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A, B, C 세 사람의 총잡이가 결투를 한다. 각각의 명중률은 A는 100%, B는 80%, C는 30%이다. 각자 두 발의 총알을 장전하고, C-B-A-C-B-A의 순서로 진행하기로 한다. C는 첫발을 누구에게 맞춰야 할까? 이 결투에서 가장 약한 총잡이 C의 생존전략은 첫발을 허공에 쏘는 것이다. 이렇게 진행을 할 때, C의 생존 가능성은 41.2%나 된다. 그런데 만약 C가 첫발을 A나 B를 향해 쏘게 되면, C가 A를 맞추었을 때는 80% 명사수인 B의 과녁이 되고, 이와 달리 B를 맞추었을 때도 백발백중의 명사수 A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상황에 따라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 될 수 있다. (총잡이의 또다른 예로 2자 게임에서 자기편을 쏘는 전략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유사한 전략이 전쟁에서 활용되면 성을 비우는 공성(空城) 전략이다.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이 즐겨 사용한 전략이 바로 이것이었는데 외적의 침입시 평지의 거주지를 비우고 산성에서 웅거하며 적의 현지 물자조달을 방해하는 청야(淸野) 전략을 패키지로 함께 사용하였다. 이는 한반도를 침략하는 외적이 주로 기동전에 능한 북방 기마유목민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응한 맞춤 방어전략이기도 하였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에는 유럽이나 일본의 멋진 성은 없고 왜 거기 있는지도 모를 산성의 유적이 전국 곳곳에 산재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공성계(空城計)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때 시전되었다. 러시아의 총사령관 미하일 쿠투초프는 1812년 가을 나폴레옹의 공세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닌 후퇴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모스크바까지 포기하고야 만다.* 대신 성내의 모든 물자를 소각하고 철수하였다. 수도만 점령하면 전쟁을 끝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나폴레옹과 프랑스군은 막상 모스크바를 점령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겨울 혹한과 보급물자의 부족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퇴각하는 과정에서 러시아군과 농민들의 끈질긴 괴롭힘으로 60만의 원정군에서 생환한 군사는 고작 4만 남짓이었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전략은 또한 무언가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위협적이다. 1974년 10월 30일 서아프리카 자이르의 수도 킨샤사에서 WBC WBA 통합챔피언 조지 포먼(24세)과 무하마드 알리(32세) 간의 역사적인 권투시합이 있었다. 이 경기에서 알리는 압도적인 젊은 강자 포먼의 강펀치를 가드를 바짝 올린 채 7라운드까지 고스란히 받아내었다. 조금도 맞대응하지 않는 상대를 경적한 포먼은 상대를 빨리 제압하려다 오버페이스로 서서히 지쳐갔다. 포먼의 템포가 늦어진 틈을 타 알리는 8라운드에 역습하여 K.O. 승을 거둔다.**
아시트에서 이러한 생각원리는 '제거'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아시트에서는 어떤 대상의 제거시 그 제거된 대상이 원래 수행하던 '기능(역할)'을 어딘가 다른 대상이 떠맡아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버스에서 차장이 사라지면, 운전사가 차장의 역할까지 떠맡게 되는 것과 같다. 이것은 회사의 인사업무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만약 조직 내에 결원이 생기면 당분간 누군가가 그 역할을 떠맡게 되고 결국에는 프로세스를 개선하든지 그렇지 않을 경우 불요불급한 업무는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예전 시청역 앞의 토스터 판매 포장마차는 이른 아침에 근처 회사로 출근하는 직장인으로 항상 북적거렸다. 그 중에서도 한 포장마차가 가장 인기가 있었는데, 그 포장마차의 사장은 특이하게도 판매대금을 손으로 받지 않았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식품의 위생관념에 철저했기 때문이다. 거스름돈을 주면서 돈을 만진 손으로 토스터를 조리하는 기존 포장마차의 문제점을 그는 개선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직접 돈을 받지 않는 대신 토스터 판매대금을 고객이 직접 돈통에 넣도록 하였다. 고객들이 혹시 돈을 안내거나 속이면 어쩌나 하는 것은 기우에 불과했고, 그 포장마차는 신뢰와 청결의 대명사로서 시청역 앞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어떤 것을 개선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반드시 어떤 것을 추가하려고 한다. 그러나 호르비츠는 말한다. 특정한 상품을 개선하려고 할 때, 그 상품에서 어떤 것을 제거해 보시오.*** 어떤 것을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그것에 무언가를 더할 필요는 없다. 인터넷 검색엔진들은 계속해서 이것저것을 덧붙여 포털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 왕좌는 누가 차지하였는가? 그것은 흰 도화지와도 같은 첫 화면을 보여준 '구글'이었다.
Note:
*쿠투조프가 나폴레옹에게 승리를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쿠투조프는 러시아-투르크 전쟁에 참전하여 1774년 최전방에서 부대를 지휘하다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 기록에 따르면 총알은 왼쪽 관자놀이로 들어와 뇌를 관통한 뒤 오른쪽 눈 위로 빠져나갔다. 이때 프랑스 출신 외과의사인 '마쏘'의 신기에 가까운 외과 수술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총상으로 인해 전두엽이 손상되어 그는 수술 이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만약 그로 인해 쿠투조프가 조심스러운 성격으로 변하지 않았다면, 그는 나폴레옹에 맞서 전면전을 펼치다, 러시아군은 나폴레옹 군에 의해 괴멸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폴레옹으로선 억울하게도 자국(프랑스) 출신 외과의사의 노력으로 다 잡은 승기를 놓친 셈이다.(참조 : 매일경제, 2015.8.10.)
**알리의 공격하지 않는 전략은 삼국지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이 사용한 짚단배 전략을 연상시킨다. 공명은 밤에 짚단을 가득 쌓은 20척의 쾌속선으로 조조군에게 다가가서 북만 울리고도 10만 개의 화살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전쟁에서 제거를 가장 완벽하게 실천하는 전략은 아마도 배수진일 것이다. 퇴로를 스스로 차단(제거)하는 것은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전과를 낼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는 파부침주의 고사가 이에 해당한다. 항우가 거병을 하여 막 장하를 건넜을 때, 항우는 갑자기 타고온 배에 구멍을 내어 침몰시키고 싣고 온 솥을 모두 깨트려 버리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병사들에겐 단지 3일치의 식량만을 주었다. 돌아갈 배도 없고 밥지을 솥도 없어진 병사들은 선택의 여지를 상실한 채 무섭게 적진으로 돌격해 아홉 번을 싸워 아홉 번을 승리하였다.
한신의 배수진은 단순한 배수진이 아니었다. 배수진을 폄으로써, 자신을 위험에 빠트려, 적군이 성 밖으로 나오도록 유인하였다. 그리하여 매복해 둔 군사를 활용하여 빈 성을 공략하였다. 따라서 이 때의 배수진은 유인책의 공격전술이었다.
플랫폼 등에서 평가는 어떤 기관이 직접 수행하지 않는다. 그것을 ‘좋아요’가 대신한다.
회사는 사람 개인이 아니라 한 부서 등 조직 자체를 없애버릴 때도 있다.(글로벌전략팀의 해체), 포기회의, 간디의 무저항, 골고타 언덕, 소크라테스의 사약, 업을 새로 짓지 않기. 중용, 중관, 무소유, 무위자연(제위인공).
공성전과 청야전술은 평원의 산불 방제전략과 같다. 핵심은 자원(연료)을 없애는 것이다. 전쟁에서는 침략군의 보급선이 길어져서 자원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을 전제한 것이다.
공성계는 의표를 찌르는 것이다. 불균형을 유발한다. (2023.8.15.)
청야와 산불방제는 결국 보급을 끊는 것인데, 이것은 빈배의 지혜 그리고 성인들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한다. (2023.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