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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Jul 24. 2016

대변과 차변에 대하여

조영필

대변과 차변에 대하여 - 단식부기의 흔적




대차대조표가 지금은 이름이 바뀌어 재무상태표가 되었다.


회사에서 기업분석 업무를 하기 위해 처음 대차대조표를 공부하였을 때, 차변과 대변이 너무 헷갈렸다.


차변은 자산이고, 대변은 부채와 자본이다. 그런데, 차변의 차(借)는 주로 돈을 빌릴 때 쓰는 말이고, 대변의 대(貸)는 주로 돈을 빌려줄 때 쓰는 말이다. 즉, 말의 용례를 보면 차(借)는 차입, 차관, 차용 등으로 돈을 빌릴 때 쓰고, 대(貸)는 대부, 대여, 대출 등 돈을 빌려줄 때 쓴다. 그런데도 부채 즉 빚이 대변이고, 자산을 차변이라고 하니, 이해가 안될 수밖에 없다.


원어로 따져보아도 차변이 debit이면 debt로서 분명 부채(빚)이란 뜻이고, 대변이 credit이면 분명 신탁(믿고 맡김)이란 말이다. 즉 원어와 번역어는 너무도 정확히 그 뜻이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도 자산이 있는 좌변을 뜻하는 말을 차변(debit, 부채)이라 하고, 부채가 있는 우변은 대변(credit, 신탁)이라고 하니, 어딘가 말이 바뀌었어도 완전히 반대로 쓰여져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헷갈림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차(借)와 대(貸) 두 한자의 훈(訓, 새김)이었다. 차(借)의 새김은 '빌'인데, 이것은 '빌릴'이 마땅할 것이다. 또한 대(貸)의 새김은 '빌릴'인데, 이것은 '빌려줄'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내 생각이고, 여러 고매하신 국문학자나, 한문학자님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다르기 때문에, 아직도 이 글자들의 새김을 바꾸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매일경제의 지식백과에 따르면, '로마시대에 주인이 노예에게 금전을 대여하고 이것을 오른쪽에 기입하였는데 대여해준 것을 기록하는 곳이라 하여 대변이라 하였고, 차입하는 사람은 왼쪽에 기입하였는데 차입해온 것을 기록하는 곳이라 하여 차변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된 것이다. 즉, 주인이 재산의 관리를 위임하기 위하여 노예에게 재화를 공급하고 후일에 재화를 회수하는 것을 기록하면서 생긴 것들이다.' 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대변을 얘기할 때는 주인 → 노예로 서술하고, 차변 얘기할 때는 차입자(노예?)로 기록하더니, 정리하는 곳에서는 노예가 재산관리인으로 둔갑하고 있다. 결국 처음에 노예라고 지칭한 것은 단순한 노예가 아니라, 상당한 실세(재산관리인 또는 마름)인 주인의 대농장을 경영하는 노예라는 것이다. 즉, 횡설수설하고 있는 인상이다.


그리고 대차대조표, 즉 복식부기는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에서 개화하였는데, 이것이 어찌해서 로마시대까지 소급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는 수 없이 영문구글까지 뒤져보아야 하였다.


영어판 위키피디아(debits and credits)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


debit과 credit의 정확한 기원은 모른다. 다만, 이 용어가(개념이) 처음 사용된 것은 루카 파치올리의 1494년 저작인 [대수·기하·비 및 비례 총람]에서이다. 어떤 이론은 여기서 파치올리가 debere(to owe)와 credere(to entrust)를 오늘날의 debit과 credit에 대응해서 사용하였다고 한다. 또한, 그로인해 Dr.과 Cr.의 약어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박하는 이론도 있는데, 파치올리는 debit과 credit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고, 단지 좌변에 대해서는 Per(Latin for 'from')를 그리고 우변에 대해서는 A(Latin for 'to')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차변과 대변이 더욱 헷갈리는 것은 이를 가리켜 차대라고 하지 않고, 대차(대조표)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대(貸)가 차(借)의 왼쪽에 있다보니, 좌변이 대변 같고, 우변이 차변 같은 것이다. 내가 맨날 이것을 헷갈려하니, 나의 상사가 이렇게 말해주었다. '화장실에서 어느 손을 쓰는지 생각해 보라.'라고. 이후로는 대변과 차변의 방향을 더이상 헷갈리지 않아도 되었으니, 매우 고마운 가르침이었다.


차변과 대변이 이처럼 혼동되는 것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파치올리의 복식부기의 원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파치올리의 설명에 따르면, 어떤 거래이든지 두 개의 쌍(duality, 복식)으로 나타낼 수 있으며, 이 경우, 한쪽에서의 채권이란, 다른 한쪽에서의 채무이다. 즉 가치의 원천(source of value)을 나타낸 것이 대변(credit)이며, 가치의 귀결(destination of value)을 나타낸 것이 차변(debt)이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대차대조표를 설명하는 전문가들은 모두 이 용어의 의미에 대해 언어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다만 복식부기의 기호(또는 부호)로만 받아들이라고 누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 부호가 종래의 상식과 너무나 다르니!


복식(duality)의 원리를 설명하는 문장 중에 다음의 표현이 있었는데, 상용의 어구이지만,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아주 적절하다 하겠다.


"차변과 대변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In a closed system, every 'Debere' must have a corresponding 'Credre' and vice versa. In other words, 'Debere' and Credre' were two sides of the same coin. (In finance - when someone 'entrusts' money then someone else ends up 'owing'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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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을 1차 쓴 후, 위키피디아의 또 다른 표제어(history of accounting)의 설명을 주의깊게 읽어보았더니, debit와 credit이라는 용어가 비로소 이해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복식부기의 용어의 기원은 단식부기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 단식부기에서는 고객(customer, debtor)이 빚진 것(외상?)은 debit(he owes)이고, 전주(creditor)가 맡긴 것(투자금?)은 credit(he entrusts)이라 하였다고 한다. 즉 이러한 용례가 단식부기에서 복식부기로 승계되었다는 것이다.


상기 내용에 따라, debit(차변)과 credit(대변)의 용어는 나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근거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부연하면, 차변의 빚(debit)이란 나의 빚이 아닌, 타인의 빚이며, 대변의 꿔줌(credit)이란 나의 꿔줌이 아닌 타인의 꿔줌이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Dr.이 debtor에서 Cr.이 creditor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즉 내게서 물건을 신용으로 가져간 사람들(debtor)의 금액(외상)을 적어놓은 것이 debtor 계정으로 debit(차변)이 된 것이고, 내게 물건을 신용으로 주거나 돈을 꾸어준 사람들(creditor)의 금액을 적어놓은 것이 creditor 계정으로 credit(대변)이 된 것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매일경제 지식백과의 로마시대 운운은 바로 이 단식부기의 기원과 관련한 어떤 전거(story)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또 루카 파치올리가 from(Per)과 to(A)를 사용했다는 사실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상당히 헷갈리는 내용이다. 왜냐하면, 우변을 자산의 원천이라고 우리가 이해한다면, from(Per)이 우변(대변)이 되어야 할 것 같고, 좌변을 자산의 쓰임이라고 한다면, to(A)가 좌변(차변)이 되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source를 다 확인해보아도, from을 좌변(차변)으로, to를 우변(대변)으로 쓴 것은 틀림없었다.


따라서 나는 이 전치사들 앞에다가 owe를 넣어 생각하면 그나마,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즉 'owed from debtor'(채무자로부터 신세짐을 당한)의 그것이 차변(debit)이고, 'owed to creditor'(채권자에게 신세진)의 그것이 대변(credit)이 되는 것이다.


또는 전치사를 계정명과 결합할 수도 있다. 차변은 'from debtor'로 채무자들로부터 수취해야 할 나의 자산이고 대변은 'to creditor'로 채권자들에게 갚아야 할 나의 채무와 함께 나와 동업자의 자본이 된다.


이제까지 여러 교과서적 가르침들은 한결같이, debit과 credit을 언어적으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부호적으로 이해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상과 같이 이 두 회계의 기초용어는 언어적으로도 충분히 이해될 수가 있는 것이다. 다만 기원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인 것이다.


참고: 영문판 위키피디아(Debits and credits, History of accounting), Basic accounting concepts 2 - Debits and Credits


(2015. 03. 22)


Note:

아래는 상기 본문이 저의 TISTORY 블로그에도 동일하게 게재되어 있는데, 그 댓글 중에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의 중요한 정보가 있어 이를 공유합니다.

'행인'님: "항상 궁금했던 내용, 이 글을 보고 잘 배우고 갑니다.//

내용중에 빌借, 빌릴貸가 헷갈리는 까닭은 표준어 규정이 개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빌다'는 현재의 '빌리다'는 뜻이었습니다. '빌리다'는 현재의 '빌려주다'는 뜻이었고요.//

그런데 많은 언중들이 '빌다'를 써야할 때 자꾸 '빌리다'를 쓰니, 표준어 규정에 아예 '빌다'를 버리고 '빌리다'를 표준어로 못박아 버렸습니다(표준어 규정 제2장 제1절 제6항 참조. 기도하다, 구걸하다는 뜻은 그대로 '빌다'입니다). 그 흔적은 현재 네이버사전 빌다3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우리말 표준어는 바뀌었는데 옥편의 새김은 예전 그대로니 빌借, 빌릴貸로 남아 있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참 혼란스러운 일입니다. (현재 네이버 한자 사전에는 빌借만 빌릴借로 바꾸어 놓았군요^^ 사실상 반대의 뜻인 두 한자가 빌릴借, 빌릴貸 같은 새김으로 되어 있으니 더욱 헷갈리겠지요.)" (2022. 7. 21.)


출처: https://billyoung.tistory.com/300?category=487523 [쓰지 않는 배]

윗글은 이글을 최초 게시했던 블로그 주소인데, 중복을 피하기 위해 한동안 비공개로 하였다가, 다시 공개로 전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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