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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리인 Dec 28. 2021

눈물이 핑 돌았다

"과연 나도 그럴까?"


#1   문자가 왔다

 



 익숙한 이의 문자가 와서 보고 깜짝 놀랐다.

동종 업계 임원 하던 친구의,


“28년의 회사 생활을 마무리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짧은 문자였지만 아쉬움과 회한이 묻어났다.

 

 연말 인사철이었지만, 몇 년 전부터는 일부러 인사란에 시선을 두지 않았었다. 문자가 오기 전날 왠지, 찾아보고 싶어서 그 친구 회사 인사란을 봤다. 이름이 없길래 그냥 스테이인 줄 알았다. 참 묘한 일이었다.

  

 “네가 하고 실적도 좋아져서 올라갈 줄 알았는데 왜?

 

 서로 최대의 경쟁사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의의 경쟁을 하던 터였는데, 그가 임원이 된 후로는 먼발치서 선전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동문 모임에서도 옆 자리에 앉아 업계 발전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이곤 했는데…

 

 “주류가 아니잖아.”  


 “아 또 그게 그런가?”

 

 전략기획, 마케팅, 신용관리, 고객 분석 등 소위 노른자위 부서 경력으로 부사장까지는 갈 줄 알았는데….

 

 “임원 생활 6년?”


 “아니 7년, 다른 곳으로 가는데 맘은 편치 않아”


 “그래 그동안 고생했는데 좀 쉬어라.” 하고는 마무리했다.


 ‘역시 나이 앞에서는 장사가 없나 보다 싶었다’ 피라미드처럼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직장인의 숙명이리라. 결국 시간의 차이일 뿐, 누구나 옷을 벗게 되기 마련….


 자연스레 2년 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2   한강에서 사진을 찍다




 2년 전에 지점장으로 근무할 때다. 최고참 부장인 나는 '이곳이 마지막 부서장 근무이겠구나'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지점에서 가장 일찍 출근하던 나는 직원들 없을 때, 조금씩 짐을 실어냈다. 책 등, 짐이 많았던 나는 막상 인사 발표 후 짐 싸는 초라한 모습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최대한 단출하게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날 그날도 짐을 옮기고 있는데, 눈치 빠른 직원이 “아이고 지점장님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카트를 잡는다.


 “어 아냐, 내가 하는 게 편해, 자네 일 봐, 고마워.”


 연말 인사 발표날, 아무래도 분위기가 뒤숭숭하였고 외근이 많은 직원들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인사 발표 예정 시간이 되어 갔다. 나도 모르게 지점 인근의 한강으로 발길이 향했다. 2, 3분 거리의 지척에 있었지만, 봉사 활동할 때나 가던 곳이었는데…. 마음을 다잡고 싶었나 보다.


 제법 많은 이들이 여유를 즐기며 산책과 운동을 하거나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하늘과 한강을 바라보다가 조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도 모르게 않하던 일을 했다. 사진 찍는 것을 안 좋아하던 내가 한강을 배경으로 스스로 내 사진을 찍었던 것이다. 역시, 굳은 표정의 상념에 가득 찬 중년 아저씨가 있었다. 그날 이후로 그 사진을 찾아보지는 않았다. 그날을 떠올리기 싫어서일까?


 얼마 안 있어 지점으로 돌아왔다. 직원들은 안 보는 척하면서, 내 눈치를 살핀다.


 인사 발표에 내 이름은 없었다. 지점이 조용해졌다. 우리 지점에는 후배 신참 부장이 배치되었다. 그래도 잘 모르는 이 보다는 잘됐다 싶었다. '인수인계도 빨리 해주고 어서 떠나야지' 했다. 역시 미리 짐을 빼놓아서 그런지 단출했다.


 보통 인사 발표날은 타 부서로 이동하는 이도 있고 1년을 마무리한다는 의미에서 회식을 하곤 했다. 업무 마무리하고 서둘러 나가자 했다.



#3  회식 자리에서




 혼자 회식장소로 향했다. 5분 남짓 거리였는데 마지막이라는 생각이었는지 의외로 눈물이 핑 돌았다. 손수건으로 닦기 일보 직전이었다.


 자리를 돌며, 이런저런 덕담과 격려를 해주면서 분위기를 띄우려 했는데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평상시와는 다른 무거운 느낌이었다. 그런 상황을 예상하고 국산 와인 농가 지원 차원에서 본인 기호에 따라 와인을 미리 선택하게 했고, 한 사람씩 와인 선물을 나눠줄 때는 분위기가 살았지만 그때뿐이었다.

 

한 말씀해달라는 이야기에 평소 지론대로,


 “재미있게 일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역량을 키우길 바란다” 고 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랜 인연의, 나보다 나이 많은 직원이 따라주는 잔을 받고 고마움의 마음을 담아 나도 따라 주었다.


 평소 하던 대로 직원들끼리 편하게 하라고 1차만 하고, 직원들의 인사를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4   그동안 고생많았어




 2년 뒤인 지금, 친구에 이어 이제 나도 회사와 이별을 고할 때가 다가왔다.


 사무실을 뒤로 하고 건물을 돌 때 오열이 터졌다던 어느 선배의 말처럼 나도 그럴까?


 아마도 비슷할 것이다. 혼술 하면서 나의 젊음과 혼을 쏟아부었던 유일한 직장이었던 이곳의 생활을 되돌아보며 눈물이 핑돌까? 스스로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 그래도 멋있게 했다.’ 고 이야기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슬슬 <희망퇴직>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제는 2번째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의 앞으로의 이야기에 브런치가 큰 위안과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이제는 스스로 나 자신을 고용하고 나를 조금 더 들여다봐야겠다.


 허허... 별일 없겠지?



(다음에 계속)

이미지 출처 : 제목, #3 - tvN  미생 #1 #2  #4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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