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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승부 - 체스 영화

조영필

by 조영필 Zho YP

[위대한 승부(Searching for Bobby Fischer 1993)]는 미국인으로서 체스 세계챔피언이었던 보비 피셔를 배경으로 다룬 영화이다. 보비 피셔는 소련(러시아)인이 그리고 공산주의가 장악하고 있던 체스의 세계챔피언을 미국인이 탈취함으로써 냉전시대에 두뇌세계에서도 민주주의가 그리고 미국적 다양성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돌연 체스계를 은퇴하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처음에 영화를 보면, 아주 어린 아이가 체스에 자질을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가 보비 피셔의 어린 모습이려니 짐작해 본다. 그러나 그는 보비 피셔는 아니다. 과연 이 아이는 보비 피셔가 될 수 있을까?

주인공 아이의 눈망울은 아주 맑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처음에 아이는 아빠와 체스를 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빠를 이기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아빠 (스포츠 전문 기자) 는 아무리 오래 생각을 해도 아빠의 착수 즉시 두어버리는 아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 승부란 냉정하고 또한 아픈 것이다. 자식의 기재를 확인한 아빠는 아이에게 좋은 선생을 붙여주려 하고 또 초등부 대회에도 참여시킨다. 그리고 아이는 참가하는 대회마다 연전연승을 한다.

그러던 중 아이는 보비 피셔(같아 보이는 사람)의 지도를 받은 (후계자 같이 보이는) 아주 강력한 다른 아이 (체스천재) 를 우연히 보게 된다. 그때 까지 체스가 단순히 즐거움일 뿐이었던 주인공 아이는 갑자기 패배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결국 다음 대회에서 그 체스천재 역시 대회에 참가했다는 것을 알고서는 쉽게 이길 수 있는 다른 참가자에게 일부러 져서 대회에서 탈락하고 만다.

그것은 승부의 중압감이 주인공에게 부과한 방황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체스를 다만 즐길 뿐만 아니라 강한 상대에게 승리하고 싶어한다는 것까지 깨달은 주인공 아이는 이기고 싶고 강해지고 싶은 열망으로 체스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후 참가한 대회의 결승전에서 두 아이는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완벽한 수읽기로 승리를 확인한 아이는 상대방 아이에게 무승부를 신청한다. 상대에게 패배의 아픔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상대 아이는 무승부를 받지 않는다. 이때 두 아이가 서로를 마주 보는 눈망울이 압권이다.

체스의 그랜드 마스터들 중에서는 한창 때에 갑자기 은퇴하고 정신병을 앓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 보비 피셔도 아마 그러한 압박을 느꼈을 것이다. 단순히 체스게임에 불과하던 것이 국가와 이념의 대항전이 되어 버렸으니, 그의 중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비슷한 수준의 그랜드 마스터 층이 두터워서, 보비 피셔의 모든 것(약점)을 집단적으로 (마치 컴퓨터와도 같이) 연구하는 소련측에 계속해서 이기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체스가 그의 모든 것이었고, 또한 절대 지고 싶지 않았던 그가 택한 길은 도전을 더 이상 받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인간과 컴퓨터의 대국으로 유명한 게리 카스파로프도 2003년 Deep Junior 와의 승부(6판 승부의 마지막 게임)에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도 컴퓨터에 무승부를 요청하였다. 후에 그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유리한 측에서 무승부를 요청하니 불리한 상황의 컴퓨터는 당연히 받아들이게 되고, 결국 승부는 무승부가 되었다. 한 쪽 (인간) 은 실수를 할 수 있는데, 다른 한 쪽 (컴퓨터) 은 심리적 부담감도 느낄 수 없고 전혀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유리한 상황이라고 해도 승부는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심리적 부담감이 점점 눈사태처럼 커지면서 게리 카스파로프는 더 이상 침착하게 수를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1997년 IBM의 컴퓨터 Deep Blue 에게 진 빚에 대해 인간의 명예를 걸고 설욕하고자 하였으나, 결국 무승부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위대한 승부]에서의 주인공은 실재하는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그 아이가 보비 피셔 같은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을까. 보비 피셔는 체스외에는 다른 아무 것에도 의미를 두지 않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주인공은 가족의 따스한 보살핌 아래 지극히 정상적으로 다양한 관심영역을 가지고 있다. 가진 것이 많은 자에게는 처절함이 부족한 법이다.

영화는 그 자체로서도 아주 재미있다. 체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2010.1.3. [쓰지 않는 배: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