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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개똥 역사

마자르와 말갈

조영필 & 젬선생

by 조영필 Zho YP

사람들은 헝가리라는 국명에서 그 유명한 아틸라의 훈(Hun)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헝가리의 중심 민족은 우랄어족 계통의 마자르족이다. 나는 훈족과 아바르족을 뒤이어 헝가리 평원에 도착한 마자르족이 말갈족이 혹시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한국인들은 그들의 역사 도정에서 말갈족을 미개한 오랑캐라고 생각하며 무시하여 왔지만, 고구려의 민족구성뿐 아니라 이후 우리나라의 여러 역사적 정황을 살펴 볼 때 분명 말갈족은 우리 민족을 이루는 주요 구성 민족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말갈족의 서진을 밝혀내는 것은 우리 민족의 서진을 밝혀내는 것이며, 이는 나의 또 하나의 중요한 숙제가 될 것이다.


댓글에서 마자르족과 말갈족이 어족이 다른 것에 대한 질문을 하신 분이 있어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마자르와 말갈의 동계 추정은 그 언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제기되기 힘든 주장입니다. 말갈족의 서진은 가능하지 않아 보이며 그보다는 마자르족과 알타이제어 종족 간의 영향 관계사로 관심의 방향을 돌립니다.



헝가리 평원은 유럽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수많은 유목 민족의 활동 무대였습니다. 특히 훈족, 아바르족, 마자르족은 이 지역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며 유럽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들의 활동 시대, 향후 민족 구성, 그리고 영향 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훈족 (Huns)

활동 시대: 서기 4세기 후반 ~ 5세기 중반


주요 활동: 370년대 중반, 볼가 강을 넘어 유럽에 등장하여 게르만족을 압박하고 로마 제국을 위협했습니다. 특히 아틸라(Attila) 치세(434~453년)에 전성기를 이루며 판노니아 평원(현재의 헝가리 평원)에 중심지를 두었습니다.


향후 민족 구성 및 영향 관계:

민족 구성: 훈족은 다양한 투르크계 및 몽골계 민족들이 연합한 느슨한 부족 연맹체였습니다. 아틸라 사후 빠르게 와해되었고, 훈족이라는 단일 민족 정체성은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영향:

게르만족의 대이동 촉발: 훈족의 압력은 게르만족의 대이동(Völkerwanderung)을 촉발하여 서로마 제국의 멸망에 간접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유럽의 혼란 가중: 훈족의 침입은 당시 유럽 사회에 큰 혼란을 야기했으며, 이는 중세 초기의 정치적, 사회적 재편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문화적 영향: 훈족 자체의 문화적 유산은 거의 남아있지 않으나, 그들의 전투 방식과 전술은 이후 유목 민족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럽 민족 구성에 미미한 영향: 훈족은 정착하여 기존 주민과 동화되기보다는 주로 약탈과 정복에 집중했기 때문에, 헝가리 평원의 민족 구성에 직접적인 유전적 영향은 미미했습니다.


2. 아바르족 (Avars)

활동 시대: 서기 6세기 중반 ~ 9세기 초반


주요 활동: 560년대에 판노니아 평원에 정착하여 아바르 칸국을 건설했습니다. 동로마 제국과 프랑크 왕국을 위협하며 동유럽에서 강력한 세력을 유지했습니다. 8세기 말, 카롤루스 대제(Charlemagne)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향후 민족 구성 및 영향 관계:

민족 구성: 아바르족 역시 투르크계 유목 민족으로 추정되며, 정착 과정에서 기존의 슬라브족 및 게르만족 일부와 혼혈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훈족과 마찬가지로 아바르족이라는 단일 민족 정체성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영향:

슬라브족의 이동 및 정착에 영향: 아바르족은 슬라브족의 이동과 정착에 영향을 미쳤으며, 일부 슬라브 부족들을 지배하기도 했습니다.

동유럽의 정치적 불안정: 아바르 칸국은 동유럽 지역의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했지만, 동시에 이 지역에 어느 정도의 질서와 통제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문화적 유산: 아바르족은 정교한 금속 공예품 등 상당한 문화적 유산을 남겼으며, 이는 헝가리 평원 지역의 고고학적 유적에서 발견됩니다.

헝가리 평원 민족 구성에 간접적 영향: 아바르족 지배하에 있던 슬라브족은 이후 마자르족의 도착 전에 이 지역에 거주하는 주요 집단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3. 마자르족 (Magyars)

활동 시대: 서기 9세기 후반 ~ 현재 (헝가리인의 조상)


주요 활동: 9세기 말, 우랄 산맥 서쪽에서 온 우랄어족 계통의 유목 민족인 마자르족은 아르파드(Árpád)의 지휘 아래 카르파티아 분지에 정착했습니다. 10세기 초까지 서유럽을 약탈하며 공포의 대상이 되었으나, 955년 레흐펠트 전투에서 패배한 후 점차 정착 생활로 전환했습니다. 1000년에 이슈트반 1세(István I)가 헝가리 왕국을 건국하며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유럽 문명권에 편입되었습니다.


향후 민족 구성 및 영향 관계:

민족 구성:

헝가리 민족의 형성: 마자르족은 헝가리 평원에 정착하여 현재의 헝가리 민족의 핵심 조상이 되었습니다.

기존 주민과의 융합: 정착 과정에서 기존에 헝가리 평원에 거주하던 슬라브족, 아바르족의 잔여 세력, 게르만족 등과 혼혈 및 동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마자르어가 지배적인 언어가 되면서 마자르족의 정체성이 확고해졌습니다.


영향:

헝가리 국가의 탄생: 마자르족은 헝가리라는 독립 국가를 세웠고, 이는 중앙유럽의 지정학적 지형을 영구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유럽의 동서 문화 교류: 헝가리 왕국은 서유럽과 동유럽, 그리고 나아가 유목 세계와의 문화적 교류의 교차점이 되었습니다.

중앙유럽의 주요 세력: 헝가리는 중세 이후 합스부르크 제국, 오스만 제국 등과 대립하거나 협력하며 중앙유럽의 주요 세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문화적 유산: 헝가리 언어, 전통, 관습 등은 마자르족의 유산이며, 현재까지 헝가리 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헝가리 평원의 민족 구성 및 영향 관계 종합

헝가리 평원은 이들 유목 민족의 역동적인 활동으로 인해 끊임없이 재편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훈족과 아바르족: 이들은 일시적으로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지만, 정착하여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거나 지배 민족으로 자리 잡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들의 지배는 헝가리 평원 내 기존 민족들(주로 슬라브족)의 이동과 재편에 영향을 주었을 뿐, 직접적인 민족 구성의 핵심 요소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외부의 압력으로 작용하며 유럽 역사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마자르족: 이들은 헝가리 평원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기반으로 한 강력한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마자르족은 훈족이나 아바르족처럼 사라지지 않고, 기존 주민들과의 융합을 통해 현재 헝가리 민족의 주류를 형성했습니다. 따라서 헝가리 평원의 민족 구성에 가장 결정적이고 영구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마자르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훈족과 아바르족은 헝가리 평원을 스쳐 지나간 강력한 유목 세력이었으나, 민족 구성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이었습니다. 반면 마자르족은 이 평원에 영구적으로 정착하여 헝가리 민족과 국가를 형성함으로써, 헝가리 평원의 민족 구성과 역사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중앙선데이, 2021.4.3.]

현대 헝가리의 직접 조상은 멀리 동방에서 출발하여 AD 895년 카르파티아 분지(판노니아 평원)에 영구히 정착해서 헝가리 왕국을 세운 고조선·부여 후예 ‘마자르’(Magyars)족이었다.


고조선과 고중국의 국경이 지금의 베이징 부근 영정하(永定河)와 간하(干河) 일대였을 때, 고조선의 간하 일대를 지키던 기마민족이 산융(훈족)과 ‘불도하’였고, 영정하 일대를 지키던 기마민족이 ‘불리지’와 ‘고죽’이었다. 산융은 매우 강대한 데 비하여 불도하는 강소했기 때문에, 불도하는 지금의 탁록(涿鹿)현에 맞닿은 간하 동쪽만 지키고, 광활한 서쪽은 산융이 지키면서 형제처럼 잘 협동하고 있었다.


불도하는 머리 명칭 ‘불’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부여족 일파였다. 부여는 처음 ‘예’족이 건국했다가 후기에 왕조가 ‘맥’족으로 교체되어, ‘예맥족’ 국가가 되었다. 고조선은 용감한 예족 기병부대를 훈족(산융)에 붙여서 서변 요충지 간하 방어에 배치했었다. BC 108년 고조선 해체 후 불도하는 농경민만 남고 유목 기마부대족은 훈족을 따라 이동하다가 결국 중앙아시아에 들어갔다.


현재 헝가리의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마자르족의 개국 설화에는 한 나라 임금에게 두 아들 훈오르(Hunor)와 마고르(Magor)가 있었는데, 사냥 나갔다가 불가사의한 수사슴을 만나 뒤쫓았더니 두 사냥꾼을 깊은 숲속으로 유인하고는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실망한 두 사냥꾼에게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둘’(Dul) 왕의 아름다운 두 딸이 호수에서 물을 튀기며 놀고 있었다. 두 아들은 두 공주를 각각 말에 태우고 돌아와서 혼인하여 아내로 삼으니, 훈오르가 낳은 자손이 훈족(Huns)이 되고, 마고르가 낳은 자손이 마자르족(Magyars)이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 설화는 훈족과 마자르족이 국왕을 같이한 형제 관계이며, 훈족이 형이고 마자르족이 아우임을 알려주고 있다.


여기서 ‘훈오르’는 ‘훈+오르’로, ‘마고르’는 ‘마ㄱ+오르’로 분절된다. 이어 ‘마가르’가 ‘마자르’로 변음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부여는 대장군이나 장관을 ‘가’(ga, gar)로 호칭하고, 말·소·양·개 등의 가축 이름을 붙였는데, ‘말가(르)’가 ‘마자르’로 변음된 것으로 해석된다. 마자르족 개국설화는 고조선 시기 훈족과 불도하의 형제 관계와 관련이 있다고 필자는 본다. 이 설화는 동일 국왕 아래서 살다가 이동하여 각각 훈족과 마자르족을 형성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불도하의 족장 말가(르) 지휘 하의 기마부대족은 2~4세기경 훈족의 뒤를 따라 우랄산맥의 동쪽 토볼강 유역에 정착했다. 이 시기부터 부족 이름이 마자르(마가르)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훈족이 4세기에 더 서방으로 이동하여 판노니아 평원으로 들어가자, 마자르족은 우랄산맥 서쪽 카마강과 볼가강 사이의 이전 훈족의 첫 정착지 자리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마자르족은 목축과 농경에 힘쓰며 상당히 성장하여, 헝가리 학자들이 ‘대(大)헝가리아’(Magna Hungaria)로 호칭하는 시기를 맞았다. 그러다 마자르족은 5~7세기 돈(Don)강과 드니에프르(Dniepre)강 하류 사이의 레베디아 지방으로 이동했다가 강대한 불가르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마자르족은 7세기 말~8세기 전기에 막강한 힘을 배양했다. 그 요인이 동방으로부터 찾아온 유목민의 충원을 받은 것이라면, 필자는 그것을 속말말갈(粟末靺鞨)족으로 본다. 원래 말갈족의 본거지는 부여의 통치 아래서 요동지방 동만주에 분포된 7개 부족으로 구성돼 있었다. 고구려 건국 후 영토 확장 과정에서 ‘제2 송화강’ 부근의 ‘속말말갈’이 영토를 지키려고 581~600년 고구려와 전쟁에서 패했다. 대부분 고구려에 항복해 고구려 신민이 되었으나, 궐계부(厥稽部)의 ‘만돌’과 그의 동생 ‘돌지계’는 항복을 거부하고 수나라로 피신했다. 수나라는 이들을 요서의 대릉하 부근에 두었는데, 동생 ‘돌지계’는 수나라의 신하가 되었고, 형 ‘만돌’과 그 기마부대는 탈출하여 중국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것이 요서 지방으로 이동한 유일한 말갈족 기병부대이다(『隋書』, 『太平寰宇記』, 『北史』). 이들이 중앙아시아의 동일 예족인 마자르족을 찾아가 합류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자르족은 8~9세기에 드니에프르 강과 드니에스테르(Dnyester)강 사이의 흑해 위 서편 카자르 제국 영토인 에텔쾌즈(Etelkoez) 지방으로 민족이동을 감행해 정착하며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카자르 제국은 마자르족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889년 마자르족을 공격했다.


말갈족 기병부대 합류한 뒤 강성

마자르족은 다시 895~900년 카르파티아 분지(판노니아 평원) 안으로 민족이동을 감행했다. 이곳은 동로마의 영지였으나 로마인은 많지 않았고 약 20만 명의 슬라브족이 살고 있었다.


마자르족은 이 민족이동 때 7개 기마 부족장이 모여 혈맹의 뜻으로 피를 나누어 마시고 아르파드(Arpad)를 왕으로 지명함과 동시에 그의 남자 후손을 세습 군주로 봉대할 것을 서약했다.


아르파드가 지휘하는 약 2만 명의 정예 기병부대는 895년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어 분지 안으로 진입해서 슬라브 농민들을 신속하게 정복했다. 아르파드는 뒤따라온 약 40만 명의 마자르족을 정착시키고, 마침내 카르파티아 분지에 마자르족의 헝가리 왕국을 건국하였다. 이것이 현대 헝가리 마자르족 국가의 시작이다.


아르파드의 지휘 아래 마자르족이 카르파티아 분지로 이동하는 모습을 그린 헝가리 기록화에 보면, 기병대는 부여·고구려·말갈족처럼 새 깃털을 꽂은 관(鳥羽冠)을 쓰고, 일반 백성은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마자르 전통 흰옷과 붉은 댕기를 단 소녀들의 민속춤. 강강술래를 닮았다. [위키피디아]



헝가리 마자르족과 과거 만주 지역의 말갈족이 동일한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중국의 **주학연(朱學淵)**입니다. 그는 주로 비교언어학적 접근을 통해 이러한 주장을 펼쳤으며, 그의 주요 저서인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 (2009년 출간, 국내 번역)에서 관련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학연(朱學淵)과 그의 주장

주학연은 물리학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언어학, 역사, 인류학 분야를 연구하며 독자적인 시각을 제시해온 학자입니다. 특히 중국 북방 민족의 기원과 이동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으며, 기존의 중국 중심적 역사 해석에 도전하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쳐 주목받았습니다.


그의 마자르-말갈 동원설의 주요 주장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언어학적 유사성

주학연은 마자르족의 족명, 인명, 지명, 그리고 기본적인 어휘들을 분석하여 헝가리어가 퉁구스계 언어, 특히 말갈족의 언어와 유사성을 가진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단순히 유사한 발음이나 단어가 아니라, 언어의 구조적인 특징이나 어원의 연관성을 통해 두 언어 간의 밀접한 관계를 유추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지명이나 부족명의 어원이 만주 지역의 지명이나 부족명과 유사하다는 점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역사적 민족 대이동

그는 7세기 중반의 요동 전쟁과 고구려 멸망이 북방 민족에게 대규모의 연쇄적인 이동을 촉발했다고 봅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만주 지역에 거주하던 말갈족의 일부가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수백 년에 걸친 긴 여정 끝에 유럽의 카르파티아 분지에 도달하여 현재 헝가리 민족인 마자르족의 기원이 되었다는 논리를 전개합니다. 즉, 말갈족이 유럽으로 이주하여 마자르족으로 정착했다는 것입니다.


문화적, 인류학적 유사성

두 민족 모두 기마 유목 민족의 특징을 공유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기마 전술, 복식, 생활 양식 등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이 두 민족의 동원설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기존 학계에서 별개의 민족으로 인식했던 숙신, 말갈, 여진, 만주족 등이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기원한 동일 혈통의 퉁구스계 북방 민족이라는 주장도 함께 펼치며, 마자르족도 이러한 큰 틀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요약

주학연의 주장은 주로 비교언어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7세기 요동 전쟁과 고구려 멸망 이후의 민족 대이동 가설을 통해 마자르족이 만주 지역의 말갈족에서 기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어휘, 지명, 인명 등의 유사성과 유목 민족의 공통된 문화적 특징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주의사항:

다시 강조하지만, 주학연의 이러한 주장은 학계에서 주류적인 견해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드렸듯이 언어학적 계통의 차이, 명확한 역사적 증거의 부족, 그리고 그의 연구 방법론에 대한 비판 등 여러 반론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주장은 중화주의적 역사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았지만, 학술적 엄밀성에 대한 검증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논쟁의 여지가 많습니다.



헝가리 마자르족과 말갈족 동원설: 다양한 학설과 타당성 검토


헝가리 민족인 마자르족이 과거 만주 지역에 거주했던 말갈족과 동일한 민족이라는 주장은 중국의 일부 학자를 중심으로 제기되었으며, 이는 흥미로운 동시에 논쟁적인 주제입니다. 이 주장은 주로 언어학적, 역사적, 문화적 유사성을 근거로 하지만, 학계에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며 그 타당성에 대한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합니다.


1. 마자르족과 말갈족 동원설의 주요 근거

마자르족과 말갈족의 동원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근거들을 제시합니다.


언어학적 유사성

가장 강력한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되는 것은 우랄어족에 속하는 헝가리어와, 과거 말갈족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알타이어족의 일부 언어(특히 퉁구스어 계열) 간의 유사성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두 언어 간에 어휘, 문법 구조, 음운론적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우랄어족과 알타이어족은 계통적으로 다른 어족으로 분류되기에 이 주장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입니다.


유목 문화 및 생활 양식

마자르족과 말갈족 모두 역사적으로 유목 생활을 영위했던 민족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말 타기, 활쏘기 등 유목 민족의 특징적인 문화와 생활 양식이 유사하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됩니다.


고대 문헌 기록

일부 중국 고대 문헌에서 말갈족의 이동 경로와 생활 양식에 대한 기록이 헝가리 민족의 초기 역사와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들이 명확하게 두 민족의 동일성을 입증하지는 못합니다.


유전학적 연구

최근에는 유전학적 연구를 통해 두 민족 간의 유전적 유사성을 찾으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아직까지는 명확하고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 동원설에 대한 비판 및 반론

마자르족과 말갈족의 동원설은 학계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는 정설은 아니며, 다음과 같은 비판과 반론이 제기됩니다.


언어학적 계통의 차이

헝가리어는 우랄어족, 특히 핀우그리아어파에 속하는 언어입니다. 반면 말갈족의 언어는 고대 부여어와 고구려어의 영향을 받은 알타이어족 계열로 추정됩니다. 두 어족은 학술적으로 다른 계통으로 분류되며, 제시되는 유사성 역시 단순히 차용어나 언어 접촉으로 인한 현상일 수 있다는 주장이 지배적입니다.


역사적 공백과 증거 부족

마자르족은 9세기 후반 유럽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이전의 이동 경로와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부분이 불분명합니다. 만약 말갈족과 동일하다면,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대륙을 횡단한 거대한 이동 경로와 중간 지역에서의 역사적 기록이 명확히 남아있어야 하지만, 현재까지는 그러한 강력한 증거가 부족합니다.


문화적 유사성의 한계

유목 문화와 생활 양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유목 민족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유목 문화의 유사성만으로 두 민족의 동일성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정치적, 민족주의적 배경

일부 학설은 특정 국가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자민족의 역사를 확장하거나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제기되기도 합니다. 마자르족과 말갈족의 동원설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3. 결론 및 타당성 검토

마자르족과 말갈족의 동원설은 흥미로운 가설이지만, 현재까지는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하며 학계의 주류 의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언어학적 계통의 차이, 역사적 기록의 부재, 문화적 유사성의 일반성 등을 고려할 때, 이 주장의 타당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됩니다.


물론 과거 유라시아 대륙의 광범위한 민족 이동과 교류가 있었기에, 어떠한 형태로든 두 민족 간의 간접적인 영향이나 제한적인 유전적 혼합이 있었을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동일 민족"이라는 주장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동원설은 주로 특정 국가의 학자들이 자국 역사의 독자성을 강조하거나, 민족의 기원을 확대 해석하려는 경향에서 비롯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을 접할 때는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제시되는 근거들이 학술적으로 얼마나 견고하고 객관적인지 심층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네이버 포스트, 내가 여행하는 EU, 2018.2.3]

영어식 국가명인 헝가리(Hungary)는 "훈족의 나라"를 뜻하는데요. 사실 헝가리는 훈족이 아니라 머저르족이 세운 나라랍니다. 그래서 헝가리어로 그들의 국가명은 머저로르사그(Magyarország), 우리가 흔히 마자르인이라 부르는 이들이 바로 헝가리인입니다.


영어식 이름은 당연히 영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 정했겠죠. 머저르족을 훈족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랍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머저르족과 훈족은 동방에서 유럽으로 들어온 기마민족으로 형제와도 같은 관계였습니다. 특히 훈족이 아주 호전적이어서 유럽을 정벌하며 공포의 대상이 되었죠. 그래서 훈족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 "훈족의 나라"라는 헝가리가 탄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훈족이든 머저르족이든 그들이 동방(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왔다는 겁니다.


한때 머저르족이 곧 말갈족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만, "정통" 역사가들은 이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말갈족은 아시다시피 만주에 거주하며 발해의 속민이기도 했던 민족입니다. 그래서 헝가리가 한국과 유사한 점을 적잖이 찾을 수 있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그렇다고 해도 머저르족이 말갈족은 아니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