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궁리인 Feb 27. 2022

초등학교는 나왔어?

"폐습"


 비용은 최소화하고, 매출은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의 생리다. 어느 해, 항상 그랬듯이 치열한 시장 점유율 싸움 중이었다. 영업 부서장들이 모인 주간 회의에서도 실적의 압박과 스트레스로 다들 힘들어했다.


 부서별로 업무 범위와 책임이 명확히 구분됐는데, 한창 업무 열의와 내공(?)이 쌓여 있던 나는 당시 고객 대상 서비스 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부서와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게 된다. 이를 통해 학창 시절에는 전혀 경험치 못한 적성을 깨닫거나 새로운 업무가 의외로 자신과 맞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의 경우 새로운 시장 개척과 관련한 업무가 맞았고, 너무 힘들기도 했지만 즐겁게 일했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신시장 업무에 관심이 갔고, 가능성 있는 시장에 항상 관심을 두었다. 당시 딱히 신시장 업무 전담 부서가 없기도 했다.



#1    新시장 선점 기대

 

 그중 하나가 바로 호텔 업종의 예식, 연회 등 행사 관련 시장이었다. 우리 부서 일은 아니지만 건당 수천만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으니 시장 점유율 때문에 고생하는 영업 라인에도 기여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바로 국내 대형 호텔 3군데와 약속을 잡았다.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서로의 니즈가 맞았던 것일까?


 “저희는 호텔 멤버십 회원을 더 확보하고 싶어요. 귀사 채널을 활용해서 늘릴 수 있다면, 회원에게 혜택을 추가로 더 제공할 수 있어요.”


라고 A호텔 담당 부장이 이야기했다.


 “예 잘됐네요. 우리 고객 데이터와 연회 이용 고객 성향을 연계해 마케팅을 하면 좋겠네요.”


하고 맞장구쳤다.



또 다른 호텔도,


 “이런 미팅은 처음인데 매출을 올릴 수 있다면, 음료와 부대시설 할인 등 오퍼도 줄 수 있어요.” 하고 시원하게 말했다.


발걸음 가볍게 사무실로 돌아왔다.


 호텔업이 멤버십 회원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알게 된 것도 수확이었다. 오랜만에 신시장 영업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후련한 마음으로 내용을 정리해 담당 총괄 임원의 보고 일정을 잡았다.



#2    울화가 치밀다


 미개척 시장을 선점하는 내용이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결재를 들어갔다.

대략적 개요, 호텔들의 반응, 연회/숙박 이용 고객 대상 혜택, 타사 미진입 시장, 비용 부담 없는 타깃 마케팅, 연간 예상 매출액 등에 대해 설명했다.


 그나마 남아 있던 미지의 시장이라 확신했던 나는 결재를 들어가면서도 결재 이후의 타깃 고객 설정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상태였다. 그런데 결재서류를 들여다보던 영업 총괄 L임원이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른다.


 “너, 정신이 있어 없어? 이게 네 일이야?”


......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잠시 멍했다.


 “예… 매출액도 크고 향후 성장성도 높아서, 신속히 선점해야 할 영역이라 접근했습니다.” 하니,


 “초등학교는 나온 거 맞아? 왜 네 일도 아닌데 나서? 네 일이나 잘해” 라며 맥락 없이 소리를 질렀다.




 내 입장에선 억울했다.


 '아니, 호텔 연회 이용고객에게 할인 주는 것도 우리 팀 일인데...'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러나 매사 자기주장이 강하고 부하직원 말은 안 듣기로 유명한 L이라 더 얘기할 힘도 없었다.


 치받아 올라오는 분노와 모멸감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니 네 일, 내 일이 중요한가? 회의 때는 일을 가리지 말라 해 놓고...’ 원래 막말하기로 유명한 이였지만, 내가 왜 이런 상황이 되어야 하지? 분을 삭이기 어려웠다. 내 일을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업종의 리스크가 있거나 비용이 많이 들거나 타 부서 일을 빼앗았으면 모를까. 신 시장 영업을 하는 부서도 없는 상황에서 이해가 안 되었다. 붉으락 푸르락 임원실을 나서는 나를 보고 선배 M 부장이 손짓한다.


 “왜? 잘 안된 거야?"


 “아니? 비용도 안 들고 고객에게 할인도 주고, 독점 서비스인데… 도대체 누구 일인지가 뭐가 중요해요? 시장 점유율 때문에 다들 고생하는데, 영업을 총괄한다는 사람이...”

씩씩대는 나를 M 부장은 연신 달랜다.


 “허허, 네 말이 다 맞지만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어쩌겠냐? 저 고집을 어떻게 꺾냐? 부서 간 업무 분장에 민감하더라고. 네가 참아.” 라며 나를 위로했다.


 현실이 답답하기만 했다.


 호텔 측에 검토 중이라고 양해를 구하고 좀 보류해야겠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씁쓸하기만 했다.   


 1개월 정도 지나서 슬쩍 M 부장에게 그 뒤, 호텔 업종 관련 진행된 거 있냐고 물어보니 전혀 없다 한다. 분노를 넘어 시장을 선점할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 허탈하기만 했다.

(다음 해, 궁금해서 호텔 측에 알아보니 타사와 공동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3    시스템 도입 플리즈

 


 영업을 하다 보면 의외로 밖에서 생각한 것보다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회사를 보게 된다. 보수적인 회사로 알려진 H사의 경우도 임원 승진 교육을 한 달 받는다고 듣고 크게 놀랐다. 그 기간만큼 교육의 양과 질이 확보될 것이다.


 당연히, 합리성과 중요 판단 항목 등 최적 의사결정 스킬 교육도 받을 것이다. 동일한 내용도 오전과 오후에 보고할 때 판단과 지시 내용이 달라진다는 실험 내용을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런 교육을 받으면 그런 오차가 줄지 않겠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번듯한 회사임에도 의외로 임원교육 시스템이 미비하다. 있어도 시장 트렌드 등 외부 강사 중심의 마인드 교육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임원은 그 회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진의 한 사람이다. 임원의 가장 중요 업무 중 하나인 의사결정도 학습과 훈련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업무 스킬이다. 혹여 미흡하다면 당장 보완할 일이다.  


 개인의 기분이나 감정으로 좌우되는 의사결정은 당장 버려야 할 폐습이다.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해야 할 일을 놓치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해서 심대한 피해를 끼치는 일이 많다. 언제까지 아랫사람 입에서 ‘먼 훗날 역사가 평가해 주겠지.’ 하는 소리가 나오게 할 것인가?      



(다음에 계속)

이미지 출처 : 제목, #1 - 픽사베이  #2 - SBS 스토브리그  #3 - 픽사베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