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전복자들

박재용

by 조영필 Zho YP

9/ ... 알렉상드르 쿠아레Alexandre Koyre는 <길릴레이 연구>에서... "갈릴레이의 업적은 과학적 발견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근본적인 혁명이었다. 그것은 우주에 대한 새로운 개념, 과학에 대한 새로운 개념의 출현이었다. 요컨대 그것은 근대 과학의 기초를 놓은 형이상학적, 과학적 사고방식의 급진적 변혁이었다." 역사가 허버트 버터필드Herbert Butterfield도 <근대 과학의 기원>에서... "17세기에 일어난 변화는 인류 지성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극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그것은 르네상스 이후 인간 정신을 사로잡은 최대의 혁명적 전환점이었다. 삶에 대한 우리의 전체적 접근방식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주에 대한 우리의 상을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10/ 반면 물리학자이자 과학사가인 피에르 뒤엠Pierre Duhem은 <중세 우주체계 기원에 관한 연구>에서 이렇게 주장하죠. "중세의 기독교 사상가들은 오늘날 우리가 근대 과학이라 부르는 것의 기반을 마련했다. 13세기와 14세기의 학자들은 자연현상을 양화量化하려고 노력했고, 관찰과 실험을 통해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고자 했다. 중세의 학문적 전통 없이는 갈릴레오와 데카르트, 뉴턴의 업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과학사학자 앨리스터 크롬비Alistair Crombie는 <중세와 초기 근대의 과학>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과학혁명을 17세기에 갑자기 발생한 사건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중세부터 서서히 진행되어 온 과학적 사고방식의 발전이 절정에 이른 것이었다. 13세기부터 학자들은 자연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수학적 방법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실험과 관찰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고자 했다. 갈릴레오와 뉴턴의 과학은 이러한 중세의 과학적 전통 위에 서 있는 것이다."


한편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과학혁명을 자본주의의 발달과 같은 사회경제적 변화에 연유한다고 주장합니다. 마르크스주의 과학사학자 보리스 헤센Boris Hessen은 논문 「뉴턴 '프린키피아'의 사회경제적 뿌리」에서 이렇게 서술합니다. "뉴턴의 역학은 자본주의 초기 영국의 경제적 필요에 의해 형성되었다. 당시의 기술적 문제들, 즉 항해, 광업, 탄도학 등의 문제들이 뉴턴 역학의 발전을 추동했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 이론의 발전을 사회경제적 요인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에드거 질젤Edgar Zilsel은 1942년에 발표한 논문 '과학적 사고 방식의 사회적 기원'에서 과학혁명의 사회경제적 기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근대 과학의 출현은 중세 말기부터 시작된 사회적 변화, 특히 도시의 발달과 자본주의의 출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중세의 대학 지식인들과 르네상스 시기의 인문주의자들, 그리고 도시의 장인들과 기술자들의 지적 전통이 서로 융합되면서 근대적 과학자의 전형이 탄생했다. 실험과 수학적 방법에 기초한 과학은 봉건적 위계질서를 벗어난 도시의 지적 분위기 속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


11/ ... 루퍼트 홀A. Rupert Hall은 과학혁명을 "눈에 띄는 방식으로 급작스러운 것도, 완전히 단절적인 것도 아닌" 복잡한 과정으로 파악했습니다. 또한 스티븐 샤핀Steven Shapin은 과학이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과정에 주목하면서, 과학혁명을 17세기 영국 젠트리 계급의 문화와 연관해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 <과학혁명>에서... "우리는 과학 활동이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17세기 영국의 과학자들은 귀족 문화의 가치와 실천을 체화했으며, 이는 그들의 과학 활동에도 반영되었다. 또한 과학적 지식의 생산과 정당화는 신뢰와 증언의 사회적 기반 위에서 이루어졌다."


12/ ...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은... 헬레니즘 시기까지 테오프라스토스, 히파르코스, 프톨레마이오스, 심플리키오스, 히포크라테스, 갈레노스 등의 자연철학자 혹은 과학자들에 의해 더욱 정교하고 치밀해졌습니다...


하지만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와 같은 과학자들에 의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이 도전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우주의 중심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옮겼고, 망원경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의 한계를 드러냈으며, 자연현상을 수학적으로 기술하고자 했습니다. 이들에 의해 자연철학, 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질적 설명에서 수학적 분석으로 전환합니다.


13/ 이러한 변화는 뉴턴에서 정점에 달합니다.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지상과 천상이 같은 법칙 아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의 저작 <프린키피아>는 자연현상 전체를 단 몇 개의 수학적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역작이었습니다... 18세기를 거치며... 점차 다른 분야로 확산됩니다. 화학에서는 근대 원자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을 대체해 나갔고, 생물학에서는 분류학과 비교해부학, 그리고 현미경의 발명과 세포설, 나아가 진화론과 유전학이 등장함으로써 '생명의 사다리'로 대표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위계적이고 목적론적인 생물학이 전복됩니다.


제1부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 -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과 이리스토텔레스의 승리

1장 그리스 자연철학

18/ '만물은 물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1권 1장, '지구는 물 위에 떠있다'는 <천체론> 2권 13장, '세상 모든 것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영혼에 관하여> 1권 2장에 언급되어 있다... 훗날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와 이어진 밀레토스 학파를 세상을 구성하는 질료인에 천착한 이들이라고 평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이 구성한 질료인因, 형상인因, 작용인因, 목적인因을 윗세대에 하나씩 주면서...


19/ ... 당시 이집트의 신화는 태초에 누Nu라고 불리는 원초적인 물이 존재했고 이 물에서 창조신 아툼Atum이 스스로를 창조했다고 합니다. 또 바빌로니아 신화에서는 담수의 신 압수Apsu와 염수의 여신 티아맛Tiamat이 만나 세상을 창조했다고 하죠...


20/ 사족으로 당시 그리스인들이 7현인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할 충고 하나씩을 말해달라고 했을 때 탈레스는 말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하지만 다른 기록에서는 이렇게 말했다고도 한다. "보증을 서지 마라."...


24/ ... 아페이론apeiron(무한정자)에서 만물이 생성되고 소멸한다고 이야기한 점을 일원론적 경향이라 볼 수는 있지만 아페이론과 현상계를 구분했다는 측면에서는 아낙시만드로스를 이원론의 시작을 알리는 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은 그의 '다중우주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6세기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심플리키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주해>에서 "아낙시만드로스는 무한한 세계가 있다고 말했다..."...


25/ 즉 아낙시만드로스는 우리가 사는 세계 외에 수많은 다른 세계가 존재하며 생겼다가 사라진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관에 대해서도 조금 살펴봅시다. 그는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고, 다른 천체들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동심원을 상정했죠. 가장 안쪽의 동심원에는 달이, 다음으로 태양과 행성들이, 가장 바깥쪽 동심원에는 항성들이 자리한다고 보았습니다. 여기까지는 당시 일반적인 생각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만, 아낙시만드로스는 이런 우주 모델을 바탕으로 천체들 사이의 거리를 계산합니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를 계산한 뒤, 이를 기준으로 다른 천체들의 거리를 추정했다고 하죠. 예를 들어 태양이 달보다 더 높은 곳에 있으며, 그 거리는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3배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26/ 더 나아가 아낙시만드로스는 각 천체의 크기에 대해서도 나름의 계산을 했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언에 따르면, 그는 태양의 크기가 지구의 28배라고 추정했답니다. 물론 아낙시만드로스가 직접 쓴 책을 확인할 수는 없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론> 등에서 언급된 것이니 아닐 가능성도 있기는 합니다.


이와 별도로 아낙시만드로스는 최소한 그리스에서는 처음으로 세계지도를 만든 사람이기도 합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지도는 그리스를 중심에 두고 지중해를 T자 형태로 표현하고 있죠. 이런 유형의 지도들을 'T-O 지도'라고 부릅니다... 이런 아낙시만드로스의 T-O 지도는 이후 헤카타이오스, 헤로도토스 등에 의해 발전했고, 중세에 이르러 널리 퍼지게 되죠...


28/ 피타고라스Pythagoras는 메소포타미아의 현인들과 이집트의 서기로부터 수학을 배웁니다. 그러나 피타고라스는 그들 자신이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죠. 단지 땅의 면적을 재기 위해, 세금을 매기기 위해 숫자를 사용할 뿐이라 여겼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생각합니다. '... 세상은 조화를 지향하고, 조화는 수 안에 있다. 화음이 알려주듯, 하늘의 천체가 그리는 원이 알려주듯, 이 세상을 움직이는 궁극의 진리는 수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영혼의 윤회를 믿습니다. 영혼은 불멸하며, 죽음 후에 다른 생명체로 환생...


... 옥타브 간격은 현의 길이 비율이 2:1일 때 발생하고, 완전 5도 간격은 3:2의 비율에서 나옵니다...


29/ ... 홀수를 '장황한 수perittos'로, 짝수를 '평등한 수artios'로 부릅니다. 'perittos'는 '넘치는', '초과의'라는 뜻으로, 홀수는 똑같은 자연수 둘로 딱 나눠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홀수를 불가분성, 한정성, 남성성과 관련지었고, 짝수를 가분성, 무한성, 여성성과 관련지었습니다. 이는 그들의 우주관과도 연결되는데, 한정된 것(홀수)에서 무한한 것(짝수)이 생겨난다고 보았죠.


30/ 수와 수의 조화harmonia에 대한 피타고라스의 생각은 플라톤 등 당시 자연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 플라톤은 수학적 대상이 가장 순수한 형태의 '이데아'에 가깝다고 보았고, 수학을 통해 이데아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34/ ... 특히 파르메니데스가 제기한 '존재와 생성', '하나와 많음', '이성과 감각' 사이의 긴장 관계는 이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서양 형이상학의 중심 주제가 됩니다.


36/ 플라톤에 의해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우리의 불완전한 지각으로는 알 수 없는 세계, 지각 너머에 있는 실재實在, 이데아가 그것입니다. 플라톤의 실재-이데아는 우리의 감각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실재를 파악하기 위해 현상을 뒷받침하는 보편적 개념과 이치를 밝혀야 하죠. 이때 실험과 관찰은 별 의미가 없고, 논리와 논증 그리고 직관이 참된 이해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 됩니다.


37/ ...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우주의 기원과 구조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는데, 여기서 데미우르고스Demiourgos라는 신적인 존재가 등장합니다. 데미우르고스는 고대 그리스어로 공공을 위해서 일하는 장인이라는 뜻으로, 우주를 만든 창조주를 의미합니다. 데미우르고스는 선하고 지혜로운 존재이기에 가능한 한 이데아를 닮은 완벽한 우주를 만들고자 합니다. 하지만 완전무결한 창조는 불가능했고 변화무쌍하고 불완전한 현상계가 만들어지게 되었죠. 앞서 주어진 이유로 재료 즉 '질료Khora'의 한계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질료란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는 아니고, 공간 그 자체 혹은 받아들임receptacle이라 볼 수 있습니다. <티마이오스>에서는 '그릇hypdechomene'으로도 표현합니다.


38/ 현상계의 창조가 불완전한 또 하나의 이유는 '필연ananke'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은 데미우르고스의 이성적이고 목적론적인 활동 외에도 무작위적이고 비이성적인 힘, 즉 필연이 창조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필연은 논리적 필연성과 같은 의미보다는 강제성이나 어찌할 수 없는 숙명에 가깝습니다...


이 두 가지 요인, 즉 질료 코라khora의 한계와 필연ananke(무작위적이고 비이성적인 힘)의 개입으로 인해 데미우르고스의 창조는 불가피하게 불완전한 결과로...


... 데미우르고스의 창조 행위는 이데아가 현상계에 영향을 주는 일종의 통로... 현상계의 사물들이 이데아를 분유分有할 수 있는 것도 결국 데미우르고스 덕분... 플라톤이 말한 '분유'는 바로 이런 불완전한 방식의 모사를 의미...


39/ ... 현상계의 사물들이 이데아를 분유할 수 있는 것도 결국 데미우르고스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죠...


43/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태양은 새로우면서도 매일 새롭다"...


44/ 서로 반대되는 것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생겨난다",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자 만물의 왕"...


또 하나, 헤라클레이토스 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로고스Logos'가 있습니다. 로고스는 말, 이성, 논리, 법칙 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를 우주를 지배하는 궁극적 원리로 보았습니다...


"로고스는 영원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듣기 전에도 듣고 난 후에도 깨닫지 못한다"... "깨어있는 자들에게는 하나이고 공통된 세계가 있지만, 잠자는 자들은 저마다 사적인 세계로 물러난다"...


하지만 변화의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로고스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대립과 모순을 내포합니다. "신은 낮이고 밤이며, 겨울이고 여름이며, 전쟁이고 평화요, 풍요이자 기근이다"라는 말로 로고스 안에 상반된 힘들이 공존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런 대립도 더 높은 차원에서는 조화를 이루는데, 이를 헤라클레이토스는 '보이지 않는 조화harmonia aphanes'라고 표현했습니다...


45/ ... "병약함이 건강함을 쾌적하게 하고, 악이 선을 그렇게 하며, 굶주림이 풍요를, 피로가 휴식을 쾌적하게 한다"...


"이 우주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불이다. 불의 타오름에 의해 만물은 생겨나고, 불의 꺼짐에 의해 만물은 소멸한다."


... "모든 것은 불의 교환물이고 불은 모든 것의 교환물이다"...


48/ ...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에 따르면 "데모크리토스는 세계가 무한한 원자들의 우연한 결합에 의해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태양과 달, 별들도 모두 이런 우연의 결과라는 것이다"(<수학자들에 반대하여>, 9권 113)라고 했다는 군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이나 에피쿠로스의 <자연에 관하여> 등에도 데모크리토스가 세상은 우연의 결과일 뿐이라고 주장했다는 언급들이 줄곧 나옵니다.


... 무신론적 공산주의자로 알려진 마르크스가... 박사논문 제목이 「데모크리토스 자연철학과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였죠...


... 원자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최소 단위로, 질적으로 같고 양적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사물의 차이는 이 원자들의 배열, 모양, 위치 등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49/ ... 데모크리토스는 감각을 통해 얻은 지식은 불완전하며, 오직 이성을 통해서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것은 사물의 겉모습일 뿐, 그 이면에 있는 원자의 배열과 운동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성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 <자연학Physica>에서...

"데모크리토스와 레우키포스는 모든 것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면서, 이 원자들이 모양, 배열, 위치에 따라 다른 것들로 나타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운동의 근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영혼도 나눠지지 않은 작은 구 모양의 원자라고 했는데,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다."(<자연학> 1권 4장)


50/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운동의 원인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의 운동을 필연적인 것으로 여겼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연적인 운동과 목적론적 운동을 구분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자연물의 운동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인데,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이를 무시했다는 거죠.


52/ 시칠리아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Empedocles는 만물의 근원으로 불, 물, 공기, 흙이라는 네 가지 원소를 제시했습니다...


53/ ... 엠페도클레스는 만물의 근원과 만물을 움직이는 변화의 원인은 다르다고 여겼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식으로 말하자면 질료인과 작용인으로 나눈 거죠... 변화의 원인은 사랑Philia과 미움Neikos이라고 보았습니다.


58/ ... 씨앗spermata들이 물질적 기반을 제공한다면, 누스는 그것들에 운동과 질서를 부여하는 정신적 원리로 작용하는 것이죠...


60/ 아낙사고라스의 '누스Nous' 개념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아낙사고라스를 언급하면서, 그가 만물의 원인으로 누스를 제시한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다만 플라톤이 보기에 아낙사고라스는 누스의 역할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는데, 이는 플라톤으로 하여금 이데아론을 통해 보다 체계적인 형이상학을 구축하게 만든 동기가 되었습니다.


61/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누스 개념을 자신의 '부동不動의 동자動者' 곧 원동자原動子와 관련지어 발전시킵니다...


62/ 특히 자연물에 있어서는 목적인과 형상인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질료인은 사물의 가변적 측면을, 형상인은 사물의 동일성과 필연성을 보여줍니다. 작용인은 현상계에서의 인과 관계를 나타내며, 목적인은 사물의 존재 이유와 변화의 방향을 규정합니다...


63/ ... 플라톤에게 이데아는 가시적 세계와 분리되어 현상계와는 다른 차원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초월적 실재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는 개별자 안에 내재해 있습니다. 또 플라톤의 이데아는 지성의 대상이지만 감각의 대상은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이성을 통해서만 이데아에 도달할 수 있죠.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는 개별자들 안에서 실현되는 것으로서, 우리는 감각과 경험을 통해 실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78/ ... 그는 작용인이 외부에 있느냐 내부에 있느냐에 따라 '운동'을 자연스러운 운동과 부자연스러운 운동으로 나눕니다. 자연스러운 운동이란 물질에 내재한 속성에 의해서 일어나는, 즉 작용인이 물질 내부에 있고 그래서 외부의 힘이 작용할 필요가 없는 운동입니다.


천상계에 존재하는 천체들은... 외부의 힘이 필요할 이유가 없습니다... 반면 지상계에는... 물과 흙처럼 무거운 속성을 가진 원소의 비중이 큰 물질은 원래의 자리, 지구 중심으로 향하는 운동을 합니다. 이는 작용인이 물질의 내부에서 아래로 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공기와 불처럼 가벼운 속성을 가진 원소의 비중이 큰 물질은 자신의 자리인 하늘을 향하지요...


하지만 지상계에는 천상계와 달리 모든 물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외부의 작용인에 의해 생기는 운동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돌을 던지거나 화살을 날리거나 돛으로 바람을 받아 움직이는 것들에 해당하는 운동입니다.이런 경우 외부의 물체는 일종의 작용인이 되지요. 이들의 힘은 접촉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습니다... 다만 돌이 날아가면서 자신을 둘러싼 공기에 힘을 전달하고 공기도 돌에 힘을 전달하기 때문에 바로 떨어지지는 않고 포물선을 그리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79/ ... 후대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정리한 '안티페리스타시스antiperistasis 개념입니다... 날아가는 동안 돌은 계속 주변 공기와 상호작용을 합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이유이기도 하죠.


그리고 그가 힘이 '접촉'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다고 한 것도 대단히 중요한 지점입니다. 훗날 뉴턴이 중력을 원격으로 작용하는 힘이라고 선언할 때까지 2000년을 이어온 역학의 기본 가정 중 하나이지요...


80/ ... 접촉하지 않고 일어나는 운동은 낙하와 상승, 그리고 천체의 원원동뿐이었습니다. 이들은 운동의 동인이 내부에 있으니 가능합니다.


92/ 4원인론에서부터 우주, 역학, 생물학, 화학에 이르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우주의 전 질서를 하나의 체계로 설명해냅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라 할 만합니다...


95/ ...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해서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은 실험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실험을 통해 자연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은 자연의 본성을 왜곡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부력의 원리를 발견했는데, 이는 체계적인 관찰과 논리적 추론을 결합한 좋은 예입니다. 그는 또한 수학적 증명을 물리현상에 적용하는 데 탁월했죠...


96/ 천문학 분야에서는 히파르코스가 별들의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기록했습니다. 그의 작업은 나중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체계의 기초가 되었죠.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을 수학적으로 정교화한 시도였습니다.


98/ ... 피타고라스학파는 우주의 중심에 거대한 불타는 구, 이른바 '헤스티아의 불'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헤스티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정과 화덕의 불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불의 수호자이자 가정의 평화를 상징하는 존재였죠...


99/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론>에 따르면, 피타고라스학파는 이 불을 우주의 중심이자 만물의 근원으로 여겼고, 나머지 천체들은 이 불타는 구를 중심으로 주위를 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생각한 천체의 배치 순서는 중심에서부터 태양, 수성, 금성, 달,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배열하고 보니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습니다. 불타는 구를 포함해 천체의 수가 고작 아홉 개에 불과했기 때문이지요.


100/ ... 그래서 피타고라스학파는 '안티크톤'이라는 가상의 행성을 추가했습니다. 안티크톤은 '맞은편 땅'이라는 뜻인데, 이들은 불타는 구를 중심으로 지구 정반대편에 위치하기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101/ 그리고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가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말 그대로 천문학자로서, 피타고라스학파의 신비주의적 경향과는 다른 과학적 견지에서 지구중심설 대신 태양중심설을 주장합니다...


그는 일단 달과 태양이 크기와 거리의 비를 측정합니다. 그로서는 다행스럽게도 태양과 달의 크기가 지구에서는 같습니다. 즉 태양이 더 크지만 더 멀리 있어서 우리 눈에는 달과 같은 크기로 보이는 거죠. 이를 겉보기지름 곧 시직경視直徑이 같다고 합니다. 그러니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만 알면 태양의 크기를 알 수 있지요. 그는 달의 대략적 크기를 부분월식때 달에 떨어지는 지구 그림자를 이용해서 알아냅니다. 이 원호의 크기를 통해 달에 대한 지구의 크기의 비를 알아내지요. 그리고 달까지의 거리를 지구와 달의 크기차를 이용해서 구합니다. 그가 계산한 달까지의 거리는 지구 지름의 약 30배였습니다.


태양까지의 거리는 삼각법을 이용합니다. 달이 반달이 되면 태양과 달 사이가 직각이라는 사실을 이용한 것이죠. 달과 태양 지구가 삼각형을 이루게 되는데 직각 삼각형에서는 직각이 아닌 다른 각 하나의 크기만 구하면 변끼리의 비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비율로 계산하니 태양의 크기는 지구의 100배 정도 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102/ 이제 아리스타르코스는 생각합니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은 지구가 달보다 크기 때문이다. 크기가 작은 천체가 크기가 큰 천체 주위를 도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렇다면 지구가 자신보다 100배나 더 큰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이,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리스타르코스의 이런 주장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행성들의 역행운동이 그것입니다... 당대의 스승들이 모두 하늘의 천체는 모두 원운동을 한다고 했는데, 수천 개의 별 중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딱 다섯 개의 별이 그 주장에 어긋나는 것이죠... 그런데 우주의 중심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옮기기만 하면 모든 행성의 운동이 자연스럽게 원이 됩니다...


103/ 아리스타르코스의 주장에 대해 당시 다른 천문학자들과 자연철학자들 대다수는 반대합니다. 반대의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면 지구 위에 있는 우리는 왜 그 힘(원심력)을 느낄 수 없는가라는 점입니다...


104/ 다른 하나는 별의 연주시차年周視差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05/ 연주시차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유는 둘 중 하나입니다. 별이 너무 멀어서 시차 자체가 너무 작아 볼 수 없다는 것이 하나이고,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다른 하나입니다... 만약 모든 별이 그리 멀리 있다면... 창조주가 그런 쓸모없는 공간을 만들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었죠.


106/ ... 플루타르코스의 저서 <피타고라스학파에 대하여>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클레안테스는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가 그리스인들의 제단을 움직이고 우주의 중심인 헤스티아를 움직이게 함으로써 신을 모독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제단과 헤스티아는 모두 지구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표현이죠...


107/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중심설에 대해서는 격렬히 반대했지만, 다른 천문학자들도 행성의 역행운동 문제를 풀기는 해야 했습니다. 아리스타르코스보다 한 세대 먼저 한 가지 해결책을 제안한 이가 크니도스의 에우독소스Eudoxos입니다. 그는 수학자로도 꽤 유명한 사람입니다. 실진법悉盡法이라고 하는 적분의 초기 형태를 개발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비례식 등에도 업적이 있습니다...


에우독소스는 동심천구론을 주장합니다... 행성이 위치한 천구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것 외에, 또 다른 축을 중심으로 회전운동을 한다는 것이죠...


108/ 에우독소스의 행성 운동 모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예시는 회전목마입니다...


110/ ... 고대 그리스와 헬레니즘 시대 천문학자 중 단 세 사람만 꼽으라면 항상 들어갈 사람은 아리스타르코스와 그의 제자였다고 여겨지는 히파르코스Hipparchos입니다. 히파르코스는 기원전 2세기경에 로도스섬에 천문대를 세우고 그곳에서 주로 활동한 그리스 천문학자로, 천체 관측과 수학적 계산을 통해 천문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는 특히 별의 위치와 밝기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삼각법과 구면삼각법을 활용하여 천체의 운동을 정밀하게 계산하는 등 고대 천문학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11/ ...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옛 관측기록을 보다가 춘분점과 추분점의 위치가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예전 기록에 따르면 처녀자리의 별 스피카가 추분점에서 8도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히파르코스가 관측한 결과로는 6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죠... 그는 편심 모델을 이용해서 해결합니다...


116/ ... 알마게스트의 상당 부분은 사실 프톨레마이오스 이전의 천문학자, 특히 히파르코스의 업적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 역행운동과 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프톨레마이오스는 주전원周轉圓epicycle, 이심離心eccentric point 등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주원전은 기원전 3세기경의 그리스 수학자 아폴로니우스가 제안했고 이심 개념은 히파르코스가 제시했던 개념인데, 프톨레마이오스는 이 둘을 합쳐서 하나의 체계를 만든 것이죠. 금성과 화성과 같은 행성들이 보이는 역행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죠.


117/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각 행성은 지구를 중심으로 한 큰 원(주원)을 따라 공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원 위의 한 점을 중심으로 하는 작은 원(주전원)을 따라 공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주전원의 중심이 주원을 따라 움직이는 거죠. 이렇게 함으로써 행성이 주전 위에서 주전원 운동을 하기에 지구에서 볼 때 때로는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심 개념은 조금 다릅니다. 이것은 행성 궤도(주원)의 중심이 지구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는 개념입니다. 이는 행성의 속도가 일정하지 않은 걸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문제는 이렇게 주전원과 이심을 도입해도 행성 궤도의 실제 관측결과와 잘 맞지 않았다는 거죠. 그래서 그는 다시 대심對心Equant이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대심은 이심을 중심으로 놓았을 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장소인데, 행성의 주전원이 이 점을 중심으로 놓았을 때 일정한 속도로 원운동을 한다고 가정한 거죠. 이제 행성 운동은 무지막지하게 복잡해집니다. 주원은 이심을 중심으로 돌고 주전원은 주원 위의 한 점을 중심으로 돌지만, 그 점은 다시 대심을 중심으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돈다는 거니까요.


제2부 소멸, 복권, 균열

125/ 신플라톤주의는 기원후 3세기에 플로티노스Plotinos에 의해 체계화된 철학 사상으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 신피타고라스주의 등 다양한 사상적 흐름을 아우르며 발전합니다...


유출emanation의 개념은 신플라톤주의 형이상학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일자the one는 그 완전성으로 인해 넘쳐흐르게 되고, 이 과정에서 지성nous, 영혼psyche, 물질hyle 등의 존재가 연쇄적으로 생성된다는 것입니다...


126/ ... 헤르메스주의Hermeticism는 그리스에서 상업, 여행, 전령의 신이자 정보와 의미를 관장하던 신인 헤르메스가 이집트의 신 토트Thoth와 동일시되면서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Hermes Trismegistos라는 신비로운 인물을 탄생시킨 데서 비롯됩니다. 점성술, 연금술, 마법의 세 가지 능력을 가진 이 반신적 인물에 대한 종교철학적 숭배가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널리 유행하게 되었던 거죠. 헤르메스주의의 핵심문헌은 <헤르메스 문서Corpus Hermeticum>라 불리는 일련의 텍스트들인데,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에 걸쳐 이집트에서 집필된 것들입니다. 이 문헌들은 신플라톤주의, 그노시스주의, 유대 신비주의 등의 영향을 받은 흔적을 보여줍니다.


127/ 특히 그노시스주의는 헤르메스주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영지주의靈知主義'라고 번역되는 이 사상은 기원후 1~2세기경 지중해 연안지역에서 유행한 종교사상입니다. '그노시스Gnosis'는 그리스어로 '앎', '지식'을 뜻하는데, 그노시스주의자들은 이 세계와 인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구원받기 위해서는 우주와 신에 대한 비밀스러운 지식을 얻어야 한다고 보았죠.


128/ ... 헤르메스주의는 인간을 신적 본성을 지닌 존재로서, 자연의 신비를 깨우치고 이를 자신의 의지로 다스릴 수 있는 미시적 우주microcosmos로 여깁니다...


129/ 에피쿠로스학파는 기원전 3세기에 에피쿠로스Epikouros에 의해 창시...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투스의 원자론을 수용 발전시켰는데, 그에 따르면 우주는 원자atom와 공허void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원자의 운동에 대해 특히 주목했는데, 그는 원자들이 자유 낙하하듯 수직으로 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중요 개념을 하나 추가하는데, 바로 '클리나멘clinamen'입니다. 클리나멘은 라틴어로 기울어짐, 편향, 휘어짐을 의미하는데, 이는 원자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미세하게 궤도를 이탈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런 원자 충돌을 상당히 우연한 경향이 있어 결정론적 우주관에서 벗어나 자유의지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데에도 사용되었습니다.


130/ 또한 그는 무한한 우주 공간 속에 무수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일종의 다중우주론을 제시합니다...


133/ '판단중지epoche'로 잘 알려진 피론주의는 기원전 4~3세기경 엘리스의 피론Pyrrhon에 의해 체계화된 회의주의 철학입니다...


134/ 피론의 사상은 기원전 1세기경 활동한 아이네시데모스Ainesidemos와 2세기경의 아르리파Agrippa가 좀 더 체계화하고 확장하는데 이를 '신피론주의'라고 부릅니다. 아이네시데모스는 피론의 사상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은 '10가지 회의적 논변Tropoi'을 제시했습니다...


... 어쨌든 피론주의와 신피론주의는 근대 인식론의 전개에도 의미있는 영향을 끼칩니다. 데카르트가 방법적 회의를 통해 확실한 지식의 토대를 모색한 것이나, 흄이 인과율을 비롯한 지식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도 회의주의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39/ 9세기 비잔틴제국의 포티오스 총대주교가 철학, 신학, 수사학 등을 망라한 방대한 분량의 백과사전인 <書叢Bibliotheca을 편찬했지만, 이 책이 서유럽에 알려진 것은 16세기에 이르러서였습니다...


143/ 페르가몬은 현재 튀르키예의 서부 해안가에 있던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입니다. 헬레니즘 시기 페르가몬 왕국은 부유했고, 당시의 이집트 및 셀레우코스 왕국과 경쟁 관계에 있었죠. 이는 학문에 대한 경쟁적 투자로 이어졌는데, 특히 에우메네스 2세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필적하는 규모의 도서관을 건립했습니다...


추방된 네스토리우스파는 동방으로 이동하여 시리아와 페르시아 지역에 정착했는데, 이들 중 많은 이들이 그리스어와 시리아어에 능통한 학자였습니다. 네스토리우스파 학자들은 페르가몬 도서관의 장서들을 시리아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이를 통해 그리스 철학과 과학이 시리아어로 번역되었습니다.


144/ 이후 시리아는 이슬람 제국에 정복당했고, 아바스 왕조가 들어서면서 바그다드가 새로운 수도가 되었습니다.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들은 학문과 예술을 적극 장려했는데, 특히 알 마문(재위 813-833)은 학자들을 후원하고 번역사업을 지원했습니다. 그는 시리아 학자들을 바그다드로 초청하여 '지혜의 집(바이트 알 히크마)'을 설립했습니다.


147/ '지혜의 집'을 통해 그리스와 인도의 수학 지식을 흡수한 이슬람 학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수학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유클리드의 <원론>은 기하학의 체계를 세웠고, 아르키메데스는 원주율 계산과 적분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아폴로니우스는 원뿔 곡선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한편, 인도 수학의 영향 또한 컸습니다. 특히 5~6세기에 활동한 수학자 아리아바타Aryabhata와 7세기 브라마굽타Brahmagupta의 연구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도 수학자들은 십진법과 0의 개념을 발전시켰고, 음수를 도입했으며, 방정식 해법에서도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이슬람 수학자들은 이 두 전통을 수용하고 종합하여 새로운 발전을 이룹니다. 특히 대수학 분야에서는 9세기 알 콰리즈미Al-Khwarizmi가 획기적인 업적을 남깁니다... 그는 1차 및 2차 방정식의 체계적인 해법을 제시했고, 미지수 개념을 도입합니다. 예를 들어 x^2+10x=39와 같은 방정식의 해법을 기하학적 방법과 대수적 방법으로 제시했습니다.


11세기의 오마르 하이얌Omar Khayyam은... 3차 방정식의 기하학적 해법을 연구했고, x^3+ax=b 형태의 방정식을 원뿔 곡선의 교점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148/ ... 알 우클리디시Al-Uqlidisi는 10세기에 소수점을 활용한 최초의 수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 인도의 삼각법은 기하학 위주의 그리스 삼각법과는 달리 대수적 방법을 쓰는데 이슬람에서는 그리스와 인도의 방법을 통합하죠. 10세기의 아부 알 와파Abu al-Wafa는 사인, 코사인, 탄젠트 함수를 체계화했고, 더 나아가 시컨트 함수secant function를 도입합니다... 11세기의 알 비루니Al-Biruni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지구의 반경을 정확히 측정하는 데 적용했습니다.


수론 분야에서는 13세기의 알 파리시Al-Farisi가 완전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합니다... 11세기의 이븐 알 하이삼Ibn al-Haytham은 소수의 성질에 대한 중요한 연구를 수행합니다...


149/ ... 9세기의 사비트 이븐 쿠라Thabit ibn Qurra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150/ ... 알 바타니Al-Battani는 아스트롤라베Astrolabe를 개선하여 더 정확한 관측이 가능하게 했는데, 특히 천체의 고도와 방위각을 측정하는 데 있어 정밀도를 높였습니다. 그는 또한 아스트롤라베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삼각함수표를 개발하여 계산의 정확성을 향상시켰습니다. 그리고 알 하이삼은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의 원리를 이용해 일식을 관측했고, 이븐 유누스Ibn Yunus는 더 정확한 시간 측정을 위해 진자시계를 사용했습니다. 또한 나시르 앗 딘 앗 투시Nasir ad-Din ad-Tusi가 주도한 마라가 천문대의 건설은 대규모 관측 시설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 알 수피Al-Sufi는 <항성도>에서 안드로메다은하를 최초로 기록했으며... 울룩 벡Ulugh Beg은 사마르칸트 천문대에서 수행한 관측을 바탕으로 당시 가장 정확한 항성 목록을 작성했습니다.


153/ ... 라틴어로 '아비켄나Abicenna'라 불리는 11세기의 이븐 시나Ibn Sina은 아리스토텔레스 역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발전시킵니다...


154/ ... 이러한 여러 가지 논리적 모순점들로 인해 이븐 시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판단하게 되고, 이는 그가 새로운 '마일' 개념을 제안하게 된 동기가 됩니다.


'마일mayle/mile'은 원래 아랍어로 '경향' 또는 '성향'을 의미하는 말로... 후대의 임페투스 이론과 근대 역학의 발전에 중요한 바탕이 됩니다...


155/ 라틴어로 '아벰파세Avempace'로 불리는 12세기의 이븐 바자Ibn Bajjah는 이븐 시나의 역학 이론을 더욱 발전시킵니다...


156/ 이븐 바자의 이러한 연구는 수학적, 기하학적 분석을 통해 운동의 본질을 이해하려 했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인 것이었습니다. 특히 약 400년 후 갈릴레오가 수행한 낙하 운동 연구와 여러 면에서 유사성을 보입니다...


171/ 12세기부터 번역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된 데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첫째로는 십자군 전쟁과 이베리아반도에 대한 재정복운동Reconquista을 통해 유럽과 이슬람 문명 간의 접촉이 더욱 많아진 것이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둘째로는 도시의 성장과 상업발달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셋째로는 대학의 발달 역시 한 요인입니다...


172/ 넷째로는 교회와 세속 권력자들의 후원 또한 번역 활동의 촉진제 역할을 합니다...


다섯째이자 마지막으로는 유럽의 문화적 자신감 회복도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184/ ... 특히 피렌체의 신플라톤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 중심의 스콜라철학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죠.


제3부 과학혁명

194/ ... 실재론자들은 보편의 존재를 당연시했고, 유명론자들은 이를 단순한 이름으로 여겼습니다. 유명론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각각의 개별적인 사과들뿐이라는 것이죠.


유명론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키니코스학파 창시자로 소크라테스와 동시대 인물인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비판하며 개별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는 후대 유명론 사상의 선구적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중세에 본격적으로 제기한 이는 11세기의 로스켈리누스Roscellinus였습니다. 프랑스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던 그는 논리학과 문법학에 정통했으며, 콩피에뉴를 비롯한 여러 교회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195/ 로스켈리누스의 주장은 제자 아벨라르Pierre Abelard를 통해 더욱 발전합니다. 아벨라르는 보편 개념이 단순한 '말의 숨결'이 아니라 정신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했지요... 이는 현대 언어철학의 선구적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로스켈리누스의 사상은 당시 교회의 정통 교리와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로스켈리누스는 영국으로 망명하죠...


이 사상을 본격적으로 체계화한 이는 14세기의 오컴의 윌리엄입니다. 그는 "불필요하게 존재를 가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오컴의 면도날' 원리입니다. 쓸데없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불필요한 것들은 면도날로 베어내고 단순하게 보자는 것이지요. 이러한 유명론적 사고는 자연스럽게 경험론으로 이어졌습니다...


197/ ... 합리주의는 경험이나 감각이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는 선험적 지식을 중시하는 입장으로, 경험을 통해 얻는 후험적 지식과 대비됩니다. 이러한 합리주의 전통에 반기를 든 것이 바로 영국 경험론입니다.


로저 베이컨Roger Bacon이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3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프란치스코회 수도사였던 베이컨은 '실험과학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199/ 16세기 말에 이르러 윌리엄 길버트William Gilbert가 등장합니다...


길버트는 이러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1600년 <자석에 대하여De Magnete라는 책으로 출판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실험 과정과 결과를 상세히 기술했는데, 이는 현대 과학 방법론의 핵심인 '재현성'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201/ 프랜시스 베이컨은 영국 특유의 유명론과 경험론으로 이어지는 전통의 한 정점입니다...


202/ 베이컨은 학자들의 태도를 거미, 개미, 꿀벌에 비유해 설명합니다. 거미처럼 자기 내부의 논리만으로 관념의 그물을 짜는 이들, 개미처럼 그저 주변의 경험적 사실만을 죽 모으기만 하는 이들을 비판하면서, 꿀벌처럼 경험에서 얻은 재료를 가지고 보편적 진리의 꿀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진정한 학자의 자세라고 주장합니다.


204/ 첫째는 '동굴의 우상idola specus'입니다... 각자가 지닌 편견과 고정관념을 뜻합니다...


둘째는 '종족의 우상idola tribus'으로 인간이라는 종 전체가 공유하는 편견을 일컫습니다...


205/ 셋째는 '시장의 우상idola fori'인데, 이는 언어에서 비롯되는 오해와 혼란을 뜻합니다...


넷째는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으로 연극이 허구의 세계를 무대에 펼치듯 그릇된 이론이나 철학이 마치 진리인 양 받아들여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206/ 베이컨이 보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설명하기보다는 선험적 관념에 끼워 맞추는 오류에 빠져 있었습니다...


207/ <뉴 아틀란티스New Atlantis>라는 소설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건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을 겨냥한 겁니다...


208/ 소설은 '벤살렘'이라는 가상의 섬, 일종의 이상사회를 방문한 유럽항해자들의 이야기인데, 이 섬은 '솔로몬 하우스'라는 연구소가 중심입니다...


소설에는 당시로서는 황당무계한 발명품들이 등장합니다. 망원경, 현미경, 청각 증폭기, 인공 강우와 무지개 제조 기술, 비행선과 잠수함 등이 나옵니다... 솔로몬 하우스의 연구 성과는 모든 시민에게 공개되고 평등하게 배분됩니다. 이는 지식의 대중화와 민주화에 대한 베이컨의 신념을 보여줍니다.


베이컨의 사상을 이어받아 최초의 과학자 커뮤니티인 '영국 왕립학회'가 1660년에 설립됩니다. 학회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로버트 보일은 베이컨이 말한 실험 방법을 적극 활용했고, 존 윌킨스처럼 왕립학회를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들도 베이컨의 방법론을 지지했습니다...


210/ 1619년 겨울, 30세의 젊은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독일의 한 마을에서 추운 날씨를 피해 '난로가 잘 달궈진 방'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220/ 이때 그(코페르니쿠스)가 주로 본 책이 레기오몬타누스의 <알마게스트 발췌본>입니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과 파도바 대학에서 공부할 때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중심설을 접했을 수도 있겠지만, 레기오몬타누스의 책에서도 태양중심설에 대한 힌트를 얻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22/ ...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은 단지 우주의 중심이 지구에서 태양으로 바뀌는것뿐만 아니라 목적론이 사라지고, 천상계와 월하계의 구분이 없어지고, 생명의 사다리를 빼앗기고, 4원소설이 사라지는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니까요...


237/ 그(갈릴레오)가 의도적으로 지동설의 증거를 찾았다는 것은 거의 확실한 듯합니다. 가장 중요한 증거는 금성의 위상변화입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천동설에서는 금성은 항상 태양의 앞쪽에서 지구 주위를 돕니다. 그럴 경우 지구에서 보았을 때 금성의 모습은 항상 반달보다 더 얇은 모습일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금성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면, 지구에서 봤을 때 태양 뒤쪽에 있는 금성이 보름달 모양으로 동그란 걸 볼 수 있습니다. 지동설의 결정적 증거지요. 행성들의 역행운동은 억지로라도 맞추면 어찌어찌 천동설로도 설명할 수 있지만 금성의 위상변화는 천동설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38/ 그러나 금성이 보름달로 보이는 모습을 관찰하기란 당시로서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지구에서 볼 때 금성이 태양과 거의 같은 직선상에 있을 때입니다. 따라서 태양이 뜨기 전 잠깐 혹은 태양이 지고 난 뒤 잠깐밖에는 관찰할 수 없습니다. 태양이 뜨기 전이라도 혹은 태양이 지고 난 바로 뒤라도 햇빛이 대기권에 굴절되어 어스름한 빛이 있을 때라 더 관찰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구름이라도 끼거나 비라도 내리면 그조차 어렵지요. 위 그림처럼 2007년에 보름달 모습의 금성을 관찰할 수 있었던 시기는 7월에서 9월 사이 두 달 정도에 불과합니다. 절반은 해지고 난 뒤, 절반은 해뜨기 전에 관찰한 모습이죠.


239/ ... 거기에 시야각도 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릴레오가 금성의 위상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것을 관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하늘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목성의 위성 네 개를 발견한 것은 일종의 우연과 목적의식이 겹친 일일 것입니다...


255/ ... 어찌되었건 저 실험(사고실험)을 통해서 갈릴레오는 '운동하는 물체는 자신의 운동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는 임페투스 이론의 영향이 크지요... 갈릴레오는 자신의 저서에서 필로포노스에게 영감을 얻었다고 써놓기도 했고요. 어찌되었건 갈릴레오는 최초로 '관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관성르 뜻하는 'inertia'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케플러입니다... 그런데 갈릴레오의 관성은 지금 우리가 배우는 관성과는 좀 달랐습니다. 갈릴레오에 있어 관성운동이란 등속 원운동입니다. 즉 움직이는 물체는 외부의 작용이 없으면 계속 등속 원운동을 한다는 뜻이지요.


256/ ... 따라서 갈릴레오에게는 하늘의 기본적 속성인 원운동이 지상에서도 구현된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257/ ... 갈릴레오에게 직선은 원의 근사적 표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큰 원의 아주 작은 부분을 확대해보면 마치 직선처럼 보이는 것과 같지요...


258/ ... 지구와 우주가 하나의 관성, 등속 원운동의 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만족스럽고, 지구가 원운동을 할 때 일어날 것이라 지구중심론자들이 주장하는 현상이 왜 일어나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으로도 훌륭하니까요.


264/ ... 그러나 갈릴레오에게는 여기까지였습니다. 그가 낙하 운동을 중력이라는 외부 힘에 의한 운동이 아니라 물체에 내재된 속성에 의한 '자연스러운 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물체에 내재된 속성-지구를 향하는-은 속도와 연관된 것이 아니라 가속도와 연관된 것이라고 결론내리는 데 그칩니다...


265/ 갈릴레오는 이 부력으로부터 새로운 해석을 내놓습니다. 물체가 낙하운동을 할 때 그 공간을 채운 매질로부터 낙하를 방해하는 힘을 받는다고 주장한 것이지요. 그에 따르면 매질의 밀도가 크면 클수록 낙하를 방해하는 힘도 커집니다... 또 하나 낙하하는 물체의 밀도가 작으면 내려가려는 힘은 작은 반면 이를 방해하는 힘이 커서 물체의 낙하 속도가 더 작아집니다... 만약 진공이라면 낙하를 방해하는 매질이 없으니 낙하속도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 갈릴레오의 결론입니다...


267/ 이 사고실험들은 운동의 상대성이라는 혁명적 개념을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갈릴레오는 이를 통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옹호할 수 있었지요. 지구가 움직인다 하더라도 지구상에서의 물체의 운동은 지구가 정지해 있다고 가정했을 때와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이 개념을 발전시킨 이는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입니다. 하위헌스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 진자시계 개발, 파동설, 상대성 원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