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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이 Feb 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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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게임: 0시를 향하여>

<더 게임: 0시를 향하여>, MBC, 2020.01.22.~, 연출: 장준호 / 극본: 이지효 / 제작사: 몽작소




제목은 시청자가 처음 만난 작품의 모습이다. 제목을 통해 시청자는 작품의 내용과 분위기, 장르를 예상하고 결국 작품을 시청할지 말지 결정한다.

그래서 제목은 매우 중요하다. 작품의 핵심내용 혹은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하고,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아내야 하며, 부르거나 기억하기 쉬워야 한다.

<더 게임: 0시를 향하여>는 근래 나온 MBC 작품 중 'MBC 드라마 같지 않은데?'라는 평을 듣고 있는 드라마다. '믿거M'(믿고 거르는 MBC) 때문에 놓칠만한 드라마는 아니라는 거다. 특히 1-2화 때는 '이거 재밌는데 MBC 거라 사람들이 안 본다'며 아쉬워하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은 배우의 연기력, 잦은 회상, 느린 스토리 진행 등 여러 방면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비판에 덧붙여 제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될 만한 소재들이 얼마나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더 게임: 0시를 향하여

첫 화부터 작품은 강렬하게 제목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관에 피해자를 넣고, 핸드폰을 쥐어줘 0시까지 살 수 있으면 살아보라며 농락하는 연쇄살인마의 등장이라니. 그동안 수많은 연쇄살인마를 작품에서 만났지만, 경찰과 피해자를 가지고 놀 정도로 배포가 있는 살인마라는 게 그리고 그 특징이 제목이라니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시간을 정해둔다는 건 제한을 하겠다는 의미다. 피해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언제까지 장소를 알아내야 하는지, 철저하게 정해진 시스템. 내 차례가 될 때마다 모래시계를 뒤집어야 하는 보드게임처럼. 이런 제한은 미진이를 구하는 사건에서부터 등장인물의 행동 속도를 높이는 핵심 설정이 되었다.

그런데 0시의 살인마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살린 피해자를 다시 죽이려는 살인마는 0시가 아니라 7시를 선택했고, 죽음을 보는 태평(옥택연 분)에게 범행예정시각을 들킨 이후에는 4시로 그 시각을 또다시 변경했다. '0시'라는 시간 제한이 무색해진 것이다.

더욱이 첫 사건 이후 작품의 절반이 오는 동안 '0시'는 의미 없는 숫자가 되어버렸다. 진짜 0시의 살인마는 실종되었고, 모방범인 구도경(임주환 분)은 살인을 완벽하게 모방하는 데 관심있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0시의 살인마로 몰린 아버지에 대한 원한으로 움직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국 제목의 '게임'이라는 표현과 '0시'라는 표현은 작품에서 소멸되어버렸다.



죽음을 보는 남자

작품의 핵심 설정인 주인공 태평의 능력은 미진의 죽음을 막고, 살인마의 정체를 알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단지 보는 것으로는 해결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보는 것은 미래일 뿐 아직 일어난 일이 아니고, 언제 일어날 줄도 모르기 때문에 막기 까다롭고, 살인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는 물적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단지 태평이 혼자 본 것은 증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평의 능력은 애매해졌다. 작품 초반, 태평은 정재계 인사들의 죽음을 봐주며 능력을 매우 매력적으로 어필했다. 그리고 미진의 죽음을 해결하며 능력이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줬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태평의 죽음을 보는 능력과 경찰 수사의 공조인 것이다.

그런데 작품은 미진이의 죽음 이후 태평과 준영(이연희 분)이 따로 놀게 만들고 있다. 구도경의 죽음이 한참 뒤로 정해진 이상 구도경을 잡는 데 있어서 태평이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남은 것은 태평의 재력인데, 태평이 재력과 정보력으로 구도경을 감시하는데도 이 정보가 제 때 준영에게 넘어가지 않으면서 도경을 놓치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결국, 주인공인 태평과 준영은 사건 해결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사건 지연에 기여를 하고 있다.



세 사람의 악연

태평과 준영, 도경(현우)은 어린 시절 한 보육원에서 만난 적이 있다. 준영은 0시의 살인마를 쫓다 죽은 경찰의 딸, 도경은 0시의 살인마 누명을 쓴 조필두(김용준 분)의 아들로 엮였고, 둘이 같은 보육원에 있을 때 태평이 방문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로 엮인 이 관계는 각 인물의 동기가 된다.

그러나 세 사람에 얽힌 관계와 사연은 작품에서 시청자를 몰입시킬 만큼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 보일 뿐.

유일하게 죽음이 보이지 않아 자신이 평범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그리고 자신 때문에 죽을 지도 모른다는 여자에게 애착을 느끼는 태평. 자기 아버지를 죽게 만든 남자의 아들, 그렇지만 자신처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남자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준영. 누명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고, 살인마의 아들로 고통받는 어린 시절을 보낸 도경. 세 사람의 설정은 설정만 놓고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이 설정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의 섬세함은 부족하다. 설정이 인물의 동기를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그러나 필연적인 개연성까지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에서 얼마든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게 인간이고.

그래서 중요한 것이 인물의 감정선을 이해가능한 수준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작품은 주인공 세 명 중 누구 하나 제대로 표현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인물에도 몰입하기가 힘들다.



작품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하게 된 제목과 그 외 제목이 될 수 있을 만한 소재의 부적절한 활용으로, <더 게임: 0시를 향하여>는 '스릴러'의 재미를 살리지 못하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여러 참신하고 흥미로운 주제를 가져와놓고, 빠져들 정도로 구현해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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