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이런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내 옷장에는 주머니를 잘라낸 양복이 걸려 있습니다.
이 양복을 입고 장례식에 갈 때마다
나는 잊지 않습니다.
죽을 때 내가 빈손으로 간다는 사실을.”
그 문장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주머니가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는 뜻이고,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무언가를 계속 손에 쥐려 한다.
관계, 자리, 인정, 역할, 성취.
손에 쥔 것들이 곧 나 자신인 것처럼
쉽게 놓지 못한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상상은
곧 내가 줄어드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미 지나간 것들까지
마음속에서 계속 붙들고 산다.
하지만 삶의 끝을 떠올리는 순간,
그 모든 쥠은 갑자기 힘을 잃는다.
끝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 앞에서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의 무게가 달라진다.
주머니를 잘라낸 양복이라는 이미지는
아마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가질 수 없음을 기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워 둔 자리.
우리는 모두
잠시 무엇인가를 들고 살아가지만
결국은 빈손으로 돌아간다.
그 사실을 안다는 것과
그 사실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다른 일이다.
빈손으로 떠난다는 것을 기억하면
지금 손에 쥔 것들을
조금 덜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반드시 지켜야 할 것처럼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잠시 맡아 들고 있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래서 어쩌면
놓아야 하는 순간이 올 때
우리가 연습해야 하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본래 빈손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주머니 없는 옷을 상상한다.
담을 곳도, 숨길 곳도 없는 옷.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그저 입고 서 있는 상태.
그 모습은
가난하거나 결핍된 상태라기보다
덜어낸 끝에 남는
가장 단순한 존재의 형태처럼 느껴진다.
결국 우리는
무언가를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잘 놓을 수 있는가를
배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정말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으로
마지막을 맞이할 때,
그 사실이 낯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문장을 가끔 떠올린다.
죽을 때 우리는
빈손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