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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하오천 Aug 04. 2015

우정의 유통기한

미련 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친구도 있다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삶의 일부가 되어 항상 곁을 지켜 주지만, 어떤 사람은 잠시 머물렀다가 금방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우리는 늘 곁에 있어 주는 사람보다는 결국 떠날 사람에게 마음을 더 많이 주는 것 같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눈이 정말 작은 새우눈, 그는 유명 잡지사의 편집장이다. 처음 그의 메일을 받고는 한참을 어리둥절했다. 웬만한 서점과 길거리 가판대라면 구할 수 있는 유명 잡지의 편집장이 직접 나에게 원고를 청탁하다니.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됐다. 그 후 그에게 대여섯 번 퇴짜를 맞으며 수정한 단편소설이 그달의 인기 작품으로 선정되자 난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고 그에게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일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생생하다. 호감형 얼굴에 크지 않은 키, 그리고 작은 코 위에 얹힌 도수 높은 안경 덕에 안 그래도 작은 눈은 더 작아 보였다. 그의 눈을 쳐다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자꾸만 졸음이 와서 몇 차례나 정신을 놓을 뻔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며 난 웨이보를 맞팔하자고 했다. 왠지  내켜하지 않는 것 같다 싶었는데, 그의 아이디를 검색하고는 곧 그 이유를 알았다. 그는 팔로워가 몇십만 명에 이르고 글마다 몇천 개의 댓글이 달리는 웨이보 인기인이었다. 베이징에 온 지 얼마 안 돼 세상 물정 모를 때라 마치 연예인 같은 그에게 갑자기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헤어질 때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돌아왔다. 


그와 나는 의외의 계기로 친구가 됐다. 바로 우리의 공통 친구인 N 덕분이었다. N이 집에서 파티를 열었다고 초대해서 갔는데 놀랍게도 새우눈, 그가 나와서 현관문을 열어줬다. 그 역시 문 앞에 서 있는 날 보더니 깜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쪽이 여긴 웬일이에요?" 


떨떠름한 그의 표정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지만 성격 좋은 N 덕분에 함께 술 마시고 노래하고 게임하며 조금씩 그와 가까워졌다. 


그날 이후 우리는 부쩍 자주 만났다. 나에게 아이디어가 많다고 생각한 새우눈은 잡지의 독자 코너 한 꼭지를 내게 맡겼다. 반응이 꽤 괜찮자 이제는 그 코너 전부를 내게 맡겼다. 코너를 기획하고 원고 쓰느라 내 작품을 쓰는 시간이 부족했지만, 기회가 쉽게 생기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그는 술만 마시면 취해서 소파에 고꾸라지곤 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인맥관리를 위해 만난 사람들을 매번 내가 혼자 응대해야 했다. 또한 친구들과 모여서 놀 때면 난 모두의 즐거움을 위해 이미지 같은 건 신경 안 쓰고 망가졌는데 그는 그런 내 바보 같은 모습을 늘 휴대폰에 저장하곤 했다. 그때마다 그는 진정으로 좋아하며 웃었다. 


낯선 도시에서 홀로 있던 나에게 그는 최고의 친구는 아니어도 가장 필요한 시기에 나타난 친구이긴 했다. 


첫 책의 출간을 앞두고 나는 너무 긴장해서 온몸이 경직됐다. 웬만해선 누구에게 부탁을 하지 않는 성격인데, 그때만큼은 정말 자신이 없었다. 하는 수없이 나는 그에게 쪽지를 보내서 출간을 알리려고 쓴 웨이보 글을 RT 해 달라고 부탁했다. 반나절이 지나서야 '그래'라는 짧은 답장이 왔고, 그리고도  삼일이나 지난 새벽 두시에야 비로소 그의 RT가 올라왔다. 멘트 하나 없이 RT만 싸늘하게 형식적으로. 마치 모두가 잠든 틈을 타 아무도 모르게 살짝 올리려는 듯. 

별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럴 권리도 없었다. 첫 책이 잘 안 되었다고 글 쓰기에 대한 내 열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그는 저녁마다 내게 기사를 보내 교정을 부탁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기사들을 묶어 책을 내려는 것이었다. 책에 들어간 대부분의 글은 내가 교정한 것이었기에 난 그가 고마워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작가 후기 속 감사하는 사람들 속에 N은 있었지만 나는 없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가 생각하는 친구의 범주 안에 나는 없었다는 것을. 그와 보낸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술을 마실 때마다 그는 혼자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쪼그리고 앉아 먹은 것을 토해내고 있는 나는 길가에 버려둔 채 말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 동영상을 보여줘서 날 웃음거리로 만들기도 했다. 잡지를 펼치면 돈 한 푼 받지 않고 고생해서 작성한 글 밑에 떡하니 자리한 그의 이름이 마치 날 비웃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나 둘 떠올리고 있자니 따귀를 한 대 강하게 맞은 것처럼 쓰라렸다. 


대가 없이 호의를 베풀면 어느 순간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내가 베푼 친절은 나의 약점이 되고, 그 사람이 바라는 것은 갈수록 많아진다. 


그 이후로 그와 나는 서로 잘 찾지 않았다. 예전처럼 그의 전화 한 통에 바로 달려가서 도와주는 일도 없었고, 당연한 듯 청하는 그의 요구에 거절할 줄도 알게 됐다. 그러자 그도 더 이상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우정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그리고 유통기한의 마지막 날짜가 언제가 될지는 두 사람에게 달려 있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변하면 함께해 온 모든 것이 변한다. 


크리스마스 즈음 N을 통해 그가 베이징을 떠나 남부 지방으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3개월 만에 다시 만난 송별회 자리에서 나는 새우눈에게 술을 한잔 따르며 속으로 생각했다. 

'고맙다, 그때 나 같은 신인 작가의 글을 실어 줘서. 고맙다, 이렇게 많은 친구를 알게 해 줘서. 고맙다, 이런 무서운 대도시에서 큰 깨달음을 줘서.' 


노래방의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그의 안경 속 작은 눈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와 처음 만난 그날이 떠오르며 만감이 교차했다. 그날 그는 몇 번이나 N을 밖으로 불러냈다. 유리문을 통해 두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고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헤어지며 그가 한 말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사람은 겪어 봐야만 아는 거더라." 

그 말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며칠 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며칠 후 다급한 얼굴로 우리 집에 온 N을 통해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됐다. 알고 보니 친구 중 한 명이 내가 늘 새우눈을 욕하고 다닌다고 이간질했고, 그 때문에 지난 3개월간 새우눈도 나에게 연락을 안 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N이 그에게 설명을 했고 오해는 풀렸다고 한다. 


하지만 난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덤덤했다. 친구에게 열심히 해명해야 한다는 것은, 그 친구의 마음속에 나는 이미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 해명은 친구가 날 반드시 믿어줄 것이라는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진정한 친구는 말없이 기다려준다. 언젠가 자기에게 진실을 말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를 무조건 치켜세우지도 않는다. 나에게 장점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잘났다고 말해 주지 않는다. 마치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처럼. 흐르는 시간과 함께 친구들이 자연스레 흩어지고 나면 언제나 말없이 내 곁을 지켜주던 친구가 보인다. 그가 바로 평생을  함께할 친구이다. 


새우눈이 베이징을 떠나던 날 이런 문자가 왔다. 

'미안, 오해가 있었다.' 


뭐라고 답장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별 느낌이 없었던 것 같다. 그가 다른 도시로 향하는 구름에 몸을 실었을 때 나 역시 그에 대한 감정을 함께 실어 보냈나 보다. 지난달 카페를 오픈한 그는 종종 웨이씬 그룹에 손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린다. 그리고 걸핏하면 '절친', '영원한 우정' 같은 단어를 쓴다. 나는 한 번도 댓글을 달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는 그렇게 우정을 쉽게 여기지 말길 바란다고 속으로 생각했을 뿐이다. 


때로는 미련 없이 떠나 보내야 하는 친구도 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게 보고 내게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내가 하는 말,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품고 있는 꿈을 대부분은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린다. 그런 사람들은 행복을 빌어주며 가볍게 잊으면 된다. 모든 사람에게 기억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내면이 성장하면 사람을 고르는 눈도 생긴다. 따뜻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다 보면 그들도 나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이 세상에 부모님 말고도 절대 나를 포기하지 않을 친구는 분명히 있다. 끝까지 내 곁에 남을 친구가 있다면 평소에 잘 챙기지는 못해도 한 번씩은 알려주자. 


우리는 서로를 선택한 사람이라고. 그러니 평생 헤어지지 말자고. 



가장 아름다운 시절 

지금 당신의 이야기 

<지금 이대로 괜찮은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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