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함에 대한 두려움

by 녀웃

1장에서도 적었듯이 어린 시절, 나의 가정은 안정적이지 않았다.

부모님의 다툼이 잦았고, 집 안의 공기는 늘 긴장되어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스스로 안정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로인해 형성되었던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들에

학창 시절에는 따돌림을 겪기도 했다.

그 시기의 나는, 내 안에서 생겨나는 안정감이 아니라

누군가의 표정과 말, 반응에 의해

그날의 안전 여부를 판단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내 감정의 기준을 나에게 두지 못했다.

상대가 웃어주면 괜찮았고,

반응이 없으면 하루가 무너졌다.


그렇게 나는

타인의 반응에 나를 맡긴 채

거의 서른 해를 살아왔다.


그러다 약 5년 전,

직장에서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큰 추락을 경험했다.

그로인해 징계도 받았고, 부서이동도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웠던 그날 이후 내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전의 나의 시선은 늘 위를 향해 있었다.

성공, 성취, 명예 같은 것들.

그것들이 나를 증명해주는 거라 믿었다.


하지만 추락 이후

나는 처음으로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게 되었다.

나 자신에게로,

힘든시기에 옆을 지켜주던 동료들에게로,

그리고 내가 가는 길을 따라오는 후배들에게,

그리고 일 너머에 있는 나의 삶,

성공, 성취, 명예보다 소중한 정직하고 정돈된 일상의 중요성에게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책에는 이러한 문장이있다.

“살면서 내가 이룬 모든 진전에는, 그에 앞서 항상 ’추락‘이 있었다.

추락이 성장보다 먼저 이루어지고, 그 결과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이기적인 삶에서 목적있는 삶으로 방향을 바꾸는 변화에 필요한 에너지가 생긴다.“


현재 내가 실패, 추락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는 큰 도움이 된 경험이었고, 그에 부합하는 책의 내용이다.


변화는 느렸지만 분명했다.

그때부터 내 삶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조금씩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3년 전부터 시작한 책 읽기, 일기 쓰기, 공부는

내 삶의 리듬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이상 공허하지 않았고,

타인의 반응에 쉽사리 마음이 요동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점점 온전해졌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분명히 충분히 행복하다.


그리고 가벼운 관계들 속에서의 나는 꽤 잘한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친절,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을 만큼의 관심.

그 안에서는 나도 편안하다.


그런데 누군가가

조금 더 가까이 들어오려고 할 때,

내 삶의 안쪽으로 발을 들이려 할 때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장벽을 느낀다.


분명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선 이상은 넘지 못하게 막아둔 벽.

나조차도 그 벽이 정확히 어디서부터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유지해온 경계.


가족을 제외하고,

누군가가 그 선을 넘으려 하면

나는 다시 긴장 상태로 돌아간다.

관계를 느끼기보다 관리하게 되고,

상호작용을 즐기기보다 계산하게 된다.


어쩌면 나는

고난을 지나 행복을 찾았지만,

그 행복을 타인과 함께 누리는 법은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장의 끝에서

나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행복해진 뒤에도

친밀함을 완전히 허락하지 못할까.


이 벽 너머로 누군가를 들이는 일은

나를 잃는 일이 아니라

나를 함께 나누는 일이 될 수는 없을까.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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