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시나리오 (가안)
강연 대주제 : 언어, 뿌리, 그리고 미래 : 해외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
첫 번째 강연 : 홍콩에서의 한국어 교육
두 번째 강연 (나) : 이중언어 교육의 현실 - 어려움과 가능성
세 번째 강연 : 낭독, 공감 언어(사람과 언어를 잇는 상호작용, 낭독의 온기는 공감이다.)
제목: 이중언어 교육의 현실 – 어려움과 가능성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홍콩에 온 지는 어언 10년 여가 되었는데 운이 좋게도 계속 교육이 길에 몸담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와중에 6년 전에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저도 여기 앉아계신 많은 학부모님들과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먼저 여러분께 하나 질문 드릴게요.
“여러분의 자녀가 스물… 다섯 살? 혹은 서른 살? 정도 되어 사회에 나갔을 때, 스스로를 어떤 말로 소개하게 될까요?”
“저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 누구입니다. 그 뒤에 이어서 어디에 살고 있는 ‘한국인입니다. 혹은 하프 코리안, 하프 홍콩얼. 혹은 국적은 어디 사람이지만, 아버지는 어느 나라 사람이시고 어머니는 한국분이십니다” 등과 같이 자신이 가진 정체성중에서 한국인임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것으로 상상이 되시나요?
이런 말을 당당히 할 수 있기를 바라시나요?
저는 그 시작이 바로, 오늘 이 자리 같은 교육과 만남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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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Part 1 – 첫 경험, 토요한국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제가 홍콩에 와서 처음 만난 아이들은 토요한국학교 6학년 아이들이었습니다.
첫 숙제로 ‘가족 소개’ 글쓰기를 냈는데요.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숙제를 제출했습니다.
쌓여있는 아이들의 공책을 보며, 성실함에 먼저 감탄을 했습니다.
첫 번째로 놓여있는 공책을 펼쳐 읽어보는데 ‘내 가족은… ’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좀 이상하다..라고 느끼시는 분 계신가요?
네 바로 ‘내’ 가족이라는 표현입니다.
지금은 조금 더 개인주의화 되어 있기도 하고, 저도 외국물이 꽤나 들어서 그렇게까지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데, 그때 당시에는 제가 한국의 고학년 아이들 국어 수업, 일기검사 등을 아주 많이 하다가 와서 그런지 바로 한눈에 그 단어에서 이질감이 들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두 번째도 , 세 번째도…. 정말 이 부분이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생생한 이유는 그때 느낀 이질감이 매우 커서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정말 모든 아이들이 “내 가족은…”(혹은 나의 가족은 )로 글을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아… 내가 정말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 거구나 싶었습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늘 교실에서 만났던 고학년 아이들이기에…. 아이들의 나이도 제가 가르쳤던 아이들과 비슷하고, 한국 국어 교과서로 수업을 하니 아이들을 만나서 겪어보기 전에는 이렇게까지 다를 줄 몰랐던 겁니다.
제가 1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가족은, 우리 엄마, 우리 아빠‘라고 표현하는 아이들 속에 있었는데
홍콩에서 만난 ‘한국인의 모습을 한, 한국인 핏줄을 가진 ‘ 이 아이들 머릿속엔 “My family is…”라는 문장이 먼저 자리 잡고 있었던 거예요.
이 아이들에게 ’우리 가족’이라는 표현은 생소했고, 또 자신들이 아는 범위에서 직역을 하자면… 심지어 이상하기도 했지요. (말하는 사람이 듣고 있는 사람과 자신을 함께 가리켜 ‘our’ 패밀리라고 하면 너와 나의 가족? 너와 나의 엄마? 이런 말이 되는 거니까요)
사실 이건 언어의 문제라기보다는 감각의 문제였습니다.
한국어에는 ‘우리 집’, ‘우리 엄마’, ‘우리 아빠’처럼 ‘우리’를 붙이는 정서가 있죠.
그 말 안에는 연결, 함께함, 소속감 같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걸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겁니다.
또 어떤 아이는 “축구를 놀다”, 또 다른 아이는 “케이크를 오려주세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귀엽죠? (청중이 웃으면 잠시 기다렸다가…) 저도 웃었습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숙제가 남습니다.
영어식 표현이 머리에 깊이 자리한 상태에서 한국어를 말하려니, 어색함이 생기는 거예요.
이런 표현들을 고칠 때 저는 절대 ‘틀렸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하죠.
“한국에서는 이렇게 말해요.”
이건 아이들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익숙하지 않아서 생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사인 저는 ‘맞고 틀림’보다는, 익숙함과 낯섦의 문제로 바라보려 노력했습니다.
감수성 있게 접근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언어보다 먼저 상처를 받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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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Part 2 – 한국국제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토요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주중엔 국제학교 혹은 현지학교에 다니고, 주말엔 한국학교에 와요.
어떤 친구는 친구 생일파티를 포기하고 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토요학교에 오는 아이들이 참으로 기특하고 생각했고, 이렇게 지속적으로 아이들을 여기 보내시는 부모님들도 대단하시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국제학교에 가서 더욱 확고한 철학이 있으신 강단 있는 대단한 부모님들을 만납니다.
KIS는 국제과정과 이중언어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저는 이중언어 과정에서 한국어 담임교사를 했습니다. 저희 반에는 영어 담임선생님도 계셔서 교실에는 이 두 선생님의 책상이 공존했습니다. 이보다 더욱 완벽한 환경은 없다 싶은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인데 실상.. 학생수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다른 국제 학교를 가기에 영어 실력이 부족하여 징검다리처럼 거쳐가는 분들이 계신 가운데 자녀의 한국어 교육을 확실히 잡고자, 이러한 학교가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를 표하며 자녀를 보내시는 그런 확고한 철학을 가지신 부모님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이들이 한국 국적이 아닙니다. 외모는 완벽하게 한국인이지만 아버지도 어릴 적 이민을 가셔서 영어가 더 편하십니다. 홈랭귀지가 한국어가 아닌 상황에서 부모님도 제대로 해 줄 수 없는 한국어 교육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 KIS 이중언어부인 것입니다. 혼혈이지만 배우자와 잘 상의하셔서, 한국 가정이지만 영어만큼이나 한국어를 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보내시고, 아이들은 그에 걸맞게 정말 바이링구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John Berry의 문화적 적응 이론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이중문화 상황에서 아이들의 적응 방식은 다음 네 가지 중 하나로 나뉩니다.
1. 동화 – 새로운 문화만 받아들이고, 원래 문화는 버림
2. 분리 – 원래 문화만 고수하고, 새로운 문화는 거부
3. 소외 – 두 문화 모두와 멀어짐
4. 통합 – 두 문화를 모두 수용하고 조화를 이루는 상태
저는 서울에서 근무하던 시절, 영어 원어민 교사 두 분을 만난 적이 있어요.
두 분 다 한국계였지만, 매우 달랐습니다.
한 분은 어릴 적부터 집에서 한국어를 써야만 했던 분입니다.
“할아버지가 안 그러면 혼내셨어요.” 하시더라고요.
그분은 교무실에서도, 학생들과도, 누구와도 한국어로 소통하며 웃고 농담하고 잘 지냈습니다.
한국과 외국 문화를 연결해 주는 팟캐스트도 운영하며, 자기 정체성에 자부심을 갖고 살았죠.
반면, 다른 한 분은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셨습니다.
어느 날, “네, 함머니~ 네~” 하는 통화 장면을 보고
“선생님, 한국어도 하시네요?” 했더니
“아니에요!” 하며 손사래를 치셨어요.
그분은 어릴 적 부모님이 바쁘셨고, 집에서도 영어만 썼다고 합니다.
이 두 분, 어떤 적응 유형일까요?
앞의 분은 통합, 뒤의 분은 동화에 가까웠죠.
위에 한국어 소통이 가능하신 분은
학교 교무실에서 다른 선생님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농담도 하고 웃고 빨리 친해질 수 있었고, 한국에서 있으면서도 연애도 하고, 다른 뜻이 맞는 교포 친구들과 뭉쳐 한국어와 영어로 진행하는 아마 한국과 외국의 문화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팟캐스트도 만들어 올렸습니다. 굉장히 적응이 빠르고 무엇보다 미국에서는 미국인으로서 이질감 없이 어울릴 수 있는 데다가 한국어를 꽤 잘하기에 한국에서도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었죠.
(분리의 케이스도 종종 보이긴 하며, 사실 제가 하도 한국어교육을 강조하다 보니 제 아들에게 이 분리에 가까운 일을 겪기도 했는데요. 그래서 영어를 부정하면서까지 한국어 교육을 하라는 이야기는 전혀 아닙니다. 영어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 다를 잡는 이중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
사실 이 이론을 알기 전에도 경험적으로 ‘통합’의 방향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이론을 알게 된 후에는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여기 앉아계시면서 이렇게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여러분들은 모두 ‘통합’의 방향으로 가고 계신 것이고, 바른 방향을 잘 잡으셨습니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결고 쉽지 않습니다.
이중언어.. 혹은 외국인 배우자분과 가정을 이루신 경우에는 그 자녀가 3개 국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렇게 다중언어를 모두 잡고 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도 방향을 잘 잡으셨으니, 중도에 포기하지 마시고 천천히 가도 좋으니 끝까지 가시길 바라겠습니다.
본론 Part 3 – ESF에서 만난 아이들
-esf 모국어 교육 중시 – KJS의 사례
- ESF 바이링구얼 브로셔 파일 버전 슬라이드로
Esf에서의 통계, 총 몇 명의 아이들이 한국어를 선택하는지.. 총 몇 명이 한국 가정 중에서?
(이게 현실이고 어려움이라는 것을 말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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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아이들에게는 스위치가 있어서 충분히 두 가지 언어를 다 잘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시대도 많이 바뀌었고, 인식도 많이 바뀌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심지어 영어권 국가로 이주한 제 지인은 이웃이 그렇게 이야기하더랍니다.
아이가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환경이 부럽다고요, 동양 이민자 아이들은 모국어도 하고 영어도 해서 똑똑한 것 같다고요. 이제는 이렇게 다개국어를 하는 것의 장점이 매우 널리 알려졌고, 그리고 우리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 더 이상 한국어를 하는 것이 창피한 상황도 아닙니다.
부모님들께서 영어를 잘하시기에, 혹은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한국어로 하면 이해를 잘 못하니 빠른 의사소통을 위해 아이들과 영어로 소통을 하시기도 하고, 혹은 아이의 학교 언어에 지장을 줄까 봐 한국어 노출을 거리시기도 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아이에게 한소리 들었죠. “엄마는 언제는 한국어를 쓰라고 하더니, 왜 이제는 영어를 쓰라고 해?”)
하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언어의 스위치가 켜질 수 있으며, 그 언어가 자리 잡기 전까지 혼돈의 시간이 있을 수 있으나 다중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인지적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음을 연구 논문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냥 아무 관련이 없는 외국어도 배우려고 하는데, 부모가 혹은 부모 중의 한 분이 한국인인데도 자녀의 한국어를 놓치고 간다면, 너무 아까운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한국어만 쓰라고 강요하시거나 왜 한국어가 이렇게 안 늘지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천천히 포기하지 말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분명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능한 길이고, 꼭 필요한 길입니다.
지금 이 길을 가고 있는 모든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여러분은 ‘엘리멘탈’이라는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를 혹시 보셨나요? 이 감독님이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도 아셨나요? 이분이 어릴 적에는 빨리 그 문화에 동화되고 싶어 영어만 쓰고 한국말을 배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인이 된 감독님은 결국 부모님의 고생(영어 인터뷰에서도 ‘고생’이라는 말은 한국어로 하셨습니다.) 희생, 사랑을 깨닫게 되고, 자신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듬어보고 이러한 이민자로서의 이야기를 담아 세계적으로 흥행하는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에서 한국어에 대한 배움을 지속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시기도 했어요. ) - 결국 이분이 영어 >>>>> 한국어로 뒤늦게 동영상이라도 찾아본다면, 거의 인터뷰가 영어인데… 한국인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부모님을 애정한다는 것은 맞지만 한국어를 공부합시다라고 독려하는 내 강연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케이스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