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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개똥 역사

사이공

조영필 & 젬선생

by 조영필 Zho YP

예전에 베트남 지역에 대한 사업계획을 수립할 때, 사이공의 한자가 서공(西貢)인 것을 보고 이곳도 중국의 영향권인가 하고 놀란 적이 있다. 그러나 사이공 지역은 메콩강 하류의 델타로서 상당히 늦은 시기에 개척된 곳이며, 원래는 또 크메르의 영역이었다. 이를 하노이 지역 베트남의 세력이 북쪽으로는 중국에 막히고 서쪽으로는 산맥으로 막힌 상황에서 남쪽으로의 지속적인 영역 확장을 통해 베트남의 강역이 된 곳이므로 이른 시기에 중국과의 교류는 있었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한자 서공(西貢)을 단순 해석하여, 서쪽에서 중국으로 조공하던 지역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었다. 이제 기술이 발전하여 젬선생과 논의해보니, 아무래도 그 이름은 그 지역에 대한 크메르어의 지명을 베트남어로 이해하고, 여기에 한자를 음차하여 붙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겠다.



사이공(Sài Gòn)의 뜻과 유래

사이공은 현재 **호찌민시(Ho Chi Minh City)**의 옛 이름으로, 여러 어원설이 있습니다.


1. 한자 **서공(西貢)**에서 유래했다는 설: 이 한자 이름은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서쪽에 있는 도시"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이는 과거 베트남이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2. **柴棍(Sài Gòn)**에서 유래했다는 설: 柴(시)는 땔나무, 목책 등을 뜻하고, 棍(곤)은 몽둥이를 뜻하며 베트남어에서는 목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지역에 무성했던 카폭나무 숲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3. **크메르어 Prey Nokor(프레이 노코르)**에서 유래했다는 설: Prey는 '숲', Nokor는 '도시' 또는 '왕국'을 의미하여 "숲의 도시"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원래 이 지역은 캄보디아(크메르)의 영토였고, 크메르인들이 "숲의 도시"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숲의 도시"가 **사이공(Saigon)**으로 발음되게 된 과정은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크메르어에서 베트남어로 음이 변화하면서 지금의 발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1. 크메르어 '프레이 노코르(Prey Nokor)'

사이공 지역은 원래 캄보디아인(크메르족)의 영토였으며, 이들은 이곳을 **프레이 노코르(Prey Nokor)**라고 불렀습니다.

* Prey (프레이): 숲을 의미합니다.

* Nokor (노코르): 도시 또는 왕국을 의미합니다. (산스크리트어 '나가라(nagara)'에서 유래)

따라서 '프레이 노코르'는 "숲의 도시" 또는 "숲의 왕국"이라는 뜻입니다.


2. 베트남어 음으로의 변화

베트남인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크메르어 '프레이 노코르'의 발음이 점차 베트남어식으로 변화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 **Prey (프레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Rai (라이)**로, 다시 **Sai (사이)**로 음이 변했을 수 있습니다.

* **Nokor (노코르)**는 **Kor (코르)**로, 이후 **Gon (곤)**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변화하면서 **'사이(Sai)'**와 **'곤(Gon)'**이 합쳐져 **사이공(Sài Gòn)**이라는 발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베트남어 Sài Gòn의 표기에서 'Sài'는 '장작', '땔감'을 의미하고 'Gòn'은 '목화'를 의미하는 한자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는데, 이 역시 숲과 관련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3. 프랑스의 영향

1859년 프랑스가 사이공을 점령한 후, 기존의 베트남어 발음인 'Sài Gòn'을 서구식으로 표기하여 'Saïgon' 또는 **'Saigon'**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 발음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종합하면, "숲의 도시"를 의미하는 크메르어 **'프레이 노코르'**가 베트남어 사용자들에게 불리면서 음운 변화를 거쳐 **'사이공(Sài Gòn)'**이 되었고, 프랑스 식민 시대를 거치며 현재의 'Saigon' 발음으로 굳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떤 설이든 사이공이 과거에 숲이 무성하고, 다양한 문화권의 영향을 받았으며, 베트남의 남진 정책과 관련이 깊은 지역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사이공이 대도시가 된 시기

사이공의 역사는 약 300여 년 전인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캄보디아의 영토였던 메콩강 하류 지역에 17세기 초부터 베트남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1698년, 응우옌 왕조가 이 지역에 정식으로 자딘(嘉定) 부를 설치하고 그 아래에 떤빈(Tan Binh, 지금의 사이공) 현을 두면서 도시로서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19세기 프랑스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프랑스의 도시 계획을 통해 근대 도시로 발전했고, 정치·경제의 중심지로 성장하며 "극동의 진주" 또는 **"동양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큰 도시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베트남 통일 이후인 1976년에 호찌민시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사이공이라는 옛 이름을 사용하고 있으며, 도시의 주요 시설 이름에도 사이공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