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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리인 Sep 28. 2022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통상 KPI로 불리는 핵심 성과 지수는 많은 회사와 조직이 부서별, 업무별로 촘촘히 관리하고 있다. KPI가 우리나라의 비약적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보는데, 논문 테마를 찾고 있는 연구자들이 이 분야를 심도 있게 탐색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회사에 따라서는 매월 CEO가 참여하는 전부서장 월간 회의를 통해 경영 환경을 공유하고 KPI 진행사항을 점검하고 주요 안건을 짚어 본다. 또한 현장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의견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회의 주관부서에서는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해 사전에 특정 지점에 발표를 종용하기도 한다. 미리 발표 내용을 파악해 본사 유관부서에 전달해 지점의 건의 내용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준비하도록 하는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하는 경우도 많다.




#1  아닌 건 아니다


 여느 때처럼 월간 부서장 회의를 화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영업 실적 등 지점 현황과 혹여 있을지 모르는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 등을 준비했다. 전사 경영실적, 주요 사업내용 점검, 중점 추진계획 등 평소와 같은 패턴대로 회의가 진행되던 중이었다.


 영업 부서 L 부장이 시장 점유율에 크게 기여하던 A 사업의 성공을 언급하며, 유사한 특성의 B시장에 새롭게 진입하겠다는 청사진과 함께 장밋빛 실적을 예상했다. 발표에 고무된 CEO가 한 말씀한다.


 “현장은 어떤 생각인지 대형 지점 의견을 한 번 들어보자고. K지점장은 어떻게 생각해?” 하고 갑작스럽게 나를 지목한 것이다. 순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잠시 멈칫했지만 생각을 정리해 이야기했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처음 진출하는 시장이니, 시장 성숙도와 공략 난이도, 서비스 운영 안정성, 타사와의 경쟁 강도, 비용 효율성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건당 매출 등 시장 특성을 고려했을 때 A 사업 대비 시장 규모도 20% 미만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름의 식견으로 느낀 그대로 언급했지만 뭔가 이상한 공기가 감지되었다. 회의를 주관하는 본사 팀장이 말한다.


 “다른 지점 의견도 들어보겠습니다.” 하고 다른 대형 지점장을 지목한다.


 “예, 전 지점이 집중력을 발휘해 발로 뛰는 영업을 하면 발표한 대로 성과 창출이 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 연이어 또 다른 지점장도,


 “A시장 영업에 성공한 직원들의 열의로 B시장도 조기에 시장을 선점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한다.


 회의가 끝난 후, 다른 지점장들처럼 희망적으로 이야기하지 왜 그랬냐는 동료들의 메시지를 받고 씁쓸했다.


 비용을 써서 쉽게 매출을 올리는 영업보다는 고객의 이용 극대화를 통한 매출 증대가 본질이고, 힘은 들지만 그것이 진정한 영업인데 눈앞의 숫자만 보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당시 새롭게 진출한 B시장은 A시장의 15%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고객의 이용 촉진 마케팅 등 질적 영업력의 약화다.


 ‘직원들이 그 시간에 본질적 영업을 했다면 보람을 느끼고 회사로서도 질적으로 더 나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아쉽기만 하다.




#2  무엇을 위한 성과인가


 전사 워크숍 때의 일이다. 경영진과 전부서장이 운집해 하루 종일 업무 진행사항을 점검하고 공유했다. 중간중간 안건에 대해 CEO가 관련부서에 질문도 하고 참가 부서장들의 의견을 묻기도 하는 등 시종일관 긴장의 연속이었다.


 오전에 많은 이슈와 안건이 논의되고 오후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사 수익을 올리기 위한 아이디어로 영업사원이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할 때, 추가로 M서비스도 판매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도입 시에는 연간 수 백억 규모의 추가 수익이 가능하니 관련 부서에서도 충분히 검토할 만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서비스의 내용이 어렵다는 것이 문제였다. 몇 분 안 되는 짧은 상품 판매 시간에 해당 서비스 내용을 추가 설명하고 가입을 유도하는 것이 영업사원들로서는 버겁다고 느껴졌다. 온라인이나 전화 상담 직원들부터 우선 실시하고, 이후 보완해 파일럿으로 영업력이 우수한 영업 사원부터 적용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EO가 수익 예상치에 고무되어, 지점장들의 의견을 들어보자 한다. 아니나 다를까 P지점장이 용기 있게 난색을 표했다.


 “서비스 내용이 어려워서 영업사원들이 판매하기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했다. 다들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영업사원의 불완전 판매로 인한 고객 불만과 응대로 영업소장이 며칠을 힘들어하던 일이 생각났다. 내용이 어려운 이 서비스를 지점에 확대했을 경우, 금액 계산도 복잡하고 판매 시점의 고객 이해 여부도 불명확하니 사후에 고객 대응이 녹록지 않을 것이 뻔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손을 들었다.


 “도입 취지도 좋지만 판매 이후의 대응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비스 난도가 높은 경우 고객 클레임 등 문제 발생 시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영업소 운영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전문성이 있는 상담 조직부터 우선 적용하고 제반 미흡한 점을 보완해 현장에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슬쩍 보니 CEO의 표정이 좋지 않다. 잠시 후 다른 지점장들이 연이어 도입을 찬성하고 나선다.


 예상은 했지만, 결국 영업 조직에 M서비스 판매가 전면적으로 도입되었다.


 우리 지점 영업소장들에게 실적이 안 좋아도 좋으니 M서비스 판매는 지양하고 궤도에 오른 후에 하라고 일렀다. 예상대로 미흡한 채 시행된 탓에 불완전 판매로 인한 고객 클레임으로, 다른 지점 직원들이 힘들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제도나 정책을 도입할 때는 단기적인 실적과 성과뿐 아니라 장기적인 효과와 전사적 관점의 영향도를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한다. 불필요한 소모와 낭비를 최소화하고 본질적인 곳에 힘을 쏟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럴 싸하게 일을 벌여 놓고 뒤는 살피지 않는 일이 많다. 성과만 취하고 나 몰라라 한다. 결국 누군가는 고객 불만과 어려운 사후 처리를 해야 한다. 상담 직원 등 타 부서를 힘들게 하고 비용과 시간을 소모시킨다. 급기야는 언제 제도를 시행했는지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도 많다.


 경영진이 단기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라면 눈앞의 실적 보다도 앞을 내다보고 회사와 직원들을 위해 열린 시각과 긴 호흡으로 사안을 바라보고 현명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것이 이 시대에 걸맞은 리더가 아닐까?




이미지 출처 : 제목 -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 #1 #2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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