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80년대 나의 대학시절에는 꿈과 낭만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리고 전집이 있었다.
강당에서 기숙사로 가는 길의 언덕 위 벤치에선 항상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전집 외판원이었다. 그는 이제 막 지식의 세계로 들어선 우리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친절한 가이드였다. 우리는 그의 인도에 따라 하나 둘 전집을 갖게 되었다.
지식인 아니 지성인이 되려면 당연히 읽어야 할 책들을 한꺼번에 아주 헐값으로 넘겨주었다. '창작과 비평', '씨알의 소리', '현대 세계문학전집', 한 전집의 할부가 끝나가면 다음 전집을 또 권하였다.
내가 돈이 많았다면 아마 그가 권하는 전집을 모두 샀을 것이다. 그러나 한 달 용돈 5만 원인데 그중 3만 원이 전집 할부금으로 나갔으니, 더는 구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여러모로 바쁜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에서 그 전집을 읽을 시간은 없었다. 그리고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산 그 책들을 안 읽고 그냥 버릴 수는 없었다. 언젠가 그 책들을 읽으리라는 희망으로 잦은 이사에도 불구하고 그 책들을 서가에 꽂아두고 항상 보아왔다.
결혼을 하는데, 신부의 짐에도 전집이 들어있었다. '소·동구권 문학전집', 이제 읽어야 할 책이 늘었다. 이 책들을 끼고 이사 다니고 외국에 갈 때는 시골집에 갖다 놓았는데, 아버지가 서가를 직접 짜서 보관해 주셨다.
그러나 이 나의 전집들도 아이들의 성장에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집은 좁고 아이들의 책도 많아져서 결국 눈물을 머금고 읽지도 못한 책들을 재활용 쓰레기로 버려야 했다.
그 후로 나는 전집을 잘 사지 않는다. '로마인 이야기'는 한 권씩 사서 읽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1집은 한 권씩 사서 읽다가 2-3집은 전집을 사서 읽었다.
전집은 한국의 근대화 시기 압축성장의 한 상징이다. 서점에 자주 갈 형편도 안 되고 책은 귀한데, 전집 하나 사 두면 사골국처럼 천천히 다 고아 먹을 수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문학전집 두 질은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지금도 마음속으로는 그 전집들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전집은 내 인생의 모든 기억을 함께 한 친구들이었다.
'친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