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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과 홍길동전

젬선생

by 조영필 Zho YP

홍길동전의 저자가 허균이라는 주장은 오랫동안 널리 알려져 왔지만, 현대 학계에서는 그 근거가 희박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라고 여겨지는 이유:

택당 이식의 기록: 조선 중기의 문신 이식(李植)은 그의 문집인 《택당집(澤堂集)》에서 "허균은 또 《홍길동전》을 지어 《수호전》에 비겼다(筠又作洪吉同傳以擬水滸)"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은 오랫동안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가장 유력한 근거로 여겨져 왔습니다.

허균의 사상과의 연관성: 허균은 서얼 출신으로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사상에는 백성을 중시하는 호민론(豪民論) 등이 나타납니다. 홍길동전의 내용 역시 서얼 차별에 대한 저항과 백성을 구제하는 영웅의 활약을 그리고 있어, 허균의 사상과 연결 지어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최초의 한글 소설이라는 인식: 오랫동안 홍길동전이 최초의 한글 소설로 알려져 왔고, 당대의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허균이 한글 소설을 창작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습니다.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가 아니라고 여겨지는 이유:

시대적 불일치: 현재 전해지는 홍길동전의 이본(異本)들은 대부분 19세기 이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글 소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도 18세기 이후이며, 허균이 생존했던 16세기 말 - 17세기 초와는 시간적 간극이 큽니다.

작품 내용의 분석: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사회상이나 제도 등이 허균 생존 시기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숙종 때 시행된 대동법과 관련된 관청 이름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사회 제도 중 허균 시대와 차이가 나는 대표적인 관청은 **선혜청(宣惠廳)**입니다.

선혜청은 조선 후기, 특히 대동법(大同法) 시행 이후에 설치되어 대동미(大同米)와 대동포(大同布)의 출납 및 관리를 담당했던 관청입니다.

대동법 시행 시기: 대동법은 조선 중기인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되었으나,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된 것은 숙종 때에 이르러서입니다. 허균이 생존했던 시기(1569~1618년)는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되기 이전입니다. 따라서 허균 시대에는 선혜청이라는 관청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홍길동전》에는 홍길동이 임금에게 곡식 1천 석을 빌려 백성을 구제하는 장면에서 **선혜낭청(宣惠郎廳)**이라는 관직과 함께 선혜청이 등장합니다. 이는 《홍길동전》의 창작 시기가 대동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된 이후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중요한 증거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선혜청이라는 관청의 등장은 《홍길동전》의 사회 제도가 허균 시대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가 아닐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허균의 다른 작품과의 비교: 허균이 생전에 창작한 것으로 확실히 알려진 다섯 편의 소설은 모두 한문 소설입니다. 홍길동전만 유일하게 한글 소설이라는 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

새로운 사료의 발견: 최근 허균보다 앞선 시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한문본 홍길동전인 《노혁전》이 발견되면서, 한글 홍길동전의 원작자가 허균이 아닐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노혁전(盧革傳)》의 저자는 **황일호(黃一皓, 1588~1641)**입니다. 그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그의 문집인 《지소선생문집(芝所先生文集)》에 《노혁전》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노혁전》은 홍길동의 이야기를 다룬 한문 소설로, 현재 전해지는 한글 《홍길동전》과는 내용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 작품의 발견은 기존에 《홍길동전》의 저자로 알려졌던 허균이 실제 저자가 아닐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택당 이식 기록의 해석: 택당 이식의 기록에서 언급된 '홍길동전'이 현재 전해지는 한글본이 아니라 다른 내용의 한문 소설일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결론적으로, 현재 학계에서는 여러 증거들을 바탕으로 허균이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실제 저자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택당 이식의 기록은 중요한 단서이지만, 시대적 배경, 작품의 언어와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허균을 저자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홍길동전의 저자는 미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노혁전》과 현재 널리 알려진 한글 《홍길동전》은 홍길동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내용에서 여러 차이점을 보입니다. 주요한 차이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창작 시기와 언어:

노혁전: 1626년, 황일호가 전주 판관 시절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문으로 기록한 짧은 기록물입니다. '전(傳)'의 형식을 띠고 있으며, 야담의 성격을 지닙니다.

홍길동전: 현재 전해지는 이본들은 대부분 19세기 이후에 간행된 한글 소설입니다. 장편 소설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2. 주인공의 성격과 행적:

노혁전: 본래 양반 가문 출신으로, 불우한 환경 때문에 비행을 저지르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낮에는 양반들과 교류하고 밤에는 도둑질을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활빈당을 조직하여 백성을 구제하는 내용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주로 개인적인 차원의 도둑질과 재물 탈취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40년간 도둑 생활을 하다가 스스로 깨닫고 무리를 해산한 후, 관서 지방의 관찰사 홍진동에게 의탁하여 여생을 보내고 자녀를 많이 낳습니다. 이상적인 국가 건설이나 신선이 되는 결말은 없습니다.

홍길동전: 서얼 출신으로 신분 차별에 대한 저항 의식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뛰어난 능력과 도술을 지니고 있으며, 탐관오리를 징벌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활빈당의 우두머리로 활약합니다. 조정의 회유로 병조판서에 임명되지만,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에 실망하고 율도국을 건설하여 이상적인 국가를 다스리는 영웅적인 면모를 보입니다. 이후 신선이 되는 결말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3. 사회 비판 의식:

노혁전: 사회의 부조리나 신분 차별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 의식은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주인공 개인의 행적과 변화에 초점을 맞춥니다.

홍길동전: 봉건 사회의 모순, 특히 서얼 차별과 탐관오리의 부정부패에 대한 강렬한 비판 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백성을 위한 영웅의 활약을 통해 사회 개혁의 염원을 드러냅니다.


4. 결말:

노혁전: 도둑 생활을 청산하고 평범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현실적인 결말입니다.

홍길동전: 이상 국가를 건설하거나 신선이 되는 등 영웅적인 면모가 강조된 이상적인 결말을 보입니다.


요약하자면, 《노혁전》은 홍길동이라는 실존 인물에 대한 야담을 바탕으로 비교적 짧게 기록된 개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반면, 현재의 《홍길동전》은 조선 후기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영웅의 활약을 통해 이상적인 사회를 제시하는 장편 한글 소설이라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노혁전》의 발견은 《홍길동전》의 기원과 허균의 저작 여부에 대한 논의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노혁전》의 존재는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일 가능성을 낮추는 중요한 근거가 되지만, 동시에 다른 가능성, 즉 허균이 《노혁전》에서 영감을 얻어 《홍길동전》을 창작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가능성을 고려할 때 몇 가지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측면:

주인공 이름의 동일성: 《노혁전》의 주인공 이름인 '노혁(盧革)'과 《홍길동전》의 주인공 이름인 '홍길동(洪吉童)'은 이름이 같습니다. 이는 허균이 《노혁전》의 이야기를 접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노혁전'에 따르면, **노혁의 본래 성은 홍(洪)이고 이름은 길동(吉同)**으로, 즉 노혁이 홍길동입니다. 황일호는 '노혁전' 앞부분에서 "노혁의 본래 성은 홍(洪)이고, 그 이름은 길동(吉同)이니, 실로 우리나라 망족(望族·명망 있는 집안)이다. 불기(不羈·구속을 받지 않음)의 재주를 품었으며, 글에 능했다"라고 직접 밝혀 노혁이 홍길동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낮에는 지체 높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밤에는 도적질을 하던 인물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서울을 떠나 보화를 훔치고 40년간 도둑들을 이끌다가, 결국 새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하며 무리를 해산하고 관서 지방 관찰사 홍진동에게 몸을 의탁하여 천수를 누리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도둑 영웅 모티프의 공유: 두 작품 모두 도둑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집니다. 비록 《노혁전》의 노혁은 개인적인 차원의 도둑에 가깝고, 《홍길동전》의 홍길동은 의적의 성격을 강하게 띠지만, '도둑'이라는 모티프 자체가 연결고리가 될 수 있습니다.

택당 이식의 기록: 택당 이식의 기록에서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고 언급한 점은 여전히 중요한 단서입니다. 만약 허균이 《노혁전》의 이야기를 알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했다면, 이식이 이를 '홍길동전'이라고 인식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식은 《노혁전》의 존재를 몰랐거나, 혹은 두 이야기를 연관된 것으로 보았을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측면:

작품의 성격과 내용의 큰 차이: 앞서 설명드렸듯이, 《노혁전》은 짧은 야담 기록물인 반면, 《홍길동전》은 사회 비판 의식과 영웅 서사를 담은 장편 소설입니다. 내용, 주제, 문체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단순히 영감을 얻었다고 보기에는 작품의 규모와 깊이가 다릅니다.

창작 시기의 불확실성: 현재 전해지는 한글 《홍길동전》 이본들의 정확한 창작 시기는 불확실합니다. 만약 한글 《홍길동전》이 허균 사후 훨씬 뒤에 창작되었다면, 허균이 《노혁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허균의 다른 작품과의 이질성: 허균이 창작한 것으로 확실히 알려진 다른 소설들은 모두 한문 소설이며,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홍길동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갑자기 한글 장편 소설을 창작했다는 것은 다소 이질적인 부분입니다.


결론:

《노혁전》에서 영감을 얻어 허균이 《홍길동전》을 창작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현재까지의 증거만으로는 그 가능성이 높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택당 이식의 기록은 여전히 중요한 고려 사항이지만, 《노혁전》과 《홍길동전》의 내용과 형식의 큰 차이, 그리고 한글 《홍길동전》의 창작 시기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할 때, 허균이 단순히 《노혁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현재의 《홍길동전》을 창작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노혁전》은 홍길동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이미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이후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고 발전하여 현재의 《홍길동전》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허균은 이러한 구전되거나 기록된 홍길동 이야기에 자신의 사상과 시대적 고민을 담아 또 다른 형태의 '홍길동전'을 창작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 장편 소설과 동일한 작품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택당 이식(李植, 1584~1647)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그의 문집인 《택당집(澤堂集)》은 당시의 사회상과 문학, 역사 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모든 진술이 완벽하게 객관적인 사실만을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의 다른 진술들의 사실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1. 기록의 목적과 상황:

개인적인 기록: 《택당집》은 기본적으로 이식 개인의 문집입니다. 따라서 그의 기록은 개인적인 경험, 생각, 감정을 반영할 수 있으며, 때로는 주관적인 판단이나 기억의 오류가 개입될 수 있습니다.

당대 사회의 영향: 이식 역시 당대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과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특히 붕당 정치의 격렬했던 시기를 살았기 때문에, 그의 기록에는 정치적인 입장이 반영될 수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 이식이 기록한 내용이 사건 발생 직후의 기록인지, 시간이 흐른 뒤의 회고인지에 따라 사실성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이 왜곡되거나 윤색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2. 기록의 내용과 객관성:

직접 경험 vs. 전해 들은 이야기: 이식이 직접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것인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것인지에 따라 신뢰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전해 들은 이야기는 와전되거나 과장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관적인 판단이나 평가: 사실 전달과 함께 이식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평가가 포함되어 있다면, 독자는 이를 감안하여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른 기록과의 비교: 이식의 기록과 동시대의 다른 문헌이나 기록을 비교하여 내용의 일치성이나 모순점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홍길동전》 저자 관련 진술의 특수성:

단편적인 기록: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이식의 진술은 《택당집》 별집의 짧은 기록에 불과합니다. 소설의 내용이나 창작 배경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그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사후 편집의 가능성: 《택당집》 별집은 이식 사후 그의 제자인 송시열에 의해 편집되었습니다. 편집 과정에서 송시열의 의도나 판단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특히 허균이 역모죄로 처형된 상황에서, 스승과의 관계를 정리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다른 증거의 부재: 이식의 기록 외에는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임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다른 기록이나 허균 자신의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노혁전》의 발견 등은 허균이 저자가 아닐 가능성을 높이는 정황 증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택당 이식은 당대 지식인으로서 상당한 수준의 사실성을 바탕으로 기록을 남겼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모든 진술을 절대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홍길동전》 저자 관련 진술의 경우, 단편적인 기록이라는 점, 사후 편집의 가능성, 그리고 다른 증거와의 불일치 등을 고려할 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홍길동전》에 나타나는 사회 제도와 허균이 살았던 16세기 말 ~ 17세기 초 조선 사회의 제도는 유사한 부분도 있지만, 작가의 비판적 시각과 이상향 제시로 인해 차이점도 드러납니다.


유사한 점:

적서 차별: 홍길동전의 가장 중요한 갈등 요소는 서얼 차별입니다. 이는 허균 시대에도 엄연히 존재했던 사회적 불평등 구조였습니다. 서자는 능력이 뛰어나도 제대로 된 관직에 나아갈 수 없었고, 사회적으로 멸시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허균 자신도 서얼들과 교류하며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봉건적 신분제: 양반 중심의 봉건적인 신분 질서가 사회 전반을 지배했습니다. 홍길동전에서도 양반인 홍 판서와 천민 출신 춘섬 사이의 신분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탐관오리의 횡포: 홍길동전에는 백성을 수탈하는 탐관오리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허균 시대에도 만연했던 사회 문제입니다. 지방관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백성들을 착취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차이점:

활빈당의 등장과 의적 활동: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은 활빈당을 조직하여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을 돕는 의적 활동을 펼칩니다. 이는 실제 허균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영웅적인 면모입니다. 물론 민란이나 백성들의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홍길동처럼 조직적인 의적 활동은 소설적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율도국 건설: 홍길동전의 후반부에서 홍길동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율도국이라는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여 왕이 됩니다. 이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던 일종의 유토피아적 상상입니다. 허균 역시 불우한 현실을 극복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꿈꿨을 가능성은 있지만, 소설처럼 직접 국가를 건설하는 내용은 현실과 거리가 멉니다.

도술의 활용: 홍길동전에는 축지법, 분신술 등 초현실적인 도술이 등장하여 홍길동의 활약을 더욱 극적으로 만듭니다. 이는 전기 소설의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현실의 사회 제도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신분 상승의 가능성: 홍길동전에서는 홍길동이 자신의 능력과 활약으로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고 율도국의 왕까지 오르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허균 시대의 엄격한 신분 질서 하에서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였으며, 소설을 통해 신분 상승에 대한 민중의 염원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홍길동전》은 허균 시대의 사회 제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작가의 비판적인 시각과 이상향에 대한 열망이 투영되어 현실과는 다른 영웅적인 활약과 이상적인 국가 건설이라는 상상력이 가미된 작품입니다. 따라서 홍길동전은 단순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 사회 모순에 대한 저항 의식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꿈을 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홍길동전》이 구전되는 과정에서 선혜청 관련 내용이 덧붙여졌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홍길동전》은 오랫동안 필사본 형태로 전해 내려오면서 다양한 이본(異本)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필사 과정이나 널리 읽히고 향유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시대적 배경이나 요구, 혹은 흥미를 더하기 위한 의도 등으로 내용이 첨삭되거나 변형될 수 있습니다.


구전 과정에서 선혜청 관련 내용이 덧붙여졌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이유:

시대적 배경: 대동법 시행 이후 선혜청은 백성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중요한 관청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후대에 《홍길동전》을 향유하던 사람들에게 선혜청은 익숙한 존재였을 수 있으며,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삽입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현실감 부여: 비록 홍길동의 활약이 비현실적인 요소도 포함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배경 자체는 조선 사회입니다. 후대의 독자들이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고 현실감을 느끼도록 당대의 익숙한 관청 이름을 사용했을 수 있습니다.

필사 및 간행 과정의 변형: 필사본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거나, 활자본으로 간행되는 과정에서 내용을 수정하거나 첨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이때 후대의 사회상을 반영한 내용이 삽입될 수 있습니다.

대동법의 중요성: 대동법은 조선 후기 사회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 제도입니다. 백성들의 조세 부담을 덜어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기 때문에, 백성을 구제하는 홍길동의 이야기에 선혜청 관련 내용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홍길동전》은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읽히고 구전되면서 내용이 변화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특히 선혜청과 같이 후대 사회의 중요한 제도를 반영하는 내용은 이러한 구전 및 필사/간행 과정에서 덧붙여졌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는 《홍길동전》의 창작 시기와 저자를 추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고려 사항 중 하나입니다.



허균은 소설 《홍길동전》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저술을 남겼습니다. 그의 주요 창작집 및 저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허균의 시, 문장, 편지, 소설 등을 모아 놓은 문집입니다. '성소(惺所)'는 허균의 호이며, '부부고(覆瓿藁)'는 '항아리 덮을 만한 쓸모없는 글'이라는 겸손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그의 대표적인 논설인 **《유재론(遺才論)》**과 《호민론(豪民論)》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기타 저서:

《도문대작(屠門大嚼)》: 1611년에 간행한 책으로, 조선 팔도의 토산물과 별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허균의 뛰어난 미식가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한정록(閑情錄)》: 소소한 일상생활의 감흥과 단상을 기록한 수필집입니다.

《학산초담(鶴山樵談)》: 세상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모아 놓은 야담집입니다.

《교산시화(蛟山詩話)》, 《성수시화(惺叟詩話)》: 자신의 시와 관련된 이야기나 감상을 적은 시화집입니다.

《동국명산동천주해기(東國名山洞天註解記)》: 우리나라 명산과 승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한문 소설:

《남궁선생전(南宮先生傳)》: 남궁두라는 인물의 기이한 행적을 다룬 소설로, 허균 자신의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엄처사전(嚴處士傳)》: 불우한 처지에 놓인 선비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는 소설입니다.

《장생전(長生傳)》, 《최생전(崔生傳)》, 《주생전(周生傳)》 등의 단편 소설이 《성소부부고》에 함께 실려 전해집니다.


평론서:

《고시선(古詩選)》, 《당시선(唐詩選)》, 《송오가시초(宋五家詩抄)》, 《명사가시선(明四家詩選)》, 《사체성당(四體盛唐)》 등의 시선집을 편찬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시론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시문집과 문학 평론집 등을 통해 허균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진보적인 사상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다양한 저술들은 당시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허균의 한문 소설들은 당대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그의 독특한 개성과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각 소설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궁선생전(南宮先生傳)》:

주요 내용: 주인공 남궁두는 기이한 용모와 비범한 능력을 지닌 인물로,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며 살아갑니다. 그는 현실의 제약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며, 때로는 사회의 통념을 벗어나는 기행을 보이기도 합니다.

특징: 허균 자신의 불우했던 과거와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던 경험이 투영되었다고 해석됩니다. 주인공의 비범함과 기이한 행동을 통해 당시 사회의 인재 등용 제도와 억압적인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시각이 드러납니다.


《엄처사전(嚴處士傳)》:

주요 내용: 주인공 엄처사는 학문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은 선비이지만, 가난과 불우한 환경 속에서 은둔하며 살아갑니다. 그는 세상의 부귀영화에 초연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청빈한 삶을 살아갑니다.

특징: 이상적인 선비의 모습을 제시하면서도, 동시에 그러한 인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등용하지 않는 당시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고발합니다. 권력과 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함께 청빈한 삶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장생전(長生傳)》:

주요 내용: 주인공 장생은 비범한 능력을 지닌 인물로, 기이한 술법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돕기도 하고 때로는 세상을 조롱하기도 합니다. 그의 행적은 예측 불가능하고 자유분방합니다.

특징: 현실의 질서와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초월적인 인물의 모습을 통해 허균 자신의 자유로운 정신과 비판적인 태도를 드러냅니다. 기이하고 환상적인 요소를 활용하여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사회의 부조리함을 풍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최생전(崔生傳)》:

주요 내용: 주인공 최생은 아름다운 용모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인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지만, 당시 사회의 여성에 대한 억압적인 시선과 제약에 부딪히게 됩니다.

특징: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당시 사회의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과 여성 차별적인 현실을 비판적으로 조명합니다. 여성의 능력과 주체적인 삶에 대한 허균의 관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주생전(周生傳)》:

주요 내용: 주인공 주생은 뛰어난 학문적 재능을 지녔지만, 불우한 환경으로 인해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합니다. 그는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학문에 정진하며 자신의 이상을 추구합니다.

특징: 재능 있는 인물이 사회적 제약으로 인해 좌절하는 현실을 보여주며, 능력 있는 인재를 제대로 등용하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냅니다.


허균의 한문 소설들은 대체로 당시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 특히 신분 차별과 인재 등용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인물들을 통해 허균 자신의 진보적인 사상과 개혁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홍길동전》의 사회 비판적인 성격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허균의 집안에서 《홍길동전》의 창작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명확한 단서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허균의 성장 배경과 가족 관계를 살펴보면 그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을 짐작해 볼 수 있으며, 이는 간접적으로 《홍길동전》과의 연관성을 시사할 수 있습니다.


허균의 집안 배경:

명문가 출신: 허균은 조선 중기의 명문 양반 가문인 양천 허씨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허엽은 당대의 명신이었고, 형 허봉과 누나 허난설헌 역시 뛰어난 문인이었습니다. 이러한 훌륭한 학문적 분위기 속에서 허균은 자연스럽게 학문과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서얼과의 교류: 허균은 비록 적자였지만, 서얼들과 가깝게 지냈고 그들의 불우한 처지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이는 그의 대표적인 사상인 **《유재론(遺才論)》**과 **《호민론(豪民論)》**에도 잘 드러나며, 서얼 차별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다룬 《홍길동전》의 주제 의식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진보적인 사상: 허균은 당시의 엄격한 사회 질서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신분 제도의 모순과 백성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드러냈습니다. 이러한 그의 진보적인 사상은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이라는 영웅을 통해 사회 부조리에 저항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홍길동전》과의 간접적인 연관성:

아버지 허엽의 영향: 허균의 아버지 허엽은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서얼 출신의 인재를 등용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이 허균에게 신분 차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했을 수 있습니다.

형제들의 문학적 재능: 형 허봉과 누나 허난설헌 역시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이러한 가족들의 문학적 환경은 허균이 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 형식에 관심을 갖고 창작 활동을 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특히 누나 허난설헌의 비극적인 삶은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허균의 문제의식을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스승 이달의 영향: 허균의 스승이었던 이달은 서얼 출신의 시인이었습니다. 이달과의 교류를 통해 허균은 서얼들이 겪는 차별과 고통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이는 《홍길동전》의 서얼 차별 문제 제기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허균의 집안에서 《홍길동전》의 직접적인 창작 단서나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그의 성장 환경, 가족 관계, 그리고 교류했던 인물들을 통해 형성된 진보적인 사상과 사회 비판적인 시각은 《홍길동전》 탄생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특히 서얼과의 교류와 아버지, 형제들의 영향은 허균이 당시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문학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학계에서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허균이 저자로 알려져 왔지만, 이는 주로 조선 후기의 문신 **택당 이식(李植)**의 문집 《택당집(澤堂集)》에 기록된 다음 구절에 근거한 것입니다.

筠又作洪吉同傳以擬水滸 (허균은 또 홍길동전을 지어 《수호전》에 비겼다)


이 기록은 허균이 《홍길동전》을 창작했다는 유일한 동시대 기록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중요한 근거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이 기록만으로는 허균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기록의 단편성: 이식의 기록은 매우 짧고, 《홍길동전》의 내용이나 특징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기록에서 언급된 '홍길동전'이 현재 전해지는 한글 소설과 동일한 작품인지, 아니면 다른 내용의 한문 소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시대적 불일치: 현재 전해지는 《홍길동전》의 이본들은 대부분 19세기 이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글 소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도 18세기 이후이며, 허균이 생존했던 16세기 말 - 17세기 초와는 시간적 간극이 큽니다.

작품 내용의 분석: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사회상이나 제도 등이 허균 생존 시기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대동법 시행 이후에 설치된 관청인 선혜청이 등장하는 점이 지적됩니다.

허균의 다른 작품과의 비교: 허균이 생전에 창작한 것으로 확실히 알려진 다섯 편의 소설은 모두 한문 소설입니다. 유독 《홍길동전》만 한글 소설이라는 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

《노혁전》의 발견: 최근 허균보다 앞선 시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한문본 홍길동전인 《노혁전》이 발견되면서, 한글 홍길동전의 원작자가 허균이 아닐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노혁전》은 홍길동 이야기가 이미 존재했음을 시사하며, 허균이 이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은 있지만, 현재의 《홍길동전》을 직접 창작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택당 이식의 기록은 허균과 홍길동전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이지만, 현재까지 발견된 증거만으로는 허균이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라고 확정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오히려 시대적 배경, 작품의 언어와 내용, 그리고 새로운 사료의 발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허균이 저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현대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따라서 《홍길동전》의 저자는 미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