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준비를 위한 기억 소환
서울에서의 4년여 교사 생활을 뒤로하고,
홍콩에서 재외국민 아이들의 교육에 몸담은 지도 9년째입니다.
처음 맡았던 반은, 토요한국학교 6학년 아이들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 한국어를 배우는 아이들.
일기 쓰기를 숙제로 냈습니다.
아이들이 그냥 있었던 일을 쓰라고 하면 더 쓰기 힘들어하기도 하고,
개인의 일상을 검사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다 하는 ‘일기검사‘에 대한 논란도 있었기에
‘주제 글쓰기‘의 느낌으로 매주 주제를 주었는데
처음 주제는 ’가족 소개‘ 였습니다.
그다음 주에 숙제 검사를 하는데 첫 학생의 글을 읽는데
‘내 가족은~’으로 시작을 하더군요.
‘My family’라고 표현하는 영어를 먼저 떠올리고 그다음에 한국어로 번역하듯이 글을 쓰는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은… 다음 학생, 그다음 학생의 글도… 끝까지… 모든 학생의 글에서 그랬다는 점입니다.
스무 명 남짓 되는 아이들 중 단 한 명도 ‘우리 가족은’이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글을 수정해주려고 보니 이걸 ‘틀렸다’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교정해 준다면 납득이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학우들이 혹은 선생님이 읽을 글에서 Our(우리, 즉 나와 당신의) family 라니… 그게 더 이상하지요. 그래서 맞고 틀림의 문제보다는 한국에서는 이런 표현이 더 자연스럽다 정도로 부드럽게 이야기했지요. (학생들에게 한국에서는 내 엄마, 내 아빠, 내 가족이라고 하면 어색하고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우리 가족’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다 정도로요)
처음에는 그럴 수 있지, 아 이게 번역투의 글이구나 했지만,
그동안 제가 지도했던 한국의 아이들과 다른 아이들이구나 하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우리 가족’이라는 말이 갖는 정서.
그 말속에 담긴 소속감과 연결감이 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건 아닐까.
그건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때, 아이들이 한국어만이 아니라 ‘한국적인 감각’까지도 익혀야 하는 자리에서 있다는 걸 처음 실감했습니다.
그날 이후, 아이들의 일기 속에서는
뜻은 알겠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브로큰 코리언(Broken Korean)’을 자주 접하게 되었습니다.
“축구를 놀다” (아마도 ‘play soccer’의 직역),
“케이크를 오려주세요” 같은 표현들.
영어에서 콜로케이션이 중요한 것처럼,
한국어에서도 자연스러운 단어의 짝은
그 언어에 충분히 노출될 때 비로소 익혀집니다.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다른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고민도 되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아이들이 참 예뻐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아이들이 토요학교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대단했습니다.
주중 학교를 마치고, 토요일이면 쉬고 싶을 텐데도
다른 여가 활동이나 친구와의 약속, 생일 파티의 유혹을 뿌리치고
한국어를 배우러 오는 아이들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숙제를 성실히 해 오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수많은 일기 속에서
이 아이들의 어설프지만 진심 어린 한국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의 일 년을 지켜봤습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아이들은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말할 거리를 찾아 기억을 더듬는
그 첫걸음쯤으로 맺음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