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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자 공부

구텐베르크의 생애

젬선생

by 조영필 Zho YP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는 15세기 독일의 발명가이자 인쇄업자로, 근대 활판 인쇄술의 혁신을 이끌어 지식 보급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그의 생애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많지 않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들을 바탕으로 그의 인생을 상세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출생과 초기 생애 (1398년경 ~ 1430년경)

출생: 1398년경 신성 로마 제국 마인츠에서 태어났습니다. 정확한 생년월일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세기 말 마인츠에서는 1400년 6월 24일을 그의 생일로 기념하기도 했습니다.


본명과 가문: 그의 본명은 '요하네스 겐스플라이슈'(Johannes Gensfleisch)이며, '구텐베르크'는 그의 가문이 대대로 살던 저택의 이름에서 유래한 통칭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귀족 출신으로 조폐국에서 일했고, 어머니도 유복한 집안 출신이어서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자랐습니다.


청년기: 어린 시절 제법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1411년 당시 귀족을 대항한 봉기가 잦아 구텐베르크 가문과 함께 마인츠를 떠나 엘트빌러로 이주하기도 했습니다. 1419년경 에르푸르트 대학교에서 공부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학업을 마쳤는지는 불확실합니다. 이후 부친이 사망하자 가업을 이어받아 화폐 주조와 야금업에 종사하며 금속 가공에 대한 소질을 키웠습니다.


2. 스트라스부르크 시기 및 인쇄술 연구 (1434년 ~ 1444년)

스트라스부르크 이주: 1430년에 마인츠로 돌아왔다가, 1434년 이후 다스 스트라스부르크로 이주하여 살았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금세공인으로 훈련을 받았고, 인쇄업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금속 활자 연구: 1439년의 재판 기록에 따르면 구텐베르크가 출자자를 모아 인쇄업을 했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으며, 이 시기에 금속 활자 연구에 몰두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보석 가공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1444년에는 자택에서 인쇄업을 했다고 합니다.


기술 개발: 구텐베르크는 납을 녹여 만든 합금을 정교하게 제작한 활자 주형에 부어 대량의 금속 활자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포도주 압착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나사식 압인 장치인 인쇄 프레스(press)를 개발했으며, 인쇄를 위한 특수 유성 잉크도 고안했습니다. 이러한 기술들을 결합하여 활판 인쇄술을 완성했습니다.


3. 마인츠 귀환과 '구텐베르크 성경' 출판 (1448년 ~ 1455년)

마인츠 복귀: 1440년대 중반 시집을 출판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인쇄업을 계속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1448년에는 그의 누이가 죽으며 남긴 고향집을 상속받아 마인츠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인쇄 사업 착수: 1450년경 인쇄 공장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인쇄 사업에 착수했습니다.


구텐베르크 성경(42행 성경): 1452년부터 본격적으로 성경 출판에 착수하여 3년간의 노력 끝에 1455년, 최초의 라틴어(불가타) 성경인 '구텐베르크 성경'을 완성했습니다. 이 성경은 한 페이지에 42줄로 인쇄되어 '42행 성경'이라고도 불립니다. 당시 성경 한 권을 필사하는 데 3년이 걸렸지만, 구텐베르크는 180부를 인쇄하며 '활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4. 재정적 어려움과 말년 (1455년 이후 ~ 1468년)

동업자와의 갈등: 구텐베르크는 인쇄 사업을 위해 요한 푸스트(Johann Fust)에게 자금을 빌렸지만, 사업 성공에도 불구하고 채무 문제로 푸스트와 갈등을 겪었습니다. 결국 1455년 재판에서 패소하여 인쇄소와 인쇄 장비를 푸스트에게 빼앗기고 파산했습니다.


인쇄술의 전파: 구텐베르크의 제자였던 페터 쉐퍼(Peter Schöffer)는 푸스트와 협력하여 인쇄업을 계속 이어갔고, 구텐베르크 밑에서 일했던 인쇄공들이 유럽 각지에 인쇄소를 차리면서 인쇄술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주교의 지원과 사망: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마인츠 대주교 아돌프 2세는 구텐베르크의 신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인쇄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허락했으며, 1465년에는 인쇄술 발전에 공로를 인정하여 연금을 하사하기도 했습니다. 구텐베르크는 한동안 아돌프 2세의 궁정에서도 일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망: 1468년 2월 3일, 약 70여 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파산 이후의 그의 말년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적었으나, 최근 발견된 자료에 의하면 마냥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 발명은 르네상스, 종교 개혁, 과학 혁명 등 유럽의 근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지식의 대중화를 통해 인류 문명의 발전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지난 1천 년간 10대 인물'에서도 2위를 차지할 만큼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명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