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인터넷에서 장기의 기원과 역사에 대하여 서술한 글들을 보면, 하나같이 '조무구는 [광상희]에 대한 서(序)를 썼고, 사마광은 [칠국상희]를 고안하고 또 [상희도법]을 저술하였다'고들 한다. 다음은 그 복사학파(사실 확인 없이 퍼나르기, 오류 Copy 재생산)의 한 문장을 예시로 옮겨본다.
'중국 장기의 연원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만들어졌다고 하며, 송(宋) 나라 사마광(司馬光)의 《상희도법(象戱圖法)》에는 장(將)·사(士)·보(卒)·차(車)·마(馬)·노(弩)·포(包) 등이 있어, 오늘날 유행되고 있는 장기와 비슷한 형태가 나타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기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전통놀이), 2002, 한국콘텐츠진흥원)
윗글에서 중국 장기가 춘추전국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도 아무런 근거 없는 서술이지만, 궁금한 것은 과연 [상희도법]이었다. 정말 [상희도법]이라는 책이 있는 것일까? 만약 있다면, 그 책에서 기술하는 기물의 행마는 어떨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사마광의 [상희도법]의 원문은 복사학파의 근거(출전)없는 기술 외에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읽지도 못하는 간자로 뒤덮힌 중국어 웹을 검색해 보았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중국의 장기(샹치) 사이트에서 사마광의 [상희도법]에 대한 내용은 있으나, 오히려 그 출처는 한국의 사이트로 링크를 걸고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일까? 그들의 인용 전거는 바로 조선 말기의 실학자인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이었다. 중국 고전의 내용 진위가 한국의 서물에 달려 있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청장관 이덕무의 손자인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는 고전번역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부분은 아래와 같다.
象戱편001。相傳爲武王伐紂時作。卽不然。亦出於戰國兵家者流。蓋時猶重車戰也。【《後周書》。周武帝作象戱。《太平御覽》。周武帝所造。而其臣王襃爲經行棋。有日月星辰之目。與今所爲不同。宋司馬溫公作象戱圖法。有將士、步卒、車馬、砲弩之名。今所用是也。我東俗名將棋。《和圖會》作將戲、將棋。與我所稱同。而今誤爲博戲云。】
(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 인사편 기예류 잡기 戲具辨證說)
이 글을 보면, 이규경은 중국의 서적인 [태평어람]을 참조하여, 사마광의 [상희도법]에 대한 해당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상희도법]에 대한 해당 내용의 원전은 [태평어람]이라고 할 것이다. 다시 [태평어람]의 원문을 중국 사이트에서 찾아 보았다. 다음은 [태평어람]에 있는 장기(상희) 관련 내용이다.
周武帝造象戲,王褒為《象經序》曰:一曰天文,以觀其象天,日月星辰是也;二曰地理,以法其形地,水火木金土是也;三曰陰陽,以順其本。陽數為先,本於天;陰數為后,本於地是也。四曰時令,以政其序,東方之色青,其餘三色,例亦如之是也。五曰算數,以通其變,俯仰則為天地日月星,變通則為水火金木土是也。六曰律呂,以宣其氣,在子取未,在午取丑是也。七曰八卦,以定其位,至震取兌,至離取坎是也。八曰忠孝,以惇其教,出則盡忠,入則盡孝是也。九曰君臣,以事其禮,不可以貴凌賤,直而為曲,不可以卑畏尊、隱而無犯是也。十曰文武,以率其務,武修七德,文表四教是也。十一曰禮儀,以制其則,居上不驕,為下盡敬,進退有度可法是也。十二曰觀德,以考其行,定而後求,求而後取,時然後言,樂然後笑是也。或外廷以報言,義存遷善;或黜退以貶過,事在懲惡。或以沈審為貴,正其瞻視;或以徇齊為功,明其糾察。得失表於隆替,在賤必申,怠敬彰於勸沮,處尊思屈。片善崇於拱璧,一言逾於華袞。
(태평어람 공예부 12 상희 원문)
아무리 눈 씻고 보아도 사마광의 [상희도법] 관련 문장은 찾을 수 없었다.
힌트는 예기치 않은 곳에 있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원문에서 [태펑어람] 운운 다음에 다른 내용의 출처인 듯 보이는 [화도회(和圖會)]가 그 답이었다. [화도회]란 일본인 데라시마 료안(寺島良安)이 1712년에 편찬한 일종의 백과사전 [화한삼재도회]를 일컫는 것이다.
당연히 [화한삼재도회]의 해당 원문을 찾아, 또다시 까막눈인 일본어 가나 웹사이트를 검색하였다.
다음은 윗그림에 보이는 ’[화한삼재도회] 권17 상희’의 원문과 졸역이다.
太平御覽云、象戲後周武帝所造。而其臣王襃爲經。行棋、有日月星辰之目。與今所爲不同。
[태평어람]에 이르기를 상희(장기)는 후주의 무제가 창안하였다. 그 신하인 왕보가 기록하기를 기물이 움직이는 데에 일월성신(천체)의 좌표가 있다고 하였다. 이는 지금의 장기가 목적하는 바와 다르다.
註1) 기 게재한 [태평어람] 원문을 보라. 후주 무제의 [상경(象經)]과 우리가 지금 전략 게임으로 생각하는 장기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宋司馬溫公作象戲圖法。有將士、步卒、車馬、砲弩之象。今所用是也。
송의 사마광(사마온공)이 상희도법을 지었는데, (거기에는) 장군과 사졸, 보와 졸, 차와 마, 포와 노의 기물이 있다. 이는 지금의 장기에서 쓰이는 바와 같다.
註2) 사마광이 [상희도법]을 지었다는 확인된 역사상 첫 기술이다. 이 기록의 전거는 어디일까요?
五雜俎云、象戲相傳爲武王伐紂時作。卽不然。亦(出於)戰國兵家者流。蓋時猶重車戰也。
[오잡조]에 이르기를 상희(장기)는 전설에 따르면, (주의) 무왕이 (은의) 주왕을 토벌할 때 만들었다고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또한 전국시대 병가 학파의 유산일 것이다. 대개 이때는 이미 전차전이 중요한 때이다.
註3) 주의 무왕 운운은 후주 무제의 [상경]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전국시대가 전차전이 중요한 시대였다는 것은 올바른 기술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역으로, 전쟁에서 코끼리를 운용하지 않은 시대이다. 따라서 장기판의 현실과 실제 전투의 현실은 상이한 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추론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兵卒過界有進無退。故是、沈船破釜之意。
졸병은 전선을 돌파해야 하는데, 전진만 있고 후퇴는 없다. 그 까닭은 침선파부의 뜻이다.
註4) 침선파부는 배를 가라앉히고, 솥을 파괴한다는 뜻으로 항우의 강동 출병 고사에 나오는 것으로 배수진의 각오를 뜻한다. 장기에서 보졸의 행마에만 후퇴가 없는 것에 대한 나름의 해석 시도이다.
其機會變幻、雖視圍棋稍約、而功守救應之妙、亦有千變万化、不可言者。
그 기회 변환은 비록 바둑(圍棋)이(보다) 간략해진 것으로 보이지만, 공수 대응의 묘는 또한 천변만화가 있어 말로는 다할 수 없다.
놀라운 사실이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상희도법] 운운의 기록은 이규경이 직접 해당 자료를 확인하여 기록한 것이 아니라, [화한삼재도회]의 해당 문장을 거의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규경은 '주무제 ~ 금소용시야'의 문장이 [태평어람]에 당연히 나오는 것으로 오해하였다. 그래서 위와 같이 본인이 직접 [태평어람]에서 인용한 것처럼 기술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태평어람] 원문을 직접 확인해 보니 [태평어람]에서 유래된 문장은 '주무제 ~ 성신지목'까지뿐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가 있다. 다시 말하여,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나오는 장기 관련 기록은 일본인 寺島良安의 화한삼재도회, 권17, 희희부, 상희(象戱) 편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그런데, [화한삼재도회]는 중국의 원전을 어느 정도 참조하였을까?
우선 [화한삼재도회]의 기록과 그 전거인 [태평어람]과 [오잡조]를 비교해 보았다. 태평어람운(太平御覽云) 이후의 '상희후주(象戲後周) ~ 성신지목(星辰之目)'은 [태평어람]을 인용 또는 요약한 것이다. 다음으로 오잡조운(五雜俎云) 이후의 문장은 마지막까지 모두 [오잡조]에서 인용한 것이다. (아래 원문 참조)
그러나 '송사마온공(宋司馬溫公) ~ 금소용시야(今所用是也)'의 문장은 그 출처가 어디에서도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중국 왕기의 [삼재도회] 원문을 확인해보아도 그 내용은 없다.
이것이 한국 인터넷에서 앵무새처럼 복사하고 있는 장기의 기원 및 역사에 관한 중요한 기술의 실상이다.
사실무근의 내용이 한 비전문가(일본인 의사)에 의해 기술이 된다. 그런데 조선의 한 학자는 그 출처를 은근슬쩍 감춘 채 자신의 백과전서에 당당히 기록한다. 중국에서는 일본보다는 믿을 만한 한국의 전거를 인용한다. 한국에서는 또한 한문 고전의 원천인 중국의 자료를 신뢰하여 참조한다. 그리고는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 모든 인터넷 상에 가득히 진실인 양 채워지게 된다.
그렇다면, 사마광이 [상희도법]을 지었다는 기사는 도대체 어떠한 사실에서 비롯된 사연일까? 데라시마 료안은 무엇을 보고 또 생각하며 기록한 것일까?
혹시 사마광의 [칠국상희]를 [상희도법]으로 기록하였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사마광의 [칠국상희]에도 노(弩)라는 기물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칠국상희]에는 차(車)와 마(馬)는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유사한 행마를 하는 편(偏)과 기(騎)는 있다. 그런데, 또 보졸(步卒)이 없다. 이래저래 앞뒤가 잘 안 맞게 된다.
[칠국상희]는 7인이 대국 가능하며, 중국 전국시대의 전국칠웅(진, 초, 제, 위, 조, 한, 연)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져 있다. 웹사이트에서 누구나 조회할 수 있지만, 간략히 살펴보면, 기물은 각국이 17개이다. 장군, 편(偏), 비(裨), 포(砲), 궁(弓), 노(弩), 행인(行人)은 각 1개이며, 도(刀)는 각 2개이고, 검(劍), 기(騎)는 각 4개씩이다.
행마법은 장군은 체스의 퀸과 같고, 편(偏)은 차(車), 비(裨)는 체스의 비숍, 포(砲)는 상치(중국 장기)의 포, 도(刀)는 상치의 사(士), 검(劍)은 상치의 장군의 행마인데, 특이한 것은 궁(弓), 노(弩), 기(騎)의 행마이다. 궁(弓)은 퀸이 4보까지만, 노(弩)는 퀸이 5보까지만 가는 행마이다. 아마도 활의 사정거리에 차이가 나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기(騎)는 우리 장기의 상(象)보다 사선으로 1칸 더 진격한다. 마지막으로 행인(行人)은 또한 장군과 같이 체스의 퀸의 행마를 하고 있다. 그러나, 잡을 수도 없고 잡히지도 않는 기물이다. 마치 지형지물과도 같이 활용 가능한 전략적 기물인 셈이다. 이를 영어 사이트에서는 외교관(Diplomat or Liaison Officer)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칠국상희]에 나오는 기물들의 명칭과 행마는 현재의 중국장기와는 사뭇 다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존재가 확인되지 않은 [상희도법] 운운하며, 중국 장기가 매우 이른 시기부터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형성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기술이다. 실제로 사마광의 생존 시기에 현재의 중국 장기는 아직 나타나지도 않고 있었다.
[칠국상희]에서 주목할 점은 정명도의 상희시(또는 영상희)에 보이는 편(偏), 비(裨)의 기물이 보이는 반가움이다. 그런데, 이 편과 비는 장군의 좌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졸과는 달리 매우 강력한 기물이라는 점에서 체스의 퀸을 연상시킨다. 또한 행마 그 자체로는 정확히 일본 쇼기의 비차와 각행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일본 쇼기의 비차와 각행이 체스의 영향인지, [칠국상희]의 영향인지, 또는 반대로 쇼기의 비차와 각행이 [칠국상희]의 편과 비에 영향을 끼쳤는지 하는 것도 알 수가 없다. 이 의문은 질문 목록에 새로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은 어느 쪽으로도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는 힘들어 보인다.
사마광과 정명도는 비슷한 시기의 인물이다. 그렇다면, 당시에 [장, 차, 마, 편, 비, 보, 졸]을 갖춘 장기도, [장, 사, 보, 졸, 차, 마, 노, 포]를 갖춘 장기도 각기 존재하며 경합한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본다. 중국은 넓고, 각 지방에 따라 여러 특색 있는 장기들이 두어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화한삼재도회에 나오는 '병졸과계(兵卒過界) 유진무퇴(有進無退) 고시(故是) 침선파부(沈船破釜)'라는 구절에서 침선파부(沈船破釜)는 초한전 당시 항우가 강동에서 출병할 때 생긴 고사성어라고 한다. 즉 장강을 건너온 배를 가라앉히고, 밥 짓는 솥을 파괴할 정도로 임전무퇴의 결의를 다졌다는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초한전이 모티브로 작용하는 장기에 대한 기술에서 침선파부의 단어가 사용된 것은 상당히 문예적 아취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2015. 01. 12)
Note: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는, 1712년경 출판된 일본의 백과사전이다.
편집자 데라시마 료안(寺島良安)은 원래 오사카의 의사로, 스승 와키 나카야스(和氣仲安)으로부터 "의사라면 삼라만상의 모든 것에 밝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1607년에 중국에서 간행된 왕기(王圻)의 저서 《삼재도회》의 구성을 본떠 여기에 일본과 관련된 내용을 대폭 보충하여 《화한삼재도회》를 지었다.
전체 105권 81책에 이르는 분량으로 각 항목마다 일본과 중국의 사상을 배열하고 고증하여 거기에 삽화를 더했다. 본문은 모두 한문으로 해설되어 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상의 영역이나 황당무계한 내용도 많지만, 저자가 의사였던 만큼 동양 의학에 관한 기사는 매우 정확하며, 침이나 뜸을 다루는 치료사들 중에는 이 《화한삼재도회》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고전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조선에까지 전해져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참조처 http://blog.daum.net/hakjaone/34)
[태평어람] 공예부 10 위기 10th 장기 관련 원문
《晉中興書》曰:王恬,字敬豫,與濟陽江霖俱善弈棋,為中興第一。
又曰:陶侃在荊州,見佐吏博弈戲具,投之於江,曰:「圍棋者,堯、舜以教愚子;博者,商紂所造。諸君并懷國器,何以為此?」
[오잡조] 권 6 장기 관련 원문
象戲,相傳為武王伐紂時作,即不然,亦戰國兵家者流,蓋時猶重車戰也。兵卒過界,有進無退,正是沈船破釜之意。其機會變幻,雖視圍棋稍約,而攻守救應之妙,亦有千變萬化,不可言者,金鵬變勢略備矣。而尚有未盡者,蓋著書之人,原非神手也。
象戲視圍棋較易者,道有限而算易窮也。至其棄小圖大,制人而不制於人,則一而已。
《唐玄怪錄》載岑順事,可見當時象棋遺制,所謂「天馬斜飛」、「輜車直入」、「步卒橫行」者,皆彷彿與今同。但雲「上將橫行擊四方」者,稍異耳。唐不聞有象,而今有之。胡元瑞雲:「象不可用於中國。」則局中象不渡河,與士皆衛主將者,不無見也。