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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리인 Jul 11. 2022

좀 합리적이면 안되나?

간신히 참았다


 있는 여행이 되도록!


 마케팅 부서의 의뢰로, 회사의 제휴 업체 담당자들을  해외여행을 주관할 여행사를 선정하게 되었다.


 요즘에는 인센티브 성격의 여행 제공이 리베이트로 간주되어 불가하지만, 관행처럼 시행되던 때였다. 


 마케팅 활성화를 위해서도 참가자인 업체 담당들이 만족할 만한 여행이 필요했다.



#1  가벼운 마음으로


 처음 해보는 업무라 우선, 최근 몇 년간의 제휴 해외여행 프로그램을 살펴봤다. 여행의 대략적인 감이 잡혔다. 주어진 비용에서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거래 여행사들에 제안서를 제출해달라고 했다.


 인센티브 여행의 성격상 비용보다는 식사, 프로그램의 질과 동선의 효율성, 우수 가이드 지원  참가자에 대한 배려에 초점을 맞추도록 했다.


 몇 주 후 담당자가 8개 여행사의 제안서를 가져왔다. 네 군데의 여행사는 지역, 일정 등이 거의 비슷한 형식적인 내용이었다.


 여행 지역, 일정의 경쟁력, 가이드 등 여행자에 대한 지원, 비용 등의 순으로 점수화를 했다.


 



 직원들과 협의 끝에 대형 여행사 세 곳과 소형 A여행사 한 곳을 1차 선정했다.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콘텐츠와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 A여행사가 압도적인 우위였다.


 담당자도 "거기는 확실하지요. 선정되었을 때마다 참가자의 호평 일색이었습니다."

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체 사장과 처음 명함을 교환할 때, 참 인상적이었는데 바로 그곳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났다.


 항공권 티켓 형태의 명함이 참신하고 기발했다. 기억할 수밖에 없는 명함이어서 업체 사장한테 칭찬도 했었다.


 그런 마인드의 소유자답게 여행도 직접 인솔하는 등 사장의 열의와 아이디어로 인센티브 여행업에서 위치를 점하고 었고, 이번 여행사 선정에서도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던 것이다.


 담당 임원에 보고하니 "뭐 볼 것도 없네. 네. 작은 곳인데도 모든 면에서 뛰어나네." 한다.


 점수차가 확연한 여행업체 선정 안을 들고 최종 결재권자인 영업총괄 임원실의 문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두드렸다.



#2  굴복하고 말았다

 

 결재를 들어가는 팀장마다 깨지거나 장시간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걸로 유명한 고위 임원이었다.


 항상 스트레스를 주는 결재자였지만, 질적으로 A여행사가 뛰어나기에 비교적 무난한 결재라 생각했던 것이다.


 점수표와 업체별 여행 일정을 쭈욱 들여다보던 그가 뜻밖에도 소리를 높였다.




 "너 제대로 보긴 본거야?" 눈을 위로 치뜬다.


 느닷없는 반응이었지만 명확한 내용이라,


 "직원들과 꼼꼼히 봤습니다. 비용은 중간 수준이지만 여행 일정이나, 식사의 질, 지원 수준 등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습니다."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다. 순간 거슬렸는지 소리를 지른다.


 "그렇게 단순하게 볼 문제야? 이런 작은 업체를 선정해서야 되겠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업체인 C사를 선택해야지."


 '이게 무슨 소리지?' 순간 멍했지만 금세 이해가 되었다. 대형 여행사가 회사 매출에 도움이 되니 그쪽을 밀어 라는  이야기였다. 


 나름 일리는 있지만 여행 정도의 매출은 C사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실제로 C사의 제안서를 봐도 강점이 없었고 형식적으로 제출한 느낌을 받았는데, 무조건 큰 곳으로 하라는 그의 이야기에 울화가 치밀었다.


 직원들과 논의해 기안한 건 뭐고, 제안서를 낸 업체들은 뭔가?


 "맞는 말씀이지만 제휴업체 핵심 담당자를 위한 투어이니, 만족할 만한 프로그램과 수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싸한 분위기가 흘렀다. 평소 자신의 말에 다들 고분고분한데 신참 부장이 다른 이야기를 하니 갑자기 소리를 꽥 지른다.


 "네가 그렇게 잘 알아? 다시 결재 올려!"

 

 어이없는 상황에 순간 울컥했다. 나도 모르게 눈에 힘을 주고 짐짓 노려보았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외쳤다.


 "너 지금 나랑 해 보겠다는 거야?"   


 아마도 1초 남짓 찰나였지만 많은 생각이 스쳤다.


 "왜 매사를 자기 마음대로 하지? 끝장을 보고 사표를 던질까?"


 '그렇게 하면 어떤 상황이 될까?'


 아,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예... 겠습니다." 하고 물러났다. 더 상황을 지속하기가 뭐했는지 그만 나가 보라 했다.


 


 자리로 돌아와서 분노와 좌절, 자책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엄습했다.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소신 있게 결판을 내지 못한 스스로에 실망감이 컸다.

 

 결국 그 경쟁력 있는 A여행사는 선정되지 못했다. 업체에도 면목이 없었고 여행 참가자들에도 못할 짓을 했다는 마음뿐이었다.



 

 그 이후에는 왠지 그도 더 세게 몰아붙이지는 않는 거 같았다. 임원실에 들어가도 '피곤한 놈이 또 들어왔네' 하는 표정이었다.



 다음 해에 그 임원이 바뀌고 A여행사가 선정되었다. 여행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드높았고 선정되지 않은 대형 여행사와 회사의 관계도 예상대로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때로는 흔히 말하는, 전략적 의사결정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제휴 담당자를 위한 여행업체 선정 같은 경우는 만족할 수 있는 여행상품 사결정의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영향력과 책임이 커진다. 그만큼 사안과 내용에 따른 합리적 의사결정이 중요하다. 의사결정권자도 항상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시각과 열린 마음으로 사안을 보는 이 필요하지 않을까?


 권위의식으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의사결정이 미흡해 직원 등 관계자들을 힘들게 하고, 불필요한 낭비와 소진이 없도록 항상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



 이미지 출처 : 제목  #1 #2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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