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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hongmin May 11. 2016

외향적이고 싶어 하는 내향적인, 스물일곱살의 나

그래도 난 내가 좋아

그냥, 오늘은 아무 글이나 써보고 싶었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후 몇 개 쓰다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거의 방치하다시피 한 브런치이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뭐라도 써재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일부러 전문적인 글들보다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다 보니... 딱히 마음이 가는 주제가 없었던 것도 사실... 


그래서 오늘은 마음이 가는 사진 하나를 대문에 걸어놓고 아무 글이나 써보려고 한다.


그래 놓고 여기까지 쓰니까 써보고 싶은 주제가 하나 생각나버렸다.  음... 뭐라 할까 '외향적이고 싶어 하는 내향적인, 나에 대한 이야기'라고 가제를 한 번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이야기 시작.


아마 주변에서 이런 평가를 받게 된대에는 그다지 좋지 못했던 학창 시절 나의 인간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여기서 좋지 않았다는 말은 뭐 친구랑 싸우고 왕따고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친구들이랑 교류 자체가 거의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잘 나가서 뛰어놀고 그랬던 거 같은데, 점점 살이 쪄가면서(중1 초반에 거의 90kg였던 걸로 기억) 운동도 안 좋아하게 되고 나가 놀지 않으면서 점점 교류가 없어졌던 것 같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는 공부나 할까 해서 학원 특목고반에 들어갔는데 공부에 재미가 붙어서 공부만 했다. 요즘도 장난 삼아하는 말이 평생 할 공부를 중학교 때 다했다는 말... 외고가 뭐 그리 가고 싶었는지 중2 중3 때 새벽 2시까지 학원에서 공부하고 집에 가고 그랬다. 다행인지 이때 살도 거의 20kg는 빠지고... 뭐 그랬다. 학교 가서도 공부만 하고 학원 가서도 공부만 하고 그러다가 외고를 들어갔다. 


왼쪽 중3, 오른쪽 중1

그 당시에는 주변 사람들이 공부 잘한다 잘한다 해서 좋아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별로 좋을 것도 없었다. 신생 외고라 그런지 커리큘럼이 제대로 되어있지도 않았고 애초에 외국 대학을 갈 것도 아닌데 텝스, 토플을 뭐 그리 했는지. 솔직히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영어실력은 중학교 때 배운 데에서 멈춰있는 느낌이다. 

뭐 지금 외고를 까자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니까 넘어가고, 초중학교를 저렇게 보냈으니 고등학교 때라고 막 활발하게 미쳐서 돌아다닐 성격이 되지 못했다. 

딱히 친한 친구가 있지도 않고,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서도 돋보이지 않는 학생 1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외고다 보니 동창의 1/3이 SKY로 가시고 나머지는 전국구로 흩어졌는데 그나마도 우리 학교엔 내가 알기론 3명 정도만 와서 말 그대로 아는 사람이 없는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때다 싶어 팔자에도 없는 활발, 적극이라는 구호를 들고 나와 일선에 나서기 시작했다. 학과 신입생 카페를 개설하고 첫 모임을 만들고, 그 기세를 몰아서 1학년 과대를 하고, MT를 주최하고 팔자에 없는 짓을 많이 하고 다녔다. 

그런데 그 성격이 어디가랴, 키보드 워리어로 말빨을 커버하던 나로서는 현실에선 오래가지 못했고, 말 주변이 없음을 자조하며 작아져갔다. 거기에 갑자기 소비하는 돈의 단위가 달라진 대학생활에 초반에 적응하지 못해 모임에 나가는 횟수가 적어져 갔다. 한 달에 5만 원씩 받아가며 살아갔던 고등학생 생활에 익숙한 나에게, 한 번 모임에 나가면 1~2만 원씩 깨지는 생활은 즐거움보다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나마 몇몇 친한 친구들이 생겨서 학교를 혼자 다니진 않았다는 거랄까.

그러다 군대를 다녀왔다. 사람들은 군대에 다녀오면 성격이 많이 변한다는데 난 딱히... 그냥 체력이 좋아지면서 자신감이 좀 더 생겼던 것 같다. 얼마나 성격이 그대로던지, 전역하고 며칠 뒤에 시작한 알바에서 같이 일하는 인턴 형 누나들이 '종민이 말하게 하기 프로젝트'라면서 말 좀 하라고 장난쳤던 기억도 있다. 이젠 안 그렇지만... 이 사람들이 지금은 제일 친한 사람들 중 하나가 되긴 했다.


전역하고 애들은 군대 가고 친구는 없고 그러다 보니 공부만 해서 장학금 받고... 
이런 새드 엔딩이 지속되는 게 싫었던 나는 삶의 변화를 좀 주고 싶었다. 

그러다가 학교 대자보에 붙은 대외활동 포스터들을 보게 되었다.

이런 활동들을 해 본 경험은 없었지만 다른 학교 친구들을 새로 사귀면서 재밌는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드 한 학교 생활을 청산할 수 있는 실낱 같은 희망이라고 해야 할까나. 어쨌든 위에 있는 두 개를 썼는데 두 개 다 붙었다. 

지금은 망해가는 한진해운 대외활동도 265:1인가로 해서 붙음

아무것도 없었는데 군대 갔다 와서 열심히 할 수 있다고 막 강조했더니 불쌍했는지 다들 붙여줬다. 심리학과라고 해서 이것저것 쓴 게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랬다. 아무튼 이런저런 학교 밖 활동들을 해가면서 이게 마지막 기회다 싶어서 열심히 했다. 말 그대로 온갖 정성을 쏟았던 것 같다. 대외활동을 하면서 다녔던 모든 MT는 내가 만들어서 갔고, 대외활동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면 모든 자리에 참석했다. 만나지 않을 때에도 항상 생각나고 다음에 만나면 어떤 일이 있을지 기대가 됐다. 

이런 노력이 나름 빛을 발했는지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고 성격도 많이 활발해지고 적극적이 되었다. 하지만 예전 성격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뭐랄까 좀 츤데레 이미지가 쌓였다. 평소엔 말이 없고 무뚝뚝한데 알고 보면 잘 챙겨준다고... 말이 츤데레지 그냥 예전 성격 못 버리고 있는 거다.


결과적으로 대외활동이라는 활동들이 내 성격을 많이 변화시켜 준 일등공신이긴 한데, 부작용도 있었다. 예전엔 사람들과 교류 자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인간관계로 해서 상처를 받을 일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사람들과 관계가 생기니 그럴 일이 생기곤 하더라. 


내가 줬던 사랑, 쏟았던 관심만큼 나도 그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고 관심을 받고 싶었는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해주지 않을 때 오는 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말이 서운한 거지 그냥 삐지는 거다. 결국은 남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아직은 생각이 어린지 서운함을 지우기가 힘들다. 오히려 이런 서운함을 느끼기 때문에 성격이 외향과 내향 사이에서 줄을 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에 와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대외활동을 시작한 23살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처음 가 보는 집 앞 카페에서 만난 무리에 껴서 회에 소주를 먹을 수 있는 넉살을 가졌고, 대기업 사장과 임직원들 앞에서 발표를 할 수 있는 덤덤함도 가졌으며, 일 하고 싶은 회사의 대표님께 페북으로 무작정 이력서를 날릴 수 있는 용기 혹은 당돌함을 가졌다. 


내향적이긴 해도 이정도면 봐줄만하지 않은가 싶다.

그래서 난 아직 줄을 타고 있지만, 아직도 난 이런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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