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강연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이기를
브런치 글을 총 10편 연재하는 것으로 기획했는데 벌써 여정의 반을 왔다.
전혀 유명하지도 않고, 구독자도 없는 내가…
(즉, 크게 공식적일 필요도 없는데도)
뭔가 ‘강연자로서의 준비기’ 글로 연재를 하다 보니 공식적인 투로 글을 썼다.
그렇긴 한데.. 쓸 때마다 좀 어색해서…. 평어로 바꿔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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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자’라는 낯선 이름표를 스스로에게 붙이고 나서, 처음엔 그냥 나의 이야기를 풀어낼 생각이었다.
토요학교와 한국학교 그리고 국제학교에서 해외에서 나고 자란 한국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
해외에서 아이를 키우며 내가 겪어온 경험, 그리고 그 안에서 고민하고 정리해 온 생각들.
어쩌면 이것만으로도 강연을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준비가 깊어질수록, 나는 점점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강연은 나 혼자 쓰는 원고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껏 내가 가르쳐온 곳은, 한국어 교육에 대한 관심이 이미 높은 가정들이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한국어가 중요하다”라고 믿는 분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부모님들이었다.
나의 역할은 그런 분들과 방법을 나누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강연을 준비하면서 조금 더 넓게, 더 깊게 둘러보게 되었다.
지인에게도 물어보고, 지인의 지인들에게도 귀 기울였고,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분들, 또 그분들의 지인, 그리고 지금 내 수업을 듣고 있는 아이들의 가족 이야기까지.
그 속에는 또 다른 현실이 있었다.
배우자가 외국인인 다문화 가정.
가정 내 공용어가 한국어가 아닌 경우.
아이들이 유아기부터 혹은 초등 저학년 즈음에 이미 영어 환경 속에 깊이 들어간 경우.
그런 상황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일은 때때로 전쟁처럼, 혹은 포기와 타협의 연속처럼 들렸다.
“왜 굳이 한국어를 배워야 하죠?”
“아이와 너무 싸우게 돼서 관계를 망치게 될까 봐 제가 좀 내려놨어요.”
“영어를 잘해서 다니는 학교(주류사회)에서 경쟁력을 갖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 질문들 앞에서 나는 잠시 말이 막혔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도대체 왜, 한국어를 가르쳐야 할까.
그저 ‘한국 사람이니까’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더 찾아보고, 더 물었다.
내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에게 설문도 돌려보았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관계와 정체성의 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웃을 수 있는 말, 할머니와 이어주는 말.
그 안에 담긴 감정과 기억이 결국 아이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강연은, 단지 ‘효율적인 한국어 학습법’을 이야기하려는 자리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왜 한국어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려 한다.
언어가 자녀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 부모와의 유대, 정서 교류, 그리고 이중언어의 실질적 장점까지.
그 모든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고 싶다.
이 강연은, 더 이상 나의 독백이 아니다.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수많은 목소리와 함께 쓰여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사람, 한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가 함께 만든 이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