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츠바이크의 [체스]와 쥐스킨트의 [승부]
두 소설은 체스의 승부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선 츠바이크의 '체스'에서는 한 체스마이스터와 조금 특이한 아마츄어와의 시합을 다룬다.
아마츄어인 B박사는 150개의 체스마이스터들의 게임을 모두 외우고 그것도 부족해서, 자신을 둘로 나누어서 시합을 하다가 거의 미치게 된 사람이다. 이러한 사연은 나치의 심문을 받던 독방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와 대결하는 체스마이스터는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즉 머리 속에서는 수를 읽을 수 없는 사람으로서 체스판을 보고서만이 수를 읽을 수 있다라고 설정되어 있다. 츠바이크는 아마츄어를 그릴 때는 체스라는 게임의 속성을 신비롭게 꿰뚫어내지만, 프로(체스마이스터)를 그릴 때는 너무나 불가능한 상황을 설정하였다. 도대체 체스마이스터가 체스판을 보지 않고서는 체스를 둘 수 없다는 가정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도저히 불가해한 어떤 경멸적 대상인 프로(체스마이스터)에 대해, 한 아마츄어가 과연 체스란 게임의 그 끝이 어디인지를 한 수 지도해준다. 체스 역사에서 그 챔피언들이 정신병적인 증세를 보이면서, 체스계를 은퇴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바둑이나 다른 게임과는 다른 어떤 면이 체스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체스의 경우에 자신을 둘로 나누지 않고서는 정말 그 극한까지의 수읽기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점이 있을 듯도 하다.
쥐스킨트의 '승부'에서의 두 사람은 앞소설에 비해서는 조금 격이 떨어진다. 즉 동네 체스꾼과 그보다 실력이 낮은 사람의 승부를 그리고 있다. 아무래도 실력이 떨어지는 승부이다 보니 앞의 소설에 비해 박진감이 많이 떨어진다.
그보다 더 흥미가 반감되는 사실은 소설가의 체스실력이 매우 낮아 체스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너무 낮지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드는 점이다. 즉, 체스 같은 전략적 사고 게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을 그렸기 때문이다. 체스가 끝날 때까지, 상수가 하수를 굉장히 실력이 있는 자로 착각하였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장기나 바둑 같은 게임에서 그러한 허장성세는 결코 초반 몇 수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쥐스킨트가 워낙 낮은 수준의 시골장터를 그렸다면 별개의 내용이겠지만.
두 소설 다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측면이 약점이다. 쥐스킨트의 '승부'는 전혀 불가능한 상황을 설정하였고, 츠바이크의 '체스'는 반쯤 이해가 안되는 상황을 그렸다는 느낌이다. 장기애호가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렇다.
(2009.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