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필 Zho YP Jun 29. 2023

포도밭의 유산

조영필

이솝우화에는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아들들에게 그의 포도밭에 보물을 숨겨두었다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 장면이 나온다. 평소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는 아들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찾기 위해 그 해 여름 열심히 포도밭을 파헤친다. 그러나 보물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가을이 되자 생각지도 않게 포도가 풍년이 되어 풍성한 수확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보물을 찾기 위해 포도밭의 흙을 뒤엎은 것이 포도나무에게는 훌륭한 밭갈이가 되어주었다. 이처럼 하나의 용도가 다른 용도로 전환되는 것은 동화 속 지혜일 뿐만 아니라 일상 속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학창시절에는 기묘한 장난으로 친구를 겁박하는 일들이 많다. 내 하숙방에 놀러온 떡대 좋은 까까머리 동급생들은 담배를 피거나 롤러장을 가자며 나를 찾아왔다. 한사코 거절하는 내게 그들은 가져온 콜라를 마시자고 하였다. 마침 내게는 오프너가 없었다. 한 친구가 무언가 막대기로 병을 땄다. 그러자 다른 학생은 이빨로 땄다. 세 번째 아이는 눈꺼풀로 병마개를 땄다. 그가 정말로 어떻게 그것을 눈꺼풀로 딸 수 있었는지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었다. 마침 내 주머니에 십원짜리 동전이 하나 손에 쥐어졌다. 엉겹결에 나는 한 번 본 적도 없고 해보지도 않은 것을 시도하였다. 동전을 책상 모서리에 대고 탁 쳐서 그것으로 병을 딴 것이었다. 내 나름의 실력을 본 건달친구들은 그 이후로는 내 방을 함부로 급습하지 않았다.


톰소여의 모험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와 있다. 하루는 톰소여가 벽에 페인트칠을 하여야 했다. 아주 지루한 일이었지만, 친구들이 지나가는 것을 본다. 그러자 그는 그 일이 무척 재미있는 것처럼 신나게 하였다. 친구들은 톰소여가 재미있어 하는 것을 보고 자기들도 페인트칠을 하고 싶어 조바심을 내었다. 그럼에도 톰소여는 쉽사리 친구들에게 페인트칠의 권리를 주지 않는다. 결국 친구들의 여러가지 공물을 받고서야 그는 무슨 큰 선심이라도 쓰듯이 친구들에게 붓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친구들의 공물을 즐기며 시원한 그늘에서 쉬는 장면이다.


이와같이 세상에는 원래의 용도와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것들이 많다. 비아그라나 보톡스는 의학적 발견의 유명한 사례이지만, 사업적으로는 브래지어에 사용되던 형상기억합금이 NASA의 비행선 개발에 사용되는 사례도 있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이쑤시개 대신 명함을 쓰거나, 등이 가려울 때 가구 모서리에 대고 긁기도 한다. 회사에서 너무 피곤하면, 화장실에 가는 친구들도 있다. 그밖에 한적한 곳의 카페나 음식점에 가면 연예인들의 방문 낙서를 보는 경우가 있다. 이런 낙서를 알뜰히 모아 식당들은 점포의 가치와 신뢰도를 홍보한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인재를 아끼는 재상이 있었다. 그는 제나라의 맹상군 전문이다. 그의 식객은 3천을 헤아렸는데 개중에는 특이한 재주를 가진 사람도 많이 있었다. 그가 진나라에 초청되어 갔을 때 그는 몇몇 전문가들을 함께 데리고 갔다. 그들은 협상 전문가, 절도 전문가, 위조 전문가 등이었다. 비록 초청되어 갔지만, 상황은 뜻하지 않게 흘러 그는 진나라를 탈출하여야 했다. 이들 다양한 식객(전문가)의 활약으로 모든 위기를 잘 모면하였지만, 마지막 진나라 국경의 관문(함곡관)은 새벽이 되어야만 문이 열린다. 한시가 급한 탈주의 경각에서 일행 중 한 사람이 닭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무사히 호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모든 사물에는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특정한 기능이 주어진다. 그리고 기능이 있으면 반드시 용도가 있다. 그리고 우리의 머리 속 관념은 그 사물을 또는 그 사람을 그러한 기능으로만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사물은 우리가 평소에 쓰는 용도 외에도 전혀 새로운 용도의 가능성이 항상 숨겨져 있다. 3M의 잘 떼어지는 접착제처럼 생각지도 못했던 자원이 특정의 위기 상황에서 창조적인 해결책(포스트잇)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Note:

글을 쓰다보니, '속성전환'과 '용도변경' 기법이 유사한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 비로소 어렴풋이 느껴진다. 더 탐구해야 할 것은 마술의 트릭이다. 마술의 트릭은 그 행동이나 장치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이용한다. 그리고 또 다른 경우는 주사 놓을 때의 엉덩이 때리기와 유치를 뽑을 때 머리를 탁 치는 것이다. 이것은 성동격서에 가까운 듯도 하다.

포도밭의 유산은 유휴자원을 활용하되, 표면의 목적이 이면의 목적을 숨겨 이끌려진 군상들의 의도와 다르게 결과를 낳는 지혜이다. 이는 주로 기만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토끼의 간에서 토끼와 자라가 이 신공을 겨루었고, 톰소여도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맥도날드의 빨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