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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ze Jan 29. 2021

촌스럽게 울면서 퇴사하는 사람

남들 다하는 퇴사를 6년 만에 유별나게 합니다



‘퇴사’나 ‘프로이직러’라는 키워드가 한참 유행할 때는 관심도 없고, 무덤덤하다가 이젠 ‘퇴사따위 별거아니지’라는 인식이 박힐 정도로 쉽게, 자연스럽게 퇴사를 하는 세상인데, 나는 왜 지금 퇴사를 하면서 이렇게 유별난 감정을 느끼는 걸까.


6년을 다녔던 회사를 퇴사했다.

촌스럽게 엉엉 울면서.


첫 회사였다는 이유 한 줄로 설명이 되진 않을 것 같다.

공채 1기로 들어와 60명이 160명이 되는 과정을,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떠나는 과정을 지켜봤다.

친구같은 동료들을 만났고, 남편을 만났고, 서핑조를 만났고, 무엇보다 가족같이 따뜻한 팀원들과 행복하고, 즐거운 회사생활을 했다.

1주년, 3주년, 5주년도 유별나게 의미부여를 했던 사람이다.

우리 팀과 많은 벽을 허물고, 새로 만들고, 실패하고, 울고, 웃었던 것 같다.

나의 1막을 지나 2막으로 가는 기분이다.


퇴사를 선택하기 까지 정말정말정말 많은 고민이 들었다.

‘지혜님과 함께 하기로 결정되었답니다’라는 전화를 받고도 한달이 넘는 시간을 고민했다.

회사와 서비스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컸고, 하고 싶은 것도, 내가 해야할 일도 많았기 때문에 지금 나가야 되는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너무 컸다.

이제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제 좋아해주기 시작했는데..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았다.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도 너무 많았고, 그에 비해 떠나야 할 이유는 몇 개 없었다.

그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는 호기심과 욕심이었다.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나에 대해, 나의 일에 대해, 앞으로의 일에 대해 깊고, 진득하니 고민했다.

6년이란 시간 동안 이렇게 깊게 고민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요목조목 따져가며 나의 생각을 정제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뭘 하고 싶은지, 어떤걸 포기할 수 없고, 어떤걸 도전하고 싶은지, 미래엔 어떤 모습을 그리는지.

이직을 통해 얻는 것과 포기할 것을 요목조목 적어가며, 선배들에게 의견을 구하기도 했다.

고민을 하는 내게 선배는 ‘린인’이라는 책을 추천해줬고,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나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말 것,

손에 쥔 걸 놔야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있다는 것,

나의 최대한의 모습은 어디일까 상상해보는 것,


나는 최대한의 내가 되어야 한다. 최대한의 지혜가 되기.

그게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나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펼쳐보기.


산티아고에서 배웠다. never try, never know.

새로운 곳에 발 딛어봐야,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두렵지만, 무섭지만, 아쉽지만, 서운하지만, 슬프지만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는 29년 동안의 내 습관을 깨버렸다.


그동안의 나는 주변에 너무 쉽게 나의 선택권을 넘겨버렸다.

뭘 입을지, 뭘 먹을지, 뭘 할 지, 어딜 갈지같은 사소한 결정부터 큰 결정까지 주변에 너무 많은 의견을 구했다.

이번 이직을 고민하며 확신이 생겼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가장 잘 아는 건 나다.
내 인생의 선택권을, 내 인생의 주도권을 남에게 넘기지 말자.


그 때부터 주변에 물어보는 걸 그만뒀다.

대신 노트에 매일같이 내 생각을 쏟아냈다.

하룻밤만 자고 나도 생각이 바뀌는 폭풍같은 한 달이었기 때문에 매일매일 뭐가 걱정되고, 뭘 하고 싶은지 생각을 투명하게 적었다.

그리고 결정했다. 뭐가 됐든 해보기로.

그리고 쫄지 말고, 내 선택에 확신을 가지기로.

내가 나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누가 나에게 확신을 가져주겠어.


퇴사하는게 뭐라고, 이직이 뭐라고,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나 하겠지만.

나에겐 굉장히 굉장히 큰 일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를 굉장히 좋아하고, 지금 하는 일을 굉장히 재밌게, 즐기며 하고 있기 때문에 이걸 놓고, 새로운 걸 선택한다는 건 엄청난 선택이다.


“마치 가장 좋아하는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이하듯 서비스 전반에 자신의 강점을 발휘하여 ‘흔적’을 남겼습니다.”


가장 최근에 받은 팀장님의 리뷰다.

누군가에게 놀이하듯 보였을 정도로 나는 신나게, 재밌게, 열심히 해왔다.


그래도 한 번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궁금했으니까.

세상 무너지는거 아니라고 가볍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

그리고 무엇보다 2막으로 가기 전, 나의 6년을 차분히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른년생과 휴학없이 달려온 버프로 23살, 졸업도 하기 전에 첫 인턴 생활로 지금 회사에 들어왔다.

마케팅 재밌을 것 같은데? 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광고회사에 들어오게 되었다.

회사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1주년 굿즈를 기획하는 ‘회사의 마케팅’을 하다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이사님의 제안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게 되었다.

그 때부터 생각지도 않았던 기획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함께 만들어보자고 손을 내밀어준 이사님께 참 고맙다.


세상에 없던 ‘것’들을 만들며, 그것으로 누군가의 일과 삶에, 일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가치를 만들어가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건 너무 행운이다.

그 때부터 ‘마케터들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어왔다.


큐레이션 서비스의 시작

지금 생각은 그렇지만, 사실 처음엔 쉬운게 없었다.

서비스부터 비즈니스까지 처음해보는 것들이어서 아직 광고업계의 0.000001% 정도만 겨우 가늠하던 나에게는 쉽지 않았던 일이 분명하다.

온라인 광고 포털을 만들어보자는 목표로 모든 온라인 광고 상품 정보를 하나하나 다 모으고, 그 상품들의 데이터도 하나하나 다모았다.

광고 시장과 구조, 플레이어들, 주요 이슈를 그렇게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던 건 그 때의 노가다 덕분이다.

엑셀도 잘 사용할 줄 몰라 매일 7시에 출근해 우리 회사에서 가장 엑셀을 잘한다는 엑셀의 신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이 많은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다루고, 보여줄 수 있을지 배웠다.


그 때만 해도 콘텐츠 메뉴는 트리거 역할을 하는 gnb 중 하나에 불과했다.

콘텐츠를 소싱할 수 있는 국내외 사이트들을 뒤지고, 사용해도 될 지 법적인 이슈는 없을지 모든 걸 검토했다.

2016년, 그 때 처음으로 ‘ad curator’라는 용어를 내세워, ‘큐레이션’ 서비스를 만들었다.

지금은 일상생활에서 큐레이션이라는 용어가 자연스러워졌지만, 그 때만해도 큐레이션은 미술의 영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나는 스스로 큐레이션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던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하루에도 수 많은 정보와 트렌드가 쏟아져 챙겨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마케터들에게 ‘우리의 관점과 안목’으로 꼭 필요한 것들을 골라주겠다는 메세지로 ‘큐레이션’ 서비스를 시작했다. 2018년 본격적인 콘텐츠 서비스로 피봇팅하면서 ‘큐레이션 서비스’라는 메시지를 더 크게 외쳤다.


우리가 너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큐레이션 해줄게.


생각해보니, 그 때 난 pm이었어.

오픈애즈를 출시하자마자, 앱 데이터를 비교, 분석해주는 ‘오픈애즈 앱랭킹’ 서비스를 만들게 되었다.

오픈애즈는 선배들과 다함께 진행했던 프로젝트지만, 앱랭킹은 나만의 프로젝트였다.

그 때는 내부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있었고, 생각해보면 그 때 처음으로 pm역할을 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반응형 웹을 만들었고, 본사 데이터 팀과 협업해서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지 모두 처음부터 만들어 나가야 했다.

그 서비스는 회장님의 요청이었다고 했다. 앱랭킹 보고 자료를 들고, 9층으로 올라가 이주노 회장님 앞에서 덜덜떨며 발표했던 그 순간도 잊히지 않는다.

앱랭킹 서비스를 하며, 다양한 회사의 협업 제안을 받고, 프로젝트를 리딩하는 과정에서 급속도로 성장했던 것 같다.

앱랭킹 서비스는 본사에서의 데이터 소싱 이슈로 2019년 문을 닫았다. 내새꾸가 문을 닫는 과정은 처음이라 너무 가슴아팠다.



사람을 큐레이션해주자

2019년에는 정보를 넘어 사람을 큐레이션해주기로 했다.

경험과 성향에 잘 맞는 ‘마케팅 파트너’를 골라, 알려주고, 매칭시켜줬다.

스스로의 성향을 알아볼 수 있도록 MATI(마케터 성향 테스트)를 만들어, 업무적인 경험뿐 아니라 성향에 잘 맞는 사람들을 추천해줬다.

사실 우리가 마케팅 일을 하며, 가장 힘든 건 ‘파트너, 사람’ 때문이니까.

쥬신과 티릴리와 함께 새로운 앱서비스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너무 재밌었다.

사실 이 앱을 만들기 위해 1년 넘는 시간 동안 새로운 서비스를 위한 아이데이션을 해왔기 때문에, 기다리고 기다렸던 서비스다.

마케터들이 스스로의 포트폴리오를 알리고, 경험과 성향 중심으로 클라이언트에게 추천해주고, 바로 문의와 의뢰가 진행될 수 있는, 기존의 매칭 방식을 완전히 바꾼 서비스였다.

아쉽게 닷다도 서비스의 막을 내렸지만, 실패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팬덤을 만들고 싶었어

오픈애즈는 마케팅이라는 ‘일’, 특히나 전문적인 콘텐츠 중심의 서비스여서 팬을 만들기 힘들었다.

그리고 나는 늘 ‘팬덤’을 갖고 싶었다. 우리 서비스에 도움받는 것을 넘어 ‘좋아해주는 사람들’

마케팅이라는 일 말고, 마케터의 일상에 파고들고 싶었다.

팬덤을 만들기 위해 ‘오드리’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소통을 시작했고, 매주 뉴스레터로 이야기를 나눴고, 굿즈를 만들었고, ‘오드리 책방’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함께 해주는 좋은 후배가 있어 함께 팟캐스트도 해볼 수 있었다.

비로소 우리가 하는 일이라면 아묻따 따라와주는, 무조건 하고싶어 해주는 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했다. 진짜 동료처럼 안부를 묻고, 영감을 공유하고, 말을 걸기 시작하니 반응을 해주기 시작했다.


사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오픈애즈는 앞으로 더 잘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명확한 가치관이 있고, 하고 싶은 게 있고,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나도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제서야 막 알을 깨고 나왔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믿어주고, 지지해주고, 하고 싶은 일을 뭐든 해볼 수 있도록 신뢰와 애정을 보여준 대표님, 이사님, 팀장님의 곁을 떠나 내가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줘야 한다.

소중하고, 안락한 알을 깨고 나왔으니 이제 내가 나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지만 할 수 있다. 모르겠다. 사실 어떻게 될 지.

한 달 뒤에 울면서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고, 생각보다 너무 재밌을 수도 있겠지.


앞으로 이 매거진에 ‘최대한의 내가 되는 과정, 최대한의 지혜가 되는 과정’을 낱낱히 적어보려 한다.

til 레슨런챌린지를 함께 하는 옥민송님께서 “나의 결정의 이유들을 적어나가다 보면, 나의 삶이 보인다”는 말을 해주셨다.

비단 일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나의 결정의 이유들을 기록하고, 다시 돌아보다 보면 또 다른 갈림길에서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내 삶은 내 선택의 총 합이니까.

내 선택의 이유들을, 내가 선택해나가는 과정들을 따라가다보면 내 삶이 되겠지.


어제 ‘소울’이라는 영화를 봤다.

한 때는 나도 내가 특출나게 잘하는게 뭔지, 내가 왜 태어났는지, 나의 삶의 목적은 뭔지 심오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근데, 그냥 살아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계절을 느끼고, 자연을 느끼고,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하고, 웃는 것.

일을 하며, 성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매 순간순간을 즐기면서, 온전히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잘 살아가길. 하루하루 온전히 지나가길.


“내 삶의 불꽃은 사실 하늘 보기나 걷기같은 거 아닐까? 나 걷기 잘하잖아.”

“바보야, 그런건 삶의 목적이 될 수 없어. 그냥 살아가는거지”

“사실 불꽃은 목적이 아니야.”

“한가지는 확실해. 매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



으아!!!!!!진짜 퇴사를 해버렸다!!!!!!!

고마워!!!!!!!!나의 애드!!!!!!

고마웠어요!!!우리팀!!!!서핑조!!!대표님!!!이사님!!!! 모든 사람들!!!!!!

재주소년의 ‘떠난대도’를 한참이나 들었다.


떠난대도 슬퍼마요

인생이라는 여행 중에

우린 다시만날거에요.


웃음만이 가득하길

마음에 걱정없기를

언제나 늘 응원해요.

다음 만남을 기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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