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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의 투명한 외침

조영필

by 조영필 Zho YP

베버의(1) 투명한(2) 외침(3)


TEXT: Max Weber, The Methodology of the Social Science, 서광



I


'우리의 모든 인식(認識)은 문화(文化)의 소산(所産)이다.'(Weber, p.55:3) 이 명제(命題)는 막스 베버의 *객관성(客觀性)* 논문이 가지는 모든 논의의 처음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그는 당대의 학문이 안고 있는 존재(存在)와 당위(當爲)의 혼란(4)을 문제 삼는다. 그리고 존재와 당위는 결코 동일시(同一視)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5)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근저(根底)에는 실재(實在)(6)와 의식(意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가정이 깔려 있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과학적 분석 자체가 의미(意味)를 창출(創出)하는 것이다.'(Weber, p.19:57)라는 언명(言明)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문화적(文化的) 가치판단(價値判斷)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우리의 세계에 대한 구체적(具體的) 인식(認識)은 도저히 보편원리(普遍原理)(7)가 될 수 없다(8)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버에게 있어 문화과학(文化科學)은 기본적으로 일면적(一面的)(9)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문화현상에 대해 보편성을 지향(指向)하는 사회과학은 우리의 실천적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구체적 이해도 제공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천적 정책의 토론에 있어서 과학은 어떠한 자격을 가지게 되는가? 여기에는 언제나 이념(理念)과 가치판단이 개입된다. 따라서 분석적(分析的) 사유질서(思惟秩序)(10)는 정책의 목적과 수단 및 결과에 대한 사실분석(事實分析)(11)을 행함과 동시에 그러한 목적의 배후(背後)에 놓여있는 이념을 밝혀낸다.(12) 이때 비로소 정책은 그 암묵적인 전제(前提)의 베일이 벗겨지고 불 밝혀진 이념투쟁(理念鬪爭)의 현장에 들어서게 된다.(13)



II


'세계관은 결코 축적된 경험의 산물일 수 없다.'(Weber, p.?:?) 우리는 베버라는 목자(牧者)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오다, 윤리의 상대주의라는 요지경 속에 빠져버렸다. 이제는 오히려 자기합리화의 눈(14)을 감고 무한히 펼쳐진 사막 한가운데에서 지나온 생(生)을 반추할 때이다.


인식론에 있어서 진리의 대응설(對應說)은 그 내적(內的) 결함(15)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자연의 과학적 발견에 의하여 항상 그릇된 세계관의 수정을 요구받아 왔다. 혹자(或者)는 '그래, 실재(實在)의 사실적(事實的) 속성(屬性)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16) 하지만 그것이 바로 규범(規範)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하고 반문(反問)할지 모른다. 사실 실재에 대한 공통된 지식에 근거한다 하더라도 문화는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17) 그러나 그것은 또한 실재 자체의 사실적 속성에 의해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인정되어야 한다.(18)



III


그리하여 이제 실재에 의해 한정(限定)되는 문화현상(文化現狀)(19)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베버에게서처럼 일면적 가치지향(價値指向)이어야 할 필요는 사라졌다. 베버가 거부(拒否)하는(20) 류적(類的) 개념의 보편성도 실천지향의 유물 변증법도 또한 실증주의도 구조주의도 모두 세계를 드러내는 제 나름의 타당한 방법론인 것이다. 그러나 가치중립화(價値中立化)의 진정한 의미, 어떠한 과학도 세계에 대한 독단적(獨斷的)이고 배타적(排他的)인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21)는 베버의 의도가 투명하게 여전히 외쳐져야 한다. 그리하여 가치판단에 대해 항상 깨어있는 의식이 실재에 대해 그리고 실재와 의식의 관련(關聯) 속에 무한히 열려있고 보편적인 세계관을 형성해가는 과학의 새로운 이정표(里程標)가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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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본 리포트의 논의는 우리 그룹이 발표한 *Objectivity* 논문의 pp 44-69의 내용에 대체로 한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한정은 단지 우리가 제시하려는 과학관에 대한 베버적 질료로서의 의미가 크다. 그러므로 이를 통하여 보다 포괄적인 논의로 나아가게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2) '투명한'이라는 말의 선택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 의한 것이다. 즉 베버는 그의 과학관의 본질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데 있어 스스로 충분히 자기완결적이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는 베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갈래의 내적외적 혼란을 제거하고 이를 명확히 제시하려는 것이다.

(3) 본 리포트의 주제는 발표시(11월 21일)의 주제와 상이하고 이해의 심도는 더 깊다. 참고로 발표시의 주제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대상 2. 목적 3. 형식 4. 보편성 5. 세계관: 1. 베버는 단지 사유관련에 의해서만 자연과학과 문화과학 및 제 분과학들을 구별하려고 했다.(p68: 6) 그러나 우리는 철학의 인식론적 전통에 입각하여 그러한 구별의 의도를 명확히 하려면 이를 사물관련으로 환원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그것은 다음장의 [설명도형]1에서 제시된다. 이로써 사회과학이 가치관련과 인과관련을 통하여 문화현상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근거가 보다 확실해진다. 또한 존재와 당위에 관한 베버적 접근도 쉬게 이해되어진다. ; 2. 베버는 문화과학의 목적을 실천적 문제의 과학적 비판에 두었다. 그것은 이념의 선택은 사회철학의 영역에 맡겨두고, 단지 실천적 정책의 가치맥락과 사실분석에만 과학이 전념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학적 비판의 과정과 의미는 역시 다음장의 [설명도형]2에서 제시된다. ; 3. 비판가능한 과학의 근거로서 중요한 두 축인 논리와 실증이 베버에게 있어서는 "경험적 질서를 분석적으로 사유질서화"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념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이념형의 명증화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표시에는 가치판단이 과학의 *객관성*에 대하여 가지는 의미가 본 리포트의 수준에서처럼 이해되지는 못하였다. 주(10) 참조) ; 4. 이상의 논의로서 베버적 의미에서 과학의 *객관성*은 달성되었지만 과연 보편성은 달성될 수 없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 근거로는 오늘날 실증주의 사회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인과율적 이해 이외에 구조적 이해(구조주의 사회과학)로도 사회현상은 분석되고 있음을 내세웠다. ; 5. 마지막으로 세계는 진보하지 않을지라도 과학은 진보해왔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자연과학적 발견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에 주목한다.(이에 대하여 존재와 당위에 대한 보다 엄밀한 이해는 본리포트에서 충분히 이루어질 것이다. II의 둘째문단과 주(18)참조)

설명도형 I 과 설명도형 II

(4) 이 혼란은 종교가 부여받고 있던 윤리적 위엄을 과학이 떠맡으려는 데서부터 일어났다.

(5) 이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후술하겠지만 베버의 표현맥락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존재와 당위의 무조건적인 절연은 보다 충분히 고찰되어야 한다.

(6) 베버에게 있어서는 칸트의 물자체적 내포를 가진다.

(7) 일반적으로 자명성의 환영에 의하여 보편원리이면 일수록 더욱더 가치판단에 지배받는다. 또한 과학은 보편원리에 대한 토론을 회피할 수 없다. 그러나 설사 보편원리가 설정된다 하더라도 의식과 실재에 대한 베버적 Text의 논의선상에서 그것은 필연적으로 공허한 것일 수밖에 없다.

(8) 따라서 진보성은 우리가 세계에 부여한 의미일 뿐이다.

(9) 가치지향

(10) 베버의 전제에 의거한다면 어떠한 과학적 분석에 대해서도 가치판단이 개입한다. 그러나 또는 그는 분석적 사유질서를 통하여 객관적인 사실분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얼핏 보기에 융합되기 힘든 이러한 모순은 베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해를 통하여서만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가치전제가 같다면 분석적 사유질서가 명확히 작용할 때 과학은 동일한 사실분석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어떠한 정책에 대한 사실분석은 그 가치전제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즉 베버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가치판단과 사실판단은 순서적으로 선후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인식하에서만 과학은 1) 그 가치판단의 척도를 밝혀야 하고 2) 가치관련 문장과 사실 진술 문장을 구별해야 한다는 베버의 주장이 이해될 수 있다. 또한 가치전제와 분석적 사유질서를 통한 문화현상의 분석이론을 구체화한 것이 그의 이념형이라는 것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회현상의 연구에 있어 그의 문화적 가치판단을 명확히 규정지은 전제 그 자체가 바로 이념형인 것이다.

(11) 주(10)에 의거할 때 어떠한 가치전제에 입각한 인과관련적 사실 분석을 또한 의미한다.

(12) 설명도식2와 주(3)의 2 참조

(13)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것은 자신의 양심과 세계관에 의거한 선택의 문제가 된다.

(14) 형식논리적인 인식론

(15) 그것은 실재와 실재에 대한 인식은 존재적으로는 연속적이지만 논리적으로는 (비교될 수 없으므로) 불연속적이라는 결함을 말한다. 박이문의 '인식상대주의', [인식과 실존], 문학과지성사 참조

(16) 이제 실재는 더이상 칸트의 물자체적 의미에 머무르지 않는다.

(17) 이것은 실재에 대해 의미부여를 하는 인간의 자율성이다.

(18) 존재와 당위가 결코 동일시될 수 없다는 베버의 주장은 그 표현맥락을 살펴볼 때 상이한 두 가지 근거를 모호하게 포괄하고 있다. 그 하나로는 경제학이 비록 윤리적 진화론과 역사적 상대주의를 통한 자각에 의하여 윤리규범의 실질적 내용을 획득하고자 하나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관점에서 일면적인 사회분석에 불과하므로 결코 윤리과학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존재적 지식이 완전할 수 있다면 당위적 지식이 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다른 하나로는 자연법과 진화론이 존재와 당위의 구별에 혼란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재에 대한 지식을 우리가 아무리 완전히 획득했다 하더라도 그에 기초한 문화는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위의 두 가지 맥락은 각기 존재와 당위의 일원론과 이원론에 대응한다. 그러나 본리포트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여 전개해나가기엔 준비와 숙고가 부족하다. 다만 우리는 존재가 당위를 한정한다는 인식의 통일을 확보하는 선에서 만족하며 또한 강조하는 바이다.

* 베버는 사회현상을 경제적 현상(경제적 목적), 경제적으로 관련된 현상(경제적 관심), 경제적으로 조건지워진 현상(경제적 규정)의 셋으로 분별하면서 실제 현상에서는 이런 구별이 명확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부연한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무한한 변수가 내포된 사회현상을 경제적으로 일률적으로 규정하려는 것은 부당하다고 논파한다.

(19) 보편과 특수가 융합된 연구대상

(20) 가치지향적 관점에 의해서만 수용되는

(21) 다른 과학의 방법론에 의해서도 스스로의 세계관이 수정되어질 수 있다는 깨어있는 의식, 하버마스의 담론적 의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 아래서만 상이한 방법론 유파 간에 사회정책에 대한 의미있는 서로의 견해가 교환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베버의 가치중립화가 또는 다른 어떤 과학자의 유보될 수 있는 신념이 이론실천적(알뛰세적 개념)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 하더라도...





(1986. 12. 22. PM 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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