와 마음이 울컥한 감정은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했다. 집을 사고, 차를 사고, 그런거 다 필요없고, 그냥 딱 그 순간이라고 했다. 근데 그 뒤 일주일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다신 그런 장면은 없었다. 엄마의 가장 큰 행복을 앗아간 사고가 너무 미워서 눈물이 넘쳐올랐다. 애꿎은 참깨라면만 들이켰다. 나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는게 좋은건지, 없어서 슬픈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엄마는 또 아빠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너무 예뻐해서 80살까지 시집안보낼꺼라고 했던, 매일 꽃을 사왔던, 오빠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만 애지중지했던, 매주 주말은 포항 앞바다로 캠핑을 나갔던, 그래서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들.
엄마는 나와 오빠가 20살이 될 때까지만 건강하게 살아가는 게 꿈이었다고 했다. 근데 20살이 지나니까 욕심이 생겨 내가 결혼하는 것 까지 보고싶었고, 지금은 또 나의 아이까지 보고싶어졌다고 했다. 내 산후조리 해줄 때까지만 건강하고 싶다고 했다. 마침 앞에 귀여운 딸내미가 지나갔다. 내가 주는 행복을 나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가 내 아들딸 볼 때까지 제발 건강했으면 좋겠는데
정말 한참을 엄마와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세수와 양치를 할 겸 함덕 해수욕장에 있는 까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바다 앞에 누워 듣는 파도소리가 마냥 행복했다. 이런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자리로 돌아와 엄마는 잠이 들었고, 나는 텐트앞에 누워 몇시간동안 뒹굴뒹굴 많은 생각을 했다.
다음날은 오름을 오르는 대신 함덕 서우봉에 올랐다. 엄마는 얼마전 발가락을 다쳐 2달동안 깁스를 했다. 불안하니 운동화를 신으라고 했더니, 괜찮다며 슬리퍼를 신고 올랐다. 불안하니 내가 신발 가져다주겠다하니 괜찮다고 하더니 오르막길을 한참 오른 뒤에 너무 아프다고 했다. 불쑥 화가났다. 그러니 내가 운동화 신으라고 하지 않았냐! 갖다준다고 하지 않았냐! 왜 말을 안듣냐! 하곤 씩씩대며 운동화를 갖다줬다. 더운날에 차에 다녀와서 화가난게 아니다. 아플걸 알면서 참는 그모습이, 결국 아프면서도 미안해서 쭈뼛쭈뼛말하는 그 모습에 화가나는 거다. 정말. 손많이가는 송여사라고 불렀더니, 집으로 돌아온날 엄마는 "손이 많이 가서 미안하다며, 챙겨줘서 고맙다며" 카톡을 남겼다. 어느 순간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보호자가 된 느낌이다. 엄마를 잘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 자꾸만 예민해지고, 자꾸만 화를내고,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편하게 넘어가도 될 일에 신경이 곤두선다.
근데 진짜 웃긴 건.
그 모든 엄마의 모습이 나다.
정말 나다.
혼자 있지 못해, 옆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그게 외로워서 그렇다며 위로받고 싶어하는 것도.
함께 했던 일들을 추억하며 호들갑을 떠는 것도.
그렇게 호들갑을 떨다가 결국 사고를 치는 것도.
주변 사람에게 위태로워 보이는 것도.
손이 많이 가는 것도.
고집을 부리다 결국 아픈 것도.
다 나다. 그래서 나는 그런 내모습이 싫은데, 그 모습이 자꾸 눈 앞에 보여서 화가 나는 것 같다.
나는 분명 우리 엄마를 존경하고, 엄마같은 어른만 된다면, 엄마같은 사람으로 큰다면 더할나위없다.
근데 자꾸 속상한 내모습이 엄마한테 보인다. 엄마도 그런 모습이 나한테 보여 속상할 때가 있겠지.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생각이 정말 많아졌다.
주변사람이 혼자있고 싶어할 때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교통사고의 피해자도 마냥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되어
다신 사고나게 해달라고 빌지 않을 거고,
손 많이 가는, 걱정 하게 하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엄마한테 자꾸 화를 낸다고, 엄마를 미워하는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세상 그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한다.
돌아온날 밤에도 서우봉에서 슬리퍼신었다고 엄마한테 화낸게 미안해지고, 교통사고나고 계속 아프다고 찡찡댄게 미안했다. 그런 와중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카톡이 왔다.
엄마는 왜 항상 나의 눈물버튼일까. 엄마와의 여행은 늘 이렇다.
투닥투닥하다가, 우리 진짜 잘맞는건 잘맞지만 안맞는건 정말 안맞다다고 인정하고, 미안해서 울고, 또 들떠서 신나고, 또 서로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고.
그래도 엄마의 행복이 느껴지는 여행이었다.
다사다난했던 엄마와의 백패킹 끝.
그리고 확실한 건, 정말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한다. 누구보다 엄마의 행복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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