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우공이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필 Zho YP Oct 20. 2022

기업가와 혁신의 슘페터 : 재평가

Mark W. Frank (조영필 역)

Mark W. Frank (1998), Schumpeter on Entrepreneurs and Innovation: A Reappraisal




I. 서론


지난 20년 동안, 기술과 혁신은 경제 성장과 경제 발전 문헌에서 공통된 주제가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강조는 내생적 성장 이론의 발전에 의해 강조되지만(Romer, 1986, 1990; Barro and Sala-I-Martin, 1995), 많은 사람들은 그것의 뿌리가 부분적으로 조지프 A 슘페터의 업적으로 추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Nelson and Winter, 1982; Blaug, 1986; Rostow, 1990; Cheng and Dinopoulos, 1992; Freeman 1994; Thanawala, 1994). 슘페터의 주요 기여는 기업가들의 창조적 대응과 기업가적 혁신이 경제 변화의 주요 결정 요소라는 그의 이론을 포함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업가들에 대한 그의 비전은 이분법적이어서 하나는 유럽 시대에 해당하고 다른 하나는 미국 시대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see, for example, Phillips, 1971; Klein, 1977; Nelson, 1977; Freeman, 1982, 1994; Swedberg, 1991; Scherer, 1992; Thanawala, 1994; Malerba and Orsenigo, 1995). 그의 작업의 초기 부분은 대기업과 시장 구조가 아니라 소기업과 개별 기업가에 초점을 맞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슘페터는 기업가를 사회 시스템에 도전하고 간접적으로 사회를 더 큰 경제적 정점으로 추동하는 고립되고 낭만적인 개인으로 제시한다. 이 기간은 그의 인생의 절반을 반영한다고 주장되고 있다. 슘페터의 미국 시기는 1927년 - 28년, 1930년의 대부분을 하버드에 머물면서 시작된다. 이 미국 시기에 슘페터는 경제 발전에 대한 그의 비전을 변경하여 독점적 경쟁의 이점을 강조하고 대규모 기성기업과 정부기관을 기업가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집단으로 포함시켰다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chumpeter의 사고를 좀 더 자세히 다시 생각해 보면 훨씬 더 광범위하고 복잡한 이론이 드러난다. 슘페터가 기업가와 기업가적 혁신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되거나 모순되는 이론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초기 슘페터와 후기 슘페터 사이의 잘 강조된 이분법은 방법론에 대한 슘페터의 도움이 되는 개념을 무시하고, 역사와 제도의 이론과의 광범위한 단절을 무시하기 때문에 실패한다.      

슘페터의 방법론에 대한 통찰은 1908년에 출판된 아직 영어로 번역되지 않은 그의 첫 번째 책인 이론적인 국민경제의 본질과 주요 내용(Das Wesen und der Hauptinhalt der The Theoricaltischen Nationalokonomie)과 1954년에 사후 출간된 <경제 분석의 역사>에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 슘페터의 방법론은 도구주의자(Shionoya, 1990, 1991) 또는 실용주의자(Jonson, 1994)로 일반적으로 해석된다.  주로 Das Wesen을 언급하면서, Yuichi Shionoya는 슘페터의 도구주의를 이론이 '유용한 결과를 도출하는 도구이며, 그것은 진실도 거짓도 아니다'라는 견해로 정의한다 (Shionoya, 1990, p, 187). 동일한 도구주의적 방법론이 경제 분석의 역사(History of Economic Analysis)에서도 볼 수 있다. 여기서 슘페터는 이론적 가설이 "분석가의 임의적 창조물, 흥미로운 결과를 설정하기 위한 단지 도구 또는 작업도구"일 뿐이라고 다시 주장한다. (Schumpeter, 1954 p). 그러므로, 슘페터에게 이론의 진실이나 거짓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가능한 간단하고 완전하게 결과를 얻는 능력이 이론의 목적이다.     


반면에, 사실은 이론과 독립적이고 역사적 (또는 설명적) 가설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물론 이들 역사적 가설은 이론을 파생한 이론적 가설과는 대조적이다. Yuichi Shionoya (1990) 는 Das Wesen에서 슘페터가 역사적 가설을 사실에 기반한 관찰가능한 현상을 기술하고 경험적 테스트에 의한 검증이 필요한 가설로 구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론적 가설은 현실주의가 중요하지 않은 인공적인 구성개념이자 방법론적 도구이다.     


결과적으로, 다음 절에서 볼 수 있듯이, 슘페터의 경제 변화 이론은 기업가의 창조적 대응이 순환 흐름을 방해하여 경제 성장을 창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이론적 가설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예: 19세기의 기업가들은 전형적으로 고립된 개인들이었고, 20세기 초의 기업가들은 기성 기업들과 정부 기관들을 포함했다는 것)은 이 이론과 직접적인 인식론적 연관성이 없다. 비록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확실히 그 자체로 경험적으로 시험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슘페터에게 이 이론은 기업가적 기능이 어떻게 제 때에 작동되는가에 관한 "사실"에 대해 필요한 근거가 없는 추상화이다. 이 이론은 엄밀히 말하면 모든 사실을 검증할 수 없고 비현실적으로 단순화한 것이다. 슘페터에게 기업가가 개인에 의해 설립된 새로운 기업, 대기업, 정부 기관 또는 다국적 기업에 구현되어 있는지 여부는 기업가의 창의적 대응이 경제성장을 결정짓는 일차적 요인이라는 그의 이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유럽에서 그의 초년과 미국에서 그의 만년 사이의 Schumpeter 이론의 구분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 다음 섹션은 유럽 시기 동안 슘페터의 기업가 및 기업가적 혁신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섹션 3은 슘페터의 미국 시기의 기업가 및 기업가적 혁신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섹션 4는 이 두 시기를 조화시키고 슘페터의 생각에서 이 명백한 이분법이 어떻게 그의 도구적 방법론과 역사와 이론에 대한 그의 폭넓은 견해에 의해 설명되는지를 나타낼 것이다.



Ⅱ. 유럽 시대     


경제 발전에 대한 슘페터의 비전은 경제와 정치 이론의 세계에서 완전히 독특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는 슘페터가 겨우 28세였던 1911년에 처음 등장한 경제개발이론에 이 비전을 처음 제시했다. 이 고전적 진술에서 슘페터는 경제 성장의 주요 결정요인으로 기업가들과 기업가적 혁신을 선언한다. 그가 순환 흐름 이론이라고 명명한 그의 시대의 주류 경제 이론에 불만을 품고, Schumpeter는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하는 기업가들에 의해 야기된 불연속적이고 자발적이며 역동적인 변화에 의한 발전을 구상한다. 새로운 생산 방법, 새로운 조직, 새로운 상품 도입, 새로운 시장 개방 및 새로운 재료 도입으로 기업가들은 경제의 정적인 (순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방해하여 경제성장을 초래한다.     


이 순환 흐름 이론은 슘페터 자신의 이론에 결정적인 토대가 된다. 주로 Léon Walras의 작품을 바탕으로, 슘페터는 그 순환 흐름을 모든 이윤이 0으로 감소하고, 경제는 폐쇄되며, 모든 것이 영구 균형 상태에 있는 정적 상태로 제시한다. 이 분석에서 가장 간과하고 있다고 슘페터가 본 것은 불연속적인 경제 변화이다. 이 "정적 분석은 전통적인 작업 방식에서 불연속적인 변화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생산 혁명의 발생이나 그에 수반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ibid, pp. 62-63). 어떤 의미에서, 슘페터는 허수아비를 개발하고 있다. 순환 흐름이 무엇인지 확인하자마자, 그는 왜 그것이 본질적으로 경제 변화를 이해하는 데 결함이 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기업가와 기업가적 혁신은 물론 이러한 정적 균형과 경제 변화의 원인이다. 그러나 기술혁신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기업가가 먼저 생산수단에 대한 지휘권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조합은 일반적으로 오래된 기업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옆에서 생산하기 시작하는 새로운 기업들에서 말하자면 구현되는 것이며... 일반적으로 철도를 건설하는 것은 역마차의 소유주가 아니다."(ibid., p. 66)라는 일반적인 예에 의해 더욱 복잡해진다. 그러므로 기업가는 일반적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하므로, 신용은 성공적인 기업가정신에 매우 중요하다. 신용은 사실상 구매력 창출에 불과하지만, 기업가에 의해 필요한 사용은 그것을 개발의 필수적인 요소로 만든다. 슘페터가 말했듯이, "그는 이전에 채무자가 됨으로써만 사업가가 될 수 있다." (ibid., p. 102).     


그러나 슘페터는 기업가들이 발명가, 자본가가 아니며, 사회계급을 닮거나 구성하는 어떤 것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강조한다. 발명가들은 단순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반면, 기업가들은 이러한 새로운 것의 구현에 특징적으로 관심을 가진다. 대조적으로 자본가들은 단순히 기업가에게 필요한 신용을 제공하는 개인들의 계급이다. 자본에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자본가이지 기업가가 아니다. 혁신이 성공적이면 기업가는 그 대가로 자본제공자에게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기업가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조합을 수행하는 개인일 뿐이며, 그들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만 기업가로 남는다. “모든 사람은 실제로 새로운 조합을 수행할 때만 기업가이며,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사업을 운영하는 것처럼 사업을 운영하는 것에 안착할 때 그의 사업은 설립되자마자 그 성격을 잃는다” (ibid, p. 78).      


그러나, 이러한 성공은 또한 이러한 새로운 혁신에 적응하지 못하는 오래된 기업에 의존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쇠퇴를 의미한다. 그 결과의 함의는 "최상층은 실제로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들이 영원히 바뀌는 호텔과 같다" (ibid., p. 156)는 것이다.     


그러나 슘페터는 기업가들이 이 계급의 이득이나 이윤 창출을 위한 사리사욕적인 추구에 의해 동기 부여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슘페터는 그들이 "정복하려는 의지", "사적인 왕국을 건설하려는 꿈과 의지", 그리고 "일을 창조하고 완성하는 기쁨"에 의해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ibid., p. 93). 그러나 이러한 거의 낭만적인 동기는 기업가들이 어떤 의미에서 대중으로부터 인정받거나 존경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신, 기업가들은 그들의 새로운 방식과 혁신에 대한 만연한 사회적 저항에 끊임없이 직면한다. 이러한 저항은 새로운 혁신에 의해 위협받는 집단들뿐만 아니라 아무리 작더라도 사회적 관습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 모든 집단들로부터도 비롯된다. 그러므로 슘페터에게 기업가들은 매우 동기부여가 되고 추진력이 강한 사람들로, 본질적으로 거의 낭만적이며, 압도적인 사회적 저항과 반대를 견뎌야 하지만, 성공한다면, 더 큰 경제성장으로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된다. 그러나 슘페터는 필요성과 이윤이 혁신의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슘페터에 따르면, 혁신은 정복하고 창조하려는 개인의 환상적인 욕망으로부터 유도된다.     


그러므로 슘페터의 기업가적 혁신 분석은 미시적 행동 접근법이며, 기업가적 혁신의 거시적 행동 결과는 경기순환이다 (see Santarelli[ and Pesciarelli, 1990). Schumpeter는 기업가적 혁신은 본래적으로 군집 내에서 발생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 군집화는 번영과 침체의 변화하는 시기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혁신이 크거나 극적일 필요는 없지만, 이 혁신 군집화의 주요 효과는 "1차 파동"이다. 이러한 1차 파동의 여파로 새로운 기업의 구매력의 초기 증가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어 전반적인 번영을 가져오는 "2차 파동"이 더 많이 일어나고 있다. 슘페터는 이러한 군집화가 "한 명 또는 소수의 기업가의 출현은 다른 기업가들의 출현을 촉진하고 이러한 출현은 계속 증가하는 숫자의 더 많은 출현을 촉진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주장한다(Schumpeter, 1934, p. 228).           



Ⅲ. 미국 시기     


슘페터의 미국 시기는 그가 미국으로 영구 이주한 1932년에 시작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생각된다(see for example, Swedberg, 1991). 그러나 슘페터는 대학년도 1927-28년과 1930년의 대부분을 하버드에서 보냈다. 따라서 1928년 그의 글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이 일반적으로 그의 유럽 시대에 놓여 있지만, 대신에 그것을 그의 미국 시대에 배치하는 것은 그럴 듯하며, 여기서는 선의로 해석하여 그렇게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이 논문은 슘페터의 놀라운 결론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의 전환 과정에 있으며, 주로 혁신 과정의 평활화와 자동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논문은 현저히 대공황 이전인 1928년에만 쓰여졌기 때문에 이 통찰력은 정말로 예외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상, 이 논문은 "경쟁적인" 자본주의와 "트러스트화된" 자본주의의 구별 때문에 가장 주목할 만하다. 슘페터에 따르면, 경쟁자본주의의 혁신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기업의 설립으로 구현"되지만, 트러스트화된 자본주의에서 혁신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기업과  "개별 개인으로부터 크게 독립적인" 기존 기업 모두에서 구현된다 (Schumpeter, 1928, p. 70). 그러므로 경쟁자본주의의 혁신은 본질적으로 대부분 개인주의적인 반면, 트러스트화된 자본주의는 비록 어떤 경우에는 여전히 개인주의적이지만 다른 경우에는 점점 관료적이다. 기성 기업들이 기업가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이 관찰은 <경제발전이론>에서는 중요한 일탈이지만, 불행하게도 1940년대까지는 제거되지 않을 일탈이다.  

    


1930년대의 슘페터


<경제발전의 이론> 출판된 이후 시기로부터 그의 다음 주저인 <경기순환: 자본주의 과정의 이론적, 역사적, 통계적 분석> 1939년에 출판될 때까지 슘페터의 관심의 상당 부분을 사로잡은 것은 경기 순환의 주제이다.  기념비적인,  권의 책은  페이지에 걸쳐 있고, 비록 J. M. Keynes <일반이론> 지지하는 대중들에 의해 대부분 무시되지만, 경제의 순환적 성격뿐만 아니라 기업가적 혁신의 역할에 대한 많은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사실, 1권의 대부분은 대체로 <경제발전의 이론> 재기술이다. 반면, <경기 순환론> 나머지 부분은 혁신에 대한 역사적 가설과 그들의 군집화  주기 유발 경향을 탐구하는 데에만 오로지 전념한다.


<경기순환> 주요 추가 사항은 슘페터의 파동 사용과 관련이 있다. 이전에 슘페터는 1  2 파동만 논의했지만, <경기순환>에서 슘페터는 Kondratieff, Juglar  Kitchen 파동에 찬성하여   파동을 삭제한다. 혁신은  파동의 "공통 원인"으로 남아있지만, 슘페터는  파동의 시간 길이에 관한 새로운 세부 사항을 제공한다(Schumpeter, 1939, p. 122). 슘페터에 따르면,  파동  가장  파동은 Kondratieff  55, Juglar  9년에서 10, ,  6 Juglar 1 Kondratieff 되고, Kitchen  40개월 지속되어,  3 Kitchen 되면 1 Juglar 된다.  3-순환 체계를 정당화하면서, 슘페터는 기술할  그의 도구주의 방법론을 다시 전시한다. "단지 3 파동으로 만든 선택에 특별한 장점은 없다. 아마 5개가  나을지도 모른다. 비록 일부 실험 후에 필자는 그림의 개선이 성가심의 증가를 보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지만"(ibid., p. 169).


슘페터는 1787년부터 1842년까지 최초의 Kondratieff를 배치했다. 이 첫 번째 Kondratieff의 밑바탕에는 산업혁명과 관련된 혁신이 있는데, 슘페터는 1842년부터 1897년까지의 두 번째 Kondratieff를 두었는데, 그 근본적인 원인은 철도, 강철 및 증기의 혁신이다. 제3차 Kondratieff의 시작은 1898년으로, 그 밑바탕에는 전기와 자동차 산업과 관련된 혁신이 있다.


흥미롭게도, 슘페터는 다시 경쟁 자본주의와 트러스트화된 자본주의의 차이를 보여주지만, 그는 심지어 트러스트화된 자본주의에서도, 대부분의 혁신은 새로운 회사를 통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혁신들은 여전히 주로 '어린' 기업들과 함께 나타나고, '늙은' 기업들은 완곡하게 보수주의라고 불리는 것의 규칙적인 증상으로 나타난다 (ibid., p. 97). 그러므로, 대부분의 경우에, 기업들은 수명주기를 경험한다. 성공적인 신규 기업들은 전형적으로 새로운 혁신을 구현하기 때문에 상승하지만, 결국 이러한 혁신들은 다른 기업들에 의해 모방되므로, 혁신 기업의 목적은  소멸되고 결국 다른 새로운 기업들은 현재의 늙은 기업들을 대체한다. 그들의 죽음의 원인은 "정확히 그들이 활력이 넘치는 시기에 설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혁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그들의 무능력이다.“(Schumpeter 1939, p. 95)   

     


1940년대 슘페터  


경기 순환의 역사적 토대 속으로 거시적인 여행을 마친 , 1940년대에 쓰여진 Schumpeter 논문과 강연은 경제 역사를 관통하는 기업가 연구에 대한 그의 열정을 주로 반영한다. 특히, Schumpeter 20세기를 거대 기성기업, 심지어 정부 기관들도 기업가적 기능을 수행할  있는 시대로 본다.


19세기의 전형적인 산업 기업가는 아마도 새로운 생산 방식을 새로운 기업에서 구현함으로써 새로운 생산 방법을 실천한 사람이었을 것이며, 성공의 경우에는 한 계속 기업의 소유주-관리자의 위치 또는 회사의 주주 대표의 위치에 정착하여 그 과정에서 늙고 보수적으로 변해갈 것이다. 오늘날의 대규모 기업에서는 결코 빠지지 않는 문제가 한 복수(vengeance), 즉 누가 기업가로서 고려되어야 하는가와 함께 발생한다 (Schumpeter, 1991, pp. 414—15).


 새로운 역사적 초점의 초기 핵은 슘페터의 가장 유명한 출판물인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1950, 6, 7, 8) 제시되어 있다.  분석은 1947 논문 "경제사에서의 창조적 대응" (Schumpeter, 1947a), 1947 논문 "경제 성장의 이론적 문제" (Schumpeter, 1947b), 그리고 1949 논문 "경제 이론과 기업가적 역사" (Schumpeter, 1949a)에도 나타난다.     

이러한 저작에서 슘페터는 기업가를 새로운 일을 하거나 이미 새로운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는 일을 하는 혁신가(발명가나 관리자가 아닌) 계속 정의한다. 따라서 "경제, 산업 또는 업계의 일부 기업이 기존 관행에서 벗어난 다른 작업을  때마다 우리는 창의적 대응에 대해 말할  있다"(ibid., p. 222). 적응적 대응은 사전과 사후 모두 이해할  있지만, 창의적 대응은 예측할  없으므로 사후만 이해할  있다고 슘페터는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비즈니스에서 창조적 대응에 대한 연구는 기업가정신 연구와 같은 맥락이 되기" 때문에, 기업가정신은 사전에 이해  없다 (Schumpeter, 1947a, p. 222).      


그러나 모범적인 기업가는 이제 훨씬 덜 개인주의적이다. 슘페터의 다음 설명처럼:     


기업가적 기능은 육체적 사람, 특히 단일 육체적 사람에게 구체화될 필요가 없다. 모든 사회 환경에는 기업가적 기능을 채울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농무부가 고안한 방법들의 도입과 농무부가 이러한 방법들을 성공적으로 가르침으로써 이 나라의 농부들의 관습은 계속해서 혁명적으로 바뀌어 왔다. 이 경우 기업가로서 활동한 것은 농무부였다(Schumpeter, 1949a, p. 260).      


현대 기업에서, 기업가적 이득이 기업가로부터 분리된다고 슘페터는 주장한다 (예: Schumpeter, 1991, 10장 참조), 기업가적 이득이 기업가에게 도달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혁신하는 기업가적 실체들이 반드시 더 높은 사회적 계급으로 상승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기업가들이 이윤이나 사리사욕이 아닌 정복하고 창조하려는 욕구에 의해 동기부여를 받는다면, 이러한 계급 이동의 부재는 혁신의 발생에 어떤 결과적 영향도 주지 않을 것이다.


또한, 기업가정신은 필수적으로 리더십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적 저항의 존재를 나타낸다고 슘페터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저항은 그 자체로 기업가의 리더십과는 무관하게 쇠퇴의 과정에 있다. 슘페터에 따르면, 사회 내에서 혁신과 경제 진보의 불연속성에 익숙해짐에 따라, 이러한 사회적 저항은 감소한다. 따라서, 개선이 기대되며, "기업가의 개별 리더십은 중요성을 상실하는 경향이 있고 대기업 내 전문 종업원의 기계화된 팀워크로 점점 대체될 정도로"(Schumpeter, 1946, p. 208) 진보 자체가 자동화되고 관료화된다.     


이러한 친숙함과 감소된 사회적 저항의 필수적 결과는 자본주의의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다. 이러한 변혁으로의 해결책은 산업 전반에 걸쳐 노동자들과 소유주들이 평화롭게 협력하는 "결사의 협동조합"이라는 용어이다 (Schumpeter, 1991, chapter 9). 이러한 기업 전문직 협회의 조치는 기업이 "생산량에 대한 수요"(ibid, p. 405)를 항상 찾을 것임을 모든 기업에 보장한다. 따라서, 한 기업의 실패가 그 실패한 기업에 의존하는 다른 기업들의 파문으로 번지는 하락을 야기할 필요는 없다. 대조적으로 슘페터에게 있어 악몽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과도기 상태이다. 사회주의 또는 결사의 협동조합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대신에, 사회는 사업의 갈등과 조직화된 노동자 사이에서 정체상태가 된다. 이러한 중간 상태에서 공공 정책은 높은 임금, 높은 세금, 적자 자금 조달 및 부의 재분배 정책을 촉진한다(ibid. 11장 참조).



IV. 화해     


평생에 걸쳐, 조지프 슘페터는 기업가들의 창조적 대응과 기업가적 혁신이 경제 변화의 주요 결정 요소라는 독특한 주장을 했다. 슘페터에게 이것은 자본주의의 성공이 끊임없는 경제적 진화와 변동의 과정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기업가적 혁신이 없다면, 경제적 변화는 없을 것이고, 자본주의는 침체될 것이다.


슘페터는 그의 초기 저술(유럽 시기)에서 전형적인 기업가를 새로운 기업을 통해 자신의 혁신을 구현하는 고립된 개인으로 본다. 물론 이 초기 시기에 슘페터는 당시 19세기 유럽 자본주의의 최근 역사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시기 동안 슘페터는 20세기 초 자본주의를 끌어와서, 대규모 기성기업과 심지어 정부 기관까지도 기업가적인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이 후기 시기에서조차, 슘페터는 새로운 기업을 통해 그의 기술혁신을 구현하는 고립된 개인으로서 19세기의 전형적인 기업가를 식별하는 데 일관성이 있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슘페터의 기업가 이론이 그의 유럽 시기와 일치하고, 다른 부분은 그의 미국 시기와 일치한다고 하면서, 슘페터의 이론은 이분법적이라고 주장한다 (e.g., Phillips, 1971; Klein, 1977; Nelson, 1977; Freeman, 1982, 1994; Swedberg, 1991; Scherer, 1992; Thanawala, 1994; Malerba and Orsenigo, 1995). 예를 들어, Swedberg는 "마지막 몇 년 동안 슘페터는 그의 저작에서 기업가정신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이론은 아니더라도, 새로운 버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방식으로 그의 기업가 이론을 재구성했다."고 주장한다 (Swedberg, 1991, p. 171).     


그러나 누가 기업가적 기능을 구현하느냐에 대한 이러한 일시적 변화가 슘페터의 경제 발전과 기업가의 이론에서 변화나 모순을 나타내지는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 관측된 상황의 사실만이 바뀌었고, 이러한 변환은 확실히 사전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것이지만, 슘페터 모델 내에서는 그것의 예측 불가능성이 충분히 예상되고 있다. 그의 1947 논문 "경제 성장의 이론적 문제들"  문제를 조명한다: "나는 우리가 (창조적 대응의) 사실 이전에 관찰된 상황에서 우리의 정보로부터, 우리는 그것을 예측할  없고, 따라서 창의적 반응이 있을 때마다 불확정의 요소가 불가피하게 경제 성장의 분석에 들어간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제안한다." (Schumpeter, 1947b, p. 239)        

이 불확정의 요소는 매우 중요하다. 슘페터에 따르면, 누가 기업가적인 역할을 맡을 것이며, 기업가의 창조적인 반응이 무엇이 될지는 그 사실 이전에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초기" 슘페터가 정부 기관과 대기업에 의해 구현되는 기업가적 기능을 예측하지 못한 묵시적 실패는 그의 이론에서 실패를 구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가 기업가적 기능을 수행할 것인가는 역사적 가설이며, 이 점에서 경험적 검증의 대상이 되지만 이론적 가설의 주요 관심사는 아니다. 슘페터에 따르면, 그의 경제 발전 이론과 같은 이론적 가설은 경험적 검증의 대상이 아닌 비현실적인 단순화이다 (Shionoya, 1990). 게다가, 그것들의 유용성은 오로지 그것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결과에만 근거한다.


그러므로 Schumpeterian 모델 내에서 미래 경제 발전을 정확하게 예견하거나 예측하는 것은 기업가적 기능의 미래 구현에 대한 선행의 지식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분석은 엄밀히 기업가의 창조적 반응이 이론적 모델에 불확정성의 요소를 가져오기 때문에 슘페터의 동적 경제 발전 이론 내에서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슘페터의 저작에 대한 새로운 그림이 떠오른다. 그의 기업가적 혁신과 경제 발전에 대한 이론은 기업가의 창조적 대응이 경제 변화의 핵심 결정요인이며,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이론은 유용한 도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론의 의도는 누가 기업가적 기능의 수행자였거나 누가  것인지를 사실적으로 식별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의 기업가는 사전적으로  수는 없는 한편, 과거에 누가 기업가적 기능을 구현했는가는 역사적인 질문이며, 따라서, 경제사가를 위한 것이지, 경제이론가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나다. 결과적으로 만약 기업가적 기능의 구현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뀐다면, 이것은 슘페터의 경제발전의 이론을 변경시키거나 이를 다소 유용하게 또는 유용하지 않게 하지는 많는다. 슘페터는 확실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업가적 기능이 어떻게 구현되는가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따라 역사적 가설을 수정하지만, 그의 경제 발전과 기업가 이론은 변하지 않으며, 확실히 이분법적이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슘페터와 기업가의 진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