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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Oct 19. 2022

슘페터와 기업가의 진부화

Richard N. Langlois (조영필 역)

Richard N. Langlois (2002), Schumpeter and the Obsolescence of the Entrepreneur.



               

요약

기술 변화에 대한  문헌은 경제 저술에서 조지프 슘페터가 추종자를 유지하고 그에 대한 관심을 어느 정도 받은   되는 분야  하나이다. 진보가 결국 '기계화' 것이라는 슘페터의 유명한 주장에 대한 표준적인 해석이  문헌 안에서 자라났다. 통념은 이와 같다. 작가들이 <경제발전이론> 1934  번역을 변함없이 의미하는 슘페터의 초기 글의 주장은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사실상  명의 슘페터, '초기' 슘페터와 '후기' 슘페터가 있다. 과감한 기업가의 중요성을 믿었던 것은 전자였고, 반면 후자는 관료화된 경제조직 방식에 의한 기업가의 죽음과 교체를 예견했다. 게다가, 슘페터가 그의 견해를 바꾼 이유는 그가 그의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던 것을 보았을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에 반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20세기  유럽의 오너 경영 기업 세계에서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미국 대기업 세계로 옮겨가면서 그의 의견은 적절하게 바뀌었다.  논문은  가지 논점을 제시하려고 한다.  번째는 교리적인 문제로서 기술 변화에 관한 영미 문헌에서 이해되고 있는 ' 명의 슘페터' 명제는 명백히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은 기업가정신에 대한 슘페터의 사고의 기초가 1931 이후 미국의 어떤 대기업의 관찰에 의해 중요하게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다. 슘페터의 생각은 적어도 1926(그가 미국으로 오기 5 )부터 사망할 때까지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이 있었다.  진부화 명제는 초기 자본주의와 후기 자본주의의 차이를 말해 주지만, 아마도 초기와 후기의 슘페터의 차이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번째, 그리고  중요한 점은 진부화 명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경제 지식 사이의 혼란에 (또는 아마도 유인상술) 근거한다.    



           

I.     

조지프 슘페터의 이름은 상대적인 무명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부분적으로, 이는 별개의 연구 분야로서 기업가적 연구의 만개를 반영한다 (Shane and Venkataraman 2000). 새로운 조합을 만들고 생산 수단을 새로운 채널로 전환하는 데 있어 과감한 기업가의 역할에 대한 슘페터의 유명한 논의는 기업가정신 연구에 중요한 초석이다. 그러나 1950년 슘페터 사후 약 30년 동안, 상당히 다른 일련의 슘페터주의 사상이 대중의 의식에 들어갔는데, 주로 John Kenneth Galbraith (1967)의 대중적인 글을 통해서였다. 경제 변화에서 개인의 주도권의 역할을 높이기는커녕, 이 문헌은 기업가의 종말을 예언하거나 심지어 만성화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혁신은 대기업의 일상적인 문제가 되거나 심지어 이미 되어왔었다. 아마도 놀랍게도,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 아이디어 집합은 둘 다 슘페터로부터 나온 것이다.      

기술 변화에 대한 영미 문헌은 슘페터가 추종자를 유지하고 그가 받을 만한 약간의 관심을 오랫동안 받아온 몇 안되는 경제저술분야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문헌은 상당히 자연스럽게 진부화 명제의 문제와 그것의 (개별individual) 기업가정신 이론과의 관계를 다루도록 강요되었다. 그 결과는 검증되지 않은 전통적 지혜가 된 기계화의 진전 명제에 대한 표준적인 해석이었다. 이런 식이다. 슘페터의 초기 글의 주장은 그의 후기 저작에서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사실상 두 명의 슘페터, "초기" 슘페터와 "후기" 슘페터가 있다. 과감한 기업가의 중요성을 믿은 사람은 전자였고, 후자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조직에 의한 기업가의 죽음과 교체를 예견했다. 게다가, 슘페터가 그의 견해를 바꾼 이유는 그가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그가 보았을 때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에 반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금세기 초 비엔나의 오너 경영 기업 세계에서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미국의 대기업 세계로 옮겨가면서 그의 의견은 적절하게 바뀌었다.     

본 논문은 두 가지 논점을 제시하려고 한다. 첫 번째는 교리적인 문제로서 기술적 변화에 관해 영미 문헌에서 이해되고 있는 "두 명의 슘페터" 명제는 명백히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은 기업가정신에 대한 슘페터의 사고의 기초가 1931년 이후 미국 대기업의 관찰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다. 슘페터의 아이디어는 적어도 1928년(그가 미국으로 오기 3년 전)부터 사망 시까지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이 있었다. 그 진부화의 명제는 아마도 초기 자본주의와 후기 자본주의의 차이를 말해 주지만, 아마도 초기와 후기의 슘페터의 차이를 말해 주지는 않는다. 두 번째,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진부화 명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혀 다른 두 종류의 경제 지식 사이의 혼란(또는 아마도 유인상술)에 근거한다.    


      

II.      

슘페터의 진부화 명제에 대한 전통-지혜 분석은 부분적으로 슘페터에 대한 관심이 혁신과 기술적 변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대부분) 영어권 작가들 사이의 구전 전통의 문제이다. 그러나 인쇄된 문서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사실, 이 전통적인 분석에는 몇 가지 관련 버전이 있다. 그 가장 명확하고 잘 알려진 흔적 중 하나는 Almarin Phillips(1971)에게 이어지는데, 그는 슘페터의 기술 혁신에 대한 견해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Phillips에게, 슘페터의 초기 글들(Phillips에게는 1934년 <경제발전이론>의 영어 번역판을 의미)은 그의 후기 글들(Phillips에게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의미)에서 한 것과는 달리 산업 내 기술 변화의 논리를 매우 다른 그림으로 제시한다.      

"초기" 슘페터(Schumpeter I)에서는 혁신 과정이 선형으로 가장 잘 특징지어질 수 있다. Christopher Freeman (1982)은 이것을 이렇게 묘사한다. 기본적인 발명품들은 경제 시스템에 다소 외생적이다; 그들의 공급은 아마도 어떤 면에서는 시장 수요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그들의 발생은 기존의 시장 구조 밖에 있다. 기업가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발명품들을 포착하여 경제적 혁신으로 변화시킨다. 성공적인 혁신자들은 단기 이익을 많이 얻는데, 이것은 모방자들에 의해 곧 사라진다. 혁신의 효과는 불균형을 초래하고 기존의 시장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은 결국 다음 혁신의 물결을 기다리며 안정될 때까지이다. 그 결과 일련의 경기 순환으로 인식되는 경제 발전의 중단 패턴이 나타난다. Freeman은 말한다. "슘페터 II와 슘페터 I의 주된 차이점은 대기업이 수행하는 내생적인 과학 및 기술 활동의 통합에 있다…슘페터는 이제 발명적 활동이 점점 더 대기업의 통제 하에 들어가고 그들의 경쟁지위를 강화시키는 것을 본다. 한때 느슨하고 오랜 시간 지연에 시달리던 과학, 기술, 혁신 투자와 시장 사이의 '커플링'이 이제는 훨씬 더 친밀하고 지속적이다." (Freeman 1982, p. 214, emphasis original.)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이론>보다 대기업에 훨씬 더 관심이 있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전자는 후자보다 산업에서의 기술적 변화 과정에 대해 더 발전된 "모델"을 포함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말하는 것은 우리에게 적어도 초기/후기 명제에 대한 두 가지 구별되는 해석을 남겨두고 있다.  더 약한 해석은, 비록 슘페터의 혁신과 발전 이론이 그의 후기에서 초기 저작과 본질적으로 같았지만, "후기" 슘페터는 단지 여러 가지 이유로, 대기업의 본질과 그의 이론에서의 그것의 역할에 대해 더 완전하게 설명하기 위해 선택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약한 형태는 몇몇 작가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다른 작가들이 초기/후기 명제 중 훨씬 더 강력한 버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도 꽤 분명해 보인다. "초기"에서 "후기" 슘페터로의 변화는 그의 강조의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그의 기초적 경제 비전의 근본적인 변경을 반영한다.        

이러한 변화의 주요 징후는 혁신 과정에서 시장 경쟁의 역할과 필요성에 대한 Schumpeter의 수정된 평가로 간주된다. Richard Nelson의 토론이 대표적이다.


초기 슘페터는 확실히 경제적인 문제를 점원clerks의 통제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그의 믿음은 선호와 자원뿐만 아니라 기술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었다. 슘페터, 그리고 그 앞의 마르크스는 혁신에 박차를 가하는 그 시스템의 능력에 있어서 자본주의 시장체제의 진정한 힘을 보았다. 그는 또한 경쟁 시장이 기술 변화의 과정을 통제하고 이익을 널리 확산시키는 환경(최종 소비자가 감시하고 경쟁에 의해 구동되는)을 제공한다고 믿었다. 그의 후기 글에서, 그는 시장 경쟁이 혁신의 세대를 위해 필요하다는 제안을 철회하고, 대기업에서 혁신 그 자체가 크게 일상화되었다고 가정했다. 그러므로, 그는 혁신 과정의 사회화와 경제의 더 일상적인 활동으로부터 특별한 불이익을 예견하지 않았다 (Nelson 1977, pp. 134-135.).

게다가, 슘페터의 초기 입장에 대한 "철회(recantation)"는 때때로 철학적 지향의 근본적인 변화로 추적되거나 연관된다. Burton Klein은 쓴다. "실제로, 슘페터는 그의 초기 작품들과 매우 다른 견해를 그의 후기 작품들에서 표현했다. 그래서 한 사람은 결정론에 반대하는 반항자 슘페터와 결정론자 슘페터라는 두 명의 슘페터가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Klein 1977, p. 133.)     

이러한 전통-지혜 해석에 대한 결론은 슘페터가 당대 경제에서 발전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는 개념이다. Freeman의 말처럼, "초기 슘페터에서 후기 슘페터로의 강조의 이동은 두 번의 세계 대전과 그 기간 동안 대기업의 산업 연구개발의 급속한 성장 사이에 미국 경제에 일어났던 진정한 변화를 반영했다." (Freeman 1982, p. 8). 이것은 확실히 신빙성이 없는 해석은 아니다. 슘페터는 경제 역사가 경제 이론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 역사실증주의자 의미에서가 아니라, 어떤 본질적인 이론적인 특징들이 다른 시기보다 어떤 시기에는 항상 더 뚜렷하게 윤곽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는 썼다. "개인적으로 나는 역사적 분석과 이론적 분석 사이에 끊임없는 주고받기가 존재하며, 비록 개별 질문에 대한 조사를 위해서는 한 동안은 한 방향으로만 항해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두 방향은 결코 서로를 시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한다."(Schumpeter 1951, p. 259.)      

하지만 궁극적으로, 슘페터가 혁신의 본질에 대한 그의 근본적인 입장을 바꾸었고, 그가 20세기 미국 자본주의에서 발전하고 있는 경향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이러한 전통적 해석은, 유감스럽게도, 분명히 틀렸다.       

우선, 1942년 이후에 쓰여진 슘페터의 저작에서 <경제발전이론>과 거의 동일한 기업가정신 이론을 제시하는 예를 찾을 수 있다 (Schumpeter 1947, 1951).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가가 결국 "덜 중요"하거나 "구식"이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는 이미 1934년 <경제발전이론>의 번역본에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의 주제인 대기업을 선호하는 역사적 경향도 앞선 책에 나타나 있다.      

그리고 오늘날 모든 나라에서 점점 더 그러하듯이 경쟁적인 경제가 거대한 결합의 성장에 의해 무너진다면, 이것은 점점 더 현실화되어야 하며, 새로운 결합의 수행은 이제껏 나타나지 않았던 거대한 규모로 하나의 그리고 동일한 경제적 실체의 내부적인 관심사가 되어져야 한다. 그 차이는 자본주의의 사회적 역사에서 두 시대 사이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Schumpeter 1934, p. 67.)      

<경제발전이론>의 영어판과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사이의 대조는 또는 차라리 대조의 결여는 아마도 다음 구절들의 병렬 배치에서 가장 잘 보여질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후기" 슘페터에서 온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기능[기업가 정신]은 이미 중요성을 상실하고 있으며 기업가정신이 주동자였던 경제적 과정 자체가 수그러들지 않았더라도 미래에는 가속 속도로 그 기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익숙한 일상 밖에 놓여있는 일들을 하는 것이 과거보다 훨씬 더 쉬워졌다. 혁신 자체가 일상화 되고 있다. 기술적 진보는 필요한 것을 찾아내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훈련된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의 사업이 되어가고 있다. 이전의 상업적인 모험의 로맨스는 빠르게 시들해지고 있는데, 그것은 천재의 섬광에서 시각화 될 수 있었던 아주 많은 것들이 엄격하게 계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Schumpeter 1942, p. 132, emphasis added.)      

슘페터는 재빨리 진행하여 (133쪽) 기업가의 역할에서 그가 예견하는 변화를 군 지휘관의 역할에서 이미 일어난 변화와 비교한다. 이제 "초기" 슘페터의 다음 구절을 고려해 보자.


그러나, 우리가 자연적 세계와 사회적 세계를 더 정확하게 알수록, 사실에 대한 우리의 통제는 더 완벽해진다; 그리고 그 범위는 더 커지며, 시간과 진보적인 합리화로, 단순히 계산되고, 정말로 빠르고 신뢰할 수 있게 계산될 수 있는 사물들 내에서, 이 기능의 중요성은 더 감소한다. 그러므로 군 지휘관의 중요성이 이미 줄어든 것처럼 기업가적 유형의 중요성도 줄어들어야 한다  (Schumpeter 1934, p. 85, emphasis added.).      

이 구절들은 중요하므로 곧 다시 살펴보겠다.       

슘페터의 1928년 에세이 "기업가"의 그들의 번역에서, Becker and Knudsen (in this volume)은 슘페터의 성숙된 기업가정신 이론이 그가 경제발전이론의 첫 번째 독일 판을 수정했던 1926년까지는 이미 존재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1926년 판은 1934년 영문 번역본의 기초를 이루었는데, 제가 보여드렸듯이,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의 진부화 명제와 완전히 일치한다. 이것은 즉시 슘페터가 1930년대 미국 대기업들에 대한 그의 관찰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는 -내가 말할 수 있는 한, 어떻든 어떤 문서적 증거에도 결코 기반을 둔 적이 없는 - 개념을 잠재운다. Becker and Knudsen은 1912년과 1926년 사이에 슘페터의 기업가정신 이론에서 진정한 변화를 보았다. 그는 기업가정신을 일부 인구의 심리적 특성으로 개념화하기보다는 기업가 정신을 이념형으로서 "비인격화된" 방식으로 묘사하게 되었다. 1926년 이후의 이론에서 기업가정신은 실제 사람의 실체를 담을 필요는 없다. 대신 개인(조직?)이 다양한 시간과 다양한 장소에 속할 수 있는 행동 범주를 반영한다. Becker and Knudsen에게 이러한 변화는 기업가를 덜 "푸쉬하게pushy" 만들어 기업가 정신의 제도화된 버전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진부화 명제를 가능하게 한다. 그들이 말했듯이, 기업가는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변화의 운반자가 되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를 "구" 슘페터에서 "신" 슘페터로의 이행으로 해석하지만, 기술 변화에 대한 영미 문헌의 작가들이 생각하는 이행은 그들이 보기에 아니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III.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작가들이 "두 명의 슘페터"를 보는 경향이 있는가? 간단한 답은 Schumpeter가 기업가정신(복잡한 이론적 아이디어의 줄임말)이 경제 과정에 결정적이라는 개념의 주요 원천이며 동시에 정확히 반대 개념(즉 기업가 정신은 더 이상 (또는 조만간에는 더 이상) 경제 과정에 어떤 결과도 초래하지 않을 것이며, 이는 합리적인 계산에 의해 완전히 대체된다)의 주요 원천이라는 것의 차이를 가진다는 것이다. 슘페터에게는 두 가지 식별할 수 있는 생각의 가닥이 있다; 그것들은 자기 일관적이지만 서로 화해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를 읽는 것은 일종의 리트머스 테스트이다: 그 한 가닥을 고르면 한 방향으로 가고 다른 가닥을 고르면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간다. 슘페터 I은 Nelson and Winter (1982) and Klein (1977)과 같은 네오 슘페터주의 작가들을 여러분에게 제공한다. 슘페터 II는 John Kenneth Galbraith를 준다.       

하지만, 제가 주장했듯이, 이러한 공존이 의견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는다면, 슘페터의 리트머스 효과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그 대답은, 제가 생각하기에, G. L. S. Shackle (1972)의 제안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슘페터적 긴장"은 두 개의 양립할 수 없는 인식론, 경제 과정에서 지식과 무지의 역할에 대한 두 가지 모순된 견해에 대한 그의 저작에서 화해되지 않은 공존에서 비롯된다.      

아마도 이 주장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슘페터적 긴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또 다른 관점에서 그것을 다시 해석하는 것이다. 슘페터가 왈라스의 열렬한 찬양자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순수이론에 관한 한," 그는 그의 <경제분석사>에서 "왈라스는 모든 경제학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썼다. 그는 계속해서 왈라스의 저작이 "이론 물리학의 업적과 견줄 만하다."(Schumpeter 1954, p. 827). 그러나, 그의 공언된 과학적 태도와 미적 감수성이 왈라스적이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이론은 실질적으로는 비-왈라스적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많은 정당성을 가지고 슘페터를 모든 면에서 현대 경제 사상을 지배하는 왈라스적 접근법에 대안적이며 적대적인 이론적인 관점과 전통을 나타내는 것으로 묘사해 왔다 (Nelson and Winter 1982, pp. 39-40).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사람은 슘페터의 이론이 왈라스적이라기보다는 멩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 교리에 접근하는 태도는 정말로 두 가지뿐이다. 어떤 사람은 중요한 여러 이론가들의 불가피하게 불일치하는 발언들 아래 본질적인 통합이 있다는 입장을 취할 수 있다. 즉 차이는 중요하지 않으며, 단지 그 근본적인 통합에 대한 우발징후일 뿐이다. 또는 어떤 사람은 차이가 본질적이며, 이론들 사이에 피상적인 유사점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사실 근본적으로 다른 견해를 위한 은폐물일 뿐이라는 입장을 취할 수 있다. 슘페터는 적어도 한계주의 혁명과 실제로 그 당시의 경제학에 관한 한 전자의 태도를 채택했다. "세부적으로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Jevons, Menger, 그리고 Walras가 본질적으로 같은 교리를 가르쳤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Schumpeter 1954, p. 952).       

그러한 주장이 1950년에는 아무리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지난 수십 년 동안 꽤 많은 사상의 역사가들이 그 사실을 부인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계주의 혁명가들은 "탈동질화"(Jaffé's (1976)의 표현을 빌려)되어 왔는데, 이것은 1870년대의 그것만큼이나 오늘날의 경제학의 상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발전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탈동질화주의자들은 혼합주의자이며, 왈라스 찬미자인 - 그러나 또한 오스트리아인인 - 슘페터를 반-멩거 진영에 참여시키고 싶어한다. Erich Streissler는 "이는 단지 그가 왈라스를 너무 존경했기 때문이다. 슘페터는 진정한 오스트리아의 업적(항상 왈라스와 완전히 대조적이었던)에 대한 너무 나쁜 지침이다“라고 쓴다 (Streissler 1972, p. 430n). 어떤 이는 또한 왈라스에 대한 슘페터의 찬탄이 그 자신의 업적의 뚜렷하게 비-왈라스적인 성격을 감추는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슘페터의 작품이 멩거의 작품과 친밀감을 보여주는 많은 방법들이 있다. 한 가지 중요한 의미에서, 둘 다 신고전주의 전통보다는 고전주의 전통에 더 가까웠다. 아담 스미스처럼, 그들은 단순한 자원배분에 대한 질문보다는 부의 창출과 같은 경제 발전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기술 진보에 대한 슘페터의 처리는 마르크스주의나 현대의 신고전주의적인 처리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다." (Streissler 1972, p. 431). 슘페터와 Menger 사이의 다른 유사점에는 불균형 과정 즉, 왈라스의 "완전 경쟁" 구성개념과는 매우 다른 경쟁의 개념에 대한 강조 및 사회 제도에 대한 관심이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목적상, 슘페터의 이론이 멩거적인 (또는 적어도 비-왈라스적인) 가장 중요한 방법은 경제적인 지식과 학습에 대한 그 이론의 태도에 있다.           

Shackle의 용어 "epistemic"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제 그것을 나 자신의 용도로 바꾸겠다. 내가 보기에 인식론에는 두 가지 기본 범주가 있다. 즉, 경제 행위자가 알고 배우는 방식에 대한 이론들의 두 가지 범주가 있다. 한 가지 범주는 합리주의 이론의 인식론이다.  넓게 말해서, 그러한 이론들은 행위자의 합리성이 전적으로 명백한 전제로부터 논리적인 추론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묘사한다. 이 범주에 속하는 일반적인 신고전주의 모델에서 행위자는 최대화(또는 최소화) 문제에 직면한다. 행위자는 그 또는 그녀가 그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했을 때 합리적이다. 문제의 데이터, 즉 행위자가 "알고 있는 것"은 항상 주어지며, 발생하는 모든 학습 역시 주어진 데이터의 논리적 처리(예: Bayesian 갱신)의 문제이다.        

다른 범주는 경험주의 이론의 인식론이다. 경험주의 이론에서, 합리성의 기준은 덜 까다롭고, 일반적으로 행위자가 직면하는 상황에 비추어 합리적인 행동만 요구하며, 명시적(때로는 꽤 복잡한) 문제에 대한 실질적으로 올바른 해결책을 반영하는 행동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행위자의 지식의 본질과 근원은 성격적으로 경험적이다; 그것은 추론되기 보다는 경험으로부터 얻어진다. 그 결과, 행위자의 지식은 종종 암묵적이거나(Polanyi 1958) 다양한 습관, 관습 및 제도에 명시되지 않은 채로 포함되어 있다.  


기업가정신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그의 토론에서 슘페터는 자신을 경험주의 진영에 정면으로 둔다. 그는 "행동이 신속하고 합리적이라는 가정은 모든 경우에 허구이다. 그러나 만약 사물이 인간들에게 논리를 주입시킬 시간이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현실에 근접한 것으로 판명된다. 그러나 이는 선례가 수 없이 수십 년 동안,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수십만 년 동안 행실을 형성하고 적응되지 않은 행동을 없앤 곳에서만 유효하다." (Schumpeter 1934, p. 80) 이것은 근본적으로 규칙-적용의 행동의 개념이다. 슘페터에게 있어서, 의식적인 계산으로서의 합리성은 행위자의 명시되지 않은 지식의 더 큰 덩어리에서 분리되어 정의되는 작은 영역 안에만 존재한다. 이 영역 내에서, "우리는 농부가 증권거래소 회원이 그의 주식포트폴리오를 파는 것만큼 교활하고 이기적으로 송아지를 판다고 믿을 수 있다." (Schumpeter 1934, p. 80)      

슘페터가 이 구절들에서 고수하는 종류의 경험주의 인식론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암시하는 경제 지식의 본질적으로 개방적이거나 진화적인 특성이다. 경제적 지식은 주어진 것으로부터의 논리적 추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 지식은 잠재적으로 무한하다. 행위자의 "계산 영역" 또는 수단/목적 프레임워크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지식이 항상 존재한다. 사실, 기업가의 일은 정확히 새로운 지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경제생활의 순환 흐름“은 지식이 변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경제 성장은 기업가들의 손에 의해 일어난ㄷ다. 그들은 질적으로 새로운 지식, 즉 기존의 경제 구조에는 포함되지 않은 지식을 시스템에 도입한다.       

이 참신함은 기업가적 기능을 관리자나 자본가의 기능과 구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조합을 수행하는 동안에만 기업가가 되는 것이며, 사업이 잘 구축되면 기업가가 아니게 된다.  슘페터에게, "이 독특한 요소는 우리가 일상의 창백함 밖에서 행동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 자신에게 분명히 하는 순간 쉽게 인식된다. 주어진 조건에 대한 적응적 반응과 창의적 반응의 차이는 적절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본질적인 요점을 전달한다. 즉 그것은 본질적인 차이를 전달한다.“ (Schumpeter 1951, p. 253).      

내 주장의 중요한 점은 기업가정신(또는 그것과 매우 유사한 것)에 대한 개념이 혁신과 경제 성장을 다루는 모든 이론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신고전주의 모델들은 주어진 목적을 위해 알려진 수단의 조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한다. 하지만 그들은 애초에 어떻게 수단과 목적이 바뀌거나 생겨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슘페터는 기업가정신의 개념이 이론적 필요성이라는 것에 강하게 동의하는 것 같다. 활기찬 구절로, 그는 그의 개념의 경험적 본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기업가의 인식론적 역할(내가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을 묘사한다.       

이미 이루어진 것은 우리가 보고 경험한 모든 것의 날카로운 현실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것은 우리의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새로운 계획을 실행하는 것과 관습적인 계획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길을 만드는 것과 길을 따라 걷는 것만큼이나 다른 것이다.       

계획된 기업의 모든 효과와 부작용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것이 얼마나 다른지 더 명확해진다. 이론적으로 확실한 많은 것들조차 만약 한 사람이 무한한 시간과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어둠 속에 있어야만 한다. 군사행동은 잠재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이용할 수 없을지라도 주어진 전략적 위치에서 수행되어야 하듯이, 경제 생활 행동에서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의 모든 세부 사항을 해결하지 않고도 수행되어야 한다. 여기서 모든 것의 성공은 직관에 달려있다. 비록 그것이 현재 확립될 수 없지만, 나중에 사실로 증명되는 방식으로, 사물을 보는 능력 그리고 비록 이것이 행해지는 원리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핵심적인 사실을 파악하고, 비핵심적인 사실을 버리는 능력에 달려있다. 철저한 준비 작업과 특별한 지식, 지적 이해의 폭, 논리적 분석을 위한 재능은 어떤 상황에서는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있다. (Schumpeter 1934, p. 85.)      

기업가정신은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것으로, 신고전주의 모델링의 이미지에 묘사된 합리적인 계산의 종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활동인 것으로 보인다.       

슘페터가 기업가적 행위를 사실 일상적인 행동보다 더 큰 의식적 합리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흥미롭다 (Schumpeter 1934, p. 85.). 이것은 경제지식에 대한 그의 개념의 경험적 성격을 다시 강조한다. 일상적인 행동은 기본적으로 시행착오 학습을 통해 "사전 프로그램된" 것이기 때문에 덜 의식적인 합리성을 요구한다. 물론, 기업가의 의식적인 합리성은, "초기" 자본주의에서는, 어쨌든, 혁신이라는 과제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주목하시오. 이것이 기업가정신이 왜 직관, 즉 논리의 비약을 요구하는지의 이유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의 핵심을 짚어보자. 슘페터에게 있어 의식적인 합리성은 사실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다루는 일에 점점 더 적합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 세계와 사회적 세계를 더 정확하게 알면 알수록, 사실에 대한 우리의 통제는 더 완벽해진다; 그리고 그 범위는 더 커지고, 시간 그리고 진보적인 합리화와 함께, 거기서 사물이 단순하게 계산될 수 있고, 정말로 빠르고 신뢰할 수 있게 계산될 수 있고 이 [기업가적] 기능의 중요성은 더 감소한다. 그러므로 군 지휘관의 중요성이 이미 줄어든 것처럼 기업가적 유형의 중요성도 줄어들어야 한다. (Schumpeter 1934, p. 85, emphasis added.)  


삼단논법을 보세요 . 미지의 것은 점점 이성적으로 계산될 수 있기 때문에, 기업가의 "논리-외적" 기능은 점점 불필요해지고, 따라서 기업가적 유형의 중요성은 감소해야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경제지식에 대한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이론의 묘한 혼합이다. "초기" 자본주의 ("초기 슘페터"가 아님)에서 경제적 합리성은 주로 발전된 습관과 관습에서 파생되었다; 지식의 이러한 구조를 벗어나려는 시도는 의식적인 합리성과 명시적인 계산에 의해 달성될 수 없었다.  합리성은 사실상 "한계"되었다. "후기" 자본주의(“후기 슘페터”가 아님)에서는 합리성의 한계가 깨지고 있다. 의식적인 합리성은 과거의 확고했던 관습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미래까지도 정복하기 시작하고 있다.      

아마도 좀 더 최근의 작가와의 유사점이 이것을 더 명확하게 해줄 것이다. 슘페터의 인식론적 이론(내가 저 도도한 구절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면)은 궁극적으로 Herbert Simon의 인식론(Langlois 1990, 2003)과 매우 가깝다. 물론 Simon은 "제한된 합리성"이라는 표현을 쓴 저자이다. 기본적인 생각은 인간의 정보 처리 능력이 제한되어 신고전주의 다양성의 의식적인 합리성을 상당히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위자는 "작은 성과치에 만족"해야 하며 경험적 근사치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Simon의 개념에서 전형적으로 간과되는 것은 그것이 기본적으로 강력한 합리주의 지식 이론이라는 것이다. Simon에게 있어서, 사람은 자신이 직면한 명백한 선택 문제의 실질적으로 올바른 해결책에 도달했을 때에만 합리적이다. 그가 선호하는 이미지에는 체스 게임과 복잡한 미분방정식, 비록 그것들이 현재 우리가 열망할 수 있는 해결책일지라도 사실상 정확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포함된다. 간단히 말해서, 그의 혁신은 사람이 진정한 합리성에 단지 가까울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그 개념 자체를 의심하지 않는다. 게다가, 슘페터와 같이 Simon은 계산 및 관리 기술의 개선이 진정한 합리성에 점점 더 근접한 근사치를 제공할 것이며, 어떤 분야에서는 합리성에 얽매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IV.      

그렇다면, 우리는 "슘페터적 긴장"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나는 그것이 사회주의의 실행가능성과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종말에 대한 슘페터의 평가에 강한 함의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본 슘페터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급진적으로 새로운 것을 경제체제에 도입하는 기업가정신은 과감한 개인의 영역이었다. 왜냐하면 한정된 지식의 세계에서는, 기업가정신은 반드시 예측할 수 없고 합리-외적인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상 자본주의 (또는 더 정확히 자유로운) 사회 질서를 지지하는 논쟁이라는 것을 주목하라. 슘페터에게 경제 시스템의 상대적 효율성은 "기존 구조를 관리하는 방법"(Schumpeter 1942, p. 84)이 아니라 혁신을 얼마나 잘 창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제한된 지식 때문에 "계획"은 혁신과 양립할 수 없다. 진보는 자원을 지휘하고 그 자원을 파격적이고 놀라운 방향으로 이끄는 개인의 능력에 달려 있다. 그러나 슘페터는 지식의 한계가 사라지고 있으며 따라서 사회주의는 결국 경제 성장을 창출하는 데 자본주의만큼 대략 효과적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이 타당할까요? 경제 및 기술 지식의 성장은 혁신이 예측 가능하고 일상화되고 있음을 사실상 의미하는가? 이것은 약간의 논쟁의 문제이다. 혁신이 또는 어느 정도는 R&D가 19세기보다 오늘날 더 조직화되어 있는 것은 확실히 사실이다. 이것은 점증하는 분업의 징후이며, 아담 스미스와 고전학파를 놀라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Langlois 2002). 그러나 스미스에게 있어서, 증가하는 분업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혁신을 창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에서의 아이디어의 다양성을 증가시켰기 때문에 혁신을 강화시켰다. 혁신은 경험적인 시행착오의 문제로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 문제를 다소 다르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슘페터의 한정적 합리성에서 무한적 합리성으로의 이행에 대한 이야기가 실제로 경제지식의 경험주의 이론에서 합리주의 이론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한 이행이 가능한가? 아니면 슘페터의 설명은 궁극적으로 논리적으로 구별되는 두 종류의 지식의 혼란에 근거하는가? 비록 내가 여기서 주장을 펼 수는 없지만, 그러한 혼란이 슘페터에서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진보의-기계화 명제는 많은 힘을 잃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기 위해서, 우리는 진보의 일상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고, 따라서 슘페터의 사회학적 주장의 완전한 맥락에서 기업가의 죽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보통 기업가가 되든 단지 관리하는 행정가가 되든 현대의 사업가가 임원 유형이라는 것을 보아왔다. 그의 입장의 논리로부터 그는 관료주의 조직에서 일하는 샐러리맨의 심리를 어느 정도 습득한다." (Schumpeter 1942, p. 156). 이것은 낯선 관찰이 아니다. Berle and Means (1932년)의 지금은 잘 발달된 전통에서의 작가들에 의해 특히, 그로부터 대개 도출된 결론은 생산적인 조직이 사유이든 국가 소유이든 그것은 그러므로 기능적 입장에서부터 무차별의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국가 소유권은 그것의 동기는 "공공적"이고 따라서 사욕의 오점을 정화하기 때문에 더 바람직해 보일 것이다.       

슘페터는 이 관측치와 매우 다른 결론을 도출한다. 슘페터에게 현대 기업에 대한 결정적인 사실은 그 회사의 관리자들이 기업가가 수행하는 강력한 사회적 역할을 충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가는 힘의 기둥, 합법성의 상징, 역할 모델이다. 그들은 "부르주아 계급"을 새롭게 하는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피를 제공한다. “경제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나 직간접적으로 부르주아지는 기업가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한 계급으로서 그와 함께 살고 죽는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봉건 문명의 경우에 일어났던 것처럼 비록 어느 정도 장기화된 과도기 단계, 결국에는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동일하게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단계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Schumpeter 1942, p. 134). 사회주의는 그것을 지키는 기업가 없이는 "부르주아 요새는 정치적으로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에 성공할 것이다. 약탈자는 관리자 계급이 아니라 사회주의 지식인과 공무원들의 신계급이다. "무방비 요새는 특히 그 안에 풍부한 전리품이 있다면 침략을 불러온다. 침략자들은 스스로를 적대감을 합리화하는 상태로 만들 것이다. 침략자들은 항상 그렇게 한다. 당분간 그들을 사들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마지막 자원은 그들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실패한다." (Schumpeter 1942, p. 143)       

그러므로 슘페터는 Berle and Means보다 더 큰 게임을 추구한다. 바로 마르크스 자신이다.

슘페터는 사회주의 체제(특히 사회주의 문화)에 대한 큰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는 민간과 국가 관료주의의 유사성을 사회주의의 길을 부드럽게 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현대 기업은 자본주의 과정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부르주아 정신을 사회화시킨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동기의 범위를 끊임없이 좁힌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것은 결국 그것의 뿌리를 죽일 것이다." (Schumpeter 1942, p. 156)  마르크스처럼, 그는 자본주의가 그 자체의 파괴로 이어진다고 본다. 그러나 마르크스와는 달리 슘페터는 자본주의를 경제적 실패가 아닌 그 자체의 경제적 성공의 희생자로 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마르크스의 머리 위에 서 있는데, 그 줄거리는 무겁고 자기만족적인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그 어조는 무관심하고 태도는 운명론적이지만 메시지는 대체로 조심스럽다. 기본적으로 슘페터는 신보수주의자, 아마도 최초의 신보수주의자일 것이다.  


만약 슘페터가 진보의-기계화에 대해 틀렸다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한 수준에서는 효과가 유의하다. F. A. Hayek(1945)가 "시간과 장소의 특정한 상황에 대한 지식"이라고 불렀던 것인, 암묵적이고 경험적인 지식에 계속 의존하는 경제 체제는 그것의 산업과 상업을 관료주의적 사회주의에 맡김으로써 그것의 혁신성, 그리고 진보의 원동력의 많은 부분을 희생시킬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투표자들에게 훨씬 더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고, 따라서 (만약 방지가 가능하다면) 그것의 출현을 늦추거나 수정하게 할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해석은 슘페터가 글을 쓸 때 보다 1989년 이후가 훨씬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더 큰 사회학 이론에서 진보의-기계화 명제의 역할은 경제 수준에서 부르주아 자본주의의 힘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 효율적이어서 미지의 것에 대한 우리의 무지조차 정복했다; 그것은 대량 생산 상품을 찍어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효율로 혁신을 박멸할 수 있다. 자본주의를 부정하기 위하여 미래를 넘는 이러한 힘은 슘페터의 파노라마의 미학적인 면을 다소 훼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르크스의 반전을 다른 경우보다 덜 완벽하게 만들고, 그것은 이야기의 많은 색깔을 주는 운명론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슘페터를 문자 그대로 읽을 위험에 처하게 된다. 논쟁의 힘은 경관의 질감에 있지, 그것의 디테일에 있지 않다. 실제로 기업가정신을 찬양하기 위해 오는 슘페터와 그것을 매장하기 위해 오는 슘페터 사이의 긴장인 "슘페터적 긴장"이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의 장엄한 아이러니를 풍요롭게 한다는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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