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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하오천 Sep 11. 2015

평생 곁에 있을 친구

진정한 우정은 허상이 필요하지 않다.

수다에게 전화가 왔다. 

요즘 어떠냐고 묻길래, 바빠 죽겠지만 그래도 바빠서 좋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다른 친구들 근황도 물었다. 오랜만의 통화에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수다는 아무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왕년에 ‘한 수다’했던 그녀가 말이다. 순간 말을 멈춘 나는 다시 그녀를 불렀다.


“여보세요?”



수다는 파티퀸이었다. 엄청나게 예쁘거나 포스가 있지는 않았지만 파티 분위기를 정말 잘 띄웠다. 처음에는 못 마신다고 빼다가도 금방 어깨동무를 하면서 말도 놓고 “여기 한 병 더!”를 외치는 식이다. 그런 그녀는 늘 친구들 모임의 중심에 있었다. 노래방에 가면 테이블 위에 올라서서 듣도 보도 못한 게임을 진행했고, 술집에 가면  정신없이 퍼마시며 친구들을 끌어다가 게이와 봉춤을 추게 했다. 말솜씨도 좋고 항상 에너지가 넘치다 보니 그녀 곁에는 늘 친구가 많았다.


당시 난 그녀를 따라다니며 나름의 ‘문란한’ 생활을 했다. 싼리툰 타이구리에 가면 지나가는 사람의 절반은 아는 사람이었고, 어느 술집에 들어가든 그곳의 사장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며 술값을 깎아 줬다. 진짜 신기했던 건 매번 술 마실 때마다 술집에 있는 사람들이 그녀를 중심으로 모인다는 것이다. 또 새벽에 집에 들어가다가 출출해서 그녀의 집 근처 꼬치집에 가면 우리가 메뉴를 말하지 않아도 사장님은 그녀가 뭘 좋아하는지, 뭘 빼야 하는지를 알아서 준비해 주셨다. 술에 너무 취해서 수다의 집에 가서 잔 적도 많았다. 그때마다 그녀의 룸메이트는 능숙한 모습으로 내가 잘 소파를 깨끗이 정돈해줬다. 이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 꽃과 풀마저도 모두 그녀의 친구인 것 같았다. 



언젠가 친구들과 이런 게임을 한 적이 있다. 휴대폰 연락처에서 아무나 골라 전화한 뒤 곧바로 어떤 단어를 말하는 게임이었다. 나는 계속 벌칙을 받았다. 연락처에 저장해 놓은 사람이 몇 명 안 되다 보니 친하지 않은 사람이 자꾸만 걸렸고, 나는 그때마다 얼굴이 빨개져선 어색하게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수다는 달랐다. 저장해 놓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게임 끝날 때까지 연락처 한 바퀴를 다 돌리지 못했다. 수천 개의 연락처 중 겨우 골라 ‘누구누구 사장님’, ‘누구누구 선생님’ 같은 사람에게 전화를 해도, 그녀는 어색해 하기는커녕 하하 호호 웃으며 즐겁게 통화를 마쳤다. 


가끔은 그런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 나는 만날 기회도 없는 사람들을 친구로 알고 지내니 말이다. 친구 관계를 유지하려 굳이 애쓰지 않아도 그녀는 언제나 인맥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작년 설날을 계기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류머티즘을 앓고 계시던 수다의 아버지는 설 전날 증상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셨고, 2주 넘게 걷지도 못하고 병상에만 누워 계셨다.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늘 아버지를 돌봐 온 그녀였음에도, 그렇게 일이 생기니 주변 친척 어른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핀잔을 줬다.


“아버지 몸도 안 좋은데, 딸이라는 게 아직도 저렇게 놀러나 다니고 있으니…… 이제 곧 서른인데 시집도 안 가고. 이번에 지 아빠 위해서 몇 푼이나 내놓는지 봅시다.” 


하지만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대꾸도 하지 않는 그녀를, 친척들도 대놓고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연휴가 끝나고 돌아온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징 박힌 옷과 바지는 다 갖다 버렸고, 밤에 화장하고 외출하는 일도 더 이상은 없었다. 매니저 일도 그만두고는 앞으로 전망이 좋다는 부동산 회사에 취직했다. 화려한 조명이나 술잔 사진을 올리던 웨이씬 그룹에 이제는 자기가 만든 음식 사진을 올렸다. 새벽에 혼자 야근한다며 텅 빈 사무실 사진과 툴툴거리는 글도 올렸다. 내가 만나자고 해도 매번 야근을 핑계로 거절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 하고 그녀를 데리고 우리가 자주 가던 꼬치집으로 갔다. 나는 소주 몇 병을 시켜 놓고 그녀를 자극할만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 지내는 거 보니까 아무래도 예술, 이쪽 스타일은 원래 아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조신한 새댁이라도 된 양 안 마신다고 연거푸 거절하더니, 내가 먼저 석 잔을 연이어 쏟아 붓자 그제야 그녀도 잔을 가볍게 부딪치곤 한입에 털어 넣었다. 결국 취한 그녀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아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우리 아빠 다리, 고쳐야 해. 안 그럼 평생 못 걸을지도 몰라. 친척 어른들도 다 지켜보고 있어. 뭐, 그분들이 겁나서가 아니라, 아빠한테 미안해서. 평생을 그렇게 혼자 외롭게 지냈는데…… 난 모아놓은 돈도 없어, 다 노는 데 써서. 친구들한테 빌려달라고 했더니 아무도 안 빌려주더라. 그거 알아? 내가 외로운 건 혼자라서가 아니야. 옆에 친구들을 한가득 두고도 걔들 마음속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거, 그 사실이 날 너무 외롭게 만들어. 난 모두에게 똑같이 잘해 주려고 한 건데, 다들 내가 자기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봐.” 


그랬던 것 같다. 늘 주변에 사람이 많았던 그녀이기에, 그녀가 힘들 때 누군가가 도와줄 거라고,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군가가 손을 내밀 거라고, 사랑하고 싶을 땐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모두가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에게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나 보다. 


친구가 그냥 아는 사람과 다른 점은 바로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살면서 수많은 친구를 사귀어도 결국 진정한 친구는 한두 명뿐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정도 사랑도 마찬가지다. 서로 마음이 통해야 한다. 당신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다른 사람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가 당신을 좋아하는 것도, 당신이 그를 대하는 것이 다른 사람과 다르기 때문이다.


예전에 수다와 몰려다녔던 친구들은 모두 흩어졌다. 예전과 달라진 그녀에게 그 이유를 묻는 친구는 없었다. 그저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이니, 그런가 보다 하며 자연스럽게 멀어져 갔다. 



며칠 전 그녀와 통화했을 때로 돌아가 보자. 손바닥에 땀이 나기 시작한 나는 휴대폰을 반대편 손으로 옮겨 쥐었다. 그리고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그녀를 향해 혼자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람 감정이 무한대로 있는 것은 아니잖아. 주변 사람을 다 챙길 수는 없어. 네가 친구들을 모두 똑같이 대한 것처럼, 그들도 너를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대한 것뿐이야. 좋은 친구, 나쁜 친구? 그런 건 없어. 진정한 친구라면 좋든 싫든 안 보고 살 수가 없거든. 아침마다 울려대는 알람 시계 같은 애증의 관계랄까? 평생 너를 떠나지 않을 친구, 그런 친구가 딱 두 명만 있으면 돼.” 


울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녀는 가슴속 모든 괴로움을 잊으려는 듯 엉엉 울었다.



두려워하면 할수록 그 두려움은 점점 더 현실과 가까워진다. 지금의 내 모습은 과거에 느끼고 생각해온 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녀가 친구들 사이에 중심이 되고자 했던 것은, 어쩌면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주목과 관심을 우정으로 해석하고, 그래서 외롭지 않다고 스스로 위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우정은 그런 허상이 필요하지 않다. 아직 우리는 사랑도 우정도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속으로 판단해 볼 필요는 있다. 누가 날 소중히 여기는지, 나는 누구를 소중히 여기는지. 그런 과정을 통해 더 멋지고 견고한 우정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다 지웠다. 그리고 가깝게 지냈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식사 후 우리는 다 같이 그녀가 맡은 프로젝트에 대해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내년 설날에 고향에 내려갈 때쯤이면 그녀는 아버지와 친척분들이 모두 놀랄 만큼 멋진 커리어 우먼이 돼 있을 것 같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지만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곳은 태양이 아닌 지구별이다. 나는 당신이 가만히 그 자리에 있는 태양이 아닌 하나의 스토리를 가진 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친구들이 언제든 찾아가서 기댈 수 있는 든든하고 포근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 

지금 당신의 이야기 

<지금 이대로 괜찮은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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