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그 기원은 무엇인가? 일설에 따르면, 인도라 하고, 페르시아라 하고, 중국이라고 한다. 여기서 문헌적으로나 고고학적 증거로서 가장 앞선 곳은 페르시아이다. 그런데, 페르시아의 문헌에서는 페르시아 사람들이 체스의 기원을 인도라고 하고 있으며, 또한 그렇게 믿고 있다. 따라서 페르시아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페르시아 기원설을 주장할 이유가 있는지가 의문이다.
사실 페르시아•인도와 중국의 관계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페르시아는 인도와 접경이므로 문화가 쉽게 왕래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도와 페르시아를 하나의 문화단위로 묶어서 인도•페르시아 기원설과 중국 기원설의 비교가 오히려 의미 있는 구분이 아닐까. 만약 인도•페르시아 기원설이 유력하다면, 이를 인정하고 그다음에 인도와 페르시아의 선후를 비교하는 것이 순서이리라.
현재의 장기의 형태를 보더라도 이 구분의 유용성을 알 수 있다. 세계의 장기를 일별하면, 체스(체스Chess, 차투랑가Chaturanga, 막룩Makruk, 싯투린Sittuyin, 샬탈Shartar) 그룹과 장기(장기Janggi와 상치Xiangqi) 그룹으로 나뉜다. 제3의 장기로 생각되는 것은 쇼기Shogi 라고 할 수도 있는데, 쇼기는 일종의 트기 같은 느낌이다. 쇼기를 제외하고 생각할 때, 체스와 장기는 명확히 구분 된다.
체스와 장기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정리해 보면
[체스] [장기] [쇼기]
1. 장기판
-착점 위치 칸 교차점 칸
-착점 수 8*8=64 9*10=90 9*9=81
-특수 지역 궁
cf) 상치: 하계
-특수 표시 체크무늬 졸/포 X마크
2. 기물
-수 16개 16개 20개
-종류 6종 7종 8종
승진시 2종+
용왕, 용마
-형태 피규어 납작한 원통 납작한 오각
cf) 장기(팔각). 뒷면 승진기물
-피아. 백(선)과 흑 청(선)과 홍 구분 없음
cf) 상치: 홍과 청
-승진 졸의 승진 없음 전기물 승진
cf) 상치: 졸 옥•금 제외
도강 측방행마+
3. 포진 2열 포진 4열 포진 3열 포진
공통점은 또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장기와 체스의 기본 요소, 즉, 서로 다른 힘을 가진 말들이 있고, 그 중 어떤 한 말(King, 왕, 장군)을 잡으면, 다른 말의 다소에 관계없이 승패가 결정된다는 점일 것이다.
이러한 게임의 기본 요소 외에도 기본적인 기물들의 일치를 볼 수 있다. 즉 체스의 기물인 King, Queen, Bishop, Knight, Rook, Pawn에 해당하는 말들이 고스란히 장기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장기에는 거기에 덧붙여, 포(Canon/ Catapult) 가 더 있다. 쇼기에는 Bishop의 변형이 2종류(은장, 각행), Rook의 변형이 2종류(향차, 비차) 있으나, 포는 없다.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볼 때, 체스가 더 단순한 형태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체스가 더 기원에 가까운 형태라고 생각된다 (복잡한 것이 더 오래된 것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또한 체스이든, 장기이든 Elephant(Bishop, 상)가 있는데, 역사적으로 중국에서는 코끼리 부대가 중요한 전투부대의 단위가 아니었다. 중국인들은 기원전 4000년~2000년경에는 중국에서도 밀림이 존재했으며, 또한 코끼리가 번성했다는 증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장기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명확하고도 특수한 기능을 분담하는 전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 전국시대(기원전 7C~2C)에는 코끼리가 존재하지 않았고, 또한 그러한 부대 편성과 관련한 기록도 볼 수가 없다.
민족성 측면에서도 인도인은 기록에 무심한 반면에, 중국인은 기록을 중시하는 문화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어떤 기록에서도 최소 AD 7C 이전으로는 장기에 관한 명확한 기록을 볼 수 없으며, AD 10C를 넘어야 비로소 많은 문헌 기록이 보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BC 5C의 기록으로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어록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게으른 사람 보다는 '博奕(박혁)'이라도 하는 사람이 낫다” 이 기록에서 '博奕(박혁)'을 장기와 바둑으로 번역하고 있어 우리와 같이 한자문화권에서 자란 사람들은 은연중에 장기가 중국에서 발상한 것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여기서의 博(박) 이란, 六博이란 고대 중국의 놀이라는 것이 최근에 밝혀지고 있다 ('奕혁'은 바둑일 수도 있으나, '博'과 '奕' 모두 '六博'을 뜻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육박은 우리의 윷놀이와 같은 일종의 Race 게임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확한 Rule은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우리는 이 六博에 관해서는 기원전부터 AD 10C까지 문헌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상당히 많은 증거물을 확보할 수가 있다. 장기가 그 시대에 있었다면, 왜? 이런 유물이 없는 것일까?
따라서 중국인들은 마지막으로 이 六博에서 장기가 발생했다고 하는데, 만약 육박이 장기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하더라도 그것에 합당한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것인데, 육박이 어떤 Game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육박으로부터 장기가 발생했다는 주장의 근거는 매우 빈약하다. 사실, 육박을 하는 사람들을 묘사한 그림을 볼 때, 육박과 장기가 유사한 놀이였으리라는 추측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육박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일어서서 움직이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만약 장기 두는 사람들을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묘사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상의 근거를 종합해볼 때 장기의 중국 기원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다시한번 이상의 추론을 정리해보면,
1) 체스가 장기 보다 장기판, 기물 등의 여러 가지 측면에서 더 단순하다. 단순한 것이 더 기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2) 중국에서도 장기를 상치(象戱, 象棋)라고 하는데, 이 놀이에서 코끼리(Elephant)를 상징하는 말이 있다는 것이 상당한 특징으로 여겨진 것을 알 수가 있다. 유사시대에 중국에는 코끼리가 없었다. 장기는 유사시대 이후에 개발된 것으로 코끼리가 없는 중국에서 발상되었을 리가 없다.
3) 중국은 역사기록에 투철한 민족성을 가지고 있어, 장기에 관한 빠른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장기가 최소 AD 6C 이전에는 중국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4) 장기의 선조라고 중국인들이 주장하는 육박(六博)의 경우, 정확한 Rule이 밝혀지지 않았고 또한 Race Game으로 생각되어 장기가 거기에서 유래되었다고 인정하기가 힘들다. 다만, 체스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되었다고 생각할 때, 체스가 장기로 변형되는 과정에서, 육박(六博)이 일정 부분 장기(Rule 또는 장기판)에 영향을 끼쳤을 수는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장기의 중국 기원설을 부정한다면, 어디가 그 발상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해 답할 때이다.
이것은 일단, 페르시아의 기록을 따를 때, 페르시아에 가까운 페르시아 접경의 인도, 즉 오늘날의 파키스탄 어디쯤이 그 발상지일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음으로 페르시아에 비해 인도에는 코끼리가 아주 많고, 코끼리 부대가 주요 전투부대로 사용되었음을 여러 문헌기록에서 알 수가 있다.
또한 체스에 관련한 기록은 아니지만, 다른 인용 자료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차투랑가Chaturanga (Chatur(四) Anga(員)) 라 하여, 4가지로 부대를 편성하였다. 그것은 전차부대, 기마부대, 코끼리부대, 보병부대인데, 오늘날 체스의 전신으로 평가받는 4인 Chess의 일종인 차투랑가Chaturanga를 살펴보면, 그 전쟁을 수행하는 주요 부대의 특성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1) 보병부대가 4 말, 그 뒤로 2) 전차부대, 3) 기마부대, 4) 코끼리 부대가 배치되어 있으며 맨 오른쪽에 5) 왕이 포진을 하는 형태이다. 따라서 가장 앞선 형태로 왕을 포함하여, 5가지 기물의 체계로 체스가 형성되었음을 쉽게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차투랑가의 뜻은 4가지의 부대 편성, 보병의 4개군단, 4인 체스
이러한 전쟁 문화적 측면에서 누가 보더라도 인도를 이길 만한 지역은 없을 것이다. 일례로, 몽고장기인 샬탈Shartar에서는 코끼리Elephant를 낙타Camel로 대체하고 있다. 만약 페르시아에서 체스가 개발되었다면, 코끼리 부대 보다는 낙타 부대가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2010년의 글, 2012.11.16. [쓰지 않는 배: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