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소장의 활약
고향에서 지점장을 할 때의 일이다. 도청 소재지에 하나밖에 없는 지점으로 영업소도 여섯 개나 되고 신경 쓸 일이 많았지만, 초임 지점장으로서 아무래도 고향인 만큼 더 마음이 갔고 열심히 했던 나날이었다.
발령 첫날, 갑작스러운 부임으로 숙소를 구하지 못하고 시끄러운 도로변 모텔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제대로 잠을 못 이루었다. 실적도 중하위권으로 걱정이 많았지만, ‘고향에서 내가 실력을 보여주마’ 하고 이것저것 업무별로 각오를 다지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1 K영업소 실적이 눈에 띄었다
영업소에 들어서면 영업소장을 비롯한 지원인력의 표정, 영업소의 분위기를 보면 굳이 실적을 보지 않더라도 영업 상황이 짐작된다.
실적이 부진하거나 소장이 힘들어하는 곳은, 방문하는 지점장으로서도 마음이 무겁다. 반대로 실적이 개선되거나 열의가 있는 소장이 운영하는 사무실을 방문하면 아무래도 기분이 좋기 마련이다.
항상 영업 Staff에게, 단순히 영업소 실적 보다도 영업사원의 소득을 올리는 데 역점을 두라 하였고, 그 길이 길게 보면 빠르고 쉬운 길이라고 강조했다.
소득이 오르면 그만큼 활기찬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런 긍정적 분위기 속에서, 향상된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영업활동을 하게 되는 선순환이 구축되는 것이다.
연초부터 영업소장들과 힘을 모아 업무에 열정을 갖고 하나씩 차근차근 해 나가니, 여섯 곳의 영업소 중 한 곳인 K영업소의 실적이 비약적으로 신장되는 것이 눈에 띄었다.
#2 30통의 문자폭탄
K영업소는 전년도부터 이어진 영업부진으로 연초에 두 곳의 영업소가 한 곳으로 통합된 영업소였다. 평소 의욕적이고 실행력이 탁월한 L을 영업소장으로 임명했고, 그 덕분인지 실적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L소장이 운영하는 K영업소를 방문할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벼웠고 40-50분 운전해야 했지만,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 운전을 멈춘 적이 있었다.
10월의 어느 청명한 가을 오전, 1주일에 한 번 영업소를 들르던 나만의 원칙대로
K영업소로 중간쯤 가고 있었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운전 중이라 무시하고 달리는데, 전화가 온 건지 진동이 계속 울렸다.
'지점에 급한 일이 생겼나?' 하고
차를 한편에 대고 휴대폰을 보니 전화가 아닌 문자가 온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삼십여 통이 와 있었다. K영업소의 영업사원들이 보낸 것이었다.
‘지점장님 정성에 감사드려요, 저희들도 더 열심히 할게요.’
‘저희 K영업소에 항상 관심 주시고, 사기를 올려주셨어요. 덕분에 사무실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우리 영업소 일동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등 영업사원들의 문자 폭탄이었던 것이다.
보는 순간 미소가 입가에 번졌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아 나도 모르게 눈물로 바뀌었다. 고마움과 그동안의 노력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터져 나오는 뜨거운 눈물을 참아봤지만 소용없었다.
그 시간이 열 시경이었는데, 아침 조회 시간에 L영업소장이 영업소로 넘어오고 있는 지점장이 볼 수 있도록, '자 여러분 지금 오고 계신 지점장님에게 다들 문자 한 번 보내자' 고 한 것이었다.
#3 의미와 재미
영업소를 방문하니 환호성 일색이었다. 영업 소장이 말했다.
"지점장님! 오랜만에 즐거우셨죠?"
"나 참 이 친구 쓸데없이…" 했지만,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고생했던 일이 떠올라, 어깨를 툭 쳐주었다.
그날은 영업소를 방문한 나나, 영업사원들이나 서로 덕담과 응원으로 한껏 고조된 분위기에서, 서로를 격려한 훈훈한 시간이었다.
평소 재기 발랄한 영업소장으로, 주문한 내용에 대해 실행력이 좋았던 직원으로서, 역시 그 답게 재치 있는 이벤트를 한 것이다. 영업사원들에게는 아무래도 어려운, 지점장에게 문자를 발송하는 깜짝 이벤트를 함으로써, 아침 조회를 풍성하게 하고 두고두고 이야깃거리를 만든 만점짜리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조회 운영을 전달과 공유, 실적 독려와 같은 틀에 박힌 방식보다는 소소한 이벤트를 가미하여 의미와 재미를 같이 느낄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마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같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다 갖춘 영화처럼 말이다.
그런 식으로 조회를 운영하면 자연스레 참석률도 높아지고, 조회의 목적인 전달과 교육효과가 향상될 것이다. 사기도 올라가니 당연히 소득 또한 자연스레 향상된다. 영업 소장에 대한 신뢰감 또한 더욱 깊어지게 되는 선순환 구조로 연결되는 것이다.
#4 최고의 역작이 탄생하다!
L소장은 본질적 영업력 향상을 위해서도 역량을 발휘했다.
평상시 영업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영업력에 관심이 많던 나는, 특히 영업 화법(話法)과 영업 시점의 대화 Skill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영업사원의 소득을 단기간 내에 올리려면, 결국 영업 화법과 같은 영업스킬을 향상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영업하는지 우수사례를 발굴, 전파, 확산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L소장은 이런 나의 생각과 방향에 전적으로 동의해 주었다. 동료 영업 Staff과 힘을 합쳐, 이론은 물론 지점 우수 영업사원의 상황별&고객 유형별 영업 대화 Skill을 모으고 자료를 찾아 <거절 극복의 스토리>라는 '실전형 영업 화법(話法)' 책자를 만들어냈다.
시간과 비용의 한계로 완성도가 미흡한 부분도 있지만, 지점 차원에서 영업의 본질과 과정에 대해 고민한 역작이라 생각된다. 바쁜 업무 중에도 시간을 쪼개서 제작에 참여한 우리 Staff 모두를 헹가래 쳐주고 싶었다.
본사 유관부서 등과 영업담당 임원에게도 책자를 전달해 전사적으로 공유되도록 했지만 관심이 약해서인지 제대로 활용되지는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실적과 결과 중심의 평가 구조를 지양하고 신장률, 노력도 등을 보완하여 과정도 함께 평가하는 선진 평가 시스템이 영업 종사자들의 힘을 북돋는 일일 것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L소장의 열의와 뛰어난 실행력이 빛나던 순간들이 눈에 선하다. L소장의 감각적인 센스에 그날의 감동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능력을 인정받아 본사 주요 부서에서 팀장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가 앞으로도 멋있게 활약하기를 기대해 본다.
(다음에 계속)
이미지 출처 : 제목 미생 #1 #2 #3 #4 픽사 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