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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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는 인도의 차투랑가 라는 게임에서 유래했다. 차투랑가는 4부대라는 뜻이다. 그런데 체스나 장기의 기물의 종류는 그보다 많다. 체스에는 킹, 퀸, 비숍, 나이트, 루크, 폰의 6종 16개의 기물이 있고, 장기에는 왕, 사, 상, 마, 차, 포, 졸의 7종 16개의 기물이 있다. 어떻게 4종의 군대가 6종, 7종의 기물이 될 수 있는가? 체스의 경우 킹을 빼면 5종이다. 원래 인도에서는 보병과 기병 그리고 전차부대와 코끼리부대가 있었다. 그렇다면 퀸 만이 남는다. 4개의 부대에 속하지 않는 것이...... 퀸은 어디서 유래한 기물인 것인가?
현재의 퀸은 비숍과 루크의 파워를 함께 가지고 있는 체스판의 절대강자, 극강의 챔피언 그 자체이다. 그러나 과거의 퀸은 그렇게 강한 기물이 아니었고. 또한 그 이름이 퀸도 아니었다.
체스는 인도에서 아랍을 거쳐 서양으로 전파되어 갔는데, 퀸에 해당하는 원래의 기물은 그 명칭이 '비지르'로 대신이란 뜻이며 또한 기물의 이동 또한 사선으로 한칸 움직이는 것에 불과했다. 대신이 퀸이란 무소불위의 여왕으로 성전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능력 또한 지휘관의 (명령을 내리는) 수준을 넘어 (자기자신이 전장에서 직접 적을 섬멸할 수 있는) 전쟁무기 그 자체인 전신(戰神)이 (실제의 전투의 표상의 한계를 한참이나 넘어서) 되고야 말았다. 그러므로 퀸의 현재 모습에서는 유추하기 힘든 체스 초기의 모습을 비지르에서부터 복원해본다면 그것은 영락없는 총사령관의 모습이다. 그런데 왕이 전쟁터에 나왔는데 총사령관이 또 있을 수 있는가? 또 왕은 사방팔방으로 움직이는데 대신은 그렇다면 내시인가 게걸음이라니~
서양의 퀸에 대비되는 것으로 우리 장기와 중국장기 상치에서는 사(졸)라는 것이 있다. 대신이 한쪽에서는 여왕인데 다른 쪽에서는 졸(사)이 되었다. 그런데 그 졸(사)의 성(sex)이 여성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무슨 또 해괴한 사연일까? 요즈음의 장기(상치, 쇼기 포함)말은 앞면이나 뒷면에 한자가 씌어져 있다. 한자야 워낙 상형성이 뛰어난 문자여서 동양의 우리들 입장에서는 결코 체스(서양장기)의 기물이 조각(figure)으로 표현된 것이 결코 부럽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어느 한 쪽(서양)의, 어떤 측면에서의 상상력의 부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한데 중국에서 출토된 옛날 상치(중국 장기)의 기물을 보게 되면 또다시 많은 생각이 들게 된다.
그것들은 동전과 같은데 한 면에는 한자가 씌어있고 다른 면에는 그림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사(士)의 뒷면 그림은 여자 호위무사의 모습이었다. 동쪽과 서쪽에서 둘다 여성이라면 대신에게는 또는 대신 그 이전의 기물에 이미 여성성이 잠재해 있었던 것일까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장기의 일개 힘없는 사졸(士)이 체스에서의 그 막강한 퀸임을 알게 되었을 때의 놀라움과 동시에 또한 남성들의 전장에서 사졸(士) 또는 대신(비지르)이 원래부터 남성이 아니고 여성일 수도 있었다는 궁금함은 닭이 공룡의 후예임을 알게 되었을 때의 경탄에 버금간다고 할 것이다.
다시한번 정리해보면 2명의 총사령관(왕과 대신)이라는 언밸런스함이 찾아낸 2개의 해결책이 한쪽에서는 마징가제트(전신 퀸)가 되고 다른쪽에서는 부드러운 여성의 호위무사(사졸)가 되었다. 허허실실의 안전망인가? 더우기 이 여성 호위무사는 왕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녀야 하므로 궁 밖을 나서지도 않는다. 우리 장기와 중국 상치에서만 나타나는 이 궁(성)은 일종의 지휘본부이다.
그런데 이 궁은 장기와 상치(중국 장기)에만 있다. 얼핏 보면 서양은 왕이라도 전장에 직접 참여하고 동양(중국 문명)은 왕이나 장군이 전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전쟁은 병사들이 하는, 전제적 계급구조를 반영하고 있는 듯도 하다. 삼국지에서처럼 제갈량이 작전을 세워 장수들에게 전술을 지시한 후 유비와 함께 전투를 조망하기에 좋은 근처 산 위 누각에서 찻잔을 기울이는 장면이 연상된다. 그에 반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는 (또는 잉글랜드의 해롤드는) 직접 전투에 참여하여 병사들을 독려하지 않았는가. 혈통의 정통성뿐만 아니라 용맹이 부족하다면 왕으로서는 결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기본적으로는 후세의 견강부회의 해석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앞에서 예를 든 것은 전장의 일례일 뿐이며, 그러한 전통이 고착된 것도 대략 AD 10세기 이후로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제기의 초점은 퀸과 사의 여성성과도 같이 궁을 표시하는 X자 표시에 있다. 이 X는 어디서 온 것인가. 이것이 원래의 체스에 있었던 것일까? 이것이 바로 나의 질문인 것이다. 그런데 이 X가 있었다. 4인용 차투랑가의 보드(장기판)에 이것이 있고. 정확히 왕의 자리 밑에 이것이 있다. 물론 왕의 자리 밑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슈타파다는 체스와는 다른 경주(racing)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가을 쯤인가요? 대체 이 퀸이란 놈은 어디서 왔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인도의 4인제 차투랑가가 장기 블로그 등에서 소개되어 있다. 4개의 나라가 각각 한 모서리씩 점유하고 있는데. 보병은 4말이고요. 차, 마, 상이 모서리로 부터 포진되다가 맨끝에 왕이 놓이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도합 8개의 말이 한 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 나라가 8말인데 4나라가 싸우는 것이므로 판 위에 있는 기물의 총수는 32개로 오늘날 체스의 숫자와 같다. 다시보면 졸의 숫자도 16, 차, 마, 상 의 숫자도 각 4개 남은 차이가 있다면. 왕의 숫자가 4이 아니라는 점, 왕 4이 왕 2, 퀸 2로 대응된다. 그렇다면 4인 장기에서 한편의 왕이 다른 한편의 왕의 총사령관이 된 것이 아닐까하고 누구나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4인 체스 선행설이다.
실제로 왕과 퀸(옛날 대신)의 행마는 모두 한칸이다. 중국 장기 상치에서 왕은 열십자로만 움직이고 사(퀸)는 X자로만 움직인다. 어찌보면 오늘날 폰의 행마의 분해이다.
폰의 행마는 가장 불가해한 부분 중의 하나이다. 졸은 기본적으로. 앞으로만 전진할 수 있는데, 폰의 경우에는 이동은 앞으로만 할 수 있으나, 적을 포획할 때는 앞쪽 사선으로 한다. 즉 이동은 직선 한 칸, 포획은 사선 한 칸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체스의 역사의 최고 권위자인 머레이가 4인용 체스의 선행설을 부정하고. 2인용 체스의 선행설을 주장하였다. 그 근거는 2인 체스는 6세기부터 증거 자료가 보이나, 4인 체스는 9세기는 되어서야 자료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체스전문가 대부분이 오늘날 2인 체스 선행설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그렇게 되면. 차투랑가란 말의 의미와 장기 기물의 기원, 그리고 게임의 역사를 절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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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이 다양한 각 나라와 시대별 장기(체스)를 보노라면 가장 확실한 기물은 마(나이트)이다. 앞으로 한 칸 간 다음 사선으로 한 칸 가는 것이 확고하고 또한 그 기물의 명칭이나 이름은 항상 정확히 기병을 뜻한다.
전쟁의 역사에서 말은 대단히 중요한 도구였는데. 그 쓰임은 상당히 달라져 왔다. 왜냐하면 말은 매우 민감한 동물이어서 대량으로 사육하기가 쉽지 않았고 이 동물을 탈 것으로 사용하는 것 또한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초에 말은 수레를 끄는 용도로 사용되다가, 전차로 활용되고. 처음에는 4인용 전차로 그 다음 3인용으로, 2인용으로 점차 발달하게 된다. 이는 처음에는 말을 모는 사람과 전쟁을 하는 사람이 전차에 함께 타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4두차와 2두차 등 말을 다루는 방법과 수레 및 전차의 발달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그러나 전차는 대략 BC 3세기가 되면 전술적인 중요성이 떨어져 기병에게 그 지위를 넘겨주게 된다. 최초의 전차에서 전차를 타고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은 방패를 든 자, 궁사, 검사, 마부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것이 기병으로 발전해도 역시 최초에는 말에 2사람이 타서. 1인은 말을 몰고 다른 1인은 활, 검 등을 쓰면서 공격하였다.
이러하던 말의 활용 수준에서.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파르티안식 활쏘기이다. 고구려의 벽화에서 보듯이 말을 타고 달아나면서 몸을 돌려 추격하는 적의 기병들에게 활을 쏘는 기술인데 말을 활용하는 최고 수준의 단계인 것이다. 이리하여, 1인 기병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BC 20C부터 풍미하던 전차를 활용한 전쟁은 이제 BC 3C가 되면 BC 8~10C경부터 파르티아(페르시아의 전신)로부터 발달되어온 기병의 세계적 확산과 전투력에 밀려 그 효용성을 잃게 된다. 이제 AD 3C까지. 전차는 전쟁사에서 보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전투용이라고 하기보다는 왕이나 장군의 위엄을 나타내는 수준에 불과하게 된다. 아마 파르티아식 기병이 BC 3세기 경에 인도에서는 대세가 되고. AD 3C까지는 전차가 전투에 어느 정도라도 활용되었다면. 이 시대가 바로 체스의 탄생 시기가 되는 것이다.
이어지는 두 개의 무기체계(전차와 기병)가 나름 공존하고 있었다는 바로 그 사실로 말미암아... 혹자는 기병이 기원전 3세기 이전의 기원전 20세기부터 나왔대면서. 왜 그 이후로 시대를 비정하느냐고 의아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 2개 전투 무기체계의 결합이 한 지역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따르는 것이다. 즉 유목민족은 기병이 강하고 농경이나 전제 국가들은 전차를 육성하는 등 중점 전투부대가 달랐다. 그런데 기병의 역량이 향상되면서. 대륙의 전제국가들도 전차에서 기병으로 무기체계를 대체하였다. 그러나 장기(체스)에서는 차가 마로 대체가 되지 않고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두 개의 무기체계가 공존하던 시대에 장기(체스)가 발명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체스에선 전차가 성벽(루크)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는 서양은 체스를 개발하지 않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체스 전파시 그들의 전투체계는 기사를 중심으로 하던 시대이어서 기병은 나이트로 바로 이해가 되었지만, 전차는 중세유럽인에게 무기체계 측면에서는 수용되기 어려웠다. 따라서 전차는 차라리 중세의 성곽으로 새로 태어나게 된다. 전차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다른 곳들도 그렇다. 사막에선 낙타가 되고. 해양국가에서는 배로 나타난다. 이것이 기병(마)은 안정적이나. 전차(차)는 각국 장기마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소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이, 상(코끼리)도 이해되지 않는 곳에선 다른 상징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체스의 비숍이다. 그러나 아무리 변화해도 그 본연의 모습은 그대로 보존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코끼리의 신성함이 전사(轉寫)된 성직 제후 비숍이다.
인도의 옛날 체스 기물들을 보면. 왕이 코끼리 위에 타고 있다. 그리고 장군이 있는데 그도 코끼리 위에 타고 있다. 따라서 최초의 상은 총사령관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
오늘날의 비숍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 첫 번째는 성직자의 모습이다. 성직제후가 역사적으로 중요해진 배경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오토 대제로부터 연유한다. 그는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세습 이슈와 무관한 주교들에게 봉토를 주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동생이 성직자인 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생시에는 많은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오토의 순행 중 성직제후들은 그에게 숙소와 말을 제공해주었고 반기를 드는 제후를 응징할 때도 매우 충성스럽게 그의 지지기반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제국 요소요소에 자리잡은 주교들의 봉토는 독일이 근대까지도 통일되지 못한 주요 원인의 부메랑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직자의 상징은 원래 코끼리가 가지는 신성함이 그대로 전사된 것이다. 석가의 탄생설화에 나오는 흰 코끼리를 연상해도 좋을 것이다.
다음 두 번째의 특징은 코끼리가 전투 기물들 중 가장 왕 가까이에 배치된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는 왕이 코끼리를 타고 있었고. (물론 인도에서) 왕이 또한 코끼리부대의 사령관이 아니었나? 하고 짐작케 한다.
과거 인도에서는 몇 마리의 코끼리를 동원할 수 있는가?가 그 나라 전투력의 척도이었다. 알렉산더의 인도 원정시에도 인도왕의 코끼리부대에 고전한 기록이 있다. 이미 그의 동방원정 이전에 코끼리를 중심으로 한 전술 체계가 인도에 확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겁 많고 다루기 어려운 동물은 총포와 기병의 발달과 더불어 그 가치를 잃고 AD 10C가 되면 전쟁사의 귀퉁이에서도 사라지게 된다.
세 번째의 특징은 그 행마의 신속성이다 그것은 쾌도난마처럼 세로로 비스듬히 없는 길을 꿰뚫고 지나간다. 마치 화살처럼.
사실 코끼리부대의 전술적 가치는 계속 변화되어 온 것이 사실이고. 한때 이 부대는 움직이는 성채처럼 견고한 안장과 코끼리 보호대를 두른 채 적에게 화살을 쏘는 궁사를 태우기도 하였다. 이렇게 보면. 왜 성직자가 전쟁에 종군하게 되었고, 그의 행마와 그의 포진에서의 위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이 잡히지 않을까.
우리 장기의 특징 중 하나가 상(象)과 마(馬)의 배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말단국가의 경우. 원래의 특성이 소실되고. 상이 왕의 좌우에 배치되어야 하는 대단히 엄격한 규칙도 무시되고 게임의 흥행을 위해 자유롭게 상상한 결과이다. 막내의 자유라고나 할까? 한걸음 더 나아가 북한에서 쓴다는 기동차(機動車) 포진 - 차와 상의 배치를 비꾼다 - 에 이르면 전세계적 수준의 자유분방함이라고 할 밖에.
우리 장기의 특징은 그 외에도 많이 있지만, 하나 더 들어본다면. 졸의 행마이다. 가장 자유로운 졸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승진이 없다. 계급상승이 없는 세계에서 유일한 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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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는 기원전 20세기부터 도입되어 메소포타미아의 전제국가들이 발달시켜 중국에는 춘추전국시대에 도입된다. 당시의 국가 위상 비교에는 전차가 몇 대인가가 먼저 거론된다.
전차가 중국의 발명품이 아니라면 그것은 서역에서 전래된 것이다. 전차는 대단히 위력적인 무기체계이었지만 약점도 있었으니. 전진으론 강하나 후진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좌우 측방으로의 즉각적인 방향전환도 어렵다. 오늘날 일본장기인 쇼기의 향차는 이러한 전차의 특성이 정확히 반영되어 있다. 전방으로는 몇 칸이라도 갈 수 있지만 후진은 안되고. 측방으로도 갈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옛날의 전차인 것이다.
그러므로 전차는 초기전투에서 상대를 좌우로 분산시켜버리든지. 좌나 우의 한쪽에서 부터 돌진하여 적진영을 초토화시켜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 공격 이후 전차를 전투에서 더 이상 활용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차두리의 폭주기관차 능력은 높이 사지만 패스워크나 크로스가 부정확하다면 그 가치가 제한될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일본 전국시대의 조총이 이와 같은 신세였다. 파괴력은 있으나. 재장전에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실전에 투입하기에는 약점이 많았다. 이를 오다가 3열 총병 전술로 전국시대. 최강의 기병대를 보유한 다케다 군대를 격파하고 전국통일의 대업의 초석을 이루는 과정은 그림자 무사란 뜻의 카케무사 란 영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일본장기 쇼기를 제외하고 다른 장기들의 자유자재로운 전차의 행마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왜 그랬을까 어떻게 전진으로 급속기어 장착한 전차가 UFO보다도 더 신속하게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가. 나는 이것이야 말로 체스의 탄생 이후 세계곳곳으로 전파된 체스의 궤적을 밝혀주는 하나의 단서라고 생각한다.
오다가 총포를 활용하여 일본을 통일하였다면 진시황은 전차를 활용하여 중국을 통일하였다고 본다. 이때의 활용이란 그 무기체계가 가지고 있는 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전술적 역량에 달린 것이다. 혹자는 어떻게 중국의 서쪽 변방인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하였는가? 질문을 한 다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섬소년들이 대통령이 되는 것처럼 변화는 주변부에서부터 온다고 하기도 한다.
제국주의론의 약한 고리가 떠오르기도 하고.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그 변증법적 합의 영광은 노예의 몫이라는 알레고리가 감지되기도 한다. 그런 측면도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과 무기체계 측면에서 진나라는 결코 후진국이 아니었다. 특히 전차 활용 측면에서는 선진국이었다. 최소한 중국 내애서는 선진 메소포타미아의 전쟁기술을 가장 먼저 흡수할 수 있는 길목에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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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장기에서 차(전차) 행마의 비현실성은 이미 논의하였다.
가장 원형의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은 쇼기의 향차이다. 그런데 우리 장기의 포는 어떠한가? 무슨 말이든지 타 넘을 수 있고(포끼리만 불가) 어디든지 멀리 날아갈 수 있다. 그래서 포를 영어로 cannon이나 catapult로 표현한다. 그렇지만. 포탄이 날아갈 수는 있겠지만. 어찌 대포가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단 말인가? 중국장기 상치는 이점 나름 합리적인 면이 있다.
상치에서 포는 이동은 차와 같이 전후좌우로 움직인다. 그러나 적의 기물을 포획하여 공격할때만 판 위의 말 하나를 뛰어넘어 공격한다. 상치에서 포는 적의 포를 잡을 수 있고 포를 타넘을 수도 있다. 이것이 전장의 현실을 보다 상징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래도 남는 의문은. 어떻게 포가 차처럼 자유자재로 행마할 수 있는지? 하는 점이다. 오늘날에도 대포의 이동은 그렇게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닌가?
앞서 언급한 바 있는 AD 10C경. 송시대의 유물로 보이는 장기 동전에 묘사된 포의 모습은 투석기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차이다. 그것은 투석기에 사용되는 돌을 운반하는 수레의 모습이다. 차와 포가 한 세트인 셈이다. 그리고 차 보다는 포가 더 중심기물인 셈이다. 이것은 중국장기에서. 체스에 없는 포가 탄생된 이유를 설명해준다.
우리나라 장기의 포는 한자의 부수가 돌 석(石)이다. 이는 쇠뇌란 뜻이란다. 네이버에서. (장기 포 쇠뇌) 를 치면 나오는 블로그에선 한국 포는 쇠뇌부대를 뜻한다고 한다. 대신 중국장기 상치의 포의 부수는 불 화(火)이어서 대포라고 한다. 따라서 상치의 포 보다 장기의 포가 더 기동성이 뛰어나단다. 그러나 내 생각은 한자의 발전단계는 잘 모르겠으나. 장기에 쓰이는 돌 석 변의 포는 분명 투석기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동전 유물의 근거 이상으로 전쟁의 스케일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장기가 불교의 길(실크로드 유사)을 따라 중국으로 전래 되었을 때. 중국에서는 이미 전차는 그 효용성을 잃은 시대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바야흐로 공성전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성을 공격하기 위해, 반지의 제왕에서 보이는 다양한 공성무기들이 고안된다. 그중 가장 중심 무기가 투석기였을 터, 또한 투석기의 경우에. 돌 포탄의 조달이 매우 중요하므로 전차는 졸지에 공격의 선봉에서 후방의 물자 조달 수레로 전락하고야 만다.
하나만 더 생각해보면 서양에서는 전차가 공성용 탑이 되는 이치가 아닐까.* 기물은 그 시대 사람들의 해석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해간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바뀌어도 기물의 수는 항상 한편이 16개라는 것이다. 동양에서나 어디에서나. 한가지 예외가 있다면 일본장기 쇼기가 20개인 것인데. 2개(각행, 비차)는 확실히 후대에 서양의 영향을 받아 도입된 것이다. 그래서 기본 장기의 개수보다. 4개가 많다(한 측 기준으로는 2개).
우리장기의 포에 대해 생각해 보면, 몇가지 독특성이 있다. 먼저 포는 포를 뛰어넘지 못한다. 다음으로 포는 포를 잡지 못한다. 두 번째 규칙은 첫 규칙의 논리적 귀결이다. 일단 넘지 못하면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포가 꼭 성채 같다는 느낌을 가진다. 즉 공격시에는 대포요. 수비시에는 성이었다. 그것이 어릴 적부터 무의식적으로 장기를 두어온 한국인의 포에 대한 느낌이 아닐까? 그래서 체스에서 루크의 모습이 성채라고 느꼈을 때, 부지불식간에 나는 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포에 대한 또다른 느낌은 점프의 화신이라는 것이다. 도약할 수 있는 기물이 따로 없는 한국장기에서 홀로 장애물을 넘나드는 포는 자유의 화신이었다. 따라서 포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 높다. 그 전장 전체를 사정권에 둔다는 측면에서는 비숍이 비교될 수 있고. 도약의 측면에선 나이트에 비견될 수 있다. 또 마주보며 전진을 하지 못하니 또한 폰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폰은 장기 그 자체이런가? 장기에 익숙한 한국인이 체스를 처음 둘 때 우선 힘든 것은 폰의 비인격성이다. 이것은 무생물처럼 지형지물을 형성하다가 함정에 빠진 적을 지뢰처럼 섬멸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포가 없는 답답함이 아닐까? 비숍의 겨냥은 화살과도 같지만 무언가 포의 둔중함은 부족하다. 그것은 가드 위를 때리는 포먼의 주먹과도 같이 상대를 무너뜨린다. 포가 없는 답답함을 그들도 느꼈을까. 결국 그들은 만왕의 왕, 전쟁의 화신인 퀸을 탄생시키고야 만다. 그래서 퀸이 죽게 되면 전세가 급격히 기우는 퀸의 전쟁, 현대 서양체스가 탄생되었다.
결국 원시 체스에서 퀸을 탄생시킨 답답함의 반대편에서 장기와 상치는 포를 탄생시켰다. 체스의 전 기물의 성격을 다 보유하고 있는 다재다능함이런가!!!
그러나 우리 장기에서는 포가 2말이므로 하나를 포기하고 둘 수도 있다. 전략적 차원에서. 체스의 퀸처럼 중후반에서야 비로소 등장하는 보스도 아니다. 적극적으로 초반부터 적의 약점을 공략하는 홍의장군인 것이다.
중국장기 상치에서의 포가 좀 더 원시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동시에는 차와 같으냐 공격시에만 훌쩍 뛰어넘어 공격한다. 이동과 포획이 다른 행마의 방식은 서양장기 체스에서의 폰과 중국장기 상치의 포에서만 발견된다. 그외의 어떤 나라의 장기와 다른 종류의 기물에서도 포획은 이동 가능한 지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대원칙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외가 발생하게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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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의 발달은 단순에서 복잡으로 발달하여왔다. 그것은 경주게임에서 전략게임으로의 전개이다. 경주게임이란 우리의 윷놀이를 연상하면 된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라고 할 때의 그 경주Racing이다.
초기의 경주게임에서. 필수적인 것은 주사위이다. 윷놀이에서의 윷이 그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우연에 지배된다. 소위 운에 의해 좌우되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경주게임에는 단순히 운만 있고 전략은 없나?
전략이 있다. 그것은 경로의 선택이다. 윷놀이에서도 윷말 놓기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운명에 좌우되는 경주게임에서는 다양한 특수 규칙이 고안되어 게임에 재미를 더한다.
윷놀이 에서. 뒷도는 비교적 최근에 나온 규칙일 것이다. 그리고 말을 포개는 것은 ~동 이라고 한다. 윷판의 끝 즈음에 함정이 그려진다. 모, 윷에는 다시 할 기회를 주지만, 결합하여 쓸 때는 사리(모,윷)를 먼저 써야 한다는 로컬 룰도 있다.
매우 정교하게 경주 게임이 발달하면 '운칠기삼'의 카드게임 수준이 되지 않을까? 이 정도 수준이 되면, 그 30%의 부분에서의 약간의 차이가 밤새 거듭되는 게임 후 다음날 아침에 승자와 패자를 확연히 구분지을 수 있다.
윷말의 기본 옵션은 5개이다. 도, 개, 걸, 윷, 모. 도는 돼지, 개는 개, 모는 말인데 윷은 무엇일까? 우리말 소를 뜻하는 한자의 음은 '우' 인데, 알타이어 중에서 소를 뜻하는 '우츠'란 말이 있다고 본 듯해서, 찾아보니, 알타이어 중에서 소를 뜻하는 말 중에 우츠가 안보인다. 위니겐, 위네엔, 외퀴즈, 위켈 등이 보인다. 아마 한자음 우를 고대 음으로 재구하면 우츠로 된다고 어디서 본 듯하다.
모 국어학자는 윷을 슟이라고 하는 방언이 있으니 우리말 옛음 쇼와 근사하다고 하기도 한다. 즉 소 쇼 슈 슛 윳 윷의 전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우츠와 소가 더 연관 있어보인다. 그것은 자음을 C, 모음을 V라고 하고. CVCV로 음이 전개될 때. 우츠는 VC이고. 소는 CV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쇼와 윷도 동일한 대응체계를 이룬다. 음성모음 우가 양성모음 오가 되고 ㅅ이 ㅊ이 되는 것인데, 분명 이유가 있겠지만, 이게 또 가능한 것이 고어와 음운의 세계이다.
그런데 수사를 연구하는 저술들을 보면 걸을 3에 많이 연결 짓고 있는데 많은 근거가 있다. 그런데 위겔(알타이어, 소)도 따지고 보면 걸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에서 나오는 파생어 중 끌다의 '끌'을 걸과 연관짓는다. 그러는 중 우리말 3을 나타내는 말 중 셋의 세를 생각할 때 소의 쇠와도 관련성이 느껴지는 것은 웬 느낌 어원설일까? 일단, 윷이 소라면 그럼 걸은 어떤 동물?
설은 여러가지인데 염소, 양, 코끼리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동물들은 모두 우리 풍토에 어울리지 않는 동물들이어서 선뜻 내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윷놀이는 한국에 특유한 놀이이기 때문이다. 걸을 뜻하는 한자어가 있으니(한자어와 고알타이어는 서로 어원을 주고 받는다.) 양으로 하는 것은 쉽겠으나, 그렇다면, 몽고에 같은 놀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유목전통을 이어 받았고 윷놀이가 그 유산이라면...
도는 한 칸, 개는 두 칸 .... 모는 다섯 칸 이렇게 전진한다. 우리의 윷놀이는 그런데 1차원 공간인 선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옆으로도 가지 못하고(2차원, 면), 점프하지도 못한다(3차원, 입체).
인도에선 이 경주게임을 체크무늬 면이 그려진 천 위에서 즐겼다. 그 보드판은 십자형도 있고. 일자형도 있고. 사각형도 있으나, 우리처럼 선 위의 점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면 위의 칸을 따라 움직인다.
면 위의 칸을 따라 움직이게 되면, 다양한 옵션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면, 한 칸 전진 이것은 졸이다. 두 칸 전진 이것은 차이다. 사선으로 한 칸 전진 이것은 사(상치), 사선으로 두 칸 전진 이것은 상(상치) 이다. 졸과 사를 합치면 마이다. 여기에 차의 경우 앞에 장애물이 있는데 이를 3차원으로 뛰어넘으면, 이것은 포이다. 어떤 목적지를 향하여 외곽에서부터 가운데로 향해가는 여정을 생각해 볼 때, 사선으로 가는 옵션은 엄청난 혜택이다.
체스의 선행이 경주게임이라고 생각해 볼 때, 2인 체스 선행설과 4인 체스 선행설은 그 오랜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도 되지 않을까? 윷놀이를 2사람이 하든 4사람이 하든 별 상관 없는 것과 같은 이치. 4인 체스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2편의 연합과 연맹의 전투였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 이때 마주보는 2부대가 한 팀을 이룰 수도 있고 근접한 2부대가 1팀을 이룰 수도 있다. 4명이 참석하므로 4인 체스? 그러나 2팀이 대결하므로 2편 체스, 각자가 하면 진짜 4인 체스가 되나 직접 해보면 승부도 나기 힘들고 너무 재미없다. 그러므로 빠르게 4부대 2편 체스에서 2인, 4인이 놀다가, 오늘날 형태의 2인 체스로 발달?*
캐슬링은 무엇일까? 킹과 루크가 움직이는데 고대 봉건시대에. 25세기 공간이동의 기술을 시현한다. 루크가 성채이니까 궁성을 구축하는 것이다. 어쨌든 킹은 좌든 우든 2칸으로 이동거리가 정해진 데 반해, 루크는 2칸을 날 때도 있고, 3칸을 날라갈 때도 있다.
선지자가 산을 이리 오라 하면 산이 이리 오고 강이 저리 흘러라 하면 저리 흐르겠으나, 현실에선 이 경우 많은 사람의 삶이 위태로우므로 내가 움직인다고 마호멧이 말씀하였지만, 체스판에선 킹이 성채를 움직인다. 마치 레버를 당기면 작동하는 시스템처럼.
인도나. 인도지나의 규칙을 보면 초반 7수 동안은 궁성을 구축하도록 되어 있다. 그것은 캐슬링 없는 캐슬링인데 킹에게는 초기에만 나이트의 행마를 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된다. 그리고 비숍에게도 직선으로 또는 사선으로 두 칸 뜀이 허용된다. 결국 비숍과 나이트를 비키게 하고. 킹이 나이트 행마를 두 번 하고. 루크가 킹의 외곽으로 옮기는 5수로 궁성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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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란 무엇인가? 장군을 잡는 놀이이다. 바둑은 위기라고 한다. 둘러치는 놀이란 뜻이다. 그것은 영토전쟁이다. 바득을 제일 잘한 나라는. 러시아이다. 그곳이 동토이든 어떻든 간에 영토를 많이 확보하고 볼 일이다. 그러고 보면 프랑스와 독일은 러시아를 상대로 장기를 둔 지도 모른다. 모스크바를 점령하면 전쟁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러시아는 모스크바를 즉 장군을 적의 아가리에 미끼로 던져주고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것은 세계사가 단순함을 거부한 징표이다.
미얀마에서 장기를 무어라고 하느냐 하면 영어로, Sittuyin이라고 쓴다. 그래서 시투윈이라고 발음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미얀마어 교본을 보니 yin으로 발음되는 미얀마어 철자가 외래어의 경우에는 rin으로 발음되는 것을 알았다. 미얀마 주재원에게 물어보니 싯뚜린으로 발음될 거라고 한다. 그리고 그 뜻은 군대의 표상이란다. 인도에서 장기는 원래 차툴앙가이었다. 차툴은 4, 앙가는 부대. 결국 군대를 이루는 보병, 기병, 상병, 차병을 뜻하는 것이다.
그런데 왕이 아랍어로 샤이므로 샤의 놀이란 뜻에서 체스라고 하게 되었단 얘기. 차투랑-가의 음운과 '장군의 놀이' 란 뜻이 모두 들어있는 말이 중국어 '상치' 이고. 한국의 '장기'이고. 일본의 '쇼기'이다. 그것이 미얀마에선 '싯뚜린' 또는 '싯투린'이 되고 전군의 표상이 된다. 영어로 Sittuyin으로 표기된다 해서 시투윈은 아닌 것이다 ( 현재로서는 이렇게 생각됨. 미얀마어 전문가의 자문이 필요할지도. ㅋㅋ).
그러고 보면. 바둑은 영토전쟁이지만 잡는 것도 둘러쳐서 먹는다. 아메바 같은 느낌이 방금 든다. 잡는 것도 둘러치고. 승부도 둘러친 영역의 크기로 한다. 그러니 위기, 둘러치는 보드게임이라 할 만하다.
그에 반해 장기는 장군 잡는 놀이이다. 체스는 왕 잡는 놀이? 인도와 아랍에서 왕이 직접 전장에 참가하여 지휘소가 이동하는 반면, 중국과 한국에선 궁성 안에서 왕 또는 장군은 전장의 상황을 통제하지만 지휘소를 옮기진 않는다.
둘러쳐서 먹는 위기 바둑에 반해 장군 잡는 장기의 잡는 방법은 내 앞길에 걸리적거리는 놈 제거하기이다. 그런데 폰은 그 예외이다. 행마는 한 칸 앞으로 전진인데, 공격은 사선으로 겨냥한다. 이미지로는 희랍의 팔랑크스 대형이 떠오른다.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이 BC 3세기경으로 기억되므로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체스는 BC 3 ~ AD 3C 경탄생했을 것이므로.
공자님이 벌써 장기에 대해 언급하였다고들 한다. 논어 17 양화 편에 보면 '박혁'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그러나 이곳의 '박'은 장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유행하던 '육박'을 뜻하거나. 아예 '박혁'이란 경주 게임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 삼국사기 개로왕 편에도 개로왕이 장기와 바둑을 좋아하였다는 구절이 있다. 나는 그 한자가 궁금하여 교보문고에 가서 영인본을 확인하였다. 역시 '박혁'이라고 되어 있다. 논어와 유사한 용례이다. '혁'은 보통 바둑을 가리킨다.
논어를 근거로 중국에서 장기가 먼저 창안되었다는 주장을 중국에서 하고 있고. 한자와 중국문화를 잘 모르는 서양 체스 전문가들은 장기의 기원지에 관한 결론(인도)을 유보하고 있다. 그것도. 중국의 국력이 상승하면서 생긴 현상의 한 모습이다.
체스의 유물이나 근거는 페르시아와 아랍이 가장 앞선다. AD 4~6세기 경의 유물과 문헌이 보인다. 그런데 이 아랍측에서는 한결 같이 체스는 인도에서 전래되어 온 것으로 전승하고 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인도인들은 자기들이 체스를 발명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더더우기 관심 조차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에 온 인도 직원에게 체스는 어디서 기원하였냐고 물어보니, 영국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인도인들의 역사의식 부족은 심각해서 인도 역사의 연대는 거개가 추정에 의존한다. 인도에 가서 인도 역사 일람표를 사 보면 연대가 대개 물음표 투성이다. 그나마 그 연대추정도 불도를 구하러 간 지나 승려의 기록에 의거하는 것이 태반이다. 사실이 이러고 보니 주인인 인도인은 제 집 물건에 관심 없는 틈을 타서 중국인들이 겨우 AD 9C나 되어야 유사한 증거나마 있는 주제에 한자의 다의성과 상징성을 기반으로 자신이 주인이라고 나서고 있는 양상이다.
춘추전국시대에 바둑은 두어졌는지는 의문이다. 벽화나 문헌 유적에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박보의 박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육박이 성행하였다. 벽화도 있고. 기물 기반의 유물도 있고 전거도 많다. 이것은 기원 10세기 까지 다양하게 발전해오다 사라진다. 육박은 일종의 경주게임으로 추정되고 정확한 게임 규칙은 밝혀지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경기자는 보드판 양측에 자리하여 엉거주춤 마주서서 일종의 주사위를 던져 게임을 진행하였다. 육박이 장기의 선구라고 하기 위해선 이 부분이 규명이 되어야 한다.
장기에 코끼리가 있는 것이 중국 기원설의 약점이다. 이들은 두 가지로 이를 회피하는데 한 가지는 상이 코끼리가 아니라 재상을 뜻하는 상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에도 코끼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기원전 아득한 옛날에 중국의 기후가 지금 같지 않았을 때 중국에도 코끼리가 있긴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장기가 발명되기 이전의 아득히 먼 시대이다. 춘추전국 시대에도 남만에선 코끼리를 전쟁에 활용한 기록이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의 중국 입장에선 오랑캐 변방일 뿐이다.
국력을 코끼리 동원 역량으로 보는 고대 인도와 전차 동원 역량으로 보는 고대 중국을 놓고 볼 때, 그러고도 코끼리 놀이란 뜻의 상치라고 부르는 게임의 기원이 어디이어야 할런지는... 게다가 그 전차마저도 서역으로부터 수용한 것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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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체스판으로 쓰고 있는 8x8 =64 칸의 보드에는 체크무늬가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체크무늬가 없는 ashtapada라는 판을 사용하였다. 여기서 아슈타는 8, pada는 발(foot)의 뜻으로 거미를 지칭하기도 한 모양. 거미가 다리가 8개이니까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으나, 아닌 게 아니라 거미줄 같은 느낌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느낌을 가지고 싶으면 칸으로 다니는 체스가 아니라 선의 교차점으로 다니는 장기의 이미지를 그려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체스는 평면 상의 전투인데 반해, 장기는 공중전의 양상일 것인가? 홍콩 무협영화에 보면 무술 고수들이 여러 개의 통나무 위에서 또는 장애물이나 주위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결투하는 장면이 연상된다.
그런데 이 아슈타파다 판에는 각 코너와 센터 그리고 미들에 X자로 대각선이 그어진 칸이 있다. 이 칸의 이름이 아슈타파다 게임에서 무어라고 하는지 아시나요? 놀랍게도, 그것을 castle이라고 한다. 장기의 궁(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름도 그 표시도.
게다가 그 중, 차투랑가에선, 왕(라자)이 놓인 그 캐슬을 가리켜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시나요? Throne(왕좌, 옥좌)이라고 한다. 이 또한 놀랍지 않나요? 4인제 차투랑가에선 이때 다른 X칸은 그냥 house라고 한다.
Racing게임인 아슈타파다에서 캐슬의 기능은 1) 말이 들어가고 나오는 구멍, 2) 길의 진로가 직각으로 꺽인다, 3) 이곳에 들어간 말은 잡히지 않는다, 즉 안전, 4) 그곳에서는 말을 2개 겹칠 수 있다. 겹친 말은 겹친 말로만 잡을 수 있다.
대충 이렇게 볼 때, 장기의 궁이 체스에는 없는데 이것은 무엇인가? 하겠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다. 또한 초기의 2인제 차투랑가 중에는 10X10 보드( dasapada 라고 함. )에서 실행 되는 것도 최근에 발견, 여기에 보면, 왕/대신, 상병, 낙타병, 기병 그리고 성 위의 병사가 있다. 전체의 말수는 20개로 현대 쇼기와 같다. 그런데. 여기서 성 위의 병사가 새롭다. 이게 바로 루크가 아닌가? 남는 것은 낙타인데 없어진 것은 체스요, 있는 것은 장기이다. 내 생각에는 낙타가 수레인 차가 되고, 성병(캐슬)이 투석기(포)로 된 것으로 보인다. 그 기물의 이미지로 유추할 때... 그러나 장기의 배치 순서와 비교해 보면 그 반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의 장기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대장기와 소장기가 있다. 보통 대장기의 경우엔 두 칸씩 늘어간다. 체스의 경우에도 중세 중부유럽(독일) 장기가 대장기이다. 이것이 8칸에서 발전된 것이라고만 볼 것일까?
장기와 체스의 다른 점 중에 공간인식의 문제가 있다. 체스는 칸에서 움직이지만 장기는 교차점을 따라 움직인다. 네이버 지식인에 보면 칸은 정주민의 양식이고, 교차점은 유목민의 양식이란 의견이 있다. 그렇다면 중국인이 유목민이란 것일까? 또 몽골장기 샬탈은 체스 유형인데, 그들이 정주민이란 것일까? 아니면 유목민인 한국인이 중국에 장기를 전파했다는 것일까?
다음으로 체스가 중국에 왔을 때 그 고유의 놀이인 바둑에 영향받은 것이란 의견이 있다. 장기가 언제 전파되었는지도 애매하지만, 바둑이 언제 발생했는지도 분명치 않다. 잠정적으로 인도에서 8세기~9세기에 전래되었다면, 바둑이 선주해 있었던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바둑은 또 어째서 교차점을 활용하는 것일까?
인도유러피안들과 중국문명은 무엇이든지 다르지만, 선 위의 행마와 칸 위의 행마 또한 다르고야 만다. 본질은 같아보이는데도, 표현형이 다른 것이다.
가설 1) 판서도구의 특징을 반영한 것이다. 이것은 붓과 먹에 대하여 펜과 검댕의 차이 때문이다.
가설 2) 그것은 지형지물의 지도에 대한 인식방법의 차이이다. 동양의 지도와 동양화의 표현방식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가설 3) 선은 길이요 칸은 땅이다. 땅따먹기가 중요한 곳 즉 봉건제에선 칸이, 전제 왕권과 군현제가 확립된 곳은 길이 중요하다. 그러고 보면 중국문명권에서 근대까지 지방 분권적 봉건제를 유지한 일본장기가 칸장기인 것은 특기할 만하다.
가설 4) 다 필요 없다. 세계관의 차이이다. 인도의 우주관이 반영된 아슈타파다판을 활용한 것이 체스판이고, 하도낙서의 세계관 반영이 장기이다.
다만. 바둑이 361로인 것이. 동양의 역법을 반영한 것이라는 믿음은 후세의 견강부회임이 드러나고 있다. 13줄, 15줄, 17줄 바둑판들이 발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태극도설의 심오한 철학 자체의 성립도 후대의 소산이지만, 바둑은 완성된 철학과는 별개로 조금씩 발달되어 온 것이다. 그렇다면 부장품도 없는데 선진(先秦)문헌에서 나오는 명확한 설명이 없는 기나 혁이 지금의 바둑인지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다만 바둑에 깃든 세계관이 장기에도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보인다.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전략게임을 잉태한 경주게임의 차별적 특이성으로부터 생각을 해볼 문제이다. 선을 따라 나아가는 윷놀이와. 칸을 따라 나아가는 아슈타파다 등 인도의 경주게임의 차이를, 그것을 표현하고 인식하는 사람들의 차이 문제이다.
(2010년의 글, 2012.11.16. [쓰지 않는 배: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