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하오천 Feb 29. 2016

친구가 반드시 많아야 하는 건 아니다

우정에 허세 부리기

나는 친구가 많은 사람이 아니다. 늘 보는 친구 몇 명하고만 가끔 만나 영화를 보거나 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다. 간혹 인생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대체로 서로의 잘생김을 칭찬하다가 시간이 다 간다. 

난 우정을 유지하는 것이 사랑을 유지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진심이 가짜일까 두려워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스스로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쓰게 되는 것이, 하지만 정작 그들 대부분은 이 마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란 사실이 좀 두렵다. 


내가 마음을 잘 주지 않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첫 번째는 알게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온갖 이야기를 다 꺼내는 사람이다. 자기의 전 여친 또는 전 남친의 이야기나 다른 사람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는다. 들으면 깜짝 놀랄 거라면서 꺼내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나도 함께 아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무것도 모른 채 만신창이가 되는 거다. 


보통 속마음을 다 털어놔야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잘 알지 못 하는 사람들과는 친해지기 위해 속 이야기를 나누고, 친한 사람들과는 정작 그렇게 하질 못한다. 그렇게 술 몇 잔에, 눈물 몇 방울에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곧 얼마 못 가 나의 이야기도 저쪽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을 것이다. 자발적으로 꺼내 보인 나만의 상처가 어느새 약점이 돼버리는 것이다. 


두 번째 부류는 평소에 연락 한번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말을 걸어와선 "뭐해?ㅎ"라고 떠보는 사람이다. 생각도 나지 않는 아주 옛날에 친구 등록을 했었는지 아직까지 친구 목록에는 있으나, 서로의 인생에 발을 들이지 않으며 가끔 '좋아요'나 눌러주는 관계로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있었는데, 갑자기 그 경계를 허물고 들어와 난데없이 뭐하냐고 묻는 거다. 정말 황당한 경우는 바로 "응, 안녕"이라고 대답을 했는데도 상대방이 되려 말을 이어가지 않는 경우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뭔가를 부탁하려고 말을 걸긴 걸었는데 본론을 꺼내긴 민망하고 안부를 더 묻자니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어 망설이는 것이다. 어차피 SNS 친구일 뿐인데 체면 차릴 건 또 뭐 있나. 할 말이 있어서 찾는 거라면 그런 떠보기식 말은 하지 말자. 이런 것도 일종의 존중이고 배려다. 친구 사이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이 두 가지 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할 말이 있으면 바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소중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이쪽에서 먼저 안부를 묻고 있을 것이다.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뭐해?ㅎ", "하이ㅋ"같은 인사를 하고 이모티콘을 보내와도, 어떻게 해야 이 메시지를 못 본  척할 수 있을지만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농담이랍시고 아무 말이나 막 던지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 나쁜 소리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하더라도 선을 넘기면 기분이 상하는 법이다. 뚱뚱하고 얼굴 까맣고  이런저런 단점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데, 친구랍시고 자꾸만 입에 올리는 것, 당사자는 불쾌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자기가 언제나 분위기를 주도해야 하는 사람은 모인 사람이 많을수록 어느 한 친구를 타깃으로 삼아 놀리곤 한다. 다들 깔깔거리겠지만 당하는 사람은 속으로 칼을 갈 것이다. 물론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 하고 그저 분위기 맞춰 함께 웃을 뿐이지만 말이다. "그래 나 뚱뚱하다. 얼굴도 까맣고, 키도 작고, 돈도 없고... 하하하......"


예전에 이런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진짜 친한 친구라면 서로 농담으로 하는 말에 상처받지 않고, 자기가 손해를 조금 보더라도 친구에게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손해든 농담이든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극이 필요할 때는 따끔한 한 마디를 건네야겠지만 평소에는 곁에서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는 것, 그런 관계야 말로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나와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서로 치켜세우기 바쁘다. "와, 이 자식 더 잘생겨졌네!", "옷 어디서 샀어? 예쁘다." 뭐 이런 식이다. 이런 '거짓'과 '위선'이 있기에 우리의 우정도 이렇게 길게 가는 것 같다. 


친구는 핏줄과 다르다. 핏줄은 날 때부터 운명 지어졌기에 견고하지만, 우정은 선택을 하는 것이기에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진심을 나누는 친구를 만난다는 건 배신, 거짓말, 절교와 같은 가능성을 다 이겨내고 평생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뜻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별 것 아닌 작은 일로 쉽게 인연을 만들곤 한다. 그러다 그중 일부는 자신에게 해를 입히기도 하며, 그때마다 과연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가 고민하느라 흘러가는 인생의 시간을 잠시 지체하곤 한다.


하지만 인간에겐 본능이라는 것이 있다. 여러 종류의 주스를 마셔봐도 결국 내가 좋아하는 맛은 정해져 있고, 많은 곳을 가봤어도 인상 깊었던 몇 곳만 기억에 남는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나와 잘 맞는 사람을 결국은 찾게 돼있다.  


정말로 사랑하는 친구가 퍼붓는 잔소리는 그냥 넘길 수 있다. 새벽에 전화해서 속상했던 일을 쏟아내도 견딜 수 있다. 쓰잘머리 없는 메시지를 보내와도 쿨하게 넘길 수 있다. 예전에 내게 했던 상처의 말들도 이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잘해준다.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고서 말이다. 


이렇게 친구를 사귈 때도 허세를 부리고 있다.

이 버릇 못 고치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친구가 반드시 많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진정한 친구 몇 명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



가장 아름다운 시절

지금 당신의 이야기

<지금 이대로 괜찮은 당신>

작가의 이전글 나를 완성해 가는 길은, 원래 외롭고 쓸쓸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