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안할수록
무언가를 더 단단히 붙잡으려 한다.
관계에서도,
미래에서도,
사람의 마음에서도.
흔들릴수록
확실한 것을 만들고 싶어지고,
확실하지 않으면
확실해질 때까지
붙들고 있으려 한다.
하지만 삶에는
붙잡을 수 있는 것과
붙잡을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영역이 있고,
애써도 바꿀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문제는
그 경계가 흐려질 때 시작된다.
우리는 종종
내가 할 수 없는 일까지
내 책임처럼 붙들고 있으려 한다.
상대의 마음,
관계의 향방,
사람의 선택,
타이밍과 감정의 흐름.
그것은 애초에
내가 쥘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는데도
불안은 그것마저
내 손 안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없는 통제를 시도하며
지치고,
실망하고,
자기 자신을 소모한다.
그러나 통제란
많이 쥐는 능력이 아니라
구분하는 능력에 더 가깝다.
내가 개입하면 달라질 수 있는 것인지,
아무리 개입해도
내 몫이 아닌 것인지.
그 경계를 알아보는 감각.
통제할 수 있는 것에는
책임을 다해 개입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 앞에서는
물러날 줄 아는 태도.
그것이 결국
나를 지키는 방식이 된다.
관계를 지키려 애쓰며
상대의 마음까지 붙들고 있으려 했던 시간들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불안해졌고,
점점 더 나를 잃어갔다.
돌이켜보면
문제는 애쓴 것이 아니라
애쓸 수 없는 영역까지
내 몫으로 끌어안았다는 데 있었다.
상대의 선택은
내가 대신 결정할 수 없고,
사랑의 지속 여부는
내 의지만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사람의 마음은
내 노력의 크기로 통제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이 문장을 삶의 기준으로 두려 한다.
통제할 수 있으면 통제권을 쥐어라.
그렇지 않으면 내버려 두어라.
붙잡아야 할 것과
흘려보내야 할 것을
구분할 수 있을 때,
불안은 줄어들고
삶은 조금 더 가벼워진다.
나는 지금
내가 쥘 수 없는 것까지
쥐고 있으려 애쓰고 있는가,
아니면
내 몫이 아닌 것을
놓아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