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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하오천 Aug 07. 2015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짝사랑으로 힘들어하는 당신에게.

z, 분명 너도 알 거야. 길지 않은 인생에서 그렇게 빛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비록 그와 연인이 되지는 못 했지만, 열렬히 사랑했으니 네 청춘에 후회는 없겠지.


넌 이렇게 말하곤 했어.


“인류 전체를 구원할 능력은 없어도, 사랑하는 한 사람만은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


우리가 대학 2학년 때 너는 인터넷에서 그를 만났지. 상하이 통지대학교에 다니는 설계 학도이며, 온라인 게임을 좋아하는 그 남자를. 그때 너, 정말 가관이었다. 그 남자의 시답잖은 개그에 맞장구치고 싶어서 책과 인터넷을 뒤져가며 온갖 이상한 말은 다 배웠지. 게임 캐릭터는 혐오스럽게 생겨서 싫다던 애가 그 남자와는 얼마나 신 나게 게임을 하던지. 노트북을 품에 안고 불쑥 날 찾아왔던 날, 급하다며 물어본 것이 고작 포토샵으로 그 남자 얼굴과 캐릭터를 합성하는 방법이었지. 정말 푹 빠졌구나 싶더라.


하지만 둘이 사귀는 건 아니었어. 어쩌면 너의 그 소심한 성격 탓이었는지도 몰라. 그 남자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신이 안 선다며 고백조차 못 했으니. 물론 난 그 남자가 널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야.


같은 고향인 너와 그 남자는 그 해 여름방학에 드디어 만났어. 그날 밤 너는 나한테 전화를 해서 그 남자의 잘생긴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잠이 안 온다고 했어. 난 그 남자가 변기통에 앉아 있는 모습이나 코 골며 자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했지. 어쨌든 보기 흉한 모습을 떠올리다 보면 네가 잠드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운 너는 아침에 겨우 몸을 일으켜 컨실러로 다크서클을 가려야 했지만. 그렇게 처음 만났는데도 너와 그 남자는 어색함 하나 없이 오랜 친구처럼 편하다고 했지. 넌 방학 내내 그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얼마나 밝고 좋은 사람인지, 또 굵은 팔뚝이 얼마나 멋진지 끊임없이 나에게 문자로 조잘댔어. 어디서 어떤 영화를 봤고, 밥은 무엇을 먹었는지도 빠짐없이 전했지.


마지막 문자에서 넌 그 남자와 피자를 먹는 중이라며 계산서는 네가 챙겼다고 했어. 그리곤  삼일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지. 전화도 해 봤는데 전원이 꺼져 있길래 사랑이 너무 깊어져서 방해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며칠 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우리 집 문 앞에 서 있는 널 본 순간, 알아차렸지. 이미 끝났구나. 그 남자가 널 떠났구나.


피자를 먹었다고 한 그날 저녁, 용기를 내서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고 했지.


비밀 하나 알려줄까? 아무래도 나... 오빠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


이런 소심한 문자를.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답장이 왔어.


난 그냥 너를 동생으로 좋아하는 건데... 그리고 나 여자친구 있어. 여자친구 배신하고 싶지 않다.


소파에 기대 엉엉 우는 널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다 아프더라. 어떤 감정인지 나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아. 그 남자만 보이면 괜스레 말이 많아지고, 틈만 나면 그의 QQ 미니홈피에 들어가서 업데이트된 건 없나 살피고, 그와 사귀는 상상을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어 버린...... 그렇게 '좋아한다'는 감정이 겹겹이 쌓이고 쌓여 '사랑한다'가 된 것이겠지.

그래서 뭐라고 답장했냐고 물었더니, 넌 날 잠시 바라보곤 이렇게 말해어.


그거 게임 벌칙으로 보낸 문자야. 신경 쓰지 마.



그런 말이 있잖아. 과거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거라고. 작든 크든 과거의 그 일들은 네 기억 속에 어떤 흔적을 남겼어. 앞으로 일어날 많은 일들, 슬픔일 수도 있고 근심일 수도 있고 또 화려한 비상이 될 수도 있는, 그 미래의 시작점은 네 과거 속 그 흔적들이야. 넌 그렇게 열아홉을 기점으로 길고 긴 짝사랑을 시작한 거야.


대부분의 남자가 그래. 주변 여자들과 연인인 듯 연인 아닌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기 전에는 절대로 주변 여자들을 완벽하게 정리하지 않아. 여자의 관심과 사랑을 즐기는 거지. 외롭기도 하고, 또 자기들이 굉장히 잘난 줄 알거든. 그리고 더 많은 여자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일종의 승부욕도 있고. 어떻게 보면 넌 남자들의 그런 성장 과정에서 희생양이 된 거라고도 할 수 있어.


사실 짝사랑을 하게 되는 이유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자신을 너무 보잘것없게 생각하기 때문이야. 시작도 해 보지 않고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서 자신감을 잃는 거지.


그 남자가 널 좋아하지 않는다면, 네가 아무리 예쁘게 치장해도 소용없는 일이야. 네가 주는 사탕이 그 남자 입에는 전혀 달콤하지 않거든. 하루가 멀다 하고 보내는 '지금 뭐 해?', '어디야?' 같은 문자는 그저 스팸 문자로밖에 안 보일걸. 친해지고 싶어서 다가가면 그 마음을 읽어 주기보다는 자기가 잘났기 때문이 다들 자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할 거야. 메신저 대화명에 그를 향한 감정을 올려도, 그 남자는 절대로 못 알아봐. 네가 아무리 울며 괴로워해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을걸.

너에게 그는 인생의 전부이지만, 그에게 너는 몇 가지 선택사항 중 하나일 뿐이거든.


z, 앞으로 네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힘들어할지 난 알 것 같아. 그 사건 이후로 너는 그에게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고, 나와도 연락을 끊었지. 넌 점점 외로운 아이로 변해갔어.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몰라. 마치 거대한 우주에서 홀로 힘겹게 빛을 내뿜고 있는 작은 별 같았지. 학교 호숫가에서 널 본 적이 있어. 쪼그리고 앉아 축축하게 젖어 있는 땅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너. 난 그날 처음으로 네가 많이 말랐다고 생각했어.


그러고 보면 사랑은 달콤한 케이크처럼 우리를 살 찌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떤 운동보다도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네 룸메이트에게 들으니 점심도 식당에서 안 먹고 기숙사 방에 싸들고 간다고 하더라. 그리고는 입에 대지도 않고 내내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고. 그 남자랑 하던 게임은 차마 삭제하지도 못 하면서 말이지. 그래, 잔뜩 기대했던 네 인생이 모두 엇나간 기분이었겠지. 특히 사랑에 있어서는 더더욱.



시간이 흘러 우리는 모두 졸업을 했고 나는 베이징으로 왔다. 친구에게 들었는데 그 남자는 방송국 PD가 됐다고 하더라. 허탈하더라고. 왜 나쁜 놈들은 늘 잘되는 걸까. 베이징에서 나는 일도 순조로웠고 이곳 생활에도 빠르게 적응해갔어. 그리고 웨이보에서 내 글이 인기를 얻게 된 후 네가 날 팔로우한 걸 봤고 난 바로 쪽지를 보냈지.


넌 일본 기업에 취직했고, 매일 9시에 출근하고 5시에 퇴근하며 특별히 새로 사귄 친구는 없다고 했어. 그나마 취미라면 외국 영화 감상 정도. 넌 어느새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여자아이가 되어 있었지. 평범하고 단순하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그런 여자. 5년, 아니 10년 후의 모습까지도 한눈에 예측할 수 있는 그런 여자 말이야. 넌 미안하다고 했어. 그때 그 사랑이 너무나 힘들어서 우리 관계까지 소원하게 만들었다고. 내가 왜 널 원망하겠니. 그저, 그렇게 덤덤한 듯 웃는 너를 보니 역시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고 있구나 싶었어. 정말 그때 그 감정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거니?


너는 이렇게 대답했지.

상처가 생기면 흉터가 남는 법이라고. 잊을 만하면 아프고 또 잊을 만하면 아프다고.


나이가 들면서 점차 알게 되는 것 같아. 결국은 모두 나로 인해 생긴 일이라는 것을. 겁나고 가슴 조마조마했던 일들이 결국은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얻게 되고, 그렇게 얻은 일들은 또 결국 먼지가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열렬히 사랑했던 그 감정이 전부 사라진다는 것은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거고 과거의 자신을 떠나보냈다는 의미야.

아직도 넌 한 번씩 그의 소식을 살피지?  그가 상처받지는 않았는지, 어떤 사람과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는지. 네가 지금까지 연애를 하지 못 한 건 시간이 더 필요해서일 수도 있고, 더 나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어. 그 남자가 남기고 간 상처가 회복되어야 또 다른 사랑이 시작되겠지.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시간들은 실연의 시간이나 마찬가지야. 다른 일로 기분 전환을 한다든가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것으로는 절대 치유되지 않아. 그건 일종의 기분 나쁜 수학 문제야. 시간으로만 계산할 수 있을 뿐, 더하기나 빼기 같은 연산으로는 절대로 풀 수 없지.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또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날 사랑하는 것. 이렇게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야.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너의 소중한 꿈과 닮았겠지. 그에게 보내는 너의 눈빛, 말 한마디는 모두 '내가 많이 좋아하고 있어'라는 뜻일 거야. 하지만 그의 차갑고 덤덤한 반응은 너에게 현실을 깨우쳐주지. 아무리 그 사람이 냉정하게 대해도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혀실.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니? 머리로는 할 수 있어도, 마음은 할 수 없잖아. 그러니까 그냥 마음껏 사랑해. 그 남자로 인해 또 상처를 입으면 그땐 다 버리고 너의 소중했던 감정만 남기렴. 이게 바로 '시간'이라는 수업이야. 이 수업이 끝나면 너는 한층 더 성장해 있을 거야.


나에게서 벗어나려고 하고, 나를 외면하려는 그의 모습마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사랑이야. 그런 그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그를 귀찮게 하지 않는 것뿐이겠지.

과거에만 머물 수는 없어.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건 여전히 어리다는 의미야. 그 감정에서 벗어나야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어. 그 고된 여정이 끝나고 나면, 예전에 상처 입었던 너는 더 이상 없을 거야. 그리고 더 멋진 네가 되어 있겠지.


z, 너한테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있어. 그날 내게 보냈던 문자 기억하지? 피자를 먹고 계산은 네가 했다던 그 문자. 그때 넌 영수증을 지갑에 보관해 놓는다고 했어. 추억으로 남긴다고.

그런데 전에 폴라로이드 사진을 꺼내려고 네 지갑을 열었는데 그 영수증도 함께 빠져나온 거야. 펼쳐 보니 이제는 글자색이 다 바래서 그냥 백지가 되었더라.


'시간'은 이미 우리에게 답을 줬었나 보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

지금 당신의 이야기

<지금 이대로 괜찮은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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