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 자리 빼게나

애환편 03

by 궁리인


영업현장 경험이 전무한 초보 관리자로서, 1월 영업회의에서 수모를 당하고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몇 달이 지났건만 하위권을 맴도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1





하루는 타 지점 지점장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부지점장 고생 많지? 우리 지점 P백화점 3층에 영업 부스 한 곳 자네 지점이 하지 않겠나?” 안쓰러움에 지점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챙겨 주신 것이다.

‘아 이런 감격스러운 상황이….’ 부스의 위치가 어디인지, 하루에 어느 정도 실적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니었고 평소 존경하는 선배가 배려를 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몰랐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의 영업 거점은 영업사원이 모두 선망해 마지않는 자리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업을 위해 일반 사무실 등을 일일이 방문할 필요 없이, 수많은 고객이 모이는 곳에서 길목을 지키는 영업이 가능한 것이다. 계절과 날씨와 무관하게 손쉽게 꾸준하게 영업할 수 있고 실적도 몇 배나 올릴 수 있으니 누구나 원하는 영업 방식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유통점에는 영업 관련 점포와 영업사원이 입점해 있는 것이다.


상호 공동 마케팅 차원에서 업무제휴를 했을 경우에는 영업 부스 운영이 계약내용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고, 영업 거점수와 영업사원이 영업 시 지켜야 할 준수사항까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영업사원 중에서 영업력과 추진력이 있는 이들은 직접 중소형 유통점이나 지역 기반 유통점에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지방까지 진출하는 경우도 많다. 지역 축제나 공연장에도 계약을 통해 영업조직을 운영할 정도로 매력적인 영업 소스인 것이다.


선배 지점장님의 고마운 배려에 고무된 나는 몇 명 되지 않던 영업사원 중에서 그나마 영업력이 있는 영업사원을 배치하였다. 며칠 만에 지점 실적이 올라가는 것을 실감하고 일거에 부진에서 탈피하는 꿈을 꾸며, 선배 지점장님에게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



#2




열흘쯤 지났던가? 다시금 지점장님이 전화를 해왔다.


반가움에 전화를 받았지만, 어쩐 일인지 화가 나신 목소리였다.


“야 부지점장! 너희 영업사원 어떻게 영업하는지 알아? (너)가 봤어?”


다소 격앙된 목소리에 나는 당황하며 쭈뼛쭈뼛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못 가봤습니다. 무슨 일...있었나요..?”


“뭐 무슨 일? P백화점 측에서 너희 때문에 우리 지점 인력까지 다 철수하라고 난리다. 내가 간신히 막았는데 너희 지점은 빼는 게 맞겠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평상시와 상반된 지점장님의 모습에 입이 얼어버렸다.


“영업하는 놈이 여자 친구를 옆에 끼고 영업하다 걸렸으니 자네라면 어찌하겠나?”


머리가 띵했다. 이것 때문이었다.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배려에 부응하지 못한 죄송스러움과 창피함, 영업사원에 대한 분노와 현장에 미처 가보지도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갔다.


“지점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바로 철수하겠습니다.”


하…. 며칠 좋았던 지점의 실적은 바로 수직하강했고, 실적보다 더 중요한 존경하는 선배와의 신뢰를 깨버린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더 커서 얼마 간 맥을 못 추었다.


이 사건은, 이후의 영업에 임하는 나의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는 큰 공부가 되었다. 영업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의 중요성과 공동 마케팅의 경우, 제휴처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영업의 기본자세를 다시금 체득할 수 있었다.


역시 “영업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현장을 발로 직접 뛰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각인된 그날의 기억이 이후의 영업현장에서 어떤 형태로든 긍정적으로 연결되었으리라 믿는다.



#3




훗날 지점장님과 함께 한 저녁자리에서 고마움에 나도 모르게 연신 술잔을 올렸던 기억이 선명하기만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존경하는 선배님의 자애로운 미소와 따뜻한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다음에 계속


※이미지 출처 : #1,2 픽사베이 #3 드라마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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