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에 나온다. <임경업전>이라는 고전 소설의 끝에 어느 친정아버지가 쓴 글이라고 한다.
"병오년 이월에 조씨 집안에 시집을 간 딸이 자기 동생의 결혼식을 맞아 집으로 왔다. <임경업전>을 베껴 쓰려고 시작하였다가 미처 다 베끼지 못하고 시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제 동생을 시켜서 베껴 쓰게 하고, 사촌 동생과 삼촌과 조카들도 글씨를 중간 중간에 쓰고, 늙은 아비도 아픈 중에 간신히 서너 장 베껴 썼으니, 아비 그리울 때 보아라."
옛날에는 여자가 시집갈 때 가져가는 혼수 품목 중에 소설책이 들어 있었는 모양이다. 시집간 딸을 위해 온 가족이 조금씩 노력하여 필사본을 완성하고 친정아버지는 말미에 메모를 남겼다. 딸은 어느 날 친정에서 보내온 소설책을 받는다. 아버지와 가족들의 글씨가 선연한 그 소설책을 품에 안고 갓 시집온 새댁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 글썽였으리라.
‘가케무샤(影武者)’는 일본영화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의 대표작이다. 일본 전국시대의 영웅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은 어느날 한 좀도둑이 자신의 모습과 거의 같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된다. 그리하여 그는 그 닮은 자를 자신의 곁에 몰래 두고 자신과 똑같이 흉내내게 한다. 심지어 신겐의 첩실조차 그가 가짜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어느 공성전에서 신겐은 뜻하지 않게 적의 총격을 당한다. 숨을 거두기 전 그는 아들에게 가케무샤를 내세워 자신의 죽음을 감출 것을 유언한다. 그의 건재 여부는 다른 경쟁 영주들이 다케다 가문의 영지를 섣불리 넘보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거 이와 같은 복제(복사)는 비용이 많이 드는 게 단점이었다. 그러나 복제 문명의 발달은 인쇄기, 복사기, 사진기 등의 발명을 거쳐 3D프린터에까지 이르렀으니 사물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해갈은 된 셈이다. 다만 사람의 경우에는 아직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 이것(사람 복제)도 쉬워질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마치 이를 준비라도 하듯이 시중에는 '부캐'가 유행하고, 가상 인물들이 디지털 세상에 범람한다.
그렇지만, 우리 머리 속에서는 과거로부터 내려온 복제의 비용에 대한 부담이 잠재적으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뇌는 중복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효율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제의 아이디어는 섣불리 떠올려 지지 않는다. 요즘 버스를 탈 때 보면, 승차카드 태그기가 양쪽에 달려 있는 것을 본다. 양쪽에 있으니까 한쪽에 있을 때보다 훨씬 편하다. 그런데 사실은 이게 원래 뒷문에만 있었고, 앞문에는 없었다. 그러다가 앞문에 생겼는데 다시 뒷문의 양쪽에 생긴 것이다.
질레트가 '다중면도날'을 처음 만들었을 때, 이것이 당연히 좋은 것이라고 누구나 당연히 떠올릴 수 있었을까? 물론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유명한 '아버지의 유언' 설화를 보더라도 막대기의 비유를 들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격언이 있다고 쉽게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막대기는 이미 존재하였기 때문에 (형제들이 여러 명이었기 때문에) 모으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막대기로써 막대기를 강화하려는 생각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외동아들이라면, 형제를 더 만드는 수고보다는 먼저 혼자서 극복할 수 있는 다른 방책을 강구하려고 할 것이다.
아시트의 생각 원리에 '복제'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문제 환경 속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요소를 추가로 더하는 것이다. 그 사례로 아시트에서는 '사파리의 코끼리'가 있다. 사파리에서 코끼리 집단이 젊은 코끼리로만 구성되어 있을 때는 매우 난폭하게 행동해서 사고가 많았는데, 여기에 인도의 늙은 코끼리를 구해와 그 집단에 넣었더니, 평온해졌다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 농업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례인 '불임 파리'가 있다. 파리떼로 농작물이 곤란을 겪고 있을 때 불임파리를 방생하여, 파리떼의 번식력을 격감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류의 복제 아이디어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토인비가 즐겨 비유한 '청어와 곰치' 이야기일 것이다.
이들 사례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이 '복제'가 완전히 똑같은 것을 추가하는 복제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코끼리 사례에서는 기존의 코끼리와 조금 다른 '늙은' 코끼리를 추가하였고, 파리 사례에서는 기존의 파리와 조금 다른 '불임' 파리를 추가하였고, 토인비의 물고기 사례에서는 기존의 물고기(청어)와 조금 다른 물고기(곰치)를 추가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추가로 선택한 기존요소는 문제 자체를 구성하는 대상이며 문제세계 내에 쉽게 추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문제의 원인이 그 대상에 이미 내재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 대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가 되는 그 대상을 추가하여 해결수단으로 삼고 있다.
결국 이러한 사고는 이이제이의 사고와도 일정 부분 겹친다. 문제아가 문제아를 해결하는 것이다. 대신 이러한 문제아나 오랑캐는 기존 환경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집 고양이는 한 마리여서 너무 심심해한다. 나는 항상 아내에게 고양이를 한 마리 더 키우자고 한다. 그러나 아내는 반대한다. 두 마리를 키우기에는 집의 크기와 자신의 수고로움이 부담된다는 것이다. 고양이가 내게 다가와 놀아달라고 할 때마다 나는 우리집 고양이의 무료함에 가슴 아프다.
효율성(비용)과 지루함(중복)을 이겨내는 복제는 고질적인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좋은 팁이다.
Note:
오공대사의 분신술이 빠졌다.
컴퓨터 모니터도 예전에는 1개로 족했으나, 2개로 쓰면 얼마나 편한가.
사실 기타도 2-3개가 있으면 좋다. 5-6번선의 음계가 다른 곡을 연습하기도 좋고, 또 무음 기타도 있으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