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행의 기원

조영필 & 젬선생

by 조영필 Zho YP

우리가 현재 '음양오행'이라 하면서 사용하는 오행五行(木火土金水)의 개념은 서양의 4원소(물, 불, 흙, 공기) 또는 인도의 사대四大(地水火風)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서양의 4원소는 우주를 이루는 근본 물질이지만, 동양의 오행은 우주를 이루는 근본물질인 기氣가 변화하는 형태이다. 그런데, 외견상으로는 그 요소 중 火, 土, 水는 유사한 내용이고, 동양의 木, 金에 대해, 서양에서는 공기, 인도에서는 바람 등의 차이밖에 없는 것으로 보여, 비슷한 개념으로 오해할 수 있다.


서양에서, 특히 고대 그리스에서 4원소론의 전개과정은 비교적 명확하다. 그것은 우주의 근본물질이 무엇인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먼저 탈레스가 그 근본물질을 '물'이라고 주장하였으며, 그의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는 '무한자(아페이론)', 그리고 또 그 제자의 제자인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다른 의견을 제안하였다. 또 다른 계통에서 피타고라스는 '수',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라고 주장하였으며, 그리 유명하지 않은 페레키데스는 그것이 '흙(크토니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논의들은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로 체계화되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채택되어 이후 서양 과학사를 관통했다.


페레키데스(Pherecydes of Syros, 기원전 6세기경 활동)는 탈레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로, 신화적 상상력을 유지하면서도 우주의 기원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려 했던 독창적인 철학자이다. 그의 저작은 현재 단편적으로만 전해지고 있지만, 피타고라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① 최초로 산문(Prose)을 사용한 철학자

그 이전의 사상가들이나 시인들(호메로스, 헤시오도스 등)은 자신의 생각을 운문(시)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페레키데스는 자연과 신의 기원에 대해 그리스 최초로 산문 형태의 저술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감성적인 신화 서술에서 벗어나 논리적인 서술로 나아가는 중요한 변화였다.

② 삼원론적 세계관 (Zas, Chronos, Chthonie)

그는 만물이 존재하기 전부터 세 가지 신성한 근원이 영원히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 자스(Zas): 하늘(제우스)을 상징하며, 생명을 부여하는 원리.

- 크로노스(Chronos): '시간'을 의미하며, 만물이 생성되는 시간적 배경.

- 크토니에(Chthonie): 땅(흙)의 심연을 상징. 후에 자스와 결혼하여 '게(Ge, 대지)'가 되며, 여기서 만물의 물질적 기초가 형성.

그는 이 세 가지가 결합하고 충돌하며 우주의 질서가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특히 크토니에(흙)를 우주의 세 축 중 하나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근본 물질을 흙으로 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③ 영혼의 불멸과 윤회설

페레키데스는 영혼이 불멸하며 윤회(영혼의 이전)한다고 주장한 최초의 그리스 사상가 중 한 명이다. 이러한 사상은 이후 그의 제자로 알려진 피타고라스에게로 이어져 피타고라스 학파의 핵심 교리가 되었다.

④ 신화와 철학의 경계인

그는 여전히 '신'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그 신들을 인격적인 존재보다는 우주의 근본 원리나 자연적 요소로 해석하려 노력했다. 이는 만물의 근원을 찾으려 했던 밀레토스 학파(탈레스 등)의 활동과 궤를 같이하며 초기 형이상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에 반해, 동양에서의 오행의 성립과정은 각각의 개념과 학자들의 이름이 연결되어 있지는 않고, 전국시대 중기의 추연에 의해 비로소 체계적 학설의 외양이 제시되었다. 그런데 이 오행의 분류 그리고 오행의 운동(상생과 상극)은 그리 논리적이지는 않다. 분류적 측면에서 金은 흙과 유사하여 결합할 수 있고, 木은 또 생명체로 다른 요소들과 병렬적이지 않다. 또한 운동적 측면에서도 각 상생의 설명은 일관적이지 않고, 각 상극의 설명도 일관적이지 않다. 비유적으로 이해하여 외울 수 있는 정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이 동양사를 관통해서 의학, 지리, 풍수, 천문, 정치, 역사, 철학 전반에 변경될 수 없는 이론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동양 과학 역사의 불행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고대 중국에서 이러한 '오행' 이론이 가설이 아니라, 원리 원칙으로 정립되는 데에는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는 행성이 5개라는 사실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 학자들이 있다. 그 선구는 신죠 신조로서 그는 오행 이론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여러 경쟁 모델들이 있었으나, 하늘의 5행성에 지지를 받는 오행 이론에 그 자리를 내어주었다고 주장한다.


오행 이론 전에 등장한 것은 크게 2가지이다. 하나는 갑골문(기원전 13~11세기) 시대에 나타나는 방위에 따른 4方·4維와 4계절이다. 방위의 경우는 중앙을 합치면 井자로 구분되는 9方을 설정할 수 있는데, 홍범구주洪範九疇와 같이 9의 숫자로 우주 질서를 인식하려는 태도이다. 다른 하나는 지상의 삶의 원리에 적용되는 6行·6府의 개념이다. 여기서 '행行'은 철학적 행이 아니라 6가지 필수 자원을 의미했는데, 그것은 水, 火, 木, 金, 土, 穀이다. 이 중 곡穀은 다른 다섯 가지 물질과는 층위가 다른 최종 결과물이었으므로, 土에 흡수되거나 제외되어, 5材라는 개념으로 정리된다. 그리고 이 개념은 한층 정교해진 천문관측 기술이 하늘의 5행성行星을 분별하게 되자 그와 일치하는 오행 개념으로 변화한다. 그와 동시에 행성의 명칭도 역으로 오행의 영향을 받는다.


세성(歲星) → 목성,

형혹(熒惑) → 화성,

진성(鎭星) → 토성,

태백(太白) → 금성,

진성(辰星) → 수성


이러한 지상의 공간원리(9方)와 삶의 원리(6材)는 천상의 시간원리(5行)로 최종 정리되어, 전국시대의 추연(鄒衍)에 이르게 되면, 음양론과 결합하여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 등으로 통치자들에게 강력한 정치적 도구로 선택되었다. 그리고 이는 변경할 수 없는 하늘의 원리를 등에 업고 동양의 모든 사고 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고대 중국에서 '오행'이 승리하기 전까지 존재했던 대표적인 경쟁 모델들과 그 탈락 이유


1. 4행설 (방위와 계절 중심)

초기에는 동서남북 사방(四方)과 사계절에 맞춘 4행설적 사고가 강했다.

근거: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명확한 순환 체계이다.

한계: 평면적인 방위(동서남북)는 설명할 수 있지만, 만물의 근원이 되는 '중앙(Center)'이나 '바탕'을 설명하기 부족했다. 결국 중앙에 '토(土)'가 추가되면서 5행으로 확장되었다.

2. 6행설 (육부, 六府)

『좌전(左傳)』이나 『상서(尙書)』 등 초기 문헌에는 수, 화, 목, 금, 토에 곡(穀, 곡식)을 더한 '육부(六府)' 개념이 등장한다.

특징: 철학적 원리라기보다는 백성의 삶에 꼭 필요한 '여섯 가지 자원'이라는 실용적 성격이 강했다.

탈락 이유: '곡식'은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결과물이지, 천체 운행이나 자연의 근본 원소로 보기에는 보편성이 떨어졌다. 천문학적으로도 하늘에 '여섯 번째 행성'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았던 점이 결정적이었다.

3. 9행설 (홍범구주, 洪範九疇)

『상서』의 「홍범」 편에는 세상을 다스리는 아홉 가지 원칙인 '구주(九疇)'가 등장한다.

특징: 오행은 이 아홉 가지 중 첫 번째 항목일 뿐이었다. 즉, 초기에는 오행이 우주 전체를 설명하는 독립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통치 원리의 하위 개념 중 하나였다.

변화: 이후 음양론과 결합하면서, 아홉 가지의 복잡한 분류보다 5라는 숫자가 주는 수리적 안정감이 힘을 얻게 되었다.

4. 왜 '5'가 최종 승자가 되었는가? (신죠 신조의 견해)

신죠 신조는 오행설이 승리한 이유를 철저히 '오성(五星)의 발견'에서 찾는다.

관측의 한계: 고대 망원경이 없던 시절,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적인 행성은 딱 5개(목, 화, 토, 금, 수)였다.

역법과의 일치: 5라는 숫자는 1년을 72일씩 나눌 때 딱 떨어지는 수치였으며, 이는 360도 원형 궤도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수리적 모델이었다.

정치적 통합: 전국시대 추연(鄒衍)이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을 주장하며 왕조의 교체를 오행의 순환으로 설명하자, 통치자들에게 강력한 정치적 도구로 선택되었다.



신죠 신조(新城新藏, 1873~1938)는 일본의 천문학자이자 동양 천문학사 연구의 개척자로, 오행(五行)의 기원을 철저히 천문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는 오행설이 단순히 철학적인 사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고대인들이 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며 얻은 실제적인 데이터에 근거한다고 주장했다.


1.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오성)과의 연관성

신죠 신조는 오행의 기원을 육안으로 관찰 가능한 다섯 개의 행성(오성, 五星)에서 찾았다. 고대 중국인들이 하늘을 관측하면서 태양과 달 외에 독특한 움직임을 보이는 다섯 행성을 발견했고, 이들의 운행 규칙을 지상의 물질적 요소와 결합했다는 것이다.

목성(木星): 약 12년을 주기로 하늘을 한 바퀴 도는 목성의 규칙성은 시간과 방위를 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토성(土星): 약 28년을 주기로 운행하며 28수(宿)를 상징하는 지표가 되었다.

2. 계절의 변화와 방위 개념의 결합

그는 오행이 사계절의 순환과 방위를 설명하기 위한 체계로 발전했다고 보았다.

동(東) - 목(木): 만물이 소생하는 봄.

남(南) - 화(火): 뜨거운 태양과 만물이 무성한 여름.

서(西) - 금(金): 결실을 맺고 단단해지는 가을.

북(北) - 수(水): 만물이 잠들고 응축되는 겨울.

중앙(中央) - 토(土): 사계절의 변화를 중재하고 받아들이는 바탕.

3. 오행설의 성립 시기: 전단설(前段說)

신조는 오행설이 한꺼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형성되었다고 설명한다.

초기 단계: 전국시대 이전에는 단순히 '다섯 가지 유용한 물질(五材)'이라는 실용적 개념이었다.

발전 단계: 전국시대 중기 이후, 추연(鄒衍)과 같은 제자백가에 의해 천문 관측 데이터와 철학적 논리가 결합되면서 비로소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는 '오행설'로 체계화되었다고 분석했다.

4. 천문학적 역법과의 관계

그는 오행이 고대 역법(Calendar)의 기초가 되었다고 강조한다. 특히 '1년 = 365.25일'이라는 수치와 오성의 회합 주기를 맞추려는 노력이 오행 사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고 보았다. 즉, 오행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당대의 가장 첨단 과학이었던 천문역법의 부산물이라는 것이 그의 핵심 요지이다.



그의 저서인 『동양천문학사 연구(東洋天文學史硏究)』를 보면 오행뿐만 아니라 십간십이지와 역법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매우 정밀하게 다루고 있다.

신죠 신조는 오행의 순환 원리인 상생(相生)과 상극(相克) 역시 단순한 철학적 유추가 아닌, 행성의 관측 주기와 역법(달력)의 수리적 결합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1. 상생(相生)의 근거: 행성의 순차적 출현

신죠 신조는 상생의 원리가 밤하늘에서 행성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눈에 띄거나 특정 위치에 도달하는 순서와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목 → 화 → 토 → 금 → 수: 이는 목성의 12년 주기 등을 기준으로 하늘의 구역(방위)을 나눌 때, 계절의 흐름에 따라 행성들이 힘을 얻는 순서와 일치한다.

그는 이를 '오성의 운행 방향'과 연결 지었다. 행성들이 황도를 따라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는 순행(Direct motion) 과정이 지상의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는 '상생'의 이미지로 투영되었다는 것이다.

2. 상극(相克)의 근거: 행성 간의 '역행'과 '가림'

상극의 원리에 대해서는 보다 역동적인 천문 현상을 근거로 든다.


행성의 역행(Retrograde): 행성이 정상적인 방향과 반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때, 고대인들은 이를 '질서를 깨뜨리는 침범'으로 보았다.

오성 범절(五星犯截): 한 행성이 다른 행성의 궤도 근처로 다가가거나 가리는 현상을 관측하며, 특정 기운이 다른 기운을 억제하거나 이기는 '상극'의 논리를 도출했다.

예를 들어, 붉은 빛의 화성(火)이 유독 밝아지며 다른 별의 영역을 침범할 때, 이를 금(金)의 기운을 억제하는 현상으로 해석하는 식이다.

3. 수리적 모델: 72일 주기설

신죠 신조는 오행이 1년(약 360일)을 72일씩 다섯 구간으로 나눈 역법적 모델에서 기원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오행 기간 (일) 천문적/계절적 의미

목(木) 1~72일 봄의 기운이 왕성한 시기

화(火) 73~144일 여름의 열기가 절정인 시기

토(土) (환절기) 각 계절 사이의 전환점 (중앙의 조화)

금(金) 217~288일 가을의 결실과 숙살(肅殺)의 시기

수(水) 289~360일 겨울의 응축과 저장의 시기


신조의 관점에서 상생은 이 72일의 구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을 의미하며, 상극은 이 주기적 균형이 깨지거나 행성의 불규칙한 움직임이 발생했을 때 나타나는 '충돌'을 기호화한 것이다.


4. 결론: "하늘의 질서가 곧 땅의 윤리"

신죠 신조의 분석이 혁신적이었던 이유는, 오행을 근거 없는 미신이 아니라 "행성들의 복잡한 움직임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모델로 공식화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즉, 상생상극은 우주라는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가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설명하는 고대판 '통합 물리 법칙'이었던 셈이다.



신죠 신조의 연구와 최신 고고학적 성과를 종합해 보면, 갑골문(기원전 13~11세기 무렵) 단계에서는 우리가 아는 체계적인 '5행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에는 '5'라는 숫자에 집착하기보다, 사방(四方)과 오방(五方), 그리고 실용적인 자원 개념이 혼재되어 있었다.


갑골문에 나타난 초기 형태의 '행(行)'설

1. 4방설과 5방설 (공간의 탄생)

갑골문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은 숫자 '4'와 '5'에 기반한 방위 개념이다.

4방(四方): 동, 서, 남, 북의 네 방위를 신격화하여 제사를 지냈다. 각 방위에는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이름(풍신)이 붙어 있었다.

5방(中央의 등장): 4방의 중심에 상나라 왕실이 있는 '중앙'을 더해 5방(五方) 체계가 형성된다. 신죠 신조는 이것이 훗날 오행 중 '토(土)'가 중앙에 배치되는 공간적 기틀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2. '5행'이 아닌 '5제(五帝)'와 '5방'

갑골문에는 '수화목금토'라는 단어의 조합이 우주 원리로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5'라는 숫자는 주로 다음과 같이 쓰였다.

5방(五方): 동, 서, 남, 북 + 중앙

5제(五帝): 다섯 방위를 관장하는 신령

즉, 갑골문 시대에는 물질의 성질(오행)보다는 공간의 구획(오방)이 훨씬 중요했다.


3. 6행설의 맹아 (실용적 자원)

갑골문과 초기 문헌(상서 등)의 흔적을 추적해 보면, 고대인들은 처음에 '행(行)'을 '우주의 기운'이 아니라 '사람이 걸어 다니는 길' 혹은 '행해야 할 것'으로 이해했다.

당시에는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에 곡(穀, 곡식)을 더한 6행(또는 육부, 六府) 개념이 더 강했다.


"물과 불은 음식을 만들고, 나무와 쇠는 도구를 만들며, 흙은 곡식을 기른다."

이처럼 초기에는 철학적 '행(行)'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여섯 가지 필수 자원'이었던 셈이다.


오행 이전에 오재(五材)라는 개념이 있었다. 『좌전(左傳)』에 따르면, "하늘이 오재를 냈으니 백성이 이를 모두 사용하며,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초기의 의미: 이때의 목화토금수는 추상적 원리가 아니라 생활 필수 자원이었다.

木: 땔감과 건축 자재

火: 요리와 난방

土: 농사와 주거지

金: 도구와 무기

水: 음용과 농업용수


오재는 물질 그 자체보다 그것이 인간에게 주는 효능에 집중했다. 『상서(尙書)』 「홍범」 편은 오재가 오행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주는데, 각 물질의 '성질(Function)'을 정의한다.

수(水): 아래로 흘러가 적셔주는 것 (윤하, 潤下)

화(火): 위로 타오르는 것 (염상, 炎上)

목(木): 굽고 곧게 뻗어 나가는 것 (곡직, 曲直)

금(金): 변혁하고 따르는 것 (종혁, 從革)

토(土): 씨 뿌리고 거두는 것 (가색, 稼穡)


4. 왜 '6'에서 '5'로 줄었나? (신죠 신조의 핵심 주장)

신죠 신조는 이 대목에서 자신의 전공인 천문학을 가미한다.

관측적 이유: 지상에서의 자원은 '곡식'을 포함해 6가지일 수 있지만, 하늘을 보니 밤하늘을 떠도는 특별한 별(행성)은 딱 5개였다.

체계화의 압박: 전국시대에 이르러 천문 관측 기술이 정교해지자, 지상의 6행 모델은 하늘의 5성(五星) 모델과 충돌하게 된다.

결과: 결국 '곡(穀)'은 토(土)의 결과물로 흡수되거나 제외되었고, 하늘의 별자리와 숫자가 맞는 5행이 최종적인 우주의 표준으로 채택된 것이다.


6재(육부)의 맥락에서 '곡'의 역할은 다른 다섯 가지와 층위(Layer)가 달랐다.

수화목금토: 도구이자 수단 (Tool)

곡(穀): 최종 목적지 (End product)

통치자의 입장에서 수화목금토를 잘 다스리는 이유는 결국 '곡식을 풍성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물과 불로 익히고, 나무와 쇠로 쟁기를 만들어, 흙에서 '곡식'을 낸다."

따라서 '곡'은 동등한 위치의 '행(行)'이 아니라, 5행이 상호작용한 결과로서의 부가가치였던 셈이다. 나카야마 시게루는 철학이 심화되면서 '수단'들만 모아 우주의 원리(오행)로 삼고, '결과'인 곡은 경제의 영역으로 분리되었다고 본다.


은허(殷墟) 갑골문에서 '9'라는 숫자와 관련된 체계가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현대적인 의미의 '9행설(9가지 원소설)'이라기보다는, 신죠 신조는 이를 공간 분할과 통치 구조의 초기 형태인 '구방(九方)' 또는 '구주(九疇)'의 원형으로 해석한다.


갑골문 속의 '9'와 관련된 체계가 어떻게 오행설로 변모했는지?


1. 갑골문의 '9' : 원소가 아닌 공간(방위)의 개념

갑골문 연구에 따르면, 상(殷)나라 사람들은 세상을 중앙과 그 주변을 둘러싼 8개의 방위, 즉 총 9개의 영역으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고대 은나라 사람들은 토지를 분할하거나 도시를 건설할 때 '우물 정(井)'자 모양의 9등분(정전법의 원형)을 사용했다.

구방(九方): 왕이 다스리는 '대읍상(大邑商)''중상(中商)' 기록. 이를 중심으로 사방(四방)과 그 사이의 간방(사유, 四維)을 합친 개념다.


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 편들(특히 『갑골문합집(甲骨文合集)』)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등장한다.

구방(九方): 상나라 왕실을 둘러싼 아홉 방위의 부족 혹은 지역을 의미한다. 이는 공간을 9개로 쪼개어 인식하는 고대인의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구주(九州)의 원형: 훗날 천하를 아홉 구역으로 나눈 '구주' 개념의 원형이 갑골문의 방위 체계에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낙서(洛書)와 구궁(九宮) 체계

신죠 신조는 천문학적 관점에서 '낙서'의 9개 숫자 배열이 갑골문의 공간 인식과 연결된다고 본다.

중앙(5)을 중심으로 1부터 9까지 배열된 마방진 형태는 고대 중국인이 우주의 질서를 '9'라는 숫자로 파악하려 했던 시도이다.

구주(九疇)의 기원: 『상서(尙書)』 「홍범(洪範)」에 나오는 '홍범구주'의 '구(9)'가 바로 이 갑골문 시대의 9구역 공간 분할론에서 유래했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① 『상서(尙書)』 「홍범(洪範)」 편의 '홍범구주(洪範九疇)'

가장 결정적인 출처이다. 홍범은 상나라(은나라)의 기자(箕子)가 주나라 무왕에게 전해준 통치 원리로 알려져 있다.

핵심 내용: 하늘이 우(禹)임금에게 내린 9가지 큰 법이라는 뜻으로, 첫 번째가 오행(五行), 마지막이 오복과 육극이다.

구제(九祭): 아홉 종류의 제사 의식이 우주적 순환 주기에 맞춰 배치된 점.


2. 9행의 핵심 동력: 사방풍(四方風)과 그 이름

갑골문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행(行, 움직이는 힘)'의 명칭은 바람의 이름이다. 고대인들은 이 바람들이 우주의 기운을 순환시킨다고 믿었다.


방위 바람의 명칭 (갑골문) 의미 및 성질

동(東) 협(協) 또는 협풍 조화롭게 만물을 소생시키는 바람

남(南) 미(微) 또는 가풍 만물을 무성하게 기르는 바람

서(西) 이(夷) 또는 채풍 만물을 거두어들이는(죽이는) 바람

북(北) 력(劦) 또는 한풍 만물을 응축하고 숨기는 바람


2. 9행설이 5행설과 경쟁했던 이유

고대 중국에서 '9'는 우주의 완전성을 상징하는 숫자였다. 그러나 신죠 신조는 왜 이 '9'의 체계가 결국 '5'에게 자리를 내주었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구조적 복잡성: 9행설(또는 9방설)은 방위를 세분화하기에는 좋지만, 만물의 변화(상생·상극)를 수리적으로 계산하기에는 너무 복잡했다.

천문학적 불일치: 가장 결정적인 근거이다. 신죠 신조는 "하늘에 육안으로 보이는 행성이 9개가 아니라 5개였다"는 사실이 9행 체계를 무너뜨렸다고 본다. 고대인들에게 지상의 숫자는 반드시 하늘의 숫자(천수, 天數)와 부합해야 신성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수리적 통합: 9라는 공간적 틀보다, 실제로 움직이며 지상에 영향을 미치는 5개 행성의 '역동성'이 더 강력한 설명력을 가졌다. 결국 『여씨춘추(呂氏春秋)』나 『회남자(淮南子)』 단계에 이르면 9의 공간 체계는 배경으로 물러나고 5의 원소 체계(오행)가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나카야마 시게루는 이 9방 체계 위에 하늘의 오성(五星)이 겹쳐지면서 오행설로의 압축이 일어났다고 본다. 당시 인식되던 행성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세성(歲星): 목성 (시간의 기준)

형혹(熒惑): 화성 (전쟁과 재앙의 징조)

진성(鎭星): 토성 (땅의 기운과 연결)

태백(太白): 금성 (강력한 군사력과 결실)

진성(辰星): 수성 (물과 역법의 기준)

3. 9(공간)에서 5(원소)로의 수렴 과정

신죠 신조는 9방설과 같은 다원적인 체계가 오행설로 통합되는 과정을 '천문학적 합리화' 과정으로 본다.


단계 중심 숫자 성격 신죠 신조의 분석

초기 (갑골문) 9 (구방) 공간적 분할 영토 확장과 제사를 위한 방위 구분

과도기 6 (육부) 실용적 자원 인간 생활에 필요한 물질 중심

확립기 (전국시대) 5 (오행) 우주적 원리 오성(五星) 관측과 역법의 결합으로 완성


4. 홍범구주 속의 오행 (9안에 담긴 5)

흥미롭게도 갑골문의 전통을 이은 『상서』 「홍범」을 보면, 세상을 다스리는 9가지 큰 원칙(구주) 중 첫 번째가 바로 '오행'이다.


이는 고대 중국인들이 '9'라는 거대한 통치 시스템 안에, 만물의 근본 원리로서 '5'를 끼워 넣었음을 보여준다. 즉, 9행설이 따로 존재해 5행설과 싸웠다기보다는, 9라는 큰 틀 안에서 5라는 핵심 원리가 추출되어 독립한 것으로 보는 것이 신죠 신조와 현대 고고학의 교차점이다.


결론적으로

은허 갑골문에 나타난 '9'의 체계는 세상을 구획하는 '공간적 틀'이었고, 이후 행성 관측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 틀 속에서 가장 핵심적인 5가지 동력(오행)이 추출되어 우주관의 주류가 된 것이다.

신죠 신조는 이를 두고 "지상의 복잡한 9구역설이 하늘의 명쾌한 5성설에 굴복한 것"이라 평하기도 했다.


나가야마 시게루의 설명에 따르면, 9행설은 '공간' 중심의 우주관이었고, 5행설은 '시간(주기)' 중심의 우주관이다.

나카야마 시게루(中山 茂)는 5행성의 명칭이 오늘날의 '수·화·목·금·토'라는 오행(五行) 명칭으로 고정된 이유를 단순한 작명이 아니라, 천문학적 관측과 정치 철학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