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함을 갈망하지만 동시에 밀어내는 사람의 내면

by 녀웃

누군가와 연애를 시작하고 가까워지면,


나는 이 사람과의 밝은 미래를 상상하기보다


항상 끝을 먼저 떠올렸다.



가까워질수록 안정감보다는 불안을 먼저 느꼈다.


기대보다는 헤어짐에 대한 대비를 했고,


믿음보다는 도망갈 출구를 먼저 만들어 두었다.



‘친밀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게 꼭 나를 설명하는 말 같았다.



친밀함에 대한 두려움에는 몇 가지 얼굴이 있었다.



1.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2. 내가 이 사람에게 부족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

3. 배신이나 기만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4. 관계 안에서 순종해야 할 것 같은 두려움

5. 통제받고 얽매일 것 같은 두려움

6. 결국 원하는 방식의 사랑은 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관계가 깊어지고 마음이 커질수록


‘이 사람도 언젠가는 떠나겠지’라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믿고 나서 무너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처음부터 믿지 않는 편이 덜 아플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에게 바라는 게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은 바라는 게 있어도 말하지 못했고,


속으로만 삼키다 혼자 서운해하고,


그렇게 관계를 조금씩 망가뜨렸다.



또 한편으로는


그의 간섭과 기대, 요구가 쌓일수록 숨이 막혔다.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가까워질수록 도망치고 싶어지는 마음이었다.



이 감정의 출처는 어디에서 왔을까.



이 두려움들이 정확히 언제부터 내 안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돌아보면, 이해되는 장면들은 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잦은 다툼.


나와 동생은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애썼고,


눈치를 보며 상황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때 나는 ‘조용히 존재하는 법’을 배웠다.



중학교 2학년 때, 큰 다툼 이후


아버지는 집을 나가셨다.


돌이켜보면 그 상황에 대한 분노보다도


‘누구든, 언제든 나를 떠날 수 있구나’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몸으로 배운 순간이었다.



그 이후 어머니는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고,


그만큼 기준은 엄격해졌다.


분명 어머니는 나를 사랑했지만,


어릴 때의 나는 어머니의 표정과 말투,


그 미묘한 부정적인 반응 하나하나에 크게 흔들렸다.



그때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자리 잡았다.


‘아, 나는 존재만으로 사랑받는 사람은 아니구나.


잘해야, 버텨야, 기대에 맞춰야 사랑받을 수 있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믿음은 내 안에 오래 남아


나를 붙잡고 괴롭히는 싹이 되어버렸다.



어릴 때 내가 배운 것은


사랑받는 법이 아니라,


버려지지 않는 법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사랑을 받을 준비보다


상처받기 전에 먼저 떠날 준비를 하고있나보다.



이 두려움들은


어렸던 그때의 내가 약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그 시절의 나에게는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이제 나는 묻고 싶다.


앞으로도 이 두려움을 붙잡은 채 사랑해야 할지,


아니면 두려움과 함께 가는 다른 방법을


천천히 배워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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