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관계 속에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종종
상대를 빠르게 규정하는 일로 이어진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고,
저 사람은 저런 성향이며,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저 사람은
이렇게 행동할 거야, 라는 식으로.
허나 그렇게 상대를 규정해버리고 나면
관계는 단순해지고,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야는
눈에 띄게 좁아진다.
즉, 누군가를 하나의 모습으로 규정해버리는 순간
그 사람이 보여줄 수 있었던
더 많은 얼굴들을 우리는 놓치게 된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이란
사람을 빠르게 파악하고 규정할 수 있는 사람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가능성을 위해
서둘러 관계를 닫아버리지 않는 태도에
더 가까운 사람인지도 모른다.
상대를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르겠다는 상태를
조금 더 견디는 일이다.
지금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여지,
이 사람이 아직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여지를 허락받았을 때,
사람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으로 조금씩 나타난다.
돕는다는 것은
끌어내는 일이 아니라,
드러나도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일이다.
판단 대신 침묵을 선택해주는 사람 앞에서,
사람 자신을 방어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어떤 관계에서는
사람이 점점 단단해지고,
어떤 관계에서는
같은 사람이 점점 작아진다.
어쩌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를 얼마나 정확히 아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계속 변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이 관계에서
사람을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
그를 더 이상 보지 않으려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