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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리인 Jan 04. 2023

선배! 연락 기다릴게요

실력을 알아주는 세상으로


올 것이 온 건가?

 

 은퇴한 지 1년이 되었다. 군에서 제대를 하면 지역에 안 간다는 말이 있는데, 나 역시 회사 근처에 가기 싫다.


 아직 수양이 부족한가 보다.


 지난 연말, 인사철을 맞아 선배인 영업 담당 임원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어찌 될 거 같아요?” 승진이 되면 좋지만, 바른말하는 성격이라 걱정이 되었다.


 “어, 내년이면 나도 시간이 많이 남아돌 거 같아. 다음 달에 한번 보세” 한다. 뭔가 느낌이 나 보다. 전화를 끊고 가슴이 먹먹했다.


 

 며칠 후, 인사 발표에서 선배의 이름은 없었다.


 드디어 그럴 때가, 그런 나이가 된 것인가 싶었지만,


 ‘이건 아니지. 저 실력자를 알아주지 않다니 앞날이 걱정되네.이제는 떠난 회사인데, 불끈 치밀어 오른다. 선배와의 추억이 아련히 떠올랐다.




 오늘로 브런치에 100번째 글이다. 미흡하지만 나로서는 의미 있는, 이 글을 선배(이제 형님이라 부르고 싶다) 에게 다.


“참으로 고생 많으셨어요. 무거운 짐 내려놓고 이제 자신만을 위한 삶, 시간 보내세요!"



#1  무거운 짐을 홀로


 선배는 회사의 큰 형님이었다. 선배의 방은 늘 사람들이 드나드는 사랑방이었다. 고민을 들어주고 시원하게 해결해주곤 했다. 근처에만 가도 선배의 호방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부서 간 갈등이나 수시로 떨어지는 그 많은 어려운 일도 훌륭히 수습하고 조정하는 덕장(德將)이었던 것이다.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해주고 터치하는 모습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또, 숫자에 밝아 어려운 영업 상황에서 치밀한 기획과 실행력으로 영업을 진두지휘했다.


 때로는 업계를 흔드는 강공책으로 어떤 때는 예상 밖의 대응으로 시장을 끌고 가는 밀당의 고수인 지장(智將) 이기도 했다. 온몸으로 긴 시간 동안 그 큰 살림을 해 냈으니 대단하기만 하다.


 어디 그뿐이랴, 지나친 이기주의로 팀워크를 깨는 팀장이나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후배들에게는 따끔하게 나무라는 맹장(猛將)이었다. 


 휘하에 있는 수십 명의 팀장들을 건사하며 미흡함이 없도록, 때로는 큰 소리도 낼 줄 아는 참 리더였다.  


 

 임원회의 시에 영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늘 입방아를 찧는 이들을 보며,


 “지원도 제대로 안 해주고, 영업도 모르는 이들이 함부로 이야기하는 걸 보면..” 하고 분을 삭이지 못하는 나를 보고는,


 “내버려 둬라. 그러고 말겠지.” 하며, 달관한 이처럼 시니컬하게 이야기한다. 오랫동안 온몸에 안팎으로 비바람을 맞아서였을까? 결국 자신의 몸도 상하고 았다.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곪은 것이다.



#2  알아줘서 고마웠어요


 선배와는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적은 없었지만 가끔 조언을 구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고, 그때마다 흔쾌히 해결해 주곤 해서 항상 고마웠다. 아마도 남과 다른 시각과 새로운 시도를 하는 나를 좋게 봐준 듯하다.


 고군분투하는 그 모습에 힘을 보태려고 스스럼없이, 놓치고 있는 시장이나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곤 했다. 돌이켜 보면 에스맨이 아니라 바른말을 하고 소신 있는 스타일이 나와 비슷하다.


 

 의외로 나를 잘 알고 있기도 했다. 누가 나를 좀 강해 보인다고 하면,


 “모르는 소리, 말만 그래. P부장이 얼마나 정이 많은데, 직원들도 많이 따라” 하고 감싸주었다.


 그래서인지 지역 본부장과 지점장으로 처음 함께 했을 때도 자기 말을 잘하지 않는 이가 마음속 이야기를 했다. 고충을 토로하는 그를 볼 때면 안쓰럽기만 했다.


 회사를 떠난 후, 술자리에서 선배가 술을 따라주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네”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선배와상하관계보다는 회사를 걱정하고 영업을 고민하는 소중한 동료였다. 이제 그동안 상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오롯이 자신만을 챙기라고 하고 싶다.


 애주가인 선배에게 마음을 담아 조선 3대 명주로 유명한 이강주(梨薑酒)를 보내드려야겠다.



 

 상시경쟁 사회에서 변화는 기본이고, 사람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우리 사회가 많이 성장했지만 인사는 개선이 많이 필요해 보인다.


 주로 자신의 사람으로 채우고 익숙한 사람, 아는 사람(안다고 생각하는), 고개 숙이는 사람을 쓴다. 이제 이런 풍조는 좀 없어지면 안 될까? 쉽지 않겠지만 기대를 해본다.


 나이보다는 실력, 에스맨보다는 철학과 소신 있는 이도 아우르는 것이 진정한 인사라고 생각한다. 


 연초에는 아무래도 어수선하다. 이 과정에서 조직이 더 약해지기도 한다. 전략이나 일의 수준이 몇 년 전보다 못한 경우도 많다. 단절이 아닌 발전이 중요하다.


 전임자의 색깔을 빼는데 집착하기보다는 받아들일 것은 수용해 자신의 색을 입히자. 그들의 지혜와 통찰을 잘 활용하는 것도 잊지 말자.


“그나저나 선배! 얼굴 한 번 봐야지요. 정리되면 꼭 연락 주세요.”




이미지 출처 : 제목 #1 #2–픽사베이, 전주 이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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