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우공이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필 Zho YP Apr 16. 2023

세와 기업가

박명호, 기업이론과 기업인 : 역사적 고찰



세이에 의하면 인간산업(human industry), 인간산업을 위한 자본 또는 가치(여기서 자본은 물리적 자본과 선대된 임금과 같은 화폐자본을 포함), 자연에 의해 공급되는 자연인자를 생산의 3주체라 한다. 3주체 중 자본과 자연인자도 생산에 중요하나 인간산업이 생산의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세이는 인간산업을 생산과정에서의 기능적 역할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한다. 상품 생산의 첫 단계는 법칙의 연구 및 생산하려는 상품과 관련된 자연법칙을 연구하는 것이고, 둘째 단계는 이런 지식을 유용한 목적에 사용하는 일이며, 마지막 단계는 육체적 노동을 통해 직접 생산하는 활동이다. 즉, 인간산업은 지식인, 기업가 그리고 근로자로 이루어진다고 지적한다.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은 생산요소를 결합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기업가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한다. 기업가는 생산요소들을 결합하여 조직화하는 사람으로 생산요소∙토지∙근로자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서 이자∙임금∙지대 등을 지불한 대가로 이들을 어떻게 동원할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기업가는 소비자들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이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결합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기업가는 커뮤니케이션 및 네트워킹의 고리이며 다양한 생산자들 및 소비자와 생산자들간의 연계 역할을 수행하는 시장경제체제의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세이는 특정한 계층의 사람이 아닌 특정한 경제적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을 기업가라고 지칭하였다.(Koolman (1971), Say's conception of the role of the Entrepreneur.)


세이는 당시의 경제학자들과는 달리 자본가와 기업가를 구분하였다. 자본가는 생산활동에서 자본을 투자해서 이자를 얻는 역할에 그치지만, 기업가는 생산과정에서 생산요소를 결합하고 조정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생산의 결과물을 배분하는 과정에서도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한편, 세이는 기업가의 보수 역시 다른 모든 재화의 가격과 마찬가지로 기업가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우선 기업가의 수요는 다른 생산요소 수요와 마찬가지로 제품 수요의 함수라고 본다. 기업가의 공급과 관련하여 몇 가지 제약조건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가의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기업가는 생산에 필요한 자본은 자본가로부터 빌릴 수 있으므로 기업가 자신이 자본가일 필요는 없다. 그리고 노동 서비스 역시 근로자를 고용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으므로 기업가 자신이 근로자일 필요 역시 없다. 그러나 기업가는 고용한 생산요소에 대해 이자나 임금 등을 지불하기 위해 우수한 상품을 값싸게 생산하고, 생산된 제품을 시장에서 적절한 가격에 판매해서 이익을 남겨야 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빼어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가의 능력에는 생산활동을 위한 생산요소의 결합 능력뿐만 아니라 세계 및 사업에 대한 상당한 식견을 지녀야 하고,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역시 따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업가가 이런 자질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기업가의 공급은 제한되고 그 결과 기업가의 소득은 다른 요소의 소득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기업가의 임금이 지급되는 방식은 우선 기업가가 다양한 요소를 고용해 생산하고 그 판매액을 생산요소 서비스를 사용한 대가로 보상하고 나머지 잔여분을 취한다. 그러면 균형에서는 정확히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 임금과 일치한다. 만일 지급된 임금이 균형수준을 넘는다면 경쟁으로 다른 기업가가 사업에 참여하여 공급 물량이 증대되어 가격의 하락으로 결국 균형에 도달한다.


종합해 볼 때, 세이는 인간산업, 그 중에서도 기업가의 생산 및 분배에서의 조정 및 결합기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특히 기업가의 공급은 여러 가지 면에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에서 제한적이며 그 결과 기업가의 보상이 크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van Praag (1999), Some Classic Views on Entrepreneurship.



Jean-Baptiste Say(1767년-1832년)의 [정치경제학 또는 부의 생산, 분배, 소비에 관한 논문] (1803, 1971)에서, 기업가는 생산과 분배 모두에서 중심적인 조정 역할을 한다. 또한 기업 내에서 그는 조정자이자 현대의 리더이자 매니저이다. 세는 기업가를 위해 이러한 경영적 역할을 강조하는 첫 번째 경제학자이다. 다른 고전 경제학자들에 비해, 세는 생산과 소비의 전체 체계에서 기업가에게 매우 두드러진 지위를 준다. 그는 캉티용이 정의한 기업가적 기능을 확장한다. 그러나 기업가정신을 주로 우수한 종류의 노동력으로 취급함으로써, '세는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기업가적 역할의 독특함에서 벗어나도록 관심의 방향을 돌렸다'(Herbert & Link (1988, p. 34).     


세의 기업가 이론은 사실 '제로섬 게임' 경제에 대한 그의 명백한 거부에서 생겨난다.


그들은 한 개인이 얻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없어져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마치 누군가나 다른 사람에 대한 강탈 없이는 개인과 공동체의 소유가 배가될 수 없기라도 하는 것처럼... (Say, 1803; 1971, p. 70)     


대신에, 생산은 기존의 물질(자본과 자연)에게 그것들이 이전에는 소유하지 못했던 효용을 준다. 그래서 세가 부의 생산이라고 부르는 효용의 창조가 있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것은 (1) 농업, (2) 제조업 및 (3) 상업이다. 이러한 '인간' 산업의 각각의 작업은 좀처럼 한 사람에 의해 수행되지 않는 세 가지 구별되는 작업으로 구성된다. 그것은 (a) 이론적인 지식 구성, (b) 지식의 적용 및 (c) 실행이다.     

이 구분 중 '인간 소비를 위한 제품 창조에 지식의 적용' (Say, 1803, 1971, p. 330)이 기업가의 직업이다. 이러한 '상급의 노동'은 산업을 활성화하여 국가의 번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하다. 이론 지식은 중요하지만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쉽게 흘러가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확산은 과학하는 사람들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의 나머지 두 작업은 생략할 방법이 없다... 그리하여 현명한 상인, 제조업자, 농업가로 가득한 나라가 번영을 달성하는 더 강력한 수단을 가질 수 있게 된다 (Say, 1803, 1971, p. 82).       


(세의 경제에서 생산부문을 보완하는) 유통 부문 내 기업가 기능은 판매된 제품에서 수익을 모으고 이를 생산 투입물(노동, 자본 및 토지)에 분배하는 것이다. 이러한 투입물 (또는 그 소유주는) 각각 임금, 이자 및 임대료의 형태로 그들의 노력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    


기업가는 자신의 기업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조정자, 현대적 지도자, 관리자이다. 그러나 기업가는 무역에 특화된 업무도 수행해야 하며, 그리고 그는 또한 (대부분의 경우) 또한 그 자신의 자본을 (적어도 일부) 공급할 것이다. 그는 위험 부담자이기도 하다: '아무리 잘 수행되더라도 어떤 기업가 활동이라도 관련된 실패 가능성은 있다. 그 사업가는 재산을 잃을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그의 지위(character)도 잃을 수 있다.' (Say, 1803, 1971, p. 331).     


성공적인 기업가는 많은 자질을 갖춰야 한다. 다양한 과업의 결합은 흔히 함께 발견되지 않는 도덕적 자질(판단력, 인내심, 사업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지식... 감독과 행정의 기술)의 조합을 필요로 한다.' (Say, 1803, 1971, pp. 330-331). 또한 성공적인 기업가는 해당 직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갖추고 필요한 자금을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가 이미 부자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차입 자본으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최소한 용감해야 하며 지성, 신중함, 정직성, 규칙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소유하지 못한 자본 대출을 조달하기 위해 그의 인맥의 성격상 가능해야 한다. (Say, 1803, 1971, pp. 330-331).    


이러한 필수적인 특성, 재능 및 능력의 결과로 기업가적 시장에서 경쟁자의 수는 제한된다. 세의 고전 경제에서 모든 가격은 공급과 수요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제한된 공급은 성공적인 기업가적 노동의 가격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한다. '그러므로, 생산적인 노력이 이례적인 성공으로 이어질 때마다 가장 큰 부를 축적하는 것은 바로 이 생산자 계급이다.' (Say, 1803, 1971, p. 332).      


기업의 미시적 수준에서, 기업가의 보수는 잔여 지급으로 결정된다: 매출액에서 생산 과정의 다른 투입물에 대한 지급을 뺀 것이다. 이 잔여분이 관리에 대한 임금과 일부 위험 프리미엄보다 높아서 플러스 이익을 의미한다면 기업인들의 공급이 늘어난다. 이익이 마이너스가 되면 균형이 우세해질 때까지 기업은 도산한다.


요약하자면, 기업가는 세의 생산, 유통, 소비 이론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기업 수준뿐 아니라 시장수준에서도 조정자이다. 그는 그의 기업 내에서 현대적 리더이자 관리자이다. 성공한 기업가는 자질과 경험의 드문 조합이 필요하다. 따라서, 기업가를 위한 시장의 경쟁자 수는 제한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시장이 균형 상태 또는 기업가적 임금에 속할 때 기업의 잔여 소득은 매우 높아질 수 있다.  



Hebert & Link, A History of Entrepreneurship.

 


캉티용이 시작한 프랑스 전통을 계속 이어가며 세(Jean-Baptiste Say 1767–1832)는 기업가를 생산 및 유통의 전체 과정의 핵심에 두었다. 호셀리츠(Hoselitz, 1960)는 세의 영감과 주제에 대한 강한 견해가 다른 프랑스 경제학자와의 친분보다는 산업 기업가로서의 실제 경험(그는 파드칼레(Pas-de-Calais)에서 섬유 공장을 경영했다)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는 근본적으로 튀르고의 기업가에서 자본가로의 공통된 연결만을 제외한 기업가 개념을 미화했다.   


세는 자신의 기업가정신에 대한 취급을 그의 <정치경제학 개론>(1803)의 후기 판본과 <경제정책의 전당>(1828~9)에서 가장 완벽하게 발전시켰다. 그의 분석은 두 가지 다른 수준에서 진행된다. 한편으로 그는 당시 기업가들이 기존 제도적 제약 하에서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경험적 설명을 사용했다. 다른 한편, 그는 특정 사회적 틀과 독립적으로 기업가의 중심 기능을 폭로하고 분석했다. 이 마지막 노력에서 세는 기업가정신의 일반 이론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주장했듯이, 기업가 활동의 활력은 재산권의 구성, 분배 및 보안에 달려 있다. 기업가 활동은 이윤 추구이기 때문에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이러한 인센티브는 대의 정부 내 재산권 구조에 의해 제공된다. 세(Say, 1845 [1803], p. 127)는 "정치 경제는 부의 증식에 대한 모든 장려책 중 가장 강력한 것으로 재산권을 인정한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더욱이 사유 재산이 현실에서나 정당하게 존재하는 경우에는 “그때에만 토지, 자본, 산업과 같은 생산의 원천이 최대한의 다산을 달성할 수 있다.”     


세의 기업가 이론은 인간의 산업을 별개의 작업인 세 부문으로 나눈 일부이다. 첫 번째 단계는 과학적 작업이다. 자전거와 같은 제품을 만들기 전에는 그것의 특성과 목적에 대한 특정 지식을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바퀴는 연속적인 원형 운동이 가능하고 체인과 사슬톱니바퀴에 가해지는 힘이 바퀴를 앞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두 번째 단계인 기업가적 작업은 이 지식을 유용한 목적에 적용하는 것이다(즉,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누군가를 수송할 수 있는 하나 이상의 바퀴가 있는 메커니즘 개발). 마지막 단계인 생산적인 작업은 품목의 제조가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세의 기업가는 비록 세가 기업가를 별개의 사회 계급의 구성원으로 만들지 않더라도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는 효용의 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생산의 주요 대리인이다. 지식의 그의 적용은 단순히 우연한 사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시장" 테스트를 충족해야 한다. 즉, 기업가가 되기 위해서는 각 적용이 가치 또는 효용의 창출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은 세의 기업가의 주요 특성 중 하나인 건전한 판단을 요구한다. 세에 따르면 기업가는 고객의 요구와 이를 충족할 수단을 추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과학에 대한 개인적인 지식이 부족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고용하여 자신의 손에 흙을 묻히는 것을 피할 수는 있지만 판단력이 부족해서는 안 된다. 판단력이 없으면 "무가치한 것을 큰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Say 1840 [1828– 9], 1권, 100페이지).     


세의 기업가는 경제적 촉매제이자 중추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세는 불확실성을 기업가정신의 근간으로 만드는 캉티용의 선도를 따르지 않았다. 그는 자본 축적에 기업가적 활동의 의존을 필수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은 기업가정신에 대한 세의 개념에서는 부수적이다. 경제 문헌에서 처음으로 기업가적 활동은 그 용어의 현대적 의미에서 사실상 관리와 동의어가 되었다. 관리는 필수적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에 자본을 공급할 수 있다. 그리고 세는 이론적으로 말해서 기업가적 기능과 자본가적 기능을 분리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비록 두 기능이 같은 사람에게 결합될 수 있고 종종 결합될지라도 말이다. 최종 분석에서 세의 기업가는 감독이자 행정가다. 이 사람은:     


종종 함께 발견되지 않는 도덕적 자질의 조합을 요구한다. 그것은 판단력, 인내심, 세상과 비즈니스에 대한 지식이다. 그는 특정 제품의 중요성, 예상 수요량 및 그것의 생산 수단을 감내할 수 있는 정확도로 추정하는 것이 요구된다. 한 때에는 많은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다른 때에는 원자재를 사거나 주문하고, 노동자를 모으고, 소비자를 찾고, 항상 질서와 경제에 엄격한 관심을 기울인다. 한마디로 그는 감독과 행정의 기술을 소유해야 한다 (Say 1845 [1803], pp. 330–1).     


호셀리츠(Hoselitz 1960)는 세와 캉티용 사이에 두 가지 차이점을 제시했는데, 둘 다 의문스럽다. 한 가지 차이점은 세의 기업가는 보편적인 중재자(예: 지주와 자본가 사이, 과학자와 노동자 사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인 반면 캉티용의 기업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세가 가장 활동적인 중재자인 차익 거래자를 허용하지 않는 반면 캉티용은 명시적으로 차익 거래자를 기업가로 인정하기 때문에 모호하다. 게다가, 캉티용은 기업가에게 시장 경제에서 수요량과 공급량 사이의 불일치를 중재하는 유일한 기능을 제공한다. <Essai>에서 언급되는 순전히 빈도에 따르면, 기업가는 이 능력의 거의 모든 곳에 있다.     


호셀리츠의 두 번째 차이점은 캉티용과 중농주의자들과 달리 세가 그의 기업가를 자본주의 사회로 제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이것은 정확하지만 일반적으로 세의 주장은 개인의 이기심의 바람직한 사회적 결과를 재확인하기 위해 계산되었으며 그는 시장 경제가 이기심(self-interest)의 완전한 개화를 허용하는 사회적 틀을 제공한다는 것을 (애덤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덜 중요한 점에서 호셀리츠는 꽤 정확하다. 세의 기업가(중재자)는 자본이 축적되기 전인 원시 사회에 나타날 수 있다. 즉, 기업가는 자본을 사용하지 않고 원자재와 육체노동을 지시하고 감독할 수 있다. 그러나 캉티용의 거지이자 강도 "기업가"도 마찬가지이다.     


세 이론의 한 측면은 전통적인 패러다임을 확립하고 전통과의 미래 단절을 위한 출발점을 제공했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세의 기업가는 균형의 "수호자"로 특징지을 수 있다. 세가 기업가적 활동의 필수 조건으로 극찬한 "판단"은 생산 과정 내의 관계에 국한되며 그 과정을 넘어 새로운 과정의 발견이나 새로운 사회 구조에서 영감을 받은 변화로 확장되지 않는다. 그는 자본 축적(투자)과 기업가적 활동 사이에 필요한 관계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가를 역동적인 환경에 두지 않았다. 기업가의 역할은 생산 비용과 제품 가격의 평등을 특징으로 하는 순전히 고정된 균형 내에서 생각되었다. 이 시스템에서 기업가적 소득의 주요 원천은 위험 프리미엄으로서의 이윤이 아니라 고도로 숙련된 유형의 희소 노동에 대한 지불로서의 임금이다.   


후기 저작에서 세(1845 [1803])는 기업가를 일종의 우월한 노동자로 묘사했다. 그는 임금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기업가를 위한 일종의 "시장"을 포함하도록 유추를 확장했으며 기업가적 공급의 결정 요인에 대해 논의하는 데 어느 정도 더 나아갔다. 좁은 이론적 관점에서 기업가에 대한 그의 취급은 인간과 인간이 아닌 대리자의 생산에 대한 각각의 기여를 구별했기 때문에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개념을 기업가정신의 "순수한" 이론에 더 가깝게 이동시키지 않았다. 기업가를 주로 우수한 노동 형태로 묘사함으로써, 세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기업가의 독특함과 역동적인 경제에서 변화의 힘으로서의 기업가의 역할에서 벗어나 직접적으로 주의를 돌리게 되었다.           


세는 19세기 프랑스 경제학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쳤다. 스미스처럼 그는 당시의 정신을 포착할 수 있었고 그의 논문의 조직적 도식은 고등 교육 기관에서 보편화되고 있는 경제학의 교육에 훨씬 더 순응하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대서양 양쪽에 있는 대학, 특히 미국에서 주요 "교과서"가 되었으며,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의 환영을 받고 널리 채택되었다.



송경모, 세이가 말했다 "모험하는 기업가만이 앙트러프러너다", TechM, 2016.3.19.



얼핏 21세기의 지식, 글로벌, 모바일 경제는 20세기 이전의 굴뚝 산업 경제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불황의 본질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불황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논쟁의 와중에 세이처럼 많은 오해를 받았던 사람도, 세이처럼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도 드물다. 케인즈는 세이를 그릇된 경제 이론의 대명사처럼 취급했고, 마르크스는 노동가치론을 부정한 그를 노골적으로 우물(愚物)이라고 조롱하기까지 했다. 세이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경제 이론을 전개한 이류 사상가에 불과했을까. 케인즈 덕분에 오늘날 일명 ‘세이의 법칙(Say’s Law)’으로 알려진 그의 판로(debouches) 이론에 대해서 살펴보자.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양적 완화와 금리 인하, 감세 정책, 부동산 거래 규제 완화, 고용 유연화, 벤처 창업 활성화 등 온갖 정책에도 불구하고 탈피할 기미가 안 보이는 불황, 도대체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할까. 케인즈는 그의 유명한 ‘화폐, 고용, 이자의 일반이론’에서 종전의 경제학이 “세이의 법칙이라는 잘못된 사상에 입각해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케인즈는 세이의 법칙을 이른바 ‘공급은 수요를 창출한다’는 명제로 요약했다.


시장의 법칙(Law of Market)

케인즈는 이를 다시 부연해서, 재화가 생산되면 거기에 투입된 생산비용은 생산요소의 소득으로 다시 여타 재화를 구입하는 데 지출되고 그에 따라 경제 전체에서 총수요와 총공급은 항상 일치하게 되어 있다는 주장이, 세이의 시장 법칙이라고 정리했다. 그래서 세이의 법칙을 암묵적으로 수용한 종전의 경제학은 경기 침체와 비자발적 실업을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세이 본인은 총수요와 총공급이 항상 일치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세이가 그의 ‘정치경제학 논고(Traite d’Economie Politique, 1803 1판~1826년 5판)’의 여러 판에서 주장한 내용들은 조금씩 차이가 있고 표현이 모호한 부분이 있지만, 그가 주장하고자 했던 내용의 핵심은 경기 침체가 일어나는 원인은 화폐 부족이 아니라 생산 활동이 활발하지 못해서라는 것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재화를 구매하는 것은 화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재화(생산물)가 재화(생산물)를 구매한다는 이면의 본질을 강조했다.


사실 이런 생각은 세이가 독창적으로 해낸 것이라기보다는 당시 경제학자들 사이에 흔히 오가던 논리였다. 영국의 제임스 밀(1773-1835)3)은 ‘상업옹호론(Commerce Defeneded, 제2판 1808)’에서 이 생각을 매우 체계적으로 전개한 또 한 사람의 인물이었다. 둘 중 누군가는 틀림없이 상대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영어권에서는 시장 법칙이라고 통용되지만, 세이가 사용했던 원래의 프랑스어 ‘debouches’는 시장이라기보다는 출구, 통로(outlet, vent)의 뜻이다. 내 물건을 팔려면 반드시 그 물건을 내보낼 수 있는 통로가 있어야 하는데, 다른 곳에서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어야만 비로소 그 통로가 형성되며, 타인의 화폐 자체는 표면의 현상일 뿐 결코 본질적인 통로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세이는 소비가 아니라 생산을 활성화시켜야 경기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맬더스와 케인즈는 세이와 반대 입장을 취했던 경제학자다. 맬더스는 지주를 비롯한 부유한 계층의 소비를 증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케인즈는 정부가 재정 지출을 통해 소비를 증가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똑같은 유효 수요라도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당장 동일한 구매력이라도 소비를 통해서 나오는 것과 생산을 통해서 나오는 것은 효과가 너무나 다르다. 소비는 사람의 생존을 유지하거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재화를 소모해버리거나 생존을 지속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데에 기여하는 정도로 끝나지만, 생산에 투입되는 소비는 생산 활동과 소득 증대를 가속화할뿐더러 소비 자체도 활성화할 수 있다. 당장의 생존을 위한 소비와 생산을 위한 소비는 반드시 둘 다 필요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경기 침체를 해소하기 위해 오직 소비의 활성화에 초점을 두게 되면 경기 침체는 근원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세이는 “좋은 정부의 목표는 생산을 장려하는 것이고, 나쁜 정부의 목표는 소비를 권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케인즈는 세이가 마치 균형의 자동적인 달성을 주장한 인물인 것처럼 왜곡했지만, 세이는 사후에 자신에게 그런 딱지가 붙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케인즈처럼 위대한 지성조차도 이렇게 경솔한 왜곡을 범할 수 있었다니 놀랍다.


프랑스인들의 자부심 ‘앙트러프러너’

‘앙트러프러너(entrepreneur)’. 프랑스인들은 이 프랑스어가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모험적 사업가’로 해석되는 앙트러프러너는 독일어권에서는 같은 뜻으로 ‘Unternehmer’가 흔히 사용되지만, 영어에는 적절한 단어가 없어서 굳이 번역하지 않고 그냥 이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100년 넘게 이 단어를 잊고 살다가 슘페터가 극적으로 부활시킨 이래, 앙트러프러너는 오늘날 사업가는 물론이고 정책 담당자 사이에서도 유행어가 됐다.


세이는 자유주의자로서 앙트러프러너의 특성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했지만, 무엇보다 중개하는 존재(intermediary)의 역할을 강조했다. 먼저 명심해야 할 것은 앙트러프러너가 경제학자들의 어휘집에 늘 등장하는 생산자(producer)와 전혀 다른 성격의 존재라는 사실이다. 세이는 앙트러프러너를 첫째, 모든 생산자 사이의 중개자, 둘째, 생산자와 고객 사이의 중개자라고 규정했다. 아니, 생산자가 곧 기업가 아닌가? 그리고 자본가가 곧 기업가 아닌가? 21세기기 되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선입견을 지니고 있다. 요즘도 사람들은 반기업 정서, 반 법인(法人)정서, 반 부자(富者) 정서를 한 없이 혼동하고 있다. 하지만 결코 그게 아니라는 것이 세이의 생각이었다.


그는 기업가야말로 생산자, 상인, 자본가 그 어느 주체와도 동일시할 수 없는 별도의 존재라는 사실을 처음 인식했다. 바로 여기에 세이의 위대성이 있다. 앙트러프러너는 이미 자본을 보유한 사람일 수도 자본이 없어서 타인의 자본을 빌려오는 사람일 수도 있다. 오너일 수도 있고 피고용자일 수도 있다. 부자일 수도 있고 가난한 사람일 수도 있다. 개인일 수도 있고 법인의 경영자일 수도 있다. 모든 상인, 모든 기업 오너, 모든 부자, 모든 관리경영자가 다 앙트러프러너인 것은 아니다. 그 어떤 경우에든 앙트러프러너는 자원을 비생산적인 곳으로부터 보다 생산적인 곳으로 이끌어 들이는 존재다.


그는 시장 수요, 가격, 욕구 이 모든 것들을 관찰한 뒤 과연 어떤 새로운 재화를 생산할 것인지, 이를 위해서 어떤 자원들을 끌어들여야 할지 결정한다.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다. 물론 그들도 얼마든지 오판할 수 있고 판매부진에 시달릴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을 통해서 부문별로 재화의 수급은 불일치를 극복하려는 동력을 얻게 된다. 이것이 세이가 바라본 시장 메커니즘의 핵심이다. 그들이 있기 때문에 시장성이 없는 제품은 폐기되고 새로운 상품이 시장에 도입된다. 이들이 없으면 경제는 활력을 잃고 이내 침체에 빠진다. 


그가 당시까지 아무도 보지 못했던 앙트러프러너의 역할을 인지하게 된 것은 그 자신이 알코올증류업과 제분업을 영위한 기업가였다는 사실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당시만 해도 아담 스미스를 비롯한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실무 경험이 없는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방관자의 입장에서 생산과 소비 현상을 관찰했고, 이로부터 자신의 이론을 만들었다. 당연히 저 불확실한 세계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체감하기 어려웠다.


세계 최초로 경영전문대학 설립 

세이는 당대의 사업가인 루(Vital Roux, 1766-1846)와 함께 1819년에 세계 최초의 경영대학인 ESCP Europe을 창설했다. 유럽의 대학들은 18세기 중반까지 대개 신학, 철학, 고전, 법률, 자연과학 중심의 교과과정을 유지하다가 18세기 중반 이후에 이르러서야 엔지니어링 교육 대학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엔지니어링, 상업, 또는 경영은 동업자들 사이에서나 개발되고 전수되는 지식이었을 뿐, 결코 대학에서 교육할 대상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세이가 최초로 경영전문대학을 설립한 이후 이 모델은 유럽 각지와 미국의 대학으로, 그리고 20세기에는 동아시아 전역의 대학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면서 바야흐로 경영의 시대가 열렸다. 그런 면에서 세이를 현대 경영대학의 발명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경제 문제에 관해서는, 한 가지 키워드만 가지고 완전무결한 해법을 제시하는 지식은 없었다. 논쟁의 당사자들은 저마다 자신이 말하는 세계에서는 옳다. 지금도 백가쟁명 식으로 정책 제안이 쏟아져 나오지만, 시대마다 어떤 철학이 정책 담당자의 머릿속을 더 지배하느냐에 따라 현실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주로 소비와 재산의 문제를 가지고 싸워야 하는가, 아니면 생산과 앙트러프러너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해야 할 것인가. 세이는 분명히 후자라고 선언했다. 그는 정치경제학자였지만 이미 경영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 점이 그를 그토록 무시했던 케인즈나 마르크스와 분명히 달랐던 점이다.


장-바티스트 세이 

장-바티스트 세이(Jean-Baptiste Say, 1767-1832)는 프랑스 리옹에서 출생했다. 정치경제학자, 사업가로서 프랑스의 국가 주도형 통제 경제 시스템을 반대하고 자유무역과 경쟁, 규제 완화를 주장했다. 나폴레옹 정부의 정보 수집 요원으로 영국에 파견되어 당시 발달된 영국 경제 시스템을 견학하고 맬더스, 리카아도 등 당대의 정치경제학자들과 교류했다. 아담 스미스의 사상에서 깊은 감화를 받고 이를 프랑스에 전파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재화의 가치를 주장하는 요인이 노동이 아니라 수요에 있다는 생각은 스미스와는 반대되는 것이었고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다. 대표작으로 ‘정치경제학 논고(Traite d’Economie Politique, 1803 1판~1826년 5판)’가 있다.


장 바티스트 세(Jean-Baptiste Say): 반간섭주의의 잊혀진 옹호자

- 세크레스트(Larry J. Sechrest)


장 바티스트 세(J. B. Say)의 생애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몇몇 사실들을 넘어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영어책으로는 거의 없다.*

------------------

* 최근에 나온 하나의 책이 그 부족함을 바로잡을 수 있다. R. R. Palmer, 《세: 곤경의 시대의 경제학자(]. B. Say: An Economist in Troubled Times)》 (Princeton, N. 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7)를 보라.

--------------------------


그는 프랑스의 리용(Lyons)에서 중류층의 위그노 교파(Huguenot) 부부에게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의 유년기 대부분은 제네바와 런던에서 보냈다. 청년시절 보험회사에 채용되어 프랑스로 되돌아왔고, 곧바로 강한 친자유시장 지식인의 영향력있는 구성원이 되었다.*

---------------------------------------------------

*이 그룹은 콩디약(Etienne Bonnot de Condillac) 수도원장의 저작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그것은 세 뿐만 아니라 트라시(Destutt de Tracy)와 카바니(Pierre Jean Georges Cabanis) 같은 사람들도 포함하고 있다.

---------------------------------


정말이지, 세는 그 그룹이 발간했던 잡지인 《철학 학문 그리고 정치의 시대(La Decade Philosophique, litteraire, et politique)》의 첫 편집장이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그는 공예학교(Conservatoire des Arts et Metiers)의 정치경제학과장이 되었고, 이후에는 프랑스대학(College de France)에서 다시 강좌장을 맡았다. 그의 유명한 《전공서(Treatise)》외에도 그의 저작들에는 《실천 정치경제학 전 과정(Cours Complet d'Economie Politique Pratique)》과 《맬서스에게 보내는 편지(Letters to Mr. Malthus)》도 있다. 그의 저술을 통해 그의 영향력은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러시아, 남미, 영국 그리고 미연방으로 퍼졌다. 미연방에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 중에는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과 제임스 메디슨(James Madison)도 있다. 반간섭주의 원리들에 대한 그의 헌신은 그의 생애 전체에 걸쳐서 유지되었던 듯하다. 세는 파리에서 사망했다.


세는 경제사상사에서 중심적 인물로 기억될 자격이 있고, 그것도 특히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자들에게 그러할만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논의되었다고 해도 아주 간략하게 논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오스트리아 학파조차 세의 기여들에 대해 거의 아무런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었다.*

------------------------------------

* 물론 로스바드는 세에 대해서 Classical Economics, vol. 2, An Austrian Perspective on the History of Economic Thought (Cheltenham, U.K.: Edward Elgar, 1995), pp. 3-45에서 상세하게 그리고 존경심을 가지고 논했다.

---------------------------------------------


주류 사상사 교재는 보통 세에 대해서 간략하게만 언급하고, 그런 뒤 그의 시장 법칙과의 관련 속에서만 언급하고, 그럼으로써 그의 저작 대부분을 암묵적으로 사소한 것으로 치부한다. 그 예외의 하나가 에릭 롤(Eric Roll)이 쓴 《경제사상사(A History of Economic Thought)》(Eric Roll, A History of Economic Thought (Englewood Cliffs, N.J.: Prentice-Hall, [1956] 1961).)이다. 롤은 세를 대단히 존경하면서 다루었지만, 불행하게도 이는 부분적으로 그가 세를 현대의 일반 균형, 실증주의,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조상으로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서 이러한 관심과 평가 모두의 부족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세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결국 세는 명시적으로 그의 저작에 대해 유럽 대륙의 독자들을 위해 주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Wealth of Nations)》을 다듬고 대중화시킨 것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세의 말에 의거하여, 많은 경제학자들은 세에 대해 더 면밀하게 탐구하는 수고를 하지 않았던 듯이 보인다. 세의 주된 저작인 《정치경제학 전공서(A Treatise on Political Economy)》*를 잘 읽으면, 비록 세가 자주 스미스를 칭찬하지만, 여러 가지 중요한 점에서는 그도 역시 스미스적인 학설에서 벗어나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세는 애덤 스미스를 한 두 개 이상 예리하게 비판하기조차 했다. 세를 스미스의 약간의 변형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이들 두 사람이 고전파 경제학 내에 있는 구불구불한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서로 다른 두 길들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하다.

-------------------------------------------

*이것은 1803년 프랑스어로 《정치경제학 논저(Traité d Économie Politique)》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세의 생애 동안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던 이 책은 5개의 판이 있고, 그 마지막은 1826년에 나왔다. Jean-Baptiste Say, A Treatise on Political Economy: or the Production, Distribution, and Consumption of Wealth, C. R. Prinsep and Clement C. Biddle 영역. (New York: Augustus M. Kelley, [1880] 1971), p. 111을 보라. 이는 수많은 다른 언어로도 번역되었다.

-----------------------------------------------------


스미스는 우리를 리카도(David Ricardo),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 어빙 피셔(Irving Fisher),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그리고 밀턴 프리드만(Milton Friedman)으로 이끈다. 세는 튀르고(A.R.J. Turgot)와 캉티용(Richard Cantillon)으로부터 시니어(Nassau Senior), 프랑크 페터(Frank A. Fetter), 카를 멩거(Carl Menger), 루드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 그리고 머레이 로스바드(Murray Rothbard)로 이끈다. 그렇지만 이들 두 길들 혹은 진행들은 흔히 돌아가거나 비선형(非線型)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세가 여러 면에서 오스트리아 학파의 진정한 선구자였지만, 그가 깃털이 충분히 난, 단지 시대를 앞선 오스트리아 학파라는 결론으로 비약해서도 안된다. 세를 읽고서 모든 점에서 미제스를 발견할 것으로 기대해서도 안된다.


<<방법론>>

경제학에 대한 세의 접근법은 철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현실주의적인 것이고 본질주의적인 것이다.* 그는 통계적 탐구의 유용성에 관해 건강한 회의주의(懷疑主義)를 현실의 사실들에 대한 관찰의 강조와 결합시켰다. 통계적 서술은 “그것이 수집했던 사실들에 대해서 기원도 결과도 가리키지 않는다.”(Say, Treatise, p. xix.)

------------------------------------------------------

*그렇지만 세가 “본질들”이 형이상학적으로 현실, 즉 특정한 대상물이 대상의 집합의 본질을 “분유(分有)하고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입장(Aristotelian position)을 채택했는지, 혹은 “본질”이 필수적인 인식론적 장치이긴 하지만 전혀 형이상학적 실체를 갖고 있지 않다는 상황적 실재주의(contextual realism)의 입장을 채택하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David Kelley, The Evidence of the Senses: A Realist Theory of Perception (Baton Rouge: Louisiana State University Press, 1986)을 보라.

-----------------------------


세에게는 오로지 관련 실체의 본질적 본성에 근거한 인과관계 분석만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고, 그러한 분석이 정치경제학의 핵심 과제였다. 그는 경제학을 “절대 진리들”을 수립할 수 있는 순수과학이라고 보았지만(Ibid., p. xlix.), 그것은 “그것이 귀납적 탐구의 결과들에 국한되어왔기 때문에 오로지 과학이 되었다”(Ibid., p. xxxvi, 강조는 추가한 것.)고 주장했다. 사실, 세는 정치경제학이 “실험과학의 일부를 구성하는”(Ibid., p. xviii.) 것이고, 따라서 화학이나 자연철학과 오히려 흡사하다고 선언했다.


그는 모든 사실들을 분류학적으로 (a) 대상물에 관한 것들, 그리고 (b) 사건들이나 상호관계들에 관한 것들의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전자는 서술적 과학(예컨대 식물학)의 영역이고, 반면 후자는 실험과학(예를 들어 화학이나 물리학)의 영역이다.


무엇보다도 세는 실천적인 것을 추구하였다. “실천을 위한 이론에 반대하는 것보다 더 한가한 짓은 없다!”(Ibid., p.xxi.)는 것이 그 이유다. 그 목적을 위해서 그는 항상 정밀하고 하지만 가능한 한 단순한 언어를 사용하려고 하였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글을 읽고 쓸 줄 알거나 적당히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가 의미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Ibid., p. xlvi.).


현대의 대부분의 오스트리아 학파에게도 그렇지만, 세에게 경제학은 오로지 전문가만 관통할 수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거대한 실천적 중요성이 있는 주제다. 따라서 세가 그러한 명징성과 명료함이라는 목표를 견지하는 과정에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Wealth of Nations)》에 대해서 전쟁, 교육, 역사 그리고 정치학과 같은 주제들에 대해 길고 산만한 여담을 너무나 많이 늘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방법론이 결여되었고” 모호하고 막연하고 상호 연결되어있지 않다고 비판한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Ibid., p. xliv.).


<<화폐와 은행업>>

화폐에 관한 세의 논의는 지금은 표준적인 “원하는 것의 중복 동시 발생” 문제에 관한 주장에서 시작되고, 그리고 어떻게 교환 매개물이 그것을 해결하는가에서 시작되었다. 그가 고도로 수요되는 상품이 어떻게 수용된 교환 매개물로 자연발생적으로 진화해나가는가를 설명한 것은 그 현안에 대한 더욱 유명한 카를 멩거의 취급을 연상시킨다(Carl Menger, Principles of Economics, James Dingwall and Bert F. Hoselitz, 영역. (New York: NewYork University Press, [1871] 1976), pp.257-262.).


그것이 멩거보다 거의 70년이나 앞선 것이지만 말이다. 역사적으로 화폐는 이기심에서 연유하여 나타난 것이지 정부의 법령에서 연유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형태는 소비자의 선호의 상호작용에 남겨져 있다. “당국의 명령이 아닌 관습이, 따라서, 전적으로 화폐로 통용되는 특정 생산물을 지정했다.”(Say, Treatise, p. 220.)


그런 뒤 그는 교환의 매개물이 (이상적으로) 가져야 하는 속성의 목록 즉 내구성, 이동성, 분할성, 단위당 높은 구매력, 그리고 통일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 설명하고 나서, 세는 (금과 은 등의) 귀금속들은 화폐의 재질이라는 점에서 우수한 선택들이었다는 친숙한 결론을 이끌어냈다. 달리 말하자면, 개인들이 선택할 자유가 있다면 그들은 상품 화폐 (정화(正貨, specie))를 선택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세가 금 은 화폐론을 강하게 옹호한 사람이라는 것은 맞지만, 충격적이겠지만 그가 만일 “새롭고 부유한 광맥이 발견된다”(Ibid., p. 222.)면, 그것이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될 수 있는 가능성도 인정했음을 알린다. 간단히 말해서, 세는 “화폐”가 금 혹은 은을 의미한다는 명제에 변함없이 매달린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만일 화폐가 귀금속 주화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경우 그는 달러와 같이 화폐 단위들이 주화에 담겨 있는 금 혹은 은의 양으로 다시 명명되어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예를 들어 만일 1 프랑스 프랑으로 명명된 주화가 은 5그램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면, 그 경우에는 “1프랑”이 아닌 “은 5그램”으로 명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Ibid., p. 256.).


세에 따르면, 화폐 문제들에 대한 국가의 유일하게 정당화될 수 있는 간섭은 주화 주조다. 사실, 세는 이것이 국가에 의해서 독점되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마도 민간 발행인들의 사기(詐欺) 행위여부를 검사하는 데는 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Ibid., p. 229.)


특별히, 금과 은이 화폐 금속으로서 공존하는 어떤 체제에서도, 이중 금속주의의 역사적 사건들에서 이루어졌던 것과 반대로, 정부는 둘 사이의 공식적인 환율을 설정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해야만 한다(Ibid., p. 254.).


세는 이중 금속주의의 실천이 항상 왜 재앙으로 이어졌던가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즉, 공식적으로 과잉 평가된(overpriced) 화폐는 공식적으로 과소평가된(underpriced) 화폐를 유통 밖으로 몰아낸다는 것인데, 이는 그레셤의 법칙(Gresham's Law)으로 알려진 원리다.*

----------------------------

*이것은 교재가 가격통제를 다루는 법의 응용을 화폐에 적용한 것이다. 가격 상한을 한 형태의 화폐에 부과하고 동시에 가격 하한을 다른 형태의 화폐에 부과하면, 이것은 물론 전자의 부족을 창출하고(즉 그것은 저축 속으로 사라진다), 후자의 과잉을 창출한다(그것은 일상적인 거래에 사용된다).

---------------------------------------------------

세는 화폐가 수요 공급에 따라 지배받으며, 이는 모든 상품들과 같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화폐의 구매력은 “상대적인 수요 공급에 비례하여 등락한다.”(Say, Treatise, p. 226.)


따라서 금 주화와 은 주화의 환율은 시장 조건들과 함께 변화하도록 용납해야 한다. 세는 “병행(parallel)” 금속 체제를 선호하는 듯이 보이는데, 이는 로스바드가 제안했던 것과 매우 비슷하다(Murray N. Rothbard, The Case for a 100 Percent Gold Dollar (Auburn, Ala.: Ludwig von Mises Institute, [1962] 1991), p. 28.).


은행에 관하여, 세는 “저축은행(banks of deposit)”과 “유통 은행(banks of circulation)” 사이를 구별하지만, 양자 모두 정당한 제도라고 취급한다.*

----------------------------------------------------

*이것은 확실히 모든 오스트리아 학파에 부합하는 주장이 아니다. 로스바드는 특별히 부분지불준비 은행에 적대적이었고 자주 그것을 “내적으로 사기치는 것”이라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Ibid., pp. 42-51을 보라; 또한 Murray N. Rothbard, The Mystery of Banking (New York: Richardson and Snyder, 1983), pp. 97-98; 그리고 같은 저자, Man, Economy, and State (Los Angeles: Nash Publishing, [1962] 1970), p. 700을 보라.

---------------------------------


전자는 화폐 창고로서 기능한다. 그것들은 항상 100% 지불준비금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한 고객의 계정에서 다른 고객의 계정으로 자금을 이전함으로써 그들이 그들의 예금자들을 위해서 거래를 했다는 점에서 안전뿐만 아니라 편의도 제공하고, 그들은 그런 서비스들에 대해서 수수료를 부과한다(Say, Treatise, pp. 268-269.).


후자인 유통은행은 진정한 금융 중개자로서 기능한다. 그들은 부분지불준비금을 가지고 있고, 은행권을 발행하며, 그리고 약속 증서와 교환 어음을 할인함으로써 이자 소득을 발생시킨다. 그런 기관들이 발행했던 은행권들은 반드시 정화(正貨) 혹은 단기 증권들에 의해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그 경우에는 “은행이 잘 관리되고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한, 태환 화폐를 발행한 은행의 은행권 보유자들은 거의 혹은 전혀 위험을 지지 않는다.”(Ibid., p. 278.)


사실상, 세는 심지어 이 부분지불준비금 보유 유통은행이 사회에 편익을 준다고도 주장했다. 왜냐하면 “준비해두어야 할 액수를 줄임으로써 그들이 자본을 절약하는 이익”(Ibid., p. 272.)


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그러한 부분지불준비 은행권이 또한 유통되고 있던 정화의 일부를 대신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 경우에는 “빠져나간 정화(正貨)의 기능은 그것을 대신해서 대체되었던 지폐에 의해서도 마찬가지로 잘 이루어진다.”(Ibid., p. 274.)


화폐라는 주제에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두 가지 추가적 통찰이 있다. 첫째로, 세는 노동분업이 수평적이건 수직적이건 사회를 통해서 더 진척될수록, 즉 개인들이 더 전문화될수록, 교환의 숫자나 중요성이 증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것은 식별할 수 있는 교환매개물을 요구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화폐는 현대 문명이 떠오른 것을 총합한 부분이다.*

------------------------------------------------------

*이것은 카를 마르크스와 다른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들은 화폐를 제거하면서도 노동분업의 생산적 편익을 간직하길 바랬다.

-----------------------------------------


둘째로, 세는 가격들이 자유롭게 적응하는 한, 화폐의 어떠한 명목 공급이건 “최적(optimal)”이라고 주장했던 미제스와 로스바드에 동의한다. 왜냐하면 명목적인 면에서의 증감이 단순히 단위당 구매력을 정반대의 비율로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질 화폐의 공급은 동일하게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Say, Treatise, p. 151.).


<<세의 시장 법칙>>

세가 가장 잘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 그의 시장 이론(la theorie des debouches) 혹은 시장 법칙(loi des debouches)으로 언급되기도 했던 “세의 법칙(Say's Law)”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원리는 고전파 경제학의 핵심 초석들 중 하나였고 여전히 그러하다(Thomas Sowell, ≪세의 법칙: 역사적 분석(Say's Law: An Historical Analysis)≫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2); idem, ≪다시 생각해본 고전파 경제학(Classical Economics Reconsidered)≫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4); 또한, George Reisman, ≪자본주의: 경제학 논저(Capitalism: A Treatise on Economics)≫ (Ottawa, Ill.: Jameson Books, 1996)을 보라.).


그것은 이런 모습이건 저런 모습이건 자유 시장을 방어하는 어떤 것에도 핵심이었다. 더욱이 모든 집단주의자들도 자유와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공격 시 그것을 논박하려고 시도하였다. 하지만 일부 저자들은 세의 법칙의 심오함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그레이(Alexander Gray)는 “이 이론을 언급하였는데, 이는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다.”(Alexander Gray, ≪경제학설의 발전: 입문연구(The Development of Economic Doctrine: An Introductory Survey)≫ (London: Longmans, Green, [1931] 1961), p. 268.)라고 언급했다. 로스바드조차 그것을 “세의 사상 중 상대적으로 소소한 측면”(Rothbard, Classical Economics, p. 27.)이라고 불렀다.


대부분의 교재들은 세의 법칙을 거두절미해서 명백하게 잘못된 명제인 “공급이 그 자신의 수요를 창출한다”라는 명제를 만든다. 최소한, 이것은 “총 공급은 그것의 총 수요를 창출한다”고 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 주장은 상품 X의 생산이 반드시 X에 대한 동일 수요로 귀결된다는 주장이 아니고, X의 생산은 상품 A, B, C 등등의 수요로 이어진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상품(그리고 보완적 서비스들) 일반의 생산 혹은 공급은 상품(그리고 보완적 서비스들) 일반의 소비 내지 수요로 이어진다(Say, Treatise, pp. 132-140.).


거기에서 확실히 어떤 특정 상품의 부족 혹은 과잉이 일어날 수는 있다. 그러나 일반적 과잉생산 혹은 일반적 과소 생산은 순간적 현상 이상으로는 일어날 수 없다. “다른 모든 상품들이 초 과잉인 것은 일부 상품들의 생산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잘못 조정된 생산은 “몇몇 폭력적 수단들 … 정치적 혹은 자연적 발작들”(Ibid., p. 135.)로부터 귀결된다. 시장 자체의 장치들에 맡기면 시장은 그러한 불균형들을 교정할 것이다.


세는 교정 과정을 작동시키는 두 가지 수단들을 구별한다. 먼저, 그는 개인들이 생산에서 도출된 소득의 일부를 저축한다고 해도, 그 저축들이 전체적으로 “생산적 고용”으로 재투자되는 한, 거기에는 생산, 소득 혹은 소비의 감소가 있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Ibid., p.110).


이런 재투자 과정은 기업가들이 버는 이윤들에서의 차이에 의해서 촉진된다. 상대적으로 덜 희소한 재화들 따라서 가격이 떨어지는 재화들이 투자를 감소시키는 반면, 상대적으로 더 희소한, 따라서 가격이 오르는 그런 재화들은 추가적 투자를 불러온다. 그리고 아무리 사람들이 화폐를 퇴장시키고 그것을 장독대에 파묻는다고 해도, “궁극적인 목적은 그것을 무언가의 구매를 위해서 항상 사용하게 한다.”(Ibid., p.l33.)


그래서 실제 경제적 가치들이 생산되는 한, 수요의 부족이란 있을 수 없다. 소비자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거기에는 먼저 생산자들이 있어야 한다.

생산과 소비에 대한 그의 논의 전반에 걸쳐서, 세는 일관되게 화폐가 단지 중립적인 전달자에 불과하며, 그것을 통해서 총 공급이 총 수요로 이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즉 “화폐는 가치 전달자에 불과하다.”(Ibid.)


화폐 공급에서의 변화가 재화의 상대적인 가격을 변경시키는, 그럼으로써 전체적으로 상호 연관된 생산구조를 재정렬하는 동력전달 기제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듯이 보인다. 현대 오스트리아 학파적 관점에서 보기에는, 화폐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을 세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함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세는 생산성 이득의 결과로 가격 하락이 일어날 때마다 일반적으로 그런 가격 하락을 경험하는 것이 사회에 전반적으로 혜택이라고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웅변적으로 표명했다. 이런 환경이 적시하는 것은, 인기 있는 믿음과는 상반되게, “나라가 부유하고 풍요롭다”(Ibid., p. 303.)는 점일 뿐 아니라 “ 이제는 사회의 거의 전 집단도 이전에는 부자들만이 접근할 수 있었던 생산물에 도달가능하게 되었다는 것”(Ibid., p. 288.)이기도 하다. 더욱이 세는 (a) 재화의 가격들은 구매자에 대한 그것들의 효용을 반영하는 것이고, (b) 생산요소들의 가격들은 생산된 재화들의 가격들로부터 도출된 것이거나 “전가된(imputed)” 것이고, 따라서 (c) 생산비는 재화의 효용과 생산요소의 생산성 사이의 접점을 대표한다는 점(Ibid., p. 287-288.)을 정확히 알아냈다.


<<기업가들, 자본 그리고 이자>>

로스바드는 경제학계가 기업가를 경제학적 사고에 다시 도입함으로써 세에게 은총을 내렸으며(Rothbard, Classical Economics, p. 25.),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애덤 스미스는 펜과 잉크를 가지고 기업가를 보이지 않게 만들었지만, 세는 기업가들을 생환시켰고, 무대의 중앙으로 데려왔다.*

---------------------------------------

*Say의 《논저(Treatise)》를 처음 읽을 사람의 편의를 위해서 지적해두어야 할 것은, 보통 알려진 교재가 1880년 미국 판을 재출간한 것이며, 그 판에서는 프랑스어의 “기업가(entrepreneur)”가 “모험가(adventurer)”로 번역되어있다는 점이다. Say, Treatise, p. 78n을 보라.

------------------------------------------------


이들 기업가(entrepreneur)들은 무슨 일을 하는가? 그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생산요소들을 조직하고 지휘할 그들의 “기업”(세가 선호하는 용어로는 “노동”)을 사용한다(Ibid., p. 83.).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경영자(manager)가 아니다. 그들은 예측하는 자들이고, 기획을 평가하는 사람들이고, 위험을 부담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Ibid., p. 81-85.).


그들 자신의 금융 자본을 가지고, 혹은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서 빌린 것을 가지고, 노동, 천연자원들(“토지”) 그리고 기계류(“도구들”)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금을 미리 지불한다. 오직 기업가들이 소비자들에게 생산물을 파는데 성공했을 때만 이들 지불들 혹은 “지대들”을 되찾는다. 기업가적 성공은 개인이 추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대체로 사회에 핵심적인 것이기도 하다. “지혜로운 상인들, 제조업자들, 그리고 농업가들을 잘 갖춘 나라는, 주로 예술과 과학만 추구하는 나라보다, 번영을 달성할 더 강력한 수단들을 가지고 있다.”(Ibid., p. 82.)


세가 “자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문맥상 (a) 그 이상의 내지 최종적인 재화의 생산으로 통합되는 자본재(capital goods)이거나 (b) 기업가가 자금을 조달한 금융자본(financial capital)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Ibid., p. 343.).


전자는 그 이전의 생산과정의 결과물이고, 기업가의 기업과 결합되어 이윤(혹은 손실)을 발생시킨다. 후자는 과거의 생산적 활동으로부터 소득을 일정 부분 저축한 결과고, 이자를 발생시킨다.

이자율 분석은 아주 민감하고, 대부분의 점들에서 현저하게 오스트리아 학파적이다. 먼저, 세는 이자율이 화폐의 가격이 아닌 신용의 가격, 즉 “자본 대부”의 가격이라고 보았다(Ibid.). 따라서 “화폐의 풍부함 혹은 희소성이 이자율을 규정한다”(Ibid., p. 353.)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세는 명목 혹은 시장 이자율이 아닌 실제 이자율을 생각하고 있다. 그는 또한 지급불능으로 인한 손실에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으로서 이자율이 위험 웃돈 일부도 포함하고 있을 것임을 명확하게 보고 있다(Ibid., p. 344.). 그러한 위험 웃돈은, 예를 들어 법률이 신용공여자들이 지급불능상태에 빠진 채무자에 대한 법적 상환청구권을 가지지 못하게 강제하고 있다면 아주 커질 것이다(Ibid., p. 345-346.). 더 나아가, 세는 명목 나라들 간의 “정치적 위험” 차이들이 있고, 이것이 국제적으로 여러 이자율들로 이어진다는 사실도 간파했다(Ibid., p. 347.).


전반적으로, 공공 정책 면에서, 세는 신용 시장에 관해서도 그가 다른 곳에서 보이고 있는, 즉 국가가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동일한 자세를 채택하고 있다. “포도주, 아마포, 혹은 다른 어떤 상품의 가격이 제한을 받지 않듯이, 이자율도 제한되어서도 안되고, 법률에 의해서 결정되어서도 안된다.”(Ibid., p. 352.)


이자율에 대한 세의 이해의 확연한 흠결이 이자율을 “시기 선호들”과 같은 튼튼한 기반 즉 이자율에 대한 설명을 개인들이 현재재를 미래재보다 선호한다는 율에서 발견된 것으로 설명하는 것과 같은 튼튼한 기반*에 닻을 내리지 못한 것이었다는 주장이 있다(Rothbard, Classical Economics, p. 23.).

-----------------------------------------

*우리는 또한 이것을 개인이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것보다는 현재 소비하는 것을 선호하는 율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정말이지 세가 이자율을 시기선호와 연결시키지 못한 잘못을 명시적으로 저질렀지만, 그는 최소한 시기선호 자체에 대한 맹아적 관념을 가지고는 있었던 듯이 보인다. 예를 들어 그는 “정치적 소란과 혼란의 시기 동안에는 …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소득 전체를 소비하고자 하는 유혹”이 흔히 존재한다고 관찰했다(Say, Treatise, p. 348.). 그리고 근검절약(시기선호 율이 떨어지는 것?)의 증대가 자본 축적에 미치는 영향을 논할 때, 그는 심지어 “낮은 이자율이 입증하는 것은 더 풍부한 자본이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결론짓기도 했다(Ibid., p.116.).


<<가치와 효용>>

세에게는, 가치의 근거가 효용이거나 또는 재화나 서비스가 몇몇 인간적 바램을 충족시킬 능력이었다. 그러한 바램들―그리고 그 배후에 존재하는 선호들, 기대들, 그리고 관습들―은 분석가에게 주어진 것으로서, 여건으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분석가들의 과제는 그들 여건으로부터 추론하는 것이다. 세는 대체로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그리고 가치의 기초가 노동이거나 “생산하는 사람”(Ibid., pp. xxxi,xl, 287.)이라고 하는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부인하는 쪽에 공감하는 편이었다. 노동가치설의 편을 드는 경제학자들은 그 문제를 엄밀하게 말해서 후방으로 향하게 한다. 그러나 “생산하는 사람에게 가치를 부여한 것은 … 효용을 창출하는 능력이다.”(Ibid., p. 287.) 가치의 두 범주는 “교환가치(exchange-value)”와 “사용가치(usevalue.)”다.*

----------------------------------

*세의 것과 아주 비슷한 가치 논의에 대해서는 Menger, Principles, pp.114-121, 295-302를 보라.

---------------------------------------


교환가치는 경제학의 영역 내에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장에서 어떤 재화를 획득하기 위해서 포기해야만 할 것을 측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적 용어로 “대상의 가치에 대한 유일하게 공정한 기준은 대체로 그것에 대한 교환으로 기꺼이 획득할 수 있는 다른 상품의 양이다.”(Say, Treatise, p. 285.)


교환가치를 갖는 그러한 것들은 오늘날 “경제재”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세는 그것들을 “사회적 부(social wealth)”라고 불렀다. 이와 대조적으로 공기, 물, 햇볕과 같은 것들은 오로지 사용가치만 갖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너무나 풍부해서 가격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지금 “자유재”라고 알려져 있지만, 세는 그것들에 “자연적 부(natural wealth)”라는 이름을 붙였다(Ibid., p. 286.). 불행하게도 위와 같은 가치 분류학에 집착함으로써 세는 아주 유감스러운 오류에 빠졌다. 그는 재화의 경제적 가치 측정이 문자 그대로 그리고 엄밀하게 말해서 시장 가격이기 때문에(Ibid., p. 285.), 그 경우에는 모든 시장 거래들이 동등한 가치의 교환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것은, 물론, 구매자도 판매자도 이득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함축할 수밖에 없다. 즉, 다른 말로 하자면, 모든 시장 거래들은 “득실이 없는 게임(zero-sum game, 영합게임)”이다. “파리에서 스페인제 포도주를 살 때, 동등한 가치에 대해 실제로 동등한 가치가 주어진다: 지불된 은과 받은 포도주는 하나가 다른 것의 가치다.”(Ibid., p. 67.) 그러나 오스트리아 학파는, 교환들이 자발적인 한에서, 그 교환들은 구매자 판매자 각각의 기대된 효용이라는 점에서는 상호 편익(mutually beneficial)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한다는 점에서는 단호하다. 만일 상호 편익이 없다면, 그 경우에는 구매자와 판매자가 왜 거래에 동의할까?


<<세금과 국가>>

경제에 대한 정부 간섭에 대한 비판만큼 세의 근본주의가 더 명백한 곳은 없다.*

------------------------------------------------------------

*로스바드(Murray N. Rothbard)는 자신의 《권력과 시장: 정부와 경제(Power and Market: Government and the Economy)》 (Kansas City: Sheed Andrews and McMeel, [1970] 1977)에서 현대 오스트리아 학파적 관점에서 이 현안에 대해 최고의 분석을 하였다. 우리는 이 저작에 대해 세가 아주 따뜻하게 박수갈채를 보냈을 것이라고 믿지 않을 수 없다.

----------------------------------------------


아주 간결하게 진술되기는 했지만, 그는 이기심과 이윤추구가 기업가들로 하여금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쪽으로 밀고 있다고 언명했다. “생산의 본질은 항상 사회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의해 규정된다.” 따라서 “입법을 통한 간섭이야말로 너무나 지나친 것이다.”(Say, Treatise, p.144.)


일련의 특정한 입법 법률들에 대한 세의 논평들은 아주 교훈적이다. 영국의 항해법(British Navigation Acts) 제1호는 1581년 통과되었다. 이 법들은 1651년과 1660년에 강화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것은 1849년까지 폐지되지 않았다. 그것들의 목적은 영국의 국제 무역을 전적으로 영국 상선의 소유자들에게만 허용하는 것이다. 세는 그것은 흔히 그들의 재화를 시장에 내놓는 상인들의 이윤을 감소시키기 때문에 “무역을 하는 것”에 대한 그러한 독점은 국민적 부(national wealth)를 감소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 법령의 방어자들이 이를 승인할 수 있다는 점을 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 제한들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국가안보라는 근거에서만이라고 주장한다. 세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만 그렇다고 쏘아붙였다.

다른 민족들을 지배하는 것은 한 민족에게 이익이다. … 지배 애착으로는 꾸며낸 상승 이상의 것을 얻지 못한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이웃들을 적으로 만들 것이 확실하다. 바로 이것이 민족의 채무, 내부적 남용, 독재 그리고 혁명을 낳는다. 상호 이익이 된다는 느낌이야말로 국제적인 친선을 낳고, 유용한 왕래의 영역을 확장하고, 그리고 번영, 영원으로 이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Ibid., p. 104.).


이 글은 자유 무역과 평화가 손에 손잡고 함께 나간다는 명제를 세가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세는 세금에 대해서 두 유형으로 나눈다. 직접세들은 소득 혹은 부에 과세되는 것이다. 간접세는 판매세, 특별소비세, 관세와 같은 것들이다. 그 특정한 징수 형태나 방법과 관계없이, “세금이 생산적 자본의 축적을 가로막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모든 세금은 재생산에 해를 끼칠 수 있다.”(Ibid., p. 455.) 따라서 일부 경제학자들이 주장해왔던 것과는 반대로, “세금이 … 자기네 나라의 부의 일부를 소비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확연하게 어리석은 짓이다.”(Ibid., p. 447.)


오늘날 우리는 높은 세율과 그에 따른 높은 수준의 정부 지출이 어쨌든 사회를 더욱 번영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저자들을 발견할 것이다. 당연히 세는 이것이 잘못임을 알고 있었다. 통계적인 견지에서 번영과 과세에 양의 상호연관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는 그러한 주장들이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뒤집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어떤 사람이 많이 지불하기 때문에 그가 부자인 것이 아니라, 그가 부자이기 때문에 많이 지불할 수 있는 것이다.”(Ibid., p. 448.)


번영하는 민족은, 만일 그들이 여전히 번영하고 있다면, 그들이 무거운 세금부담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지, 무거운 세금 부담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세의 《논저(Treatise)》를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소비”를 제목으로 한 절에 세금과 정부에 대한 논의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세는 주저 없이 정부지출을 “비생산적 소비”로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도한 세금은 일종의 자살”(Ibid., p. 450.)이라고 했다.


세가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자들의 심장에 소중하게 여겨지는 이론의 일정한 지점들에 대해 간과하거나 오해했다는 점은 맞다. 그는 시장 교환들이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효용 상 이득임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믿지 않았다. 그는 이자율과 시기 선호 사이의 관계도 보지 못했다. 그는 경기순환 이론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는 통계적 탐구의 한계들을 인식하고 있었고, 상품화폐와 자유 은행업을 아주 많이 좋아했다. 그는 경제적 진보에 기업가들과 자본축적이 핵심적임을 알았다. 그는 정부 규제와 과세 모두가 번영에 대한 위협인 것을, 정말이지 심지어 시민 사회 자체에 대한 위협인 것을 정확하게 보고 있다.


세는 그 독자가 오스트리아 학파든 아니든, 경제학자이든 아니든, 어떤 독자에게도 제공할 것이 많았다. 그는 많은 중요한 진리들을 명확하게 보았고, 그것들을 정열적이고 명석하게 썼다. 세는 한 때 경제학을 “이 아름답고 무엇보다도 유용한 과학”이라고 불렀다(Ibid., p.lii.). 그는 경제학을 그가 발견했던 것보다 더 아름답고 더 유용한 것으로 남겨놓았다.


<<읽을 거리들>>

Gray, Alexander. [1931] 1961. The Development of Economic Doctrine: An Introductory Survey. London: Longmans, Green.

Kelley, David. 1986. The Evidence of the Senses: A Realist Theory of Perception. Baton Rouge: Louisiana State University Press.

Menger, Carl. [1871] 1976. Principles of Economics. Translated by James Dingwall and Bert F. Hoselitz.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Mises, Ludwig von. [1957] 1969. Theory and History: An Interpretation of Social and Economic Evolution. New Rochelle, N.Y.: Arlington House.

--. [1960] 1976. Epistemological Problems of Economics. Translated by George Reisman.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 [1949] 1966. Human Action: A Treatise on Economics. Chicago: Henry Regnery.

Palmer, R. R. 1997. J. B. Say: An Economist in Troubled Times. Princeton, N. J.: Princeton University Press.

Reisman, George. 1996. Capitalism: A Treatise on Economics. Ottawa, Ill.: Jameson Books.

Roll, Eric. [1956] 1961. A History of Economic Thought. Englewood Cliffs, N.J.: Prentice-Hall.

Rothbard, Murray N. [1962] 1993. Man, Economy, and State. Auburn, Ala.: Ludwig von Mises Institute.

--. [1962] 1991. The Case for a 100 Percent Gold Dollar. Auburn, Ala.: Ludwig von Mises Institute.

--. 1983. The Mystery of Banking. New York: Richardson and Snyder.

--. [1970] 1977. Power and Market: Government and the Economy. Kansas City: Sheed Andrews and McMeel.

--. 1995. Classical Economics. Vol. 2. An Austrian Perspective on the History of Economic Thought. Cheltenham, U.K.: Edward Elgar.

Say, Jean-Baptiste. [1880] 1971. A Treatise on Political Economy: or the Production, Distribution and Consumption of Wealth. Translated by C. R. Prinsep and Clement C. Biddle. New York: Augustus M. Kelley.

Sowell, Thomas. 1972. Say's Law: An Historical Analysis.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 1974. Classical Economics Reconsidered.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출처: dcinside.com; 경제사상사-오스트리아 학파의 위대한 경제학자 15인_박종운 역.



매거진의 이전글 리샤르 캉티용의 인플레이션 논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