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시작은 왜 자정인가?

조영필 & 젬선생

by 조영필 Zho YP

하루를 나눌 때 일출과 일몰을 기준으로 낮과 밤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또 정오를 기준으로 오전과 오후로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하루의 기점은 어떻게 해서 자정이 된 것일까? 자정은 밤 동안 직접 측정하기는 쉽지 않다. 마땅한 기준점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루 중 정오의 대척점으로서 수학적으로 인식되는 시점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정이 하루의 기점인 것은 무엇때문인가?


이집트인들은 일출을 하루의 시작으로 보았다. 태양신 라Ra가 태어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하루가 바뀌는 시점은 일몰이었다. 탁 트인 평원이 많았던 메소포타미아 지형에서 일몰은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시각적 신호이었다. 또한 달의 신인 신Sin은 태양신 샤마슈Shamash의 아버지로 숭배되었다. 아버지가 아들보다 먼저이듯, 달의 시간(밤)이 태양의 시간(낮)보다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는 종교적 위계가 작동했다. 이는 오늘날 유대교의 안식일이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전통으로 남아있다. 정오를 하루의 기점으로 잡을 수도 있다. 헬레니즘 시대 천문학자들은 정오를 하루(천문일)의 기점으로 삼기 시작했다. 밤중에 날짜가 바뀌면 관측기록을 정리하기 매우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 관습은 1925년까지 천문학계에서 유지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자정 기준은 고대 로마의 관습에서 유래했다. 로마인들은 행정적·법적 편의를 위해 자정을 하루의 시작으로 삼았다. 일출이나 일몰을 기준으로 삼으면, 계절에 따라 낮과 밤의 길이가 달라져 하루의 길이가 고무줄처럼 변한다. 하지만 자정은 태양이 보이지 않는 밤의 한가운데이므로, 낮 동안의 경제 활동이나 법적 계약을 중단 없이 처리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정오의 정반대 지점인 자정은 수학적으로 하루를 가장 완벽하게 이등분하는 지점이었다.


14세기 유럽에서 기계식 시계가 보급되면서 자정 기준은 더욱 확고해졌다. 기계식 시계는 정오나 자정을 기준으로 12시간씩 두 번 회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었고, 밤의 한복판인 자정에 날짜가 바뀌는 것이 일상생활의 혼란을 최소화했다. 19세기 산업혁명기, 기차 시간표를 짜기 위해 전 세계적인 표준시가 필요해졌다. 이때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자정 0시'를 하루의 시작으로 규정한 GMT(그리니치 표준시) 체계가 확립되면서 전 세계가 이를 따르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에 일출과 일몰 등 각 나라마다 기준이 달라 혼란스러웠다. 한漢의 태초력泰初曆에서 자정(야반夜半)을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고 당唐의 대연력大衍曆에서는 정자시正子時를 분리하여 자시子時 내 날짜 변경시점을 더욱 정교하게 지정하였다.


결국 자정은 계절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는 고정점이자 인간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는 최적의 틈새로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가르는 시간의 기점이 되었다.



Note:

최진묵 (2013), '중국 고대사회의 시간활용', 인문논총 제70집, pp. 10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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