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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리인 Feb 21. 2022

콩과 해바라기

"고민과 새로운 시도"

 

 지난주 동계 올림픽으로 스포츠 관련 글을 는데, 이번 주는 고향에 온 김에 세상살이와 관련한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종전에 올리던 '그렇게 매니저가 되었다'는 다음 주에 게재 예정입니다. 앞으로는 영업 이외에 마케팅, 회사, 일상의 이야기쓰겠습다.




 오래전부터 시골에 갈 때 끝없이 펼쳐진 논을 바라보다 보면, '왜 힘들게 벼농사를

짓지? 어르신들의 말씀대로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벼가 자란다는데... 고생에 비하면 이득이 적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한창 마케팅에 몰입하던 때 생산성 측면에서 주로 생각하곤 했다. 문득 시골집 밭에 심던 서리태 콩이 떠올랐다.


 ‘보다 콩 심는 게 낫지 않을까? 관리도 수월하고, 열 배는 고생을 덜할 것 같은데.’


 막상 콩과 쌀 가격을 확인해보고 가격차가 커서 놀랐다. 단순 Kg당 비교이기는 지만, 거의 8배 (현재는 4배 수준) 정도로 콩이 비쌌던 것이다.


 ‘그래 고생이 심한 쌀농사를 줄이고 콩을 심어야 해’ 하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1   논에 콩을 심었네


 어느 해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지역인 만큼 드넓게 논이 펼쳐져 있었다. 옆좌석에는 아버지가, 뒤에는 아이 둘이 타고 있었다. 음악 소리만 조용히 흘러나오고 한참 농로를 따라 달리던 노곤한 오후였다.


 문득 아버지가 뒷좌석을 돌아보았다. 아이들이 핸드폰을 보거나 졸고 있었다.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며 말씀하셨다.


“밖을 봐야지. 농작물도 보고 뭐가 있는지 관찰해야지."



 아이들은 무슨 소리인가? 하고 멍하니 듣고만 있다. 순간 멈칫했던 나는 슬며시 미소가 번져 나왔다. 내가 집에서는 물론 회사에서도 직원들에게 자주 쓰던 '관찰'이라는 단어가 아버지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래 할아버지 말씀이 맞아. 자주 오지도 않는데, 핸드폰만 보지 말고 풍경도 보고 해야지” 하고 맞장구를 쳤다. 아이들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 시대 한국의 일반적인 부자들처럼, 어렵기만 한 아버지가 더없이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많은 말은 나누지는 않지만 생각하는 바는 동일하구나 싶었다. 아무래도 '관찰'이라는 단어는 앞으로도 평생 나와 함께 할 것 같다.




 논길을 내달리다 갑자기 눈이 졌다. 몇 년 전,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바로 그 주변이었다. 다른 논과 달리 벼가 아닌 다른 것이 심어져 있었다.

 


 바로 콩이었다. 논 하나에 콩이 빽빽이 심어져 있고, 거의 추수할 무렵이 다가와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 생각이 맞았어.’ 몇 년 전의 벼농사 말고 콩을 심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막상 논에 실제로 콩이 심어져 있는 것을 보니 좀 묘하기도 했다.


 벼는 농민에게는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닌 삶을 지탱하는 뿌리일 텐데 실제 논에서 콩을 보다니...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겠는가? '잘 될 거야. 잘 돼야지' 하면서도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 해에는 주변의 다른 논들도 콩을 심을지 궁금했다.



#2  집 앞에 웬 사람들이


 재작년이던가, 시골집을 오십여 미터 앞두고 막 도착하려던 참이었다. 왕복 2차선 지방도 바로 앞에 웬 차들이 도로 한편에 세워져 있고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평상시 볼 수 없던 일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논에 상상할 수도 없는 해바라기 꽃이 흐드러지게 만발해 있었다. 소피아 로렌 주연의 ‘해바라기’라는 영화가 생각날 정도로 장관이었다.



 주춤하던 나도 무엇에 이끌린 것처럼 차에서 내렸다. 너나 할 것 없이 해바라기 꽃을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장비를 갖춘 프로 사진사로 보이는 이들도 촬영에 심취해 있었다.


 ‘아니 이 조용하기만 한 시골마을에 무슨 일이람’ 하면서도 나도 몇 장 찍었다. 아마도 국도변에 위치하다 보니 차를 돌려서 돌아왔거나, 입소문이 난 듯했다. 이 논 주인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참 대단하구나 싶었다. 해바라기씨도 채취하고, 기름도 짜려나? 궁금해졌다.


 시골집 주변의 풍경이지만 논에 콩이나 해바라기 같은 작물을 경작하는 새로운 시도는 30년 전의, 절반도 안 되는 인당 쌀 소비량의 감소 추세나 노동 생산성 측면에서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조상 대대로 일구어 온 논에 콩을 경작하고 밭둑에 심던 해바라기를 논에 심는 농민의 심정은 복잡 그 자체였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헤아려 본다.


 패러다임을 변화하여 관행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그분들의 힘든 결정과 노력이 가치를 발하기를 기대한다.



 (다음에 계속)

이미지 출처 : 제목  - 픽사베이  #1 - 국립 농업과학원, 픽사베이, 경남농업기술원  #2 - 위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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