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베르베르의 [뇌]와 체스
2003년경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도입부에서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라고 착각하였다. 그것은 소설의 주인공인 사뮈엘 핀처가 체스 세계 챔피언 <딥 블루 IV>라는 컴퓨터를 물리치는 장면이다. 그 이전 1997년에 체스사에 남을 세기적 천재로서 십수 년간 체스 황제로 군림하고 있던 게리 카스파로프가 체스 컴퓨터 <디퍼 블루>에게 패하여, 체스라는 두뇌게임은 이제 컴퓨터의 영역으로 넘어갔다는 뉴스를 접하고, 인간으로서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던 터라, 나는 소설 속에 깊이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사뮈엘 핀처는 말한다. 우승소감 장면에서 '컴퓨터는 기분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기>라는 것에 영향을 받지도 않습니다. ''저에게는...... 동기가 부여되어 있었습니다'' 강한 동기를 지닌 사람은 한계를 모릅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인류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 인간에게는 <동기>라는 것이 있었구나!
당시에는 체스를 지금처럼 잘 알지도 못할 때이고, 다만 바둑만 두고 있을 때이므로, 체스에서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섰는데, 바둑에서는 왜 아직 10급 수준인가? 아무래도 체스는 바둑에 못 미치는 하급 보드게임이 아닐까?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소설 속에서는 마치 현실인 양 생생하게 인간이 컴퓨터를 다시 이기고 있지 않은가? <동기>라는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여, <냉정>한 컴퓨터에게 승리한다! 정말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The Immortal Game(불멸의 게임)]에 보면, 체스 프로그램의 원리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 세 가지이다. 그 처음은 Minimax Procedure(최소최대화)이다. 이것은 상대가 두는 수(Mini 나에게 가장 안좋은 방향)를 예상해서, 그 중에서 나에게 가장 좋은 수(Max)를 찾아내는 방법이다. 이것은 양자(2 인) 게임에서 발생하는 모든 경우의 수를 Tree(나무) 형식으로 만들어서, 각각의 경우를 평가하여 선택하는 방식이다. 경우의 수를 8수까지만 예상해도 수 조 단위의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Minimax Procedure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현재 나에게 가장 유리하게 보이는 수단이 결국 최종적 승리를 가져오는 최선책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경기에는 항상 상대가 있고, 상대에게도 나와 동일한 승부욕과 재능이 있기 때문이다. 즉 나의 한 수에 대한 상대의 최적의 대응수단을 고려하였을 때, 비로소 나는 적진을 향해 한걸음 나아가거나 또는 아군의 보강을 위해 숨고르기를 하는 등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수읽기라는 것인데, 가능한 한 이를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으며, 동시에 예상 결말들 간의 우열을 신속히 판단하여 대처할 수 있는 자를 우리는 고수라고 칭한다. 단순히 상대의 실수를 바라는 것이 아닌, 합리적 선견능력과 실행력, 이런 것이 전략이란 어휘가 진정으로 뜻하는 바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Pruning(가지치기)이다. 모든 경우의 수가 실제로 유효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보통 프로 기사들은 한 눈에, 무시해도 되는 영역과 숙고해야 되는 영역을 구별할 수 있다. 특정 부분만 집중적으로 수를 읽게 되면, 한결 효율적으로 경기를 운영할 수가 있게 된다. 보통 TV 시간제 대국에서 초읽기에 들어가서도 대국의 수준이 그리 떨어지지 않는 것은 극도로 연마 체득된 감(感)과 함께 그러한 가지치기 사고를 사용하기 때문인 것이다.
물론 그 구별의 기준은 바둑이라면 기풍에 따라 갈리기도 하는 부분이다. 다케미야는 대부분의 기사가 무시하는 그 '중앙 공간'에 집중하여 공배를 집으로 만들어내는 소위 '우주류'의 탁월한 세계를 개척하였고, 가토는 '대마불사'라며 집을 중시하는 보통 기사들의 안일함 속 헛점을 쾌도속검으로 공략하여 바둑판을 대마(大馬) 수렵지(사냥터)로 만들어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케미야가 가장 바둑이라는 게임의 본질(집 차지)에 접근한 기사가 아니었을까? 그 반면에, 가토는 바둑의 장기적 특성(포획)을 노출시킨 기사였다는 느낌이 든다. 상대의 요석을 대마로 키워서 그 생사를 일국의 승부가 되도록 만드는 그의 전법은 마치 왕의 생사로 승부가 결정되는 장기와 흡사하지 않은가?
세 번째로는 Transportation Tables(치환)이다. 이 기술은 특정한 형태의 체스포지션의 가치를 일시적으로 기억하게(cache) 하여, 다음에 동일한 상황에 마주칠 때, 다시 재계산할 필요가 없도록 하여준다. 이는 동일한 체스포지션이 서로 다른 순서에 의해서 형성될 때, 이러한 수순과 그 형태를 유형화시켜서 사고처리를 경제적으로 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체스 로직과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컴퓨터는 보다 적은 용량으로도 보통 20수 이상을 내다 보게 되었지만, 인간(체스 고수들)이 내다 볼 수 있는 수는 고작 8수 정도이다([뇌]에서 인용). 내가 지금 아이패드에서 사용하고 있는 체스게임 앱은 체스의 엘로(Elo) 포인트로 2,500점까지 구현할 수 있다. 그런데 <디퍼 블루 Deeper Blue>는 <딥 블루 Deep Blue>에서, <딥 블루>는 <딥 소트 Deep Thought>에서 개량되었다고 하는데, 그 <디퍼 블루>의 할아버지인 <딥 소트>의 성능은 엘로 포인트로 2,450점이었다고 한다. 2000년 당시 카스파로프의 엘로 포인트는 2,851 점이었다([뇌]의 주석에서 인용). 그러고 보니, 나도 매번 <디퍼 블루> 계통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과 대적하고 있는 셈이다.
[뇌]의 작가는 프랑스인이므로, 원문은 불어로 씌여져 있다. 당연히 체스 용어도 불어였을텐데, 체스에서 영어의 <비숍, 주교>은 불어로는 <푸Fou, 어릿광대 혹은 미치광이>이다. 어릿광대(Jester)라고 하면, 중세 서양 장기 쿠리어 체스를 연상케 한다. 무언가 서양 장기의 형성과정과 용어의 정착과정이 서양 각국별로 다른 것이 또한 여러 가지 생각거리(단서)를 제공해 준다.
그런데, 이제 체스를 조금 알게 된 지금 불어로 감상하는 체스와 영어로 감상하는 소설 속의 체스는 완연히 다르다. [뇌]를 다시 읽어보자. 인간과 컴퓨터와의 대결에서 핀처는 막다른 상황에 몰리는데,
'수 읽기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자기 킹 쪽으로 손을 내민다.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에 생각을 바꾸어 다른 말을 움직인다./ 비숍이다./ 남자는 잽싼 손놀림으로 비숍을 들어 올려 하얀 칸들 중의 하나에 내려앉아 있던 파리를 짓눌러 버린다.'
여기서 비숍을 불어의 <미치광이 Fou>로 바꾸어 본다.
'결정적 순간에 킹 쪽으로 손을 내밀다가 남자는 잽싼 손놀림으로 <미치광이 Fou>를 들어 올려 <잡념 Fly>을 짓눌러버린다.'
작가가 그 많은 기물 중에서 왜? 하필이면, 비숍을 결정구로 선택했는지 음미해볼 만하다.
[뇌]는 이밖에도 여러가지 측면에서 인류 지식 자산의 보고이다. 한때 신경외과의사이자 뱃사공인 움베르토의 얘기를 들어보자.
'<아, 마침내,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구나!> 하는 것도 결국은 하나의 생각이 아니겠소?'
이 장면은 불교에서 해탈의 단계 중 욕액(欲厄)을 넘어선 유액(有厄)의 경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 다음에는 견액(見厄)이 기다리고 있다. 또한 이 소설을 처음 읽을 때는 내가 아직 공각기동대를 보기도 알기도 전이었다. 이제와서 보니, 아마도 베르베르는 이 소설을 쓰기 전에 [공각기동대]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이 엄청난 전뇌(電腦) 세계의 선구이면서, 또한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 가상 현실의 예언자를......
그리고 이번에 나는, [뇌]에 나오는 수수께끼 하나를 기어이 풀고야 말았다. 그동안 문제풀이 공부(창의 발명이론)를 해온 보람을 느낀다.
'<드니의 귀>라 불리는 시칠리아 근처의 작은 섬에 동굴이 하나 있고, 이 동굴에 오뒤세우스가 갇혀 있소. 그는 퀴클롭스와 대면하고 있소. 그를 죽이고 싶어하는 퀴클롭스가 제안했소. <너는 끓는 물에 삶아질 수도 있고, 불에 구워질 수도 있다. 선택은 너에게 맡기겠다. 지금 무슨 말이든 한 마디를 해라. 만일 그 말이 참이면 너를 끓는 물에 삶아 죽일 것이고, 그 말이 거짓이면 너를 불에 태워 죽일 것이다>라고 말이오. 그러자 꾀 많은 오뒤세우스는 절묘한 대답을 생각해 내서, 끓는 물에 삶아지지도 않았고 불에 구워지지도 않았소. 그가 무슨 말을 했을까요?'
(2012.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