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소설집 표지에 이런 글을 썼었다.
좁다면 좁고, 넓다면 넓은 이 세상...
걷고 또 걸어도 아직도 인연을 못 만나고 있으니 이 세상 참 넓다 싶고,
좋아하는 사람 옆을 한 바퀴만 돌아도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으니 이 세상 참 좁다 싶다.
인연을 만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지금 서 있는 이 길만 하더라도 날 향해 걸어오는 사람이 저렇게나 많은데, 결국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지금껏 수많은 길을 걸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쳤지만 나와 맞는 그 사람을 만나지는 못 했다.
준비된 사람에게 인연이 나타나는 법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가끔은 반문하게 된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준비된 사람인 걸까? 혼자서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도, 나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다.
‘커피양’은 매일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외국계 기업에서 마케팅 디렉터로 일하는 그녀는 당당하고 아름다우며 매혹적이다. 퇴근 후의 삶도 있다. 꽃꽂이를 즐기고 주말에는 원어민 토론 회화 수업을 듣는다. 그녀를 감싸고 있는 갑옷은 튼튼하며 심장은 강인하다. 하지만 문제는 몇 년째 혼자라는 사실이다. 다들 그녀의 눈이 높다고 하지만 그녀의 조건을 생각하면 오히려 눈이 높지 않은 게 이상하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는 알고 있다. 서로 반하고 나면 다른 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감정은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임을, 조건도 기준도 필요 없으며 그간 해 온 걱정과 근심도 별 것 아닌 게 된다는 것을, 하루 종일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을 거란 것을... 그러므로 그녀가 원한다는 그 조건들은 어쩌면 여전히 솔로인 스스로를 위한 일종의 위안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늘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붓기도 줄어들고 항상 깔끔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혹시 모를, 사랑에 빠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속마음도 담겨있다.
평상시 드라마를 즐겨 보지도 않는 커피양도 최근 ‘태양의 후예’의 여심 스틸러 송중기에게는 푹 빠졌다. SNS에 송중기 사진으로 도배를 할 정도이다. 유시진 대위처럼 그렇게 살아남는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것도 스스로에게만 기대어 살아남을 수 있다면 백 번을 칭찬해도 모자랄 삶이라고, 그녀는 강조했다. 하지만 본인이 다른 사람에게 힘이 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생각은 없다.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도 원치 않는다. 괜찮아, 나만 잘 지내면 됐지, 사랑하는 사람 없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
드라마 속에서 송중기는 송혜교에게 키스했다. 그리고 그날 커피양은 커피 잔에 자신의 빨간 입술 자국을 남겼다. 마치 문서에 도장 찍듯.
그리고 SNS에 사진을 올리며 이렇게 썼다.
이젠 정말, 혼자인 게 힘들다.
열심히 운동을 하면 살이 빠진다. 노력은 반드시 변화를 가져온다. 하지만 노력으로도 보장되지 않는 두 가지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이별 없는 연애를 하는 것. 그간 줄곧 삶에 용기를 주는 글을 써온 나 역시 이 두 가지에 있어서는 단호하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랑은, 열심히 한다고 다 결과가 좋은 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커피양과 커피군이 은근히 많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멋져 보이려 하고, 번잡하고 약해지는 속마음은 꽁꽁 감춰놓는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그들에게도 딱 하나 부족한 것이 있으니, 바로 사랑이다. 그래서 그들의 인생 퍼즐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그러고 보면 ‘인연’만큼 사람 힘들게 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기다리고 있을 때는 끝없는 외로움에 허덕이게 하면서, 막상 아무 생각 없이 흐트러져 있을 땐 불쑥 손을 내밀곤 한다.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는 너도나도 ‘자기’, ‘허니’ 타령이고, 주변 커플들은 지칠 줄도 모르는지 맨날 티 내기 바쁘다. 업체들의 지원 속에서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로즈데이 등 연인과 관련된 기념일이 넘쳐난다. 그 와중에 가족과 친구들이 주는 스트레스도 만만찮다.
토닥토닥… 실은 꽤 피곤할 거다.
하지만 그래도 가슴 한 편에 분명 이런 사람을 위한 따뜻한 자리가 마련돼 있라 생각한다.
생김새는 잘 모르겠고, 키도... 그 사람 마음대로 하라 하고, 성격은 불 같을 수도 있고 얼음 같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당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인 사람, 외모든 성격이든 간에 당신의 꿈과 닮은 그런 사람 말이다.
스타벅스에서 옆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가 만날 수도 있고, 명동이나 코엑스몰처럼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 마주칠 수도 있다. 어디가 됐든 그 사람은 한 눈에 당신을 알아볼 것이다. 또 어쩌면 여행길 비행기 안에서, 실수로 물이나 술을 그 사람 몸에 엎지른 바람에 미안하다고 말을 건네다가 인연이 시작될 수도 있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려 본 운명과 같은 만남.
시간은 좀 걸릴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될 거다.
그러니 그 전까지는, 혼자서 잘 지내자. 잘 지낼 수만 있다면 혼자의 삶도 나쁘지만은 않다.
좁다면 좁고, 넓다면 넓은 이 세상...
너무 넓다고 느껴질 땐, 당신을 만나길 고대하고 있는 그가 어딘가에 있을 것임을,
조금 좁다고 느껴질 땐, 당신의 세상을 좁게 만든 그가 절대로 당신을 놔주지 않을 것임을,
생각하자...
가장 아름다운 시절
지금 당신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