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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Jun 29. 2023

입장 바꿔 생각해 봐

조영필

우리집 근처의 지하철 역사에 가면 입구마다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나는 이 에스컬레이터를 1972년에 영등포 백화점에서 처음 접하였다. 서울로 이사와서 처음으로 간 백화점에 시골에서는 보지도 못한 에스컬레이터가 1층과 2층을 연결하며 그 위용을 자랑했다. 나는 그 백화점에 갈 때마다 몇 번이고 에스컬레이터를 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에스컬레이터는 이제 우리 생활에 깊이 뿌리 내린 듯하다. 환승역에서는 통로대신 무빙워크가 우리를 맞이한다. 웬만한 곳은 가만히 서있어도 이동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있다. 작은 러닝머신들이 헬스장이나 집에서 열심히 작동한다. 그리고 움직이는 것이 굳이 컨베이어이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수영장에는 엔드리스풀이 있어 물살이 움직여서 제자리에서도 우리를 수영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컨베이어 시스템은 1913년 미국 디트로이트의 포드 공장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포드는 이 아이디어를 시카고의 한 도축장에 설치된 라인 시스템에서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전에는 물건을 가공하기 위해 사람이 이동하였는데, 사람을 붙박이로 세워놓고 물건이 이동하면, 그만큼 노동효율성과 공간효율성이 올라간다는 계산이다.


회사에 처음 입사하면, 신입사원은 1-2주일간 공장들을 견학하며 현장의 일을 익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나도 김포의 어느 공장에서 반나절간 포장공정에 투입된 적이 있다. 거의 반쯤 로봇이 된 기분인데 이때 아무 생각없이 일에 집중하는 것이 요령이다. 잘못 딴 생각하다간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이러한 컨베이어 시스템은 역전의 사고이다. 기존의 붙박이는 이동하고, 기존의 떠돌이는 정착한다. 이동 대상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고정관념을 돌파하니 생산효율성이 제고되었다. 이밖에도 부품 표준화 등 다양한 혁신을 추가하여 포드는 1900년대 2000 - 3000달러를 호가하던 자동차를 1920년에는 255달러에 판매함으로써 소위 마이카 시대를 열었다.


거꾸로 하기는 스캠퍼에서도 중요한 생각 팁의 하나인데, 보통 페달을 뒤로 밟아도 앞으로 가는 자전거, 화장품이나 치약의 뚜껑을 아래로 뒤집기, 양말에서 벙어리 장갑을 (장갑에서 발가락 양말을) 착상하기 등의 사례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더 확장하여 역할이나 기능의 교환으로 이해하고 적용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강의하도록 하는 거꾸로 학습법도 있고, 제품의 가격을 먼저 정하고 공정을 기획하는 인도의 타타 자동차 사례도 있다. 회사에서 사원들이 상사를, 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수를 평가하는 것도 이러한 역할 전도의 사고이다.


트리즈와 아시트에서는 ‘거꾸로 하기’에 ‘미리 하기’를 겸하여 생각한다. 깁스를 하기 전에 그 안에 미리 칼을 넣어두면 깁스를 쉽게 해체할 수 있다. 드릴의 마모시 위험한 부분에 미리 냄새나는 물질을 넣어두면, 드릴의 마모시기를 정확히 파악할 수가 있다. 또 가장 재미있는 사례는 목재에 색을 입히는 방법이다. 목재에 나중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기를 때에 미리 염료를 섞은 물을 주면, 나무에 색깔이 반영구적으로 입혀진다.


이처럼 순서를 거꾸로 하고 또 모양을 뒤집어보는 것은 우리 뇌의 가소성을 올리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Note:

기소불욕 물시어인(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도 거꾸로하기의 도덕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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